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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체 : 8일 오후 3시 30분]

 

"개인의 승리가 아니다. YTN 해직기자들의 승리고, 언론민주주의가 되살아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대한민국 기자들의 승리다."

 

제42대 기자협회 회장에 당선한 우장균 YTN 해직기자는 8일 선거 직후 당선소감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28년만에 해직기자 출신 기자협회 회장이 탄생한 것이다. 우장균 기자는 함께 출마한 정규성 <대구일보> 기자를 9표 차이로 따돌렸다.

 

이번 선거는 묘하게도 현직기자와 해직기자가 맞섰다. 이명박 정부 들어 첫 번째로 해고된 해직기자와 지역기반을 닦아온 현직기자가 붙은 것이다. 기자들은 결국 해직기자를 선택했다.

 

우 기자는 출사표를 통해 "다시는 나처럼 강제 해직되는 기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저널리즘이 곤두박질치는 현 상황에서 '해직기자 명예회복 사건'을 만들어보자고 결심했던 것이다.

 

그는 언론개혁에 앞장서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언론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기자협회, 언론노조, PD연합회 등 '언론평의회'를 구성하고 적극 참여하겠다고 했다.

 

또한 언론민주주의가 상당히 후퇴한 상황에서 기자정신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도 적극 펴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언론 본연의 책무보다는 자사이기주의에 빠지는 경향에서 벗어나 훼손된 기자정신을 살리는 노력을 한다는 것이다.

 

한편, YTN 사측은 지난 11월 17일 한국기자협회 쪽에 사장 명의의 공문을 보내 우 기자의 피선거권 자격 여부를 질의하는 등 방해행위를 했지만 결국 우장균 기자는 협회장에 당선했다.  다음은 우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YTN 투쟁이 기자사회 전반의 문제임을 동료들에게 호소하고 싶다"

 

- 해고무효소송에서 승소한 뒤 기자협회장에 출마했다.

"솔직히 YTN 투쟁에서 나는 숟가락만 하나 얹어놓았다가 큰 영광을 얻은 격이라고 본다. 부분적으로 YTN 후배들에게 미안하다. YTN에서 해직될 때, 최소 10년 후에 역사적으로 제대로 평가받게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6명의 해직기자가 모두 그렇지만 우리는 기자의 상식과 양심, 자존심 때문에 싸웠다. 공영방송에 낙하산 사장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봤으니까. 지난 11월 13일 대한민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사법부가 우리 손을 들어줬다. 우리의 낙하산 저지 투쟁은 공정보도를 위한 것이었다고 정당성을 인정해주는 판결문이다.

 

동료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것은, YTN의 공정방송 투쟁은 비단 YTN만의 문제가 아니라 기자사회 전반의 문제라는 것을 기억해달라고 호소하고 싶다는 뜻이다. 우리의 투쟁은 단순 노사관계 악화 때문이 아니었다. 언론민주주의가 상당 부분 후퇴한 상황에서 이뤄진 것이다. 사법부가 YTN의 공정보도 투쟁에 대해 명예회복을 해줬듯이 동료들로부터도 명예회복을 받기 위해 출마했다고 생각해 달라."

 

- 언론민주주의가 상당 부분 후퇴했다고 했다. 기자정신이 약해졌다는 말인가.

"기자협회는 1964년 박정희 대통령이 언론윤리법을 만들어 기자들을 옥죄려 할 때 출범했다. 박정희 군사독재에 맞서 언론자유를 지키기 위해 태동한 자치조직인 셈이다.

 

그런데 최근 기자들은 언론 본연의 책무보다는 자사이기주의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 자사이기주의가 점점 심해져 기자정신보다는 회사 이익을 대변하는 경향도 있다. 이건 기자정신의 훼손이다. 

 

옛날에는 기자가 사회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권력집단보다는 낮은 곳에 관심을 두는 데 초점을 맞췄다. 갓 입사하면 기자 본연의 청운의 꿈을 꾸지만 나이가 들수록 기자정신이 훼손된다. 이런 걸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1980년 언론통폐합 이후 이명박 정부에서 첫 해직기자가 됐다.

"1980년 언론통폐합 때도 해직기자 출신 기자협회장이 있었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해직기자 사태는 총 세 번이다. 1974년 동아투위, 1980년 언론통폐합 그리고 28년 만에 숫자는 엄청나게 줄었지만 2008년 YTN 해직사태다. 정치적 이유로 6명을 한꺼번에 해직하는 경우는 없었다. 만일 이번에 해직기자 출신이 기자협회장에 당선한다면 28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 YTN 노조가 기자협회를 무대로 '투쟁판'을 벌일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좌파 논란이다.  

"내 개인 성향은 중도우파다. 우리 아버지도 공산주의가 싫어서 단독 월남했다. 나는 외아들인데, 아버지가 혈혈단신 월남해서 남한에 친척도 없다. 보수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

 

나는 1983년도에 대학에 입학해 1987년에 졸업했다. 기라성 같은 운동권 출신들이 엄청나게 배출되는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그런데, 나는 단 한 번도 집시법을 위반한 일이 없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부끄러운 일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했던 많은 분들에게 죄송한 일이다. 그만큼 평범한 시민으로 살았다.

