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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잘린 염소가 바둥거리고 개는 피를 핥는다. 사람은 기도를 한다.
▲ 칼리신전에 바쳐진 염소 목 잘린 염소가 바둥거리고 개는 피를 핥는다. 사람은 기도를 한다.
ⓒ 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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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앞둔 자들의 집인 마더테레사 하우스 앞에서 경찰간부에게 마더테레사 하우스의 위치를 물었다.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더니 '바로 여기'라고 손가락질 해준다. 나는 과장된 몸짓과 말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고마워요. 내가 짜이(인도식 홍차) 한잔 대접할 수 있을까요?"

딱히 할 일 없이 무료하던 경찰간부 만달(mandal)은 나를 따라나선다. 진저티(생강차)와 짜이를 주문하고 담배를 권했다. 인도인 특유의 호기심이 발동한다. 국적부터 시작해 직업, 나이, 가족관계, 심지어 월수입까지 묻는다. 주변에 20여 명이 몰려들어 두 사람의 대화를 경청한다. 맞장구를 치기도 하고 훈수를 두기도 한다. 친구로 지내자며 전화번호까지 교환했다.

친구가 된 경찰간부 만달은 칼리사원에서의 사진촬영을 도와주었다. 친구들에게 나를 소개하는 만달.
 친구가 된 경찰간부 만달은 칼리사원에서의 사진촬영을 도와주었다. 친구들에게 나를 소개하는 만달.
ⓒ 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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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마더테레사 하우스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었다. 목적이 따로 있었다. 마더테레사 하우스와 맞붙어 있는 칼리사원에서 사진촬영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좀 얍삽한 방법이지만 인도 경찰의 도움이 필요했다. 인도 사원 중 일부는 이교도와 외국인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거나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이를 무시했다가 목숨까지 잃는 사례도 있다.

외국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바라나시 황금사원도 들어가 보았고 화장터인 버닝가트에서 사진촬영까지 감행(자칫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이다)했던 터라 조금은 호기가 발동했다. 따라 오란다.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상인들에게 친구라며 나를 소개한다. 나는 졸지에 만달의 오랜 친구 행세를 해야 했다.

산사람의 목을 잘라 제물로 바쳤던 칼리사원

캘커타의 칼리사원에서는 100여 년 전까지 사람이 산 채로 제물로 바쳐졌다. 가난을 천형으로 안고 사는 수드라 계급은 자신을 팔아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거나 또 다른 자식을 먹이기 위해 자식을 부자들에게 팔았다. 하리잔(불가촉천민)은 생명을 팔 자격조차 없었다. 그들의 피는 신전을 더럽히는 것이었다. 제물로 팔린 사람은 환각상태에서 목이 잘려 그 피와 몸을 칼리신전에 바쳤다.

제관이 갠지스강물을 머리에 뿌리고 있고 옆에 목을 자를 녹슨 칼을 든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
▲ 목 잘리기 전의 염소 제관이 갠지스강물을 머리에 뿌리고 있고 옆에 목을 자를 녹슨 칼을 든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
ⓒ 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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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년을 이어 온 인신공양은 영국 식민지 시절 엄격히 금지되었다. 한참을 비밀리에 음성적으로 진행되다가 점차 부의 정도에 따라 염소나 닭, 곡식 같은 것으로 대체되었다.

사실 인신공양을 고대 남미나 아프리카에서 행해지던 원시적 종교의 특징으로 알고 있는데 고대 유대교나 우리나라에서도 행해졌다. 구약시대 유대인들은 자신의 죄를 용서받는 방법으로 양이나 닭과 같은 가축들을 잡아서 여호와께 번제를 드렸다. 그러나 구약 사사기 11장에 보면 입다는 자신의 외동딸을 죽여 제물로 바쳤다는 기록이 있고 늙은 숫양으로 대체되었지만 아브라함의 외아들 이삭이 희생될 뻔한 사건도 있었다.

