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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워렌 모녀가 지은 <맞벌이의 함정>은 맞벌이를 하는 미국 중산층의 명목소득이 증가했지만, '안전'과 '교육'에 대한 비용이 상승하면서 30년 전인 1970년대보다 재정적 위험이 더 커졌다는 것을 여러 증거를 통해 보여주었다.

마치 루이스 캐럴의 <거울나라의 엘리스>에 등장하는 '붉은 여왕'처럼 아무리 빠르게 달려도 삶의 풍경이 바뀌기는커녕, 속도가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중산층 경쟁에서 탈락한다는 사실을 이토록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책도 흔치 않다.

도대체 그 많던 성공 신화들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아무리 빨리 달려도 환갑 전에 자가 주택 마련하기가 쉽지 않고, 자본이 부족하면 아무리 머리를 써도 '작은 책방'이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우리는 정말 '이상한 나라'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

토끼굴같은 이상한 헌책방

 하얀 나무가 그려진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공연무대
 하얀 나무가 그려진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공연무대
ⓒ 이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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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서울에는 사람도 많지만 경찰서도 많다. 그 중 은평구에 위치한 서부경찰서 정문이 있는 골목길에는 조금은 '특별한' 헌책방이 있다. 경찰서와 헌책방이라는 생소한 조합에 대한 호기심으로 헌책방을 찾아 나선다면 의외로 찾기가 쉽지 않다. 성마른 사람은 간판도 제대로 안 보이는 책방에 대해 짜증을 내며 되돌아갈지 모른다.

하지만 엘리스가 그러했듯이 하릴없이 경찰서 담벼락을 따라 오가노라면 혼잣말을 하는 분홍빛 눈의 하얀 토끼가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연신 시계를 꺼내 들면서 "늦었다, 늦었어!" 라며 바삐 뛰어가는 그 토끼 뒤를 급히 따라 가보면 심하게 경사를 이루며 아래로 쭉 뻗은 건물계단에 발을 들여 놓게 된다.

잘못 들어왔나 생각할 순간 어느새 속이 깊은 우물 같은 곳으로 빠지게 되는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우물이 아주 깊었는지, 아니면 엘리스처럼 너무 천천히 떨어져서 그런 느낌을 가질지 모르겠다. 문을 들어선 순간, 잘 꾸며진 도서실 같은 느낌을 주는 책장과 책상들이 여기 저기 편안하게 놓여 있고, 심슨가족, 판화 프레스기, 하얀 나무가 자라는 작은 무대 그리고 유지태의 사진이 눈에 띄면서 여기가 책방이 맞나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엘리스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그렇다. 바로 이곳이 주인이 읽은 책만 파는 곳, 공연도 하고 전시회도 열고 모임도 하고 강좌도 열리는 곳, 동네 사람들의 사랑방과 아이들의 쉼터 같은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상북)'이다. '이상북'은 헌책방이자 북카페이고 청소년을 위한 대안 문화 공간이기도 하다. 존 레논을 닮은 이 곳의 책방지기가 지난 세밑에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란 상호를 제목으로 책을 펴냈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일기

 지난 세밑에 발간된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겉면
 지난 세밑에 발간된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겉면
ⓒ 이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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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은 하얀 나무와 거꾸로 가는 시계가 있는 지하의 헌책방에서 책을 읽고 그 책을 팔고 책으로 사람을 만나는 헌책방지기의 이야기이다. 이 책은 크게 두 장으로 나뉜다. 출근길 신지도 않는 신발들이 신발장에 가득하다는 사실에 우울증을 겪고 난 뒤에 직장을 그만두고 '돈 안 되는' 헌책방을 차려서 꾸려 가는 이야기인 '헌책방일기'와 자신이 읽은 책의 서평으로 채워진 '독서일기'가 그것이다.

먼저 '헌책방 일기'에는 꼬마 '독서광'이었던 어린 시절의 에피소드, 오랫동안 일하던 직장을 그만두고 출판사와 헌책방에서 일을 하다가 직접 헌책방을 차리게 된 사연, 자신의 책들로 책방을 채우며 책꽂이도 책상도 직접 만들던 헌책방 개업 준비, 헌책방을 운영하며 겪는 여러 가지 일 등이 담겨 있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하게 얘기되는 것은 바로 '사람'이다. 늘 공부에 시달리는 동네 아이들, 대안학교인 '은평씨앗학교' 아이들, 일제고사거부로 해직이 된 정상용 선생, 대안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조종호 선생, 생명평화탁발순례의 도법 스님, '좋은만남교회'의 방현섭 목사, 평화와 생명을 노래하는 가수 홍순관, '작은책' 발행인인 안건모씨 등과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에 드나들고 이상북지기와 인연을 맺는다. 헌책방을 가득 채운 것은 헌책이지만, 헌책의 사이를 메워 주는 것은 사람이고, 그들이 품은 사연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 시대에 '동네 헌책방'이 살아남는 일종의 '지침서'가 된다.

