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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교육과학기술부의 2010년도 교육 분야 업무 계획이 발표되었다. 지난해 계획에 대한 반성이자 내년 '농사'의 설계도인 만큼 교사, 학부모, 학생 등 교육에 관심을 갖는 모든 이들 모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았을 테다. 그러나 새롭다거나 기대할 만한 것들은 거의 없고, 과거 어디서 많이 듣고 본 듯한 것들만 백화점식으로 나열된 것뿐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실 기대가 그리 크지 않았던 만큼 실망도 적었다. 해답이 빤히 보이는 데도 핵심을 비껴난 채 대책이랍시고 변명하듯 장황하게 내놓아, 사람들의 눈길을 끌 수 있을지언정 결과는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다만 공교육에 대한 여론의 불신을 이용해 탈법적인 사항까지 밀어붙일 태세여서 우려스러울 따름이다.

 

2010년도 교육계획, 새로울 게 없잖아

 

정부는 오로지 경쟁만으로 교육의 체질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 지역끼리, 학교끼리, 교사끼리 제대로 된 경쟁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 교육이 망가졌다고 보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점수 1, 2점에 울고 웃는 숨막히는 무한 경쟁 때문에 병을 얻고 자살을 기도하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경쟁심이 부족하다며 다그치고 있으니, 대체 그들은 어느 별에서 온 사람들일까.

 

정글 같은 무한 경쟁에 내동댕이쳐진 전국의 모든 학교와 학부모, 모든 아이들의 목표가 단 하나 '시험 점수'에 있고, 오로지 명문학교 진학과 '부자 되는 것'에 귀결되는 이 기막힌 현실을 모르진 않을 거다. 100명의 아이들이 서로 다른 100개의 꿈을 꾸고 각자 행복을 느끼도록 하는 게 정상적인 사회일진대, 정부가 앞장 서서 한 가지의 목표만을 강요하고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패자를 가려내 낙인찍는 데에만 골몰하는 격이다.

 

대학 교수들도 '돈 놓고 돈 먹기'의 살벌한 경쟁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인건비 총액을 묶어놓은 상태에서 교수의 숫자와 보수를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총액인건비제가 시행될 예정이어서, 좋든 싫든 서로의 몫을 빼앗거나 빼앗기는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학자로서의 명예와 권위를 목숨처럼 여기는 교수 사회 또한 '돈'으로 저울질되고 서로에게 본의 아닌 상처를 주고받는 볼썽사나운 모습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교원평가제의 경우는 호의적인 여론을 믿어서인지 탈법적인 요소마저 안고 있다. 정치권과 교육 관련 단체가 머리를 맞대고 평가 기준과 시기, 대상 등을 조율하고 합의를 도출하며 입법하는 절차가 반드시 필요한데도, 정부가 내년 초로 실시 시기를 못박아버림으로써 시행 후 법이 제정되는 황당한 상황이 불가피할 것 같다.

 

더욱이 법이 제정되지 않더라도 각 시도 교육청별로 평가 규칙을 마련하도록 한다는 방침인데, 자칫 지역마다 평가 기준이 제각각이거나 교육청끼리 시기와 내용을 저울질하는 극심한 '눈치작전'이 펼쳐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나아가 교사의 징계 여부를 두고 경기도 교육청과 정부가 법정 다툼까지 가게 된 것과 비슷한 상황이 곳곳에서 벌어질지도 모른다.

 

경쟁으로 교육 체질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정부

 

학부모들과 교총은 물론, 여태껏 반대의 입장에 섰던 전교조조차 교원평가제 도입의 필요성에 공감해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협의하려는 상황에서, 공사기한 맞추기 위해 밤샘 작업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듯 법과 절차를 불필요한 요식행위쯤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애써 꾸린 교원평가제를 위한 다자간 협의체가 합의는커녕 구체적인 논의 한 번 제대로 해보기도 전에 정부와 교육청의 들러리가 될 판이다.

 

또, 보수 언론 등에서 줄기차게 요구해 온 터라 이젠 아예 무덤덤할 지경이지만, 내년부터 전국 단위 학업성취도 평가(일제고사)의 학교별 성적이 공개돼 학교별로 교육과정이 편법으로 운영되는 것은 물론, 아이들의 고통도 가중될 것이 틀림없다. 그렇잖아도 초등학교에 월말고사가, 중학교에 야자가 도입되고 있는 지금, 고등학교 야자의 경우 조만간 자정을 넘길 거라는 우스갯소리가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성적 부진 학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기 위해 이른바 학교별 '선별' 작업은 필요하다지만, 몇몇 언론을 통해 대서특필된 대로 서열을 뚜렷이 매길 만큼 지역별 격차가 심하다는 건 이미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성적 부진 학교를 알아야겠다니 생뚱맞기 그지없다.

