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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을 위해 2000년 6월 13일 오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중 대통령과 직접 영접나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밝은 표정으로 역사적인 악수를 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2000년 6월 13일 오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중 대통령과 직접 영접나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밝은 표정으로 역사적인 악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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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벽두부터 남북정상회담이 화두다.

북한이 2010년 신년공동사설에서 "남북관계 개선의 길을 열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분단의 시원을 1948년으로 잡는다면 벌써 62년이 되었다. 그런데도 통일의 길은 요원하다. 기나긴 분단의 세월 동안 정상회담은 단 두 차례 있었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6.15 남북정상회담과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의 10.4남북정상회담이 그것이다.

무엇이 그리 불만스럽고 못마땅했는지 이명박 정부는 이 두 차례 정상회담에서 채택한 6.15공동선언과 10.4정상선언을 원천 부정하고 있다.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살, 2009년 개성공단 일시 교착, 서해 해상 충돌까지 서로 갈 때까지 가더니 이제 갑자기 정상회담을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싱가포르 비밀접촉은 임태희 노동부 장관이 국정원 국제담당부서와 싱가포르 주재 대사관 지원을 받아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등을 만남으로써 성사되었다고 한다. 그 뒤 11월 현대 아산 채널을 통한 비공개 의사 타진을 2차례 했고, 통일부 고위당국자의 개성 접촉 등이 더 있었다고 한다. 주제는 남북정상회담이었으며 조건만 맞았다면 2009년 12월 중 전격적으로 한번 성사시켜보자는 데까지 진행되었다가 지금은 일시 덮어둔 상태다.


청와대와 국정원의 고민, 어떻게 과거와 다른 남북정상회담 만들까


정치적으로 '크게 남는 장사'라는 판단 아래 이명박 정부는 올해 6월부터 G-20 서울회의가 열리는 11월사이라면 좋겠다는 거다. 청와대와 국정원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과거 남북정상회담과 다르게 모양을 뽑아내느냐에 있다고 한다.

특히 올해 6월2일 지방선거가 있기 때문에 미리 남북정상회담으로 분위기를 띄우면 보수언론이 이를 적극 밀어줘서 '원칙있는 대북정책의 승리'로 포장해서 지방선거에 철저히 활용했으면 좋겠다는 의도도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금년 6월에서 11월 사이 정상회담을 한다고 계속 애드벌룬을 띄워놓으면 미국과 북한이 대화에 속도를 낼 경우 뒤처지지 않고 있다고 선전할 수도 있으니 더욱 좋은 게 아니냐는 계산이다.

처음엔 차별화를 김정일 위원장의 남측 답방에 맞췄다. 명목상 국가수반인 김영남은 오지 말고 국방위원장 김정일만 와라, 그래서 이명박은 김정일만 상대하는 모습을 연출해서 과거와 달라졌다고 폼 나게 선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경제적 지원은 섭섭하지 않게 제공한다는 입장이 북측에 전달되었다고 한다.  북측은 과거 정상회담조차 전면 부정하면서 무슨 답방 약속 운운이냐며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변안전을 책임질 수 있느냐는 공박에 따라 이명박 정부가 찾고 또 찾은 것이 아래 두 가지 사항으로 보인다.

첫째, 남북정상회담에서 핵문제를 좀 논의하고 이것을 공동성명 맨 앞자리에 턱하니 얹어놓고 싶다. 둘째, 이명박 대통령이 평양으로 올라가는 대신 납북자든 국군포로든 한 50-100명을 돌려보내주면 돌아오는 비행기나 차량편에 태워서 내려오고 싶다. 일인당 10만불이든 더 이상이든 돈은 내겠다. 이 두 가지 카드를 북측에 던져 놓은 상태에서 바둑으로 치면 일단 봉수*에 들어갔다.(봉수 : 대국이 그 날 끝나지 않고 다음 날 넘어갈 때, 종이에 적어 밀봉하는 그 날 마지막 수)

북측 셈법도 만만치 않다. 어떤 식으로든 정상회담이 열리면 최대한 환대하는 모습은 연출할 테니 걱정하지 마라. 그러나 새로 공동성명 같은 것을 만들어 자신들의 국방위원장이 또 다시 서명하게 하는 일은 원치 않는다. 어떤 합의를 하더라도 결국 6.15공동성명과 10.4정상선언의 범위를 넘어서지 못할 텐데 뭣 하러 문서에 집착하느냐. 남측이 6.15공동성명과 10.4 정상선언을 특정하지 않고 그간 합의한 모든 남북사이 합의에 기초해서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갈 용의가 있다는 정도로 넘어갈 수도 있겠다.

