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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랜드 여성조합원들의 파업투쟁을 기록한 영화 '외박'
 이랜드 여성조합원들의 파업투쟁을 기록한 영화 '외박'
ⓒ 이선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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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외박>은 2007년 여름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이랜드 홈에버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을 담았다. 프랑스 유통업체인 까르푸가 이랜드그룹으로 매각된 후 홈에버로 간판이 바뀌면서, 홈에버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은 불법적으로 해고를 당했다. 이랜드로 바뀌지 않았다면 해고되지 않았을 노동자들이 2007년 7월 1일부터 시행된 비정규직보호법 때문에 해고가 된 것이다.

갑자기 일자리를 잃은 동료들을 위해 여성노동자들은 2007년 6월 30일 홈에버 월드컵몰점의 계산대를 기습적으로 점거하고 1박2일의 농성을 시작한다. 그렇지만 이랜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이에 분노한 조합원들은 자발적으로 농성을 이어갔다. 그러나 하루의 외박이 생각지도 못한 기나긴 파업으로 이어졌고 2008년 11월 13일 극적으로 510일 간의 외박은 끝을 맺는다.

김미례 감독의 <외박>은 그동안 국내 영화제에서 초청작으로 상영되었고 이미 일본의 야마카타영화제와 도쿄, 오사카 상영회 등에 초청되어 큰 호평을 받아왔다. 노동자들의 투쟁이 많지 않은 일본에서 <외박>에 대한 관심도는 높았다. 그래서 나는 지난해 12월 12일부터 16일까지 일본 오사카노동영화제에 초청을 받았다. 이번 오사카노동영화제는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알리는 영화로 <외박>을 선정했다. 나는 투쟁의 당사자로 황옥미 지부장과 함께 게스트로 초청을 받아 난생 처음 일본을 방문했다.

일본으로 간 <외박>, 대박나다

지난 12월 일본 오사카노동영화제에 초청받은 이경옥 전 이랜드노조 부위원장(가운데)이 일본어판 <외박> 포스터를 들고 있다.
 지난 12월 일본 오사카노동영화제에 초청받은 이경옥 전 이랜드노조 부위원장(가운데)이 일본어판 <외박> 포스터를 들고 있다.
ⓒ 이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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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동안 노동자로 살면서 여행 한 번 변변히 가보지 못한 나는 마음이 설렜다. 지난 12월 12일 오전 10시, 비행기에 몸을 맡긴 지 1시간 20분 만에 오사카 간사이공항에 도착했다.

우리는 영화제 집행위원인 하라다 게이코씨와 이케다씨의 마중을 받았다. 국철과 전철을 번갈아 타며 오사카 시내로 향했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노란 은행잎과 빨간 단풍잎, 햇살은 따뜻해보였다. 우리는 덴마바시역 인근 호텔에 여장을 풀고 바로 제너럴 유니온을 방문했다. 일본에는 많은 외국인들이 취업을 하고 있어 노동조합은 각국 외국인 노동자를 상대로 상담원들을 배치하여 권리를 찾아 준단다. 꽤 인상적이었다.

덴마바시에는 큰 규모의 슈퍼마켓이 없어 우리는 전철로 10분 거리에 있는 교보시의 다이에 슈퍼마켓을 방문하였다. 계산대에 서서 일하는 일본의 유통노동자들을 보니 무척 힘들어 보였다.

한국은 이랜드 홈에버 투쟁시기에 서비스연맹에서 의자 캠페인을 진행했었다. 그 성과로 대형매장에 의자가 설치됐고 앉아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보수적인 일본에서 노동자들의 의자가 설치되기에는 요원해 보였다. 저녁식사로 회전초밥을 먹으며 낯설지 않은 일본에서의 첫 밤을 지냈다.

12월 13일 오사카노동영화제가 열리는 날. 상영회장으로 가는 길목은 일요일이라 한산했다. 영화제를 준비하는 동지들만 분주했다. 우리가 준비해 간 일본어판 <외박> 포스터를 벽에 붙이고 행사장에 들어가는 관객들에게 인사했다. 일본의 동지들은 한국에서 온 우리를 알아보고 반갑게 맞아주었다. 일본에서의 <외박> 상영은 처음이 아니라 내 얼굴을 알아보는 분들이 많았다.

상영회에는 220여 명의 관객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영화가 끝나고 우리는 무대로 나가 인사를 했다. 많은 관객들이 우리에게 환호와 박수를 보내주셨다. 아침부터 티켓판매를 하고 안내를 맡았던 하라다씨도 멀리서 손짓을 하며 영화제의 성공을 알렸다.

