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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4일부터 8일까지 5일간, 헤이리의 이정호 이사장을 비롯한 주민 몇 분과 제종길박사와 민병근 교수 등 생태전문가를 동반하고 이시카와, 도야마, 후쿠이, 기후, 시가 그리고 오사카를 여행했습니다. 잘 보호된 자연과 공원, 자연과의 공생을 실천하는 생태마을, 버려진 공장과 헐린 학교 부지를 창작공간과 미술관으로 만들어 도시를 리모델링하는 현장을 답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일전에 뵌 유한대학의 김영호 총장님께서는 제게 앞으로는 '그리움의 시대'가 될 것임을 예견하였습니다. 'GREE+UM'을 말한 것입니다. 자연과 생태를 상징하는 'Green'과 문화와 예술을 상징하는 'Museum'을 의미한 것입니다. 우리의 이번 일본행은 바로 '그리움'을 찾아 떠난 여행이었습니다. 그 현장들을 몇 차례로 나누어 소개해드립니다. <기자 주>

도시의 운명도 흥망성쇠의 사이클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몇 개의 열주列柱로 남은 옛 제국의 도시 위에 서면 도시도 죽음을 피해갈 수 없는 인간의 숙명과 조금도 다름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하지만 사람과 달리 인공의 도시는 적절한 처방을 통해 쇠퇴에서 벗어나 활력을 이어갈 수도 있습니다.

도쿄에 이어 일본 제2의 도시로 영화를 누렸던 에도시대의 가나자와는, 일본 열도를 잿더미로 만든 2차 대전의 전화戰禍조차 피해간 행운의 도시였습니다. 하지만 300년 이상 번영을 구가하던 이 도시는 그것이 오히려 전후의 도시성장을 가로막았습니다. 메이지 시대 이후부터 합성직물공업이 발달하였지만 산업 환경의 변화로 이것도 경쟁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가나자와의 옛 영화를 상징하는 가나자와성. 흰색 기와는 납으로 만든 것으로 부의 과시와 유사시 녹여서 무기로 사용할 수도 있게 했습니다.
 가나자와의 옛 영화를 상징하는 가나자와성. 흰색 기와는 납으로 만든 것으로 부의 과시와 유사시 녹여서 무기로 사용할 수도 있게 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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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락한 옛도시로 머물 운명의 가나자와를 구해준 것이 문화예술활동을 통한 도시재생프로그램입니다. 염색, 칠기, 금박, 도자기 등의 전통문화에 기반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방식의 도시재생방식입니다.

그 중심에 '시민예술촌'이 있습니다. 이곳은 1919년에 건축된 다이와방적주식회사(大和紡績) 가나자와 공장 터였습니다. 9만7000평방미터 크기 공장이 문을 닫자 시에서 매입한 다음 공장부지의 ⅔를 잔디광장으로 조성하여 시민들 휴식과 레크리에이션 및 방재구역(지진피난장소)으로 활용하고 나머지 창고군을 리모델링하여 문화예술활동 거점으로 활용케 한 것입니다.

가나자와 시민예술촌의 외경
 가나자와 시민예술촌의 외경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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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직공장의 창고군을 리모델링한 가나자와 시민예술촌의 외경
 방직공장의 창고군을 리모델링한 가나자와 시민예술촌의 외경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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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120억엔의 비용을 들여 이 공장부지를 매입할 당시만 해도 용도가 정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매입 후 1년 넘게 이 부지의 활용에 대한 다각도의 연구를 진행하고 1994년에 현재 용도로 정책 방향을 결정했습니다.

이 연속된 조성과정과 운영에 대해 아사카와 유지 시민예술촌 사업과장이 한 시간에 걸쳐 상세하게 브리핑해주었습니다.

