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그럴듯하게 꾸며져있지만 외부에서 보이지 않게하려는 의도도 보인다
▲ 제1공대 흡연구역 그럴듯하게 꾸며져있지만 외부에서 보이지 않게하려는 의도도 보인다
ⓒ 이수환

관련사진보기


경북 포항 한동대학교는 자체 학교 발전 프로젝트인 Vision 2020 계획 중 하나로 'Clean Campus' 실현을 내세웠다. 이 계획 중 하나가 캠퍼스 전 구역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하는 것이다. 이 계획은 오는 2010년 1학기부터 시작될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한동대는 2006년부터 신입생들에게 금연서약서를 작성하도록 했다.

학교측에서 금연을 장려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크게 건강상의 이유, 환경적인 이유, 그리고 종교적인 이유 때문이다. 세 번째 이유인 종교적인 이유는 보수적 기독교 정체성을 바탕으로 하는 한동대만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금연캠퍼스 계획 발표 이후 비흡연자들을 중심으로 이번 결정을 찬성하는 분위기도 있다. 하지만 지난 3월, 이미 한 차례 교내 흡연구역이 대폭 축소되어 곤욕을 겪었던 흡연자들의 고충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교내 흡연할 수 있는 공간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지정된 몇 군데 장소에서 흡연할 수 있지만, 내년부터 금연캠퍼스가 시행되면 학교 전 구역에서 흡연이 금지된다.

현재 교내 대표적인 흡연 장소인 제1공대 흡연 장소에 가 보았다. 마치 흡연자들을 위해서 설치한 것 같은 시설들이 그럴듯하게 꾸며져 있다. 하지만 이 흡연시설은 외부에선 잘 눈에 띄지 않는다. 밖에서 흡연시설이 보이지 않게 하려는 의도로 설치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한국 기독교계에서 비교적 깨끗하고 성실한 이미지로 인식되어 있는 한동대에게 흡연자들은 숨기고 싶은 존재일 것이다.

소수 흡연자들의 권리는 권리도 아닌가

빈구멍에 '금연화'가 빠져있다. 흡연자들의 금연화에 대한 인식을 잘 보여준다
▲ 금연캠퍼스 소통마당 공지 빈구멍에 '금연화'가 빠져있다. 흡연자들의 금연화에 대한 인식을 잘 보여준다
ⓒ 이수환

관련사진보기


자연스럽게 이번 '전 구역 금연캠퍼스화' 실시의 의도에 의문을 갖게 된다. 클린캠퍼스와 금연캠퍼스와의 관련성을 찾기가 어려운 것이다. 학생들의 건강과 교내 청결 유지가 진짜 목적이라면 그와 관련된 여러 바람직한 캠페인들이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국민건강증진법 9조 4항에 '보건복지부령이 정하는 공중이 이용하는 시설의 소유자·점유자 또는 관리자는 당해 시설의 전체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하거나…(이하 생략)'라고 돼 있어 캠퍼스 전 구역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하는 것은 사실상 법적으로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이번 금연캠퍼스화 발표에 있어 한 가지 문제가 되는 점은 금연캠퍼스화를 결정하는데 있어 학교 측과 학생 의사 대표자인 총학생회 사이에 소통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2006년부터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금연서약서를 받아왔다는 것은 학교 측에서 이 문제에 있어 장기적으로 준비를 해왔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학생들의 금연서약서 자체가 금연캠퍼스화를 긍정하는 것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안타깝게도 한동대학교의 흡연자들은 외부의 흡연자들에 비해 더 큰 어려움을 겪어야 한다. 교내 유일하다시피 한 공식적인 흡연 장소에서 많은 흡연자들이 함께 담배를 피워야 한다. 게다가 한적한 곳에 있고, 매점에도 담배를 팔지 않는 학교의 특성상 담배를 사려면 차를 타고 10분 이상 시내로 나가야만 한다.

그리고 교내 신문사의 설문조사(한동신문 설문조사 '기독교 이미지에 타격이 있다' 한동신문 138호)에서 알 수 있지만 기독교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대학에서 흡연을 한다는 사실은 종교적인 잣대로 평가받기 쉽기 때문에 한동대의 흡연자들은 마치 죄를 짓는 기분으로 담배를 피워야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인권이라는 것, 그리고 소수자라는 의미의 범위를 어디까지 두어야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진한 보수적 기독교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한동대학교 내에서의 흡연자들은 분명한 소수다. 학교 측에서 추진하는 금연캠퍼스화 계획은 그것의 진짜 의도와는 관계없이 소수 흡연자들이 가질 수 있는 기본권마저 뺏고 있다.

'금연캠퍼스화' 계획을 찾아 볼 수 없는 캠퍼스

한동대학교 제15대 총학생회 당선자들이 소통마당을 진행하고 있다
▲ 금연캠퍼스 소통마당 한동대학교 제15대 총학생회 당선자들이 소통마당을 진행하고 있다
ⓒ 이수환

관련사진보기


16일 새로 당선된 15대 한동대학교 총학생회의 주관으로 '전 캠퍼스 금연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이라는 제목의 공청회가 열렸다. 기말고사 기간이어서 많은 학생들이 참석하지 못했으나 금연캠퍼스화 문제에 관심 있는 여러 학생들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해주었다. 이번 공청회에서 다시 한 번 드러난 것이지만 금연캠퍼스화 실행은 실행 그 자체도, 실행 이후의 상황에 있어서도 많은 허점을 가지고 있었다.

먼저 이번 금연캠퍼스화 문제가 불거진 것은 거의 모든 학생이 한 자리에 모이는 시간인 교내 채플 수업 시간(12월 9일)에 한동대 김영길 총장이 금연캠퍼스 실행에 대해서 언급을 하고 학생들의 협조를 부탁하면서부터다. 새해인 1월 1일, 혹은 새 학기인 3월초부터 실행하는 것을 얘기가 되고 있지만, 학교 장기계획인 VISION 2020 계획에 언급되어있을 뿐, 학교의 어느 곳에서도 이와 관련된 공식적인 공지는 찾아볼 수 없다.

흡연자 김민기(경영경제학부 3학년)군은 "군대에 있었기 때문에 금연캠퍼스화 진행 사실 등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다"며 이번 금연캠퍼스화 공지에 대해서 거부감을 보였다. 그는 이어 "이번 채플 시간에 총장님을 통해 일방적으로 통보받은 사실이 전부"라며 "이제 흡연자들은 갈 곳이 하나도 없다, 소수에 대한 존중을 전혀 해주지 않는다"고 의견을 밝혔다.

금연캠퍼스 실행이 확정되었다고 가정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질문은 '그렇다면 흡연자들이 담배를 숨어서 피다 적발되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이다.

이날 공청회에 학교 측 대표로 참석한 조원철 학생처장은 이 질문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아직 학교 측에서 금연캠퍼스 실행에 대한 세부적인 계획을 내놓고 있지는 않지만, 가장 기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마저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일방적으로 일을 진행시키고 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태그:#금연, #금연캠퍼스, #한동대, #한동대학교, #소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