이번 영화제의 <외박> 상영은 <아사히신문>에도 보도됐다. 그래서 그런지 일반인들도 많이 왔다. 일반 관객들은 직접 우리 자리까지 찾아와 인사를 했고, 재일 교포도 영화가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이런 것이 영화의 힘이 아닐까?

일본에서 울려펴진 "비정규직 철폐하자"

지난 2007년 7월 8일 오후 이랜드 그룹 계열사인 서울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몰에서 장기점거농성 중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지난 2007년 7월 8일 오후 이랜드 그룹 계열사인 서울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몰에서 장기점거농성 중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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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가 끝나고 뒤풀이 장소로 가는데 관객 한 분이 나에게 '영화 화면보다 미인이다'라고 했다. 사실이기에 나는 웃으며 "맞다"고 했다. 뒤풀이는 화기애애하게 진행됐다. 각자의 소개를 했는데 너무나도 한국과 닮은 구석이 많았다. 하라다씨는 "영화제가 성공해서 너무나 좋다"고 말했다.

뒤풀이에는 아주 다양한 분들이 많이 참석했다. 19일에 <외박>이 상영될 도쿄노동영화제 실무자도 참석했고 오사카 노동자지원 변호단의 변호사와 NHK에 있었던 고야마씨도 우리와 함께 했다. 교토의 앤도 레이코씨와 노조활동가들이 함께한 뒤풀이는 <외박>의 성공적인 오사카상영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12월 14일 방문 3일차 오전에는 호텔인근의 오사카 성을 둘러보았고 오후 6시 30분 오사카노동자들과 간담회를 진행했다. 이랜드 홈에버 투쟁에 대한 질문이 가장 많았고 대부분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들은 성심성의껏 답변했다. 간담회는 밤 9시까지 진행되었으며 분위기는 좋았다. 간담회 취재 차 참석했던 <아사히신문> 여기자는 "남편이 가사 일을 도와주지 않아 자기도 남편과 아이들의 밥을 하러 가야 한다"고 멋쩍어 하며 총총히 사라졌다.

12월 15일 방문 4일차엔 일본의 천년 고도 교토의 관광코스를 걸으면서 전통을 이어가는 일본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오후 6시 30분 여성단체가 주최하는 간담회에도 참석했다. 우리는 여성으로서 투쟁하면서 겪었던 힘든 점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고, 우린 "경제적 문제도 중요하지만 가족과 남편들의 문제가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일본 남성과 한국 남성이 별반 다르지 않아 서로 공감했고 마지막으로 영화에서 나오는 "비정규직 철폐하자"는 구호를 참석자들과 함께 외쳤다. 뒤풀이는 조촐하게 여성단체 사무실에서 했고, 우리는 <외박> 포스터에 사인을 했다.

영상을 통한 새로운 연대, 이제 시작되다

이제 공식적인 행사는 모두 끝났다. 12월 16일과 17일은 비공식행사로 우리는 그동안 가이드역할을 하신 하라다 게이코씨에게 510일 동안 사용한 투쟁조끼와 털모자를 줬다. 18일 서울로 출발하는 날, 리무진 버스가 호텔을 떠나기 직전 전날 찍었던 사진을 인화해서 달려온 이케다씨를 보며 일본 동지들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갑자기 마음이 울컥하였다. 옆에 아무도 없었다면 나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을 것이다.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생면부지의 일본 동지들에게 우리는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은 것이다. 그들은 일본에선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에 진정어린 마음으로 연대했고 오히려 우리에게 투쟁하는 방법을 배웠다며 과찬의 말을 했다.

나는 일본을 방문하기 전까지만 해도 일본에 대한 많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많은 일본인들이 있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다. 이제 양심 있는 일본인들이 <외박>을 널리 알리기 위해 뭉쳤다. 나는 그분들을 알게 된 것을 이번 방문의 최대성과라고 말하고 싶다.

<외박>은 2010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한국과 일본에서 공동체 상영을 준비하고 있다. 비록 이랜드 홈에버 510일 파업이 종료됐지만, <외박>이 여자라고 무시당하며 차별받는 여성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주었으면 한다. 이제껏 전국 각지에서 많은 분들이 이랜드 투쟁에 나선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많은 연대를 보내주었듯, 영상을 통한 새로운 연대는 이제부터 시작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경옥 기자는 전 이랜드일반노조 부위원장으로, 현재는 서비스연맹 미조직비정규특별위원장입니다.



태그:#이랜드, #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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