구약 레위기에 보면 번제라 함은 '피를 가져다가 회막문 앞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그는 또 그 번제 희생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이요. 단 위에 불을 두고 불 위에 나무를 벌여 놓고 뜬 각과 머리와 기름을 단 윗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을 것이며 그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고 했다. 끔찍한 인신공양의 모습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매일 칼리신을 위한 피의 향연이 벌어지는  캘커타의 칼리사원 앞에 제물을 바치려는 참배객들이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매일 칼리신을 위한 피의 향연이 벌어지는 캘커타의 칼리사원 앞에 제물을 바치려는 참배객들이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 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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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도 신라 선덕대왕신종에 아이를 산채로 집어넣었다는 기록이 있고 또한 치수용으로 지어진 대형 보의 토목공사에 아이들이 제물로 바쳤다는 전설이 심심찮게 전해져 내려온다. 또한 왕이나 권력자가 죽었을 때 아내나 종들을 같이 산 채로 매장하는 순장의 풍습도 부여와 가야시대까지 있었다.

피의 신인 칼리신은 두르가라는 이름 외에 파르바티 우마 등의 이름으로 불린다. 파르바티나 우마는 자애로운 어머니이지만 두르가나 칼리가 되면 파괴와 피의 신이 된다. 특히 칼리의 사원에는 동물들이 제물로 바쳐지기 때문에 하루 종일 비린 피 냄새가 진동한다.

칼리사원 앞에 이르자 평일인데도 제물을 마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입구에는 차례를 기다리는 염소들이 앞으로 닥칠 운명도 모르고 천진난만하게 신전에서 나온 꽃잎들을 주워 먹고 있었다.

칼리사원 앞에서 제물로 바쳐지기 위해 묶여 있는 양들이 아무것도 모른채 풀을 뜯고 있다.
 칼리사원 앞에서 제물로 바쳐지기 위해 묶여 있는 양들이 아무것도 모른채 풀을 뜯고 있다.
ⓒ 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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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되면 도살장 앞에는 참배객들이 향을 피우고 제관은 갠지스강물을 염소의 머리에 뿌린다. 염소 목에는 붉은색 꽃목걸이가 걸린다. 여전히 염소는 거쳐 간 다른 염소들의 피 위에 뿌려진 꽃잎을 배가 터지도록 뜯어 먹는다.

이윽고 새총 모양의 갈고리에 염소의 목이 걸리고 한 사람이 뒷다리를 잡아당겨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자 붉게 녹슨 칼날이 내리쳐진다. 시뻘건 핏물이 제단에 물들고 염소의 몸은 바닥에 내던져져 바들거린다. 머리는 아직도 영문을 모르는 듯 천진난만하게 눈을 깜빡거린다. 붉게 물든 제단의 흙을 찍어 이마에 바르고 사람들은 기도를 한다. 개들이 몰려와 꼬리를 가랑이 사이에 집어넣고 사람들을 힐끔거리며 바닥에 뿌려진 피를 핥아먹는다. 개 눈이 푸르게 빛난다. 살기다.

칼리신은 시바신의 아내로 6세기 베다에 아수라와의 전쟁에서 등장하는데 두르가 여신이 화가 나면 얼굴이 검은색으로 변하고 이마에서 튀어나온다. 사람의 해골로 관을 썼으며 호랑이 가죽을 입고 두개골로 장식된 무기를 써서 우주의 안정성을 해치는 아수라를 무찌른다. 칼리신은 윤회를 끊고 시간을 파괴하는 징벌의 신이다.

입에 피칠을 하고 혀를 내민 칼리신의 섬뜩한 조각상
 입에 피칠을 하고 혀를 내민 칼리신의 섬뜩한 조각상
ⓒ 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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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다를 보면 인도의 남성 신들이 수동적이고 소극적인데 반해 여성 신들은 변화하고 활동적이고 역동적인 경우가 많다. 여성적인 샥티(에너지)는 활동과 창조, 생식을 주도하고 남성 신들에게 활동력을 부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신들의 영역이고 힌두교에 있어서 카스트제도와 남녀차별은 공존한다.