"가나자와는 전통이 강하지만 현대예술은 새롭게 전통을 만들어가야 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수백 년 전통 위에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기 위한 기반으로 이 부지를 활용하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우선 창고의 벽돌건물은 내진 건물로 개축하고 각각의 창고를 공방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내부를 변경했습니다. PIT1에서 PIT5까지 각기 다른 장르의 다섯 개 공간이 있습니다. 멀티공방, 드라마공방, 뮤직공방, 오픈 스페이스, 아트공방 등이 그것입니다. 주로 아마추어들이 활용하는 규모가 작은 이 공방들을 보완하기 위해 대규모 공연이 가능한 퍼포밍 스퀘어가 2001년에 신축되었습니다."

아사카와 유지 시민예술촌 사업과장이 시민예술촌의 조성 배경과 운영방식을 상세히 브리핑해주셨습니다.
 아사카와 유지 시민예술촌 사업과장이 시민예술촌의 조성 배경과 운영방식을 상세히 브리핑해주셨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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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예술촌은 미래 문화 창조의 주역이 될 젊은이들에게 예술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모든 시민이 부담 없이 연극, 음악, 무용, 미술활동 등 예술 전 분야에서 관심사항에 따라 연습과 제작, 연수와 그 성과를 발표할 수 있는 장소로 활용하여 시민들의 문화예술욕구를 충족하고 새로운 지역문화를 탄생케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시민예술촌은 스스로 학습하고 제작하는 시민예술활동의 장이자 고급한 예술 감상의 장소이며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예술작품과 예술가가 탄생할 수 있는 예술의 탄생지로서 기능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각 PIT를 연결하는 회랑
 각 PIT를 연결하는 회랑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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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자신의 시간 형편에 맞추어 이용할 수 있도록 365일 24시간 개방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시설이용요금 또한 최저요금을 적용하는 방식(한 공간을 6시간 사용하는데 평균 1천엔 정도 과금)으로 이용 시민들의 경제적 부담을 최소화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PIT2의 드라마 공방
 PIT2의 드라마 공방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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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 운영도 시민들이 주역으로 참여하는 게 원칙입니다. 공립문화시설에서는 처음으로 '시민 디렉터 제도'를 도입하고 이용자를 대표하는 민간인 디렉터를 위촉하여 시민예술촌이 자주적인 방식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시민디렉터는 뮤직, 아트, 드라마 등 3분야에 각 2명씩 그리고 모든 영역을 관장하는 종합디렉터 1인 등 총 7명을 1년 계약으로 시민 중에서 선발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2-3년 연임하기도 합니다. 디렉터들은 월 1회 종합회의를 통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방법을 논의합니다.

PIT3의 오픈스페이스
 PIT3의 오픈스페이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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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T3의 오픈스페이스
 PIT3의 오픈스페이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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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안에서는 흡연을 비롯한 불의 사용이 금지되고, 본인이 배출한 쓰레기는 배출자가 되가져가야 하며(예술촌내에는 쓰레기통이 없음) 사용 비품들은 이용자가 스스로 정리하여 반환하여야 합니다.

프로페셔널 대공연을 위해서 신축된 퍼포밍 스퀘어
 프로페셔널 대공연을 위해서 신축된 퍼포밍 스퀘어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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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자와 장인 대학

KANAZAWA INSTITUTE OF TRADITIONAL CRAFTS

 

가나자와의 오랜 전통과 뛰어난 장인의 기술전승과 인재를 육성하는 것은 물론, 관련자료를 수집, 연구한 다음 그것을 공개함으로서 문화재의 복원에 활용하고 장인에 대한 사회적 평가와 인식을 높이고자하는 목표로 세워진 전통장인 교육 기관입니다.
 가나자와 장인 대학 KANAZAWA INSTITUTE OF TRADITIONAL CRAFTS 가나자와의 오랜 전통과 뛰어난 장인의 기술전승과 인재를 육성하는 것은 물론, 관련자료를 수집, 연구한 다음 그것을 공개함으로서 문화재의 복원에 활용하고 장인에 대한 사회적 평가와 인식을 높이고자하는 목표로 세워진 전통장인 교육 기관입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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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철저하게 시민 입장을 고려한 운영으로 시민들의 높은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었습니다. 모든 시설은 통상 3개월 전에 60-70%의 예약이 완료되고, 1년간 이용자수가 20만 명에 달합니다. 가나자와 인구가 46만 명임을 고려할 때 시민 절반 정도가 이 시설을 이용하는 셈입니다. 시설이용시간대는 시민들 학교와 직장 근무가 끝난 시간인 오후 6시부터 12시까지가 가장 활발합니다.

