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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덕분에 꿈을 가졌었습니다

20여년 전, 외국에 계시던 할머니 환갑을 맞아 가족 여행을 하던 중, 친척 어른 집에서 목사님이 쓰신 <새벽을 깨우리로다>라는 책을 만났습니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제가 읽기에도 쉽고 재미있었던 책으로 기억합니다. 비행기 안에서도, 공항에서도, 이동하는 중에도 계속 읽었습니다. 그러다가, 당시 세계 최대 공항이었던 어느 공항에서 그만 가족들을 놓치게 되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가족들을 다시 만나게 됐지만 하마터면 국제 미아가 될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그 책에서 사람을 향한 꿈을 꾸는 목사님을 만났고, 저 또한 사람을 위한 꿈을 갖는 계기가 되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 후로, 성장하면서 목사님 설교를 늘 기대하며 듣곤 했습니다. 두레 마을을 만드시고, 여러 사업들을 펼쳐 나가시는 목사님을 소리없이 응원했었습니다.

그날 밤에는 어떤 꿈을 꾸셨습니까?

이명박 대통령이 목사를 불러 청와대에서 예배를 드려 종교 단체들 반발이 있었다는 뉴스 속에서 목사님 이름을 보았습니다. 그 날 밤에 저는 내년 정부 예산안에서 결식아동, 장애인, 기초생활수급자, 비정규직 등에 대한 예산 지원은 대폭 삭감되고, 8조원이 훨씬 넘는 4대강 공사 사업 선정자의 상당수가 이명박 대통령이 졸업한 고교 출신들이라는 <PD수첩> 보도를 보았습니다. 그날 밤 쉽게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함께 예배를 드리실 때, 이명박 장로는 어떤 기도를 하던가요? 목사님은 어떤 기도를 드리셨습니까? 목사님은 그날 밤 어떤 생각을 하며 잠자리에 드셨습니까? 무척이나 궁금합니다.

기독교인의 사회 참여의 경계는 어떻게 정할 수 있는 걸까요?

초기 기독교의 전쟁 참여에 대한 고민부터 시작해서, 최근에는 남미의 해방 신학까지 기독교인의 사회 참여에 대한 고민과 함께 지속적인 사회 참여는 계속되어 왔습니다. 이 고민과 질문에 대해 목사님보다 더 확실한 대답을 내어 놓을 수 있는 분은 한국 사회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질문 같지만, 대답은 간단하다고 생각 합니다. 불교인들이 부처님을 따르고, 천주교인들이 천주님을 따르는 것처럼, 기독교인은 예수를 따르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기독교인은 예수님의 사회 참여 방식을 따라야 합니다

저는 예수의 사회 참여야말로 간접과 직접이 잘 조화된 진정한 '중도 실용'의 좋은 예라 생각합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누가복음 6장 27절)하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삶을 보여 주셨습니다. 어찌 보면, 너무 소극적이고 간접적이고 답답하기 짝이 없는 사회 참여인 것 같지만, 시간이 흐르고 수많은 나라들과 종교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인류 역사 속에 이 가르침은 만고불변의 진리로 남아 전해 내려 오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돌아 가시기 전에, 예수님은 감람산 강설을 통해 예루살렘 멸망을 예언하시면서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마태복음 24장 20절)고 신신당부하셨습니다. 반드시, 꼭 도망가라는 얘기입니다. 실제로 예루살렘은 AD 70년 로마군 침공으로 멸망하고 맙니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270만 명이 성 안에 있었고, 이 침공으로 110만 명이 죽었습니다. 자신의 아이를 잡아 먹는 사람들이 있었고, 성 안에 풀과 소똥까지 다 먹어 버려서 아무 것도 남지 않을 정도로 아비규환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민족의 엄청난 불행을 뒤로 하고 도망 가라고 하신 것이 예수님의 당부였습니다. 로마라는 불의한 세력에 맞서 창과 검을 들고, 세력을 모아 대항하고 죽기까지 싸우는 것이 사회 정의요, 기독교인다운 행동 아닙니까?