50만톤의 식량제공과 50만톤의 비료지원을 확약하고,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는 조건이라면 납북자와 국군포로 1인당 10만달러 이상 단가가 붙은 데 대해 굳이 싫다는 표현은 딱 부러지게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남북관계는 결국 북-미 관계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일단 남측의 정상회담 용의를 확인한 이상 좀 더 여유 있게 검토해보겠다는 심산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결국 이명박 정부가 그토록 부인하고 내던지고 싶어 했던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대북정책 노선을 수용하는 것이다. 재작년과 작년에 북한 붕괴론과 북한주권접수론에 입각한 공세적 대북정책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기 까지 한반도를 긴장시켜온 한 축이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핵문제 논의를 갖고 차별화해보겠다고 하지만 헛일이다. 6.15 공동선언과 10.4정상선언은 대한민국 대통령들이 서명한 문서이다. 6.15공동선언 채택시 핵문제는 해결과정에 있었으며, 10.4정상선언은 그 자체로 2007년 10.3 6자회담 합의를 촉진하였다. 김계관 북측 수석대표가 남북정상들에게 10.3합의의 의미를 보고하였으며, 김정일 위원장도 비핵화 의지를 재확인 했었다. 10.4 정상선언에 이미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6자회담에서 남북은 협력하기로 합의했었다. '그랜드 바겐'을 남북 사이에 논의하겠다고 한다. 그렇게 하기 바란다

2003년 6자회담이 시작된 이래 참여정부는 핵문제 해결을 위해 매우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다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국군포로를 데리고 오는 데 10만달러를 주겠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퍼주기가 아니고 독일의 사례를 원용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바란다. 이미 참여정부가 2006년부터 북측에 제의해 둔 의제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2007년 10월 2일 평양시 4.25문화회관 광장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2007년 10월 2일 평양시 4.25문화회관 광장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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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 지방선거 한참 뒤에 해라

현재와 미래의 남북관계는 아무리 '이명박표 원칙론'으로 포장하더라도 결국 2년을 허송세월하고 돌고 돌아와 다시 보니 한참 뒷자리 아닌가? 김대중 전 대통령이 길을 열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다져놓은 화해협력과 공동번영의 길을 객관적인 상황에 떠밀려 이명박 대통령도 터덕터덕 걸어가는 것이다.

이 대목에 이르러서 이명박 정부는 자신들의 기본 노선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원칙있는 대북정책'을 주장하지만 결국 미국과 북한이 대치할 때 남북관계는 더 악화되고 미국과 북한이 대화로 들어설 때 그 길목을 가로막거나 겨우 뒤쫓아 가는 것이 한반도 문제의 결정적 주체인 대한민국이 지난 2년동안 저질러 온 행태의 전부이다.

물론 아주 다르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분명히 있을게다. 2008년과 2009년 소위 북한급변사태론과 북한자체가 문제라는 주제 하나로 부나방처럼 달려들던 사람들이 또 다시 이명박 원칙론의 승리를 부르짖을 것이다. 그가 누구이든 이는 화장발이자 조명발에 지나지 않는다. (화장발과 조명발에 활용될 과거 정부 인사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하늘도 알고 땅도 알지 않는가? 세상 아래 새로운 게 없다는 것 말이다. 6.15와 10.4 정상회담으로 인해 남북한간에 무엇을 하든 결정적으로 새로운 것은 없다. 결국은 흡수통일론과 북한조기붕괴론에 입각한 대북정책의 파탄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이제라도 아전인수는 그만두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겸허하면서도 투명하게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겠다는 의지를 밝히는 것이 우선이다. 정상회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내년 지방선거 한참 뒤에 추진하겠다고 해라. 언제나 6자회담의 진전이 있어야 남북관계를 진전시킬 수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북핵문제 해결에 실질적인 진전을 만들어 낸 뒤 정상회담을 갖겠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 때문에 임기 몇 달 남기지 않은 2007년 8월 남북정상회담을 했다는 점을 상기해봐야 하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박선원씨는 한국미래발전연구원 연구실장이며,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안보전략비서관을 지냈습니다.



태그:#이명박, #김정일, #남북정상회담, #김대중,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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