 

나 같은 사람이 기자협회장이 된다고 해서 기자협회가 투쟁단체가 될까? 문제는 내가 홀로 투쟁체를 만들고 싶다한들 구성원들이 따라주겠나 하는 점이다. PD연합회를 보시라. 기자협회도 그들처럼 전문직 종사자 이익단체다. PD연합회도 생존권을 위협하지 않는 한 광화문에 안 모일 것이다. 기자도 기자사회 전체에 모멸감을 주는 행위가 있지 않는 한 머리띠 매고 깃발 들지 않을 것이다.

 

기자협회는 양심과 상식이 있는 건전한 단체다. 그래서 사회문제에 무관심할 수 없다. 사회흐름 가운데 옳지 않은 것이 있다면 옳지 않다고 말하는 직업이다. 그렇게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기자협회의 역할이라고 본다. 할 말은 하고, 만날 사람은 만나고 그래야 한다.

 

정부로부터 불이익을 받을까봐 조심스러워해서는 안 된다. 이런 게 점점 심해지면 기자들의 자기검열로 이어진다. 이것은 언론민주주의의 후퇴다. 만일 다른 언론사의 기자들이 YTN처럼 부당하게 해고를 당한다면, 취재를 방해당한다면 강력히 대처해나갈 것이다. 온당치 못하게 기자들을 옥죄는 일에는 적극 나설 것이다."

 

- KBS도 YTN처럼 '낙하산 사장 퇴진투쟁'을 벌이며 총파업투표를 벌였지만 부결됐다.

"상식적으로 총파업 투표에서 부결됐으면 강동구 노조 위원장은 책임지고 사퇴해야 한다. 책임지고 물러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본인에게도 더 이상의 명예를 실추하지 않는 것으로 봐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국민의 방송 KBS가 더 이상 추락하지 않는 길이라고 본다."

 

- YTN 사측은 지난 11월 17일 한국기자협회 쪽에 사장 명의의 공문을 보내 우 기자의 피선거권 자격 여부를 질의했다. 피선거권이 없다는 주장이었다.

"회사가 알고 했을 것이다. 기자협회는 임의단체다. 사측이 피선거권을 묻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전국의 기자들을 욕되게 하는 행동이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했을까. KBS 김인규 사장은 낙하산이어도 사내에서 KBS 출신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 결과가 파업부결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배석규 사장은 지난번 투표에서 90% 이상의 구성원들이 사장으로 부적합하다고 반대했었다. 따라서 배 사장은 사장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이 정부의 언론정책 강경파들에게 교언영색해야 할 상황이다. 이에 따른 과도한 충성심의 발로가 아닌가 싶다. 뭔가 과시하기 위해 무모하고 치졸한 일을 벌인 게다. 공문을 보내는 식으로."

 

- 기자협회, 언론노조, PD연합회 등 '언론평의회'를 다시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유야무야됐던 조직을 활성화한다는 차원으로 이해하는 게 좋겠다. 이미 PD연합회와 언론노조는 활동 중이니 기자협회만 들어가면 될 것 같다. 언론평의회가 활성화되도록 기자협회도 동참하겠다 정도로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김세진 열사가 내 친구... 삶의 좌표를 설정해준 사건"

 

- 왜 기자가 됐나.

"고등학교 때까지 딱히 무엇이 되고 싶다는 게 없었다. 어떻게 사느냐를 더 중시했다. 물론 순간의 선택을 잘했다. 일단 동강 난 조국에서 태어난 남아로서 폼나게 살려면 통일조국을 위해 힘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졸업할 때쯤 되니 선배들이 기자를 추천했다. 기자가 폼도 나고 내 지향과도 맞을 것 같아 직업으로 선택했다.

 

기자들은 저널리즘 정신 얘기를 많이 하지만 나는 후배들에게 기자는 어떠어떠해야 한다는 군소리를 잘 안 한다. 그런 말 하는 게 부끄러워서. 그런데 이런 말은 한다. 옳은 게 옳다, 옳다고 생각하면 행동하면 된다고."

 

- 기자협회장엔 왜 출마했나.

"내 인생에서 잊지 못할 두 가지 사건이 있다. 언론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을 때 생활인으로서는 사형이나 다름없는 해직기자가 됐다. 아무리 커다란 고통이 온다 해도 지난 1년 6개월만 하겠나 싶다. 지하철 2호선 신림역 사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다 시너를 붓고 분신한 김세진 열사가 내 친구다. 그 사건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좌표를 설정해줬다.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좋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늘 고민하게 한 사건이다. 후배들과 함께하다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해직까지 당했다. YTN에 다니던 평범한 생활인이 어느덧 기자협회장에까지 출마하게 된 것이다."

 

우장균 기자는 지난해 10월 청와대 출입기자로 일하다 '낙하산 사장'을 반대하는 과정에서 강제 해직됐다. 1987년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5월~1991년 5월 <서울경제신문> 편집부 기자, 1991년 9월~1994년 10월 KBS 라디오 PD·KBS 춘천방송국 PD로 일했다. 1995년 3월 YTN 개국방송 앵커로 옮긴 뒤 1995년 3월~2008년 10월 YTN 사회·정치·경제·문화부 기자, 2002년 5월~2004년 5월 YTN 노조위원장, 2006년 4월~2007년 4월 YTN 마케팅기획팀장을 지냈다. 지난해 10월 해직된 그는 지난달 서울중앙지법으로부터 해고 무효 판결을 받았다.

 

 


태그:#우장균, #YTN, #해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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