 

더욱이 조손 가정과 다문화 가정 등 성적에 관심을 갖기는커녕 학교생활조차 버거운 아이들이 태반인 농어촌 학교의 현실을 외면해온 정부가 성적 부진 학교 지원을 운운하는 것은 기만에 가깝다. 학생 수를 기준으로 배정한다며 농어촌 학교의 교사 수를 턱없이 줄일 예정이어서 농어촌 지역의 교육 기반은 아예 붕괴 직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적 부진 학교 지원보다 더욱 시급하고 절실한 건 각 학교마다의 부진 학생을 위한 지원과 배려이다. 기실 공교육의 기본적 사명은 이른바 '만 명을 먹여 살릴 엘리트' 한 명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단 한 명의 낙오자가 없도록 기본적인 소양과 능력을 갖추게 하는 데에 있다. 그런데, 학교별 순위 공개는 필연적으로 학생별 석차 공개로 이어지고, 결국 맨 위에 이름을 올린 학교의 '영예'는 대다수 학교와 학생들에게는 깊은 '상처'로 남을 수밖에 없다. 오래 전에 사라졌던 '똥통 학교', '걸레 학교'라는 비속어들이 교육 현장에 복귀할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정부의 끊임없는 '닭짓'에 '고난의 행군'하는 아이들

 

이번 발표의 '압권'은 단연 사교육비 절감을 위한 실용영어 교육의 강화 방침이다. 주지하다시피 사교육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영어다. 영어 교실 수업의 질을 향상시켜 사교육비를 절감하겠다는 것인데, 주당 1시간 이상 영어로만 진행하는 회화 수업을 강제하고, 2014학년도부터는 수능 외국어영역의 듣기평가 비중을 5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교육의 품질은 교사의 능력과 자질을 결코 뛰어넘을 수 없다. 그렇다면 교사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역량을 키우기 위한 노력이 우선 필요하고, 잡무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학급 당 학생 수를 감축하기 위한 교사 증원 방안이 선행되어야 한다. 교사와 환경은 그대로인데 주당 1시간 회화 수업을 강제한다고 해서 아이들의 실용영어 능력이 향상되리라는 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나아가 수능 듣기평가 대비 전문 학원이 생기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특히 시도별 사교육비 총액과 증감률 등 실태를 조사에 각 교육청 평가에 반영한다는 사교육비 절감 방안에 대해서는 한심스러울 지경이다. 사교육을 많이 받는 지역 교육청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것인데, 우선 전담반이 편성돼 학원 수 세러 다니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나아가 학원 안 다닌다고 잡아떼는 아이들도 있을 테고, 예방 차원에서 학원 출입 못하도록 주말과 주중 가릴 것 없이 학교가 아이들을 강제로 밤늦도록 잡아두는 경우까지 생길지도 모른다.

 

요컨대, 정부의 끊임없는 '닭짓'은 교육에 대한 철학의 빈곤과 턱없이 부족한 예산 문제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오로지 경제만을 외치는 정권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사교육'비'에만 관심을 둘 뿐, 정작 사교육의 본질에는 접근조차 하지 못한다. 말하자면, 학교에 사교육을 끌어들이면 그게 공교육인가를 자문해볼 여유조차 그들에겐 없다.

 

나눔과 배려, 공존을 가르쳐야 할 학교에 경쟁과 효율, 실적을 다그치며 숫자와 통계를 끌어 올리는 데만 혈안이 돼 있을 뿐, 그것으로 인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아이들의 좌절과 절망은 애써 모른 채 하고 있다. 백년지대계의 교육이 경쟁지상의 경제에 철저히 종속된 채 표류하는 지금의 난맥상은 대체 언제쯤 끝나게 될까. 내년에도 학교 안팎에서는 '고난의 행군'이 계속될 것 같다. 지금 아이들의 쾡한 눈이 잿빛 미래를 암시한다.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http://by0211.x-y.net)에도 실었습니다.


태그:#2010 교과부 업무보고, #사교육비 경감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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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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