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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대문구 전농·답십리뉴타운 내 전농7구역에서 아직 떠나지 못한 세입자들이 철거현장을 바라보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 전농·답십리뉴타운 내 전농7구역에서 아직 떠나지 못한 세입자들이 철거현장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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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철거업체에서 옆집 유리창을 깨더라고요. 강제 철거하는 것 같아서 가슴이 덜컥했죠. 최근 용강아파트 세입자가 목을 맸다면서요? 심정적으로 이해가 가더라고요…."

14일 만난 세입자 이정열(40)씨의 표정에는 순간 두려움이 스쳤다. 지난 2일 숨진 서울 마포구 용강아파트 세입자의 처절했던 지난 1년이 이씨의 지난 세월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이씨가 살고 있는 서울 동대문구 전농·답십리뉴타운 내 전농7구역은 철거가 98% 이상 진행됐다. 이씨는 "서울시도 강제철거를 하는데, 재개발조합은 어떻겠느냐"며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철거반 탓에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고 전했다.

주변 전세가격은 2배 이상 뛰고, 조합은 법에 명시된 주거이전비를 내놓지 않고 있다. 이씨는 "나가고 싶어도 나가지 못한다"며 "강제철거를 하면 싸우겠다"고 말했다. 올해 초에는 용산에서, 세밑에는 용강동에서 세입자들이 스러졌다. 이씨의 이번 겨울은 어느 때보다 추울 것이다.

그곳엔 아직 사람이 살고 있다

전농7구역에 발을 들이면, 거대도시 서울에서 만난 황무지의 존재에 놀란다. 부서진 채 철거를 기다리는 주택이 듬성듬성 보인다. 주택 벽면에 '피바다'라고 쓰인 글자가 철거현장의 험악한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그곳에 아직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전농7구역에 살던 세입자 3000여 명은 대부분 어딘가로 쫓겨났지만, 일부 세입자들은 집을 지키고 있다. 세입자 대책위원회에서 확인한 것만 2~3가구다. 올해 일흔둘의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이정열씨 역시 그중 한 명이다.

서울 동대문구 전농·답십리뉴타운 내 전농7구역 세입자 이정열(40)씨가 '피바다'라고 쓰인 한 공가의 벽면을 가리키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 전농·답십리뉴타운 내 전농7구역 세입자 이정열(40)씨가 '피바다'라고 쓰인 한 공가의 벽면을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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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사가정길에 맞붙은 4층짜리 상가 건물 꼭대기에 살고 있다. 철거의 물결은 뒷집까지 밀려온 후 멈췄다. 뒷집은 얼마 전 유리창이 깨져나갔다. 이씨는 "1층에는 누군가 해골바가지를 그려놓았다, 빨리 나가라고 경고하는 것 같아 두렵다"며 말을 이었다.

"2007년 재개발 사업이 본격 진행되면서 너무나 고생했다. 2008년에는 인근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이 여러 차례 났고, 구역 한복판에서 '안 나가겠다'며 철거업체 직원과 싸우던 세입자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너무 흉흉했다.

지난 여름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철거가 이뤄져 잠도 제대로 못 잤다. 그러면서 건장한 남자 여러 명이 늦은 밤에 불쑥 집까지 찾아와 '왜 안 가냐?'고 독촉하는 바람에 위압감을 느꼈다. 겨울철 철거가 없어진 줄 알았는데, 용강아파트 사례를 보니 두렵다."

세입자 "법대로 주거이전비 지원해야"... 조합 "법원 판단 구할 것"

이씨가 '유령 도시'인 전농7구역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큰 폭으로 오른 주변 지역 전세금을 마련하기도 힘들 뿐더러, 조합에서 그에게 주거이전비를 내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씨 집의 임대료는 보증금 2000만 원과 월세 50만 원이다. 이씨는 "다른 세입자들처럼 이사를 가려 했지만, 주변 집값이 많이 올라 이사를 갈 수 없다"고 밝혔다. 주민들에 따르면, 전농동에 있는 50㎡형 주택의 전세보증금은 재개발 이전 5000만 원에서 현재 1억 원으로 뛰었다.

이씨는 "1100여만 원에 이르는 주거이전비를 받게 되면, 보증금과 합쳐 부모님과 함께 살 집을 어떻게든 구할 생각이었다"며 "하지만 조합이 주거이전비를 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유령 도시'에 남아 있다"고 전했다.

서울 동대문구 전농·답십리뉴타운 내 전농7구역 세입자 이정열(40)씨가 부서진 공가를 가리키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 전농·답십리뉴타운 내 전농7구역 세입자 이정열(40)씨가 부서진 공가를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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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월 개정된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이씨처럼 재개발 사업 시행 전에 살던 세입자에게는 임대주택 입주권과 주거이전비 등이 함께 지급된다. 하지만 조합은 이씨처럼 임대주택 입주권을 받은 이들에게 주거이전비를 내놓지 않고 있다.

이씨는 이미 지역을 떠난 세입자 160여 명과 함께 조합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상황이다. 따로 소송을 한 4명의 세입자는 이미 주거이전비 지급 판결을 받았다. 세입자 대책위원회 총무를 맡고 있는 김성근씨는 "더 받겠다고 떼를 쓰는 게 아니라, 법에 나와 있는 대로 주거이전비를 지급해달라는 게 우리의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조합 쪽은 "법에 논란이 있는 부분이 있다, 법원의 판단에 따라 주거이전비 지급을 결정하겠다"며 "4월 착공할 때까지 세입자들이 나가지 않는다면, 어떻게든 내보내겠다"고 밝혔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재개발인가"

이씨를 비롯한 세입자들이 크게 우려하는 것은 재개발 조합과 일부 조합원들 간의 다툼으로 주거이전비 지급 등 세입자 대책이 사실상 무효화되는 것이다. 현 조합은 일부 조합원들의 반대에도 재개발을 강행하다가, 지난 7월 조합설립 무효 판결을 받았다. 조합이 조합설립동의서를 받는 과정에서 조합원의 분담금을 알리지 않았다는 게 그 이유다.

이후 대법원 판결에서 조합설립 무효가 확정될 경우, 현 조합은 사라진다. 조합설립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착공까지 최소 3~4년은 걸린다. 사업 지연과 그로 인한 비용 증가를 감안하면, 분양·임대주택에 입주하는 조합원과 세입자들의 고통은 그만큼 가중된다.

이씨는 "안 그래도 버거운 임대주택 보증금이 사업 지연으로 크게 오르면, 결국 서울 외곽으로 쫓겨나지 않겠느냐"며 말을 이었다.

"조합의 '묻지마 재개발(뉴타운)'로 사업은 표류하고 있다. 조합원과 시공사는 이자비용 증가로 큰 피해를 보고 있다고 한다. 그 와중에 세입자들은 '유령 도시'에서 나가지도 못하고 불투명한 미래 앞에서 불안에 떨고 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재개발인지 모르겠다."

철거가 거의 마무리되고 착공을 앞둔 뉴타운 지역에는 아직 떠나지 못한 세입자들이 많다. 사진은 서울 동대문구 전농·답십리뉴타운 내 전농7구역 전경이다.
 철거가 거의 마무리되고 착공을 앞둔 뉴타운 지역에는 아직 떠나지 못한 세입자들이 많다. 사진은 서울 동대문구 전농·답십리뉴타운 내 전농7구역 전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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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전농7구역, #세입자, #뉴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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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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