시민들 성과는 마쯔리 때나 연말 음악, 미술, 드라마의 전 장르가 연합하여 공연과 전시방식으로 발표되기도 합니다.

PIT4의 뮤직공방. 중앙의 무대를 중심으로 방음된 각 악기연습실이 있어서 음악을 연습하고 발표할 수 있는 음악 창작 스튜디오
 PIT4의 뮤직공방. 중앙의 무대를 중심으로 방음된 각 악기연습실이 있어서 음악을 연습하고 발표할 수 있는 음악 창작 스튜디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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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예산은 사무국 상근직원 9명의 인건비 3천만엔을 포함해 1억 5천만엔 정도 듭니다. 시민디렉터는 교통비 5만엔과 기획비 5만엔 등 월 10만엔 정도 활동비를 받아 자원봉사개념에 가깝습니다. 이용료수입은 1천7백만엔이며 나머지는 모두 시의 세금입니다.

멀티공방에서 격렬하게 플라맹고를 추던 여자가 제게 웃음을 날렸습니다. 저는 그 순간 가나자와가 가슴에 박혀버렸습니다. 일행의 독촉이 없었다면 저는 발을 떼지 못했을 것입니다.

PIT1 멀티공방에서 플라맹고를 연습중인 시민들
 PIT1 멀티공방에서 플라맹고를 연습중인 시민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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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공방에서는 더 감격적인 조우가 있었습니다. 한 연습실 문을 열자 아주머니 세분이 장구를 연습하고 있었습니다. 그 분들은 한국 전통악기를 연습하는 중에 만난 한국사람에게 무언가 감격적인 한국말 인사를 한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한참 입안에서 맴돌던 내용이 마침내 말이 되어 입 밖으로 나왔습니다.

"우리는 일주일에 3번 장구를 연습해요. 사랑해요. 한국!"
PIT4의 뮤직공방 연습실에서 한국의 장구를 연습하고 있는 시민들
 PIT4의 뮤직공방 연습실에서 한국의 장구를 연습하고 있는 시민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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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자와 시민예술촌
*시민예술촌의 각 공간구분 및 용도

PIT1 멀티공방 | 연극, 무용, 음악, 미술 등 다양한 창작활동에 사용할 수 있도록 냉난방시설과 거울이 갖추어진 공간
PIT2 드라마공방 | 넓은 사각의 공간과 벽을 따라 중간 2층을 설치한 오픈 공간. 창작의 내용에 따라 자유롭게 객석과 무대를 포함한 모든 공간을 재구성할 수 있다.
PIT3 오픈 스페이스 | 실외의 수상 무대와 실내의 계단형 객석을 겸한 휴식공간. 이 공간은 실외로 개방된 오픈 공간이기때문에 사전에 신청하지 않아도 시민 모두가 자유롭게 활용가능하다.
PIT4 뮤직공방 | 무대가 설치된 중앙 스튜디오를 중심으로 주변, 5개의 방음 연습 스튜디오가 갖추어져있다. 그중 4개의 스튜디오에는 다이코(일본북), 드럼세트, 피아노 중 하나가 구비되어있다.
PIT5 아트공방 | 기성이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창작 예술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 기성과 신예의 구분 없이 누구나 작품의 제작과 전시를 위해 활용할 수 있다.