연신 셔터를 누르는 내 모습에 제관이 '부정 탄다'며 소리를 버럭 지른다. 만달이 없었다면 몰매를 맞을 일이다. 만달이 친구라며 사람들을 진정시키자 사람들이 입을 다문다. 항의를 하지는 않았지만 불쾌한 기운이 역력하다.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당황한 만달이 나를 잡아끈다.

하리잔(불가촉천민들)과 낮은 계급의 사람들에게 대중공양을 해 죄를 씻으려는 부자들이 점심식사를 나눠주고 있다.
 하리잔(불가촉천민들)과 낮은 계급의 사람들에게 대중공양을 해 죄를 씻으려는 부자들이 점심식사를 나눠주고 있다.
ⓒ 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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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교도에게 신이 된 가톨릭 수녀 마더테레사

점심시간이 되자 신전 앞에는 부자들이 가난한 신분의 사람들에게 베푸는 대중공양이 행해진다. 밥이 얼마 남아있지 않자 50대 중반의 아저씨가 노인들을 밀치고 새치기를 하다가 걸렸다. 밥을 나누어 주던 30대 청년이 벌떡 일어나 냅다 뺨을 서너 대 후려갈기고 욕설을 퍼붙는다. 한마디 저항도 하지 못하고 당하고만 있다. 만달은 모른 채 지나친다. 그가 잘못한 것도 있지만 낮은 계급 사람에게는 당연한 것이다. 이것이 카스트제도다.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지막 쉼터 마더테레사 하우스에 들어가 보았다. 50여 개의 침상에 30대 청년에서부터 70대 노인들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누워 있었다. 어떤 이들은 의식도 없이 가는 수액 줄기에 생명을 의탁하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멍하니 앉아 창문 너머 풍경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지극히 한가롭고 평화로웠으나 우울했다.

마더테레사하우스 안에는 임종을 앞둔 사람들이 입원해 있다.
 마더테레사하우스 안에는 임종을 앞둔 사람들이 입원해 있다.
ⓒ 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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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인들에게 마더테레사는 이교도나 수녀가 아니라 신적 존재다. 캘커타의 힌두교도들은 마더테레사를 그리워하고 자신들의 신에게 하듯이 그녀를 향해 향을 피우고 기도를 한다. 사상이나 종교, 인종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그녀는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피와 생명을 먹고사는 칼리신의 사원과 마더테레사 하우스는 마치 삶과 죽음의 경계처럼 맞닿아 있다. 무서운 어머니와 자애로운 어머니가 공존한다. 그녀는 수많은 장소 중에 왜 하필 칼리사원 옆에 죽어가는 자들의 마지막 안식처를 정했을까? 사람을 대신한 염소와 닭의 목을 따는 칼리신의 피의 살육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그녀의 침묵은 무엇이었을까.

문득 자신의 신을 끝까지 안고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귀의할 신 곁에서 마지막을 안식하도록 배려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칼리신이든 시바신이든, 부처든, 여호와든, 알라든 상관하지 않았다. 자신의 신념과 신앙에 따라 옳고 그름을 판별하고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어미의 마음뿐이었을 것이다. 어미의 마음속에 그 자식이 어떤 모습이건 모두 아픈 열 손가락이다. 신의 마음 또한 그리했으면 좋겠다.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안식처 마더테레사 하우스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안식처 마더테레사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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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스스로를 자해하거나 자살을 통해 칼리신에게 인신공양을 하거나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행위는 칼리사원의 일반적인 행위가 아니라 일부 광신자 그룹에서 행해진 행위이므로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태그:#마더테레사, #칼리사원, #캘커타, #하리잔, #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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