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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라서 친구들과 포항시 흥해읍 쪽에 있는 P라는 목욕탕에 갔다. 목욕을 마치고 나와서 몸을 닦고 선풍기 앞에서 머리카락을 말리고 있을 때였다.

 

목욕탕에서 남의 몸을 씻어주는 분과 표를 받는 안내원이 연세가 퍽 들어 보이는 할아버지 곁에서 옷을 입히며 "할아버지 존함이 무엇이냐"고 여러 번 물었다. 대답이 없으시자 다시 "성함이 어떻게 되시지요" 하고 큰 소리로 물었다. 할아버지가 성함을 대답하셨는지 모르지만 또 할머니 성함을 묻고 전화번호까지 물으면서 지갑을 할아버지 윗주머니에 밀어 넣고 있었다.

 

홀 안에는 그들과 할아버지, 그리고 고개 숙여 발톱을 깎는 사람과 나 밖에 없었다. 나는 슬쩍슬쩍 그 광경을 보았다. 내 머리를 스치는 생각은 "나쁜 사람들이 할아버지 돈을 훔치고 할아버지의 집 사정을 알아서 무슨 사기를 치려하는구나"였다.

 

선풍기 바람을 벗어나서 그들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할아버지는 윗옷은 입었고 아랫도리는 벗은 채였다. 곁에 있는 한 사람은 바지가 없어 큰 일이라면서 '동동'거리고 있었고 한 사람은 전화를 걸고 있었다. 전화 통화를 마친 사람이 상대편 사람을 건너다보면서 할머니에게 연락이 되었다면서 불안한 표정에서 벗어나 스포츠센터에서 반바지라도 가져오라고 했다.

 

그 때까지도 분명히 나쁜 사람들 짓거리로 생각되어 "왜 그러세요. 할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있어요" 하고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그는 비닐봉지 안 젖은 바지를 보이면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길을 가다가 실례하신 모양인데, 근처 목욕탕이 보여 찾아오신 것 같아요. 여기를 찾아 오셨을 때 냄새가 지독하게 나서 가까이 가보니 연세가 많으신 것 같고 말씀도 제대로 못하고 서있기만 하셨어요. 당황해 하다가 옷을 벗겨 빨고 몸을 씻겨 나왔지만 당장 입고 갈 바지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우선 스포츠센터용 반바지를 입혀 할머니가 오시면 모셔다 드릴 생각입니다."

 

그의 이야기에 조금 전 나의 잘못된 생각에 대한 미안함과 그들의 아름다운 마음씨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 후 옷을 가지러 갔던 사람이 옷을 가져 왔지만 작아서 큰일이란다. 그러면서 '제일 큰 것을 골라 와야겠다'면서 쫓아가더니 다시 가져온 옷을 입힌 후에야 두 사람은 서로 쳐다보면서 환하게 웃었다. 무심한 듯 발톱을 자르던 사람도 고개를 들고 나와 함께 웃으며 찬사의 말을 했다.

 

정말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돈을 받는 일도 아닌데 목욕탕에서 남의 몸을 씻어주는 사람, 가난하지만 마음씨만은 어느 누구보다 아름답고 넉넉한 부자가 아닌가.

 

요즈음 시골 노인네들을 찾아가서 밀가루를 만병통치약처럼 속여 팔아 돈을 챙기는 악덕 상인들, 전화로 사기 쳐서 노인네들 주머니를 몽땅 터는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두 사람의 앞날에 늘 좋은 일이 있기를 기원해 본다.


태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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