사토야마의 집 | 가나자와시 교외에 있던 오래된 농가를 이축한 사토야마의 집은 전시, 창작, 예술문화 연수, 회의 등에 활용되는 다목적 문화활동공간. 1층에는 이로리(바닥의 일부를 잘라내어 취사용, 난방용으로 사용하는 장치)를 설치한 마루방과 다다미방이, 2층에는 마루방이 있음.

퍼포밍 스퀘어 | 각 PIT에서 감당할 수 없는 많은 인원의 예술활동이 가능하도록 신축한 대연습실을 갖춘 공연공간. 2개의 소연습실도 부가되어 있음.

다이와마치 광장 | 지진시 시민들의 피난 공간. 방재장비비축창고와 헬리포트를 갖춘 광장. 평소에는 시민들의 레크레이션 활동에 활용됨. 애완동물의 동반이 허용된 잔디광장.

사무소동 | 시설사용의 신청과 시설관리를 위한 사무소와 예술단체의 회의와 연수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

가나자와 장인대학 | 가나자와의 뛰어난 전통 장인의 기술 전승과 이것을 계승할 새로운 인재를 육성할 목적으로 세워진 교육기관.

벽돌정 | 빨간 벽돌과 나무의 온기가 있는 이태리 레스토랑. 다이쇼(대정)시대의 나무 기둥이 그대로 노출된 공간.
시민예술촌의 평면 배치도
 시민예술촌의 평면 배치도
ⓒ 시민예술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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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의 기본방침과 지향점

-시민 참가형 예술문화활동을 통한 '지역문화의 거점'
시민들에게 창작 활동하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1. 연습, 제작, 연수
2. 어린이, 일반 시민대상의 육성사업
3. 지역 예술문화활동의 정보수집 및 제공
4. 문화 자원봉사자의 육성

-감상형 예술문화사업을 위한 '활기찬 예술활동의 거점'
시민들에게 새로운 예술문화의 식견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1. 연습 성과의 발표
2. 질 높은 연극, 음악, 무용공연
3. 새로운 표현을 중심으로 한 현대 미술전 개최

-창조형 예술 문화 활동을 위한 새로운 문화 창조의 거점
뛰어난 예술작품과 새로운 아티스트가 탄생하는 장으로 기능한다.
1. 높은 예술성을 목표로 한 제작 활동
2. 프로를 지향하는 사람들을 위한 워크숍
3. 실험적인 예술 창조할동 전개

*시민예술촌 연혁

-1919년 | 가나자와 방적 개업
-1941년 | '다이와방적주식회사'가나자와 공장 조업개시
-1993년 3월 | 공장 조업 종료
-1993년 9월 | 다이와방적과 가나자와시 간의 공장터 매매계약 조인(12월말 인수)
-1994년 8월 | 가나자와시 문화진흥과 내에 '다이와마치 창고군 이용 조사검토팀'발족
-1995년 4월 | 재단법인 가나자와시 공공홀 운영재단 내에 '가나자와 예술문화촌 개설준비실'발족
-1995년 11월 | 디렉터회의 발족
-1996년 1월 | 정식명칭을 '가나자와 시민예술촌'으로 발표(2,893통의 일반공모에서 결정)
-1996년 4월 | 가나자와 시민예술촌 사무국 발족(직원 전임 5명, 겸임 2명)
-1996년 10월 4일 | 개촌
-1997년 10월 | 1997년도 통상산업성(현 경제산업성) '굿디자인 대상' 수상
-1999년 4월 | 다이와마치 광장 완성(비축창고, 임시 헬리포트, 급수설비 구축)
-2000년 4월 PIT1 '에코라이프 공방'신설 이전을 위해 '멀티공방'으로 개칭'
-2001년 12월 | 퍼포밍 스퀘어 완성
-2006년 1월 | 재단법인 지역창조 JAFRA어워드(총무대신상)수상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홈페이지 www.motif1.co.kr 과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가나자와 , #시민예술촌, #일본, #이시카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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