무엇을 어떻게 읽을까?

책의 두 번째 장을 이루고 있는 '책 읽기, 사람 읽기'는 응암동 헌책방지기의 '독서일기'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인 이상북지기는 자기가 읽은 책만 판다고 한다. 그러니까 헌책방에서 파는 책들은 적어도 이상북지기가 먼저 읽어본 것들이며, 그의 감식안을 통과했다는 의미에서 일정한 질이 담보된다고 할 수 있다. 그의 독서일기는 이러한 검안과정이 어떻게 무슨 기준으로 이루어지는 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지난해 하반기 출판계의 영웅 한비야가 자신의 책 <그건, 사랑이었네>에서 추천한 '24권+1'의 '추천도서' 중 일부는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대부분 판매 부수가 급증했다고 한다. 필자는 '한비야 도서목록'을 이미 읽어 보았지만, 그녀의 책읽기에 대해서는 그다지 공감하지 못했다.

역시 책이란 누가 언제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감흥이 다르다. 그래서 스스로의 의문과 갈망을 해소시켜 줄 수 있는 책을 고르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저자인 이상북지기도 '무엇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글에서 이러한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상한나라의 헌책방지기 윤성근님
 이상한나라의 헌책방지기 윤성근님
ⓒ 권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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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이상북지기가 추천한  책 중에 유감스럽게도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외에는 읽어 보지 못했다. 그만큼 저자와 나의 독서분야가 다름에도 그의 독서일기를 즐겁게 감상하였다.

저자가 엄선한 '24권+ɑ'의 책은 한비야가 추천한 '24권+1과 유사하지만, 독서의 방식과 기준이 다르다. 무엇보다 이상북지기는 무엇을 어떻게 읽을 지에 대해서 뚜렷한 자기 관점을 갖고 있다. 또한 읽는 책의 범위도 추리소설에서부터 인문과 철학, 정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면서 일관된 무엇이 느껴진다.

저자인 이상북지기는 진지하지만, 때론 추리소설에서 진범을 찾듯이 텍스트를 해체하기도 하고, 나름의 콘텍스트를 재구성하면서 책이 자신에게 던져주는 의미를 곱씹을 줄 아는 사람이다. 특히 '내 배낭속의 영국남자' 마커스가 실존 인물이 아닐 것이라고 분석하는 대목은 책 읽기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생생하게 보여 주었다.

현명한 독서가란 독자에게 읽어야 할 책이 무엇인지를 말해 주기보다 책을 어떻게 고르고 읽는 지에 대해서는 일정한 원칙과 방법을 보여 주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상북지기'는 평범하지만 진지한 독서가라고 할 수 있다.

그 많던 책방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동네에 있는 작은 서점들이 없어져간다. 종로서적이나 동화서적 같은 중대형 서점들도 더 큰 자본을 갖춘 대형서점이나 인터넷 서점에게 경쟁력을 갖지 못해 문을 닫았다. 이렇게 도서시장이 자본을 중심으로 재편되어가는 상황에서 저자는 지난 3년간 헌책방을 씩씩하게 꾸려 왔다.

물론 저자는 자본의 크기를 넘지 못하는 경쟁을 못마땅해 한다. 자본제일주의와 출발선이 다른 선수들 간의 무한대의 경쟁을 부추기는 시장 환경에서는 작은 책방이 설 자리가 없다고 본다.

하지만 저자는 책방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장소가 되어야 하고, 만나는 사람들이 책을 매개로 문화를 일구어 내기를 바란다. 그러한 고민과 노력의 일부가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책을 사랑하고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여러분께 일독을 권한다.  

덧붙이는 글 | 김대규 기자는 서울디지털대학교 법학전공의 조교수입니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윤성근 / 이매진 / 2009-12-31 / 1만2천 원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의 웹사이트: www.2sangb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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