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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오늘 밤 10시, 특별 생방송을 통해 '대통령과의 대화'를 갖는다고 한다. 나라의 통수권자가 국민과의 대화를 즐기는 것이야 바람직하다 할 수 있으나 정국이 꼬일 때마다 그 해법으로 들고 나오는 '국민과의 대화'는 국민을 대화의 상대로 보기 보다는 대화의 소도구로 쓰고 있는 것 같아 찜찜하다.

 

알려진 바와 같이 이번 토론은 현재 첨예한 이슈로 떠오른 세종시 문제를 비롯하여 이명박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4대강 문제 그리고 민생현안과 경제상황 등에 대해 패널들과 논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한다.

 

국민과의 대화도 아닌 '대통령과의 대화'

 

대통령이 국민과 소통을 하고 경제 전반을 챙기면서 서민경제를 논하는 것을 굳이 말릴 이유는 없다. 그러나 어떤 현안이 생길 때마다 대통령이 나서서 대화를 하겠다는 발상은 일방통행적 권력의 과시에 다름아니다.

 

국가경제 토대를 바꾸고 국민경제의 흐름을 바꾸는 중요한 사안은 백번 토론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수많은 각료와 국가기관 수장들이 침묵하고 정부의 눈치나 보고 있으면서 대통령이 나서야 모든 일이 풀릴 거라고 믿는 소아병적 사고는 위험하기 짝이 없다.

 

더구나 이번 특별생방송은 '국민과의 대화'가 아니라 '대통령과의 대화'라고 명명하고 있다. 국민을 먼저 생각하기 보다는 대통령을 먼저 생각하는 뜻이 담긴 것 같아 섬뜩하다. 그런 생각이 더 확실해지는 것은 이번 '특별생방송'을 전국 방송사 35개 매체가 동시에 생방송을 한다고 해서다.

 

늘상 방송은 국가의 자원이요 국민이 주인이라고 떠드는 정부가 앞장서서 전파매체를 독점하는 이런 횡포는 국민을 주인으로 보기는커녕 머슴이 주인 보고 "내가 하는 일을 보러 안방으로 들어오라"고 호통치는 것과 다름없다. 대화는 일방적이 아니라 상대가 있어야 행해지는 양방향성의 소통 행위거늘, 주인인 국민들의 선택권을 박탈한 채 머슴인 대통령 입만을 쳐다 보고 있으라고 강요하는 건 너무도 지나치다. 이렇게 강요하는 건 대화가 아니라 압박이다.

 

전파의 낭비와 시청 선택권 박탈은 차치하고라도 그토록 중차대한 일을 국민과의 대화로 풀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 방송을 원하지 않는 대다수의 국민도 존중해야 마땅하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을 대화의 상대로 여기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우리 국민들은 일찍이 군사정권 시절에 일방적이고 강제적인 방송에 눈과 귀를 막아야 했던 암울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이른바 '땡전뉴스'라고 불리는 5공의 '9시 뉴스'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일거수 일투족을 사안의 경중에 관계없이 1순위로 방송하여 빈축을 샀다.

 

'땡전뉴스' 욕하던 사람들이 그보다 더한 짓을 

 

누구보다 국민을 섬겨야 한다고 부르짖는 이명박 정부가 막상 본인들이 집권하자 역사의 교훈을 망각한 채 방송을 정권홍보의 무기로 삼아 일방적 훈시의 장으로 악용하고 있는 듯하다.

 

전국언론노조는 성명을 통해 "이번 특별생방송처럼 무지막지하게 편성하고 모든 방송사에게 생중계를 강요하는 것은 독재 시절에나 가능했던 일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방송사들이 자체적으로 결정한 내용이고 협의한 내용일 뿐 청와대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변명했다"라고 밝히고 있다.

 

방송사 자체에서 자발적으로 결정한 내용이고 청와대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말하는 이 순진무구(?)한 버르장머리는 어디서 나온 걸까? 그런 말이 사실이라면 그렇게 신속하고 일사분란하게 의견통일을 해서 전국의 모든 매체를 동원하여 대통령을 위한 방송으로 만든 방송사 관계자는 누구란 말인가 ?

 

방송은 언제든지 각하를 위해서 존재하고 그 움직임 자체가 국가기밀이고 훈시자체가 9시톱 뉴스감으로 강제 당하던 '땡전뉴스'보다 더 고약한 MB방송으로 만든 방송사 책임자들은 석고대죄해야 할 일이다.

 

그렇지 않고 국가의 권력을 이용하여 압력을 넣고 이명박 정부의 업적을 만천하에 알려야 한다는 오만함에 방송사들을 동원한 것이라면, 이는  대통령과 귓속말을 주고 받은 밀약을 국민들에게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 국민들의 생활 리듬이 달라지고 IT가 발전하면서 '다시보기'를 통해 얼마든지 좋은 뉴스나 프로그램을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정부에서 발표하거나 대통령이 나와서 대화하는 내용이 정말로 와 닿는다면 국민들은 얼마든지 밤잠을 안 자고 '다시보기'로 '대통령과의 대화'를 볼 자세가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방송사들을 한데 묶어 35개 모니터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얼굴이 한꺼번에 나오도록 하겠다니 21세기 이 대명천지에 어떤 나라가 그런 강심장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엄청난 광고비 포기한 방송사들 진짜 이유 말해야

 

청와대와 관계없이 방송사들이 자발적으로 생방송에 참여할 결정을 했다니 그런 핑계를 믿을 국민은 없다. '소꼬리를 들에서 주워 왔는데 소가 딸려 오더라'는 청와대의 해괴망칙한 변명이 사실이라면 이제 방송사들은 그들의 입으로 국민을 말할 자격이 없다.

 

'국민과의 대화'가 대통령을 위한 방송이 되지 않으려면 다양한 국민의 선택과 문화적 자유권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35개 방송사를 모두 동원한다고 해서 대통령의 말에 관심을 가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방송을 장악하여 방송을 내보내는 것이 '땡전뉴스'를 연상케 하여 '막가는 MB방송'으로 낙인 찍는 국민들이 더 많아질까 걱정이다.

 

방송사들의 엄살도 이제 믿지 않게 되었다. 신의 직장으로 불리우며 천문학적 인건비를 받고도 경제불황에 허덕여 광고가 줄어 적자편성이 불가피하다고 외치던 방송사들은 스스로 광고를 팽개친 이유를 말해야 한다.

 

청와대는 방송사가 자율적으로 모두 생방송에 참여 했다고 하는데 그 말에 대한 답변을 방송사들이 해야 한다. 디지털방송을 합네 하며 재원이 부족하다고 난리를 친 방송사들은 그토록 여유있게 황금시간대를 청와대에 헌납한 이유를 대야한다.

 

전국의 방송사들이 골든타임의 광고를 모두 포기하고 일사분란하게 '대통령과의 대화'를 생방송하겠다고 나선 오늘밤 새삼 '땡전뉴스'가 생각날 것 같다.


태그:#대통령, #땡전뉴스, #생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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