더 위대한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 기독교인

예수가 세상 나라를 세우기 원하셨다면, 이미 오래 전에 그 분을 왕 삼기 원하여 밀려 드는 수 많은 사람들과 함께 세상 나라를 세우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분은 하늘 나라-천국을 세우기 원하셨습니다. 고통하며 죽어가는 예루살렘 성의 사람들과 마지막까지 결사항전하는 일도 가치 있는 일이었지만, 예수님에게는 그 분이 남겨 놓으신 사람들을 통해 천국을 전파하고, 천국을 세우는 일이 더 가치 있는 일이었습니다.

이미 창과 검을 드셨던 김진홍 뉴라이트 전 상임 의장님

2000여년 전에 죽음을 앞두고 유언 같은 감람산 강설을 하시는 예수 말씀을 듣고 콧방귀를 뀌던 사람, 가룟 유다. 12 제자 중의 하나였던 가룟 유다가 추구하는 천국 세우기의 방법은 예수의 방법과는 달랐습니다. 은 30을 받고 예수를 파는 쇼를 하면, 예수가 자극을 받아 그 동안 가끔씩 보여 주신 초능력을 발휘해 로마의 세력을 다 없애고, 영광스런 이스라엘 왕국, 세상 나라를 건설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그만의 검과 창을 들었습니다.

잃어버린 10년이라 하셨던가요? 눈 앞의 실정과 빤히 보이는 민족의 불행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고 말씀 하셨던가요? '진짜 보수'의 연합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보자 하셨던가요? 목사님은 조직과 세력이라는 창과 검을 드셨습니다. 그리고 가룟 유다와는 다르게 그 창과 검으로 새 세상을 만드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빵집에서 자장면을 팔면...

제가 아는 어느 자장면 집 간판은 OO빵집입니다만, 빵은 팔지 않고 자장면만 팝니다. 빵집으로 시작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팔기 시작한 자장면 장사가 더 잘 돼서 자장면 장사로 전업했다고 합니다. 이 집이야 특색 있고 개성 있어 보이지만, 만약에 전국 빵집에서 빵은 팔지 않고, 자장면만 판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학교에서 공부를 가르치지 않고, 춤만 가르치고, 교회에서 불공을 드린다면 어떤 세상이 되겠습니까? 국회에서 정책을 의논하지 않고, 예배를 드린다면 어떤 세상이 되겠습니까? 강단에 서야 할 목사가 강단에 서지 않고, 정치 세력의 중심에 선다면 과연 어떤 세상이 되겠습니까? 대한민국은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지켜야 할 자리를 꿋꿋히 지키는 분들 때문에 오늘도 안전하다고 믿습니다.

더 이상 목사님 설교를 듣지 않습니다

김진홍 뉴라이트 상임 고문님. 저는 더 이상 고문님 설교를 듣지 않습니다. 제 주위에 많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날부터, '개독교'라는 말이 등장했습니다. 잘못 하다가는 실제로 4대강 사업이 시작될 예정이고, 결식 아동 급식비는 삭감될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의 중심에 조직과 세력이라는 창과 검을 들고 김진홍 뉴라이트 상임 고문님이 서 계십니다.

목사님 덕분에 다시 꿈을 갖고 싶습니다

존경했던 김진홍 목사님, 예수님을 따라, 아무도 걷지 않으려 한 그 낮아짐의 길을 묵묵히 걸으셨습니다. 화려한 뉴라이트 행사장이 아닌 활빈 교회의 초라한 강단에 서셨던 분입니다. 이제는 창과 검을 놓으시고, 다시 십자가를 들고 우리 앞서 걸어 주십시오. 목사님이 앞장 서서 걸으시던 그 자리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다시 아름다운 모본이 되어 주십시오. 주님 안에 강건하시길 두 손 모아 기도드립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마태복음 26장 52절)


태그:#김진홍, #뉴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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