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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입니다.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합니다. 들뜨는 마음에는 나이가 상관없는 것 같습니다. 지천명이 지난 연륜이지만 저는 연말마다 이런 마음을 내심 즐깁니다. 어릴 때 마음을 돌이켜서 천진난만한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 좋습니다.

 

사회가 발달하고 문화가 변화되면 사람들의 생활 양태도 바뀌게 마련입니다. 그 중 하나가 성탄 카드 또는 연하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많은 양의 성탄과 새해를 축하하는 카드를 받고 보냈습니다. 저도 서울 은평천사원의 장애아동들이 직접 만든 카드를 구입해서 주위의 가까운 분들에게 보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메일과 휴대폰 문자 메시지로 그것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현대 문명의 이기에 지배당하고 있음의 증거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연하 카드를 보내주는 분들이 있습니다. 흡사 전통을 끝까지 부여잡고 있는 모습인 듯해 정감을 느낍니다.

 

제가 어제 받은 것은 성탄 카드가 아닙니다. 연하장도 아닙니다. 하지만 보내주신 분은 이런 의미까지 정성스럽게 얹어 보낸 선물임이 분명합니다. 지난해 돌봐주시고 기도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새해 인사말을 하얀 백지 위에 적어 동봉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음으로 봐주세요'라는 제목의 미술 작품 도록입니다.

 

저는 이것을 받고 개봉해보기 전에는 새해 달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크기도 그렇고 또 스프링으로 가지런히 묶은 내용물이 더욱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군요. 이것은 동의난달 운숙미술회 시각장애아 작품초대전 작품 도록이었습니다. 정운숙 박소현 선생을 비롯해 30여 명의 시각 장애인들의 미술 작품을 사진으로 싣고 또 설명하고 덧붙여 예비 작가들의 변까지 실어놓았습니다.

 

저는 얼마 전까지 시각 장애인들이 시심을 모아 운문을 쓰고 문장을 다듬어 산문은 쓸 수 있겠지만 보는 것이 주요소인 미술 활동은 그들과 먼 세계의 일로만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그게 지극히 짧은 생각이라는 것을 이 작품 도록을 보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온전한 것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그것에서 조금 벗어난 아름다움도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수필가 금아 피천득 선생은 '수필'이라는 글에서 정연히 달려 있는 연꽃잎 중 하나만이 약간 꼬부라져 격을 깨뜨리고 있는데 바로 눈에 거슬리지 않은 이 파격을 수필이라고 정의한 적이 있습니다. 너무 완벽한 것은 과학의 발명품은 될 수 있어도 예술 작품으로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또 이러한 것들이 규격품을 무한대로 찍어낼 수 있는 공산품은 될 수 있을지언정 예술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시각 장애인들이 그들의 온 감각을 동원해서 빚어 만든 도록에 실린 작품들은 의도된 파격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파격이어서 보는 이에게 더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시각 장애아들의 이 작품들은 여러 감각 중 손의 감각 즉 촉각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한 작품도 예외 없이 눈을 감고 손으로 만져만 봐도 작품의 뜻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 학생의 '나를 찾아오신 예수님'이란 제목의 작품은 한지를 찢고 뭉쳐서 붙인 십자가 상의 예수님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학생 작가의 천진한 붙임말이 마음을 뭉클하게 만듭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찾아 오셨다. 두 팔을 벌리시고 많이 아프신 것 같았다. '조금만 참으세요. 제가 약을 발라 드릴게요.'"

 

제가 읽지 못하는 8쪽에 달하는 점자로 기록한 설명은 작품을 접하는 시각 장애인들에 대한 배려일 것입니다. 이것은 일반 전시회 작품 도록에서는 만나 볼 수 없는 따스함이 깃든 면면들입니다.

 

이 도록을 보내주신 분은 사단법인 동의난달 명예이사장을 맡고 있는 신재용 박사님입니다. 저는 그분을 농촌봉사활동 중에 만나 지금까지 사랑을 나누고 있습니다. 주는 것보다는 받는 것이 훨씬 많아 늘 그에게 송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정운숙 선생 개인이 성금을 기부해서 동의난달 내에 운숙미술회가 조직되었고, 그 미술회의 활동으로 장애우 미술 소양 교육이 진행되고 있는데 그 결실이 바로 금년 11월 말에 개최된 '마음으로 봐주세요'라는 이름의 전시회였다고 합니다. 제가 받은 도록은 그 전시회에 출품한 작품들을 모아 엮은 책자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에 동참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습니다.

 

봉사는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다른 사람은 사회적 약자를 가리킵니다. 지역적으로는 농어촌, 계층적으로는 가난한 사람들, 연령적으로는 노년층 그리고 신체적 조건으로는 장애인들이 이 사회적 약자 즉 소외계층에 속할 것입니다. 저는 봉사단체 동의난달이 문화의 혜택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농어촌 지역에 의료봉사를 베푸는 단체로만 한정해서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시각 장애아들의 미술 작품 도록을 받아보고 그 단체의 활동 영역이 아주 넓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그 단체의 봉사 활동은 굴곡 없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연말입니다. 더불어 살아가자는 운동이 활발할 때입니다. 내가 가진 것 덜 쓰고 내놓아 소외된 이웃을 돕자는 운동은 오래 전부터 진행되어 온 운동입니다. 오늘 신문을 보니 경기 불황으로 금년은 기부액이 줄어 '사랑의 온도'도 한파를 맞고 있다고 하는군요. 선진국이 되는 전제 조건이 많습니다. 그 중 기부 문화의 발전, 이것은 거기에 빼놓을 수 없는 조건입니다. 십시일반, 사랑은 모이면 모일수록 큰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음으로 봐주세요'라는 시각 장애인들의 작품 도록을 받고 다시 한 번 되새기는 원칙입니다.


태그:#운숙미술회, #동의난달, #시각 장애인, #미술 전시회, #신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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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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