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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루저의 난'에 물타기하듯 동참하긴 싫었다. 문제 발언을 한 여대생에 대해 책망하고 싶기보다 사실 측은한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이었다. 진짜 잘못은 제작진이 했느니, <미수다>는 이제 유통기한이 지났다느니, 한국 남자들의 열등감이 문제라느니, 보다 근본적인 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외모지상주의라느니, 한 마디 불찰한 발언을 두고 온갖 진단과 분석이 쏟아져 나왔다. 문제의 여대생은 정문부터 막아서는 남학생들 때문에 등교도 하지 못하고 있으며, 관련한 소송이 57건이라는 둥 그렇잖아도 시끄러운 가운데 괜히 만필(漫筆)을 보태 논란을 증폭하고 싶지 않았다. 빨리 여론이 잠잠해져야 그 학생도 학교에 나가고 기말고사도 볼 것 아닌가.

 

하지만 그 여대생의 잘못이 뭐였든지 간에, 개인에 대한 사회의 전방위적인 몰아붙이기는 결코 성숙하지 않다는 점만은 말하고 싶었다. 실언에 대해 비판할 수 있다. 맹목적인 비난일지라도 뭐, 표현의 자유가 있으니까 해도 된다고 치자. 하지만 냉정한 비판이든 분노의 표출이든 간에, 그 잘못 하나만 갖고 말하자. '그러기에 처신을 똑바로 했어야지'라면서 그녀의 사생활 침해와 인권 유린을 당연시하는 건 굉장한 폭력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발언 자체는 분명 경솔한 것이었다. 아마 그것뿐이었다면, 나 역시 그녀를 비난하는 대열에 섰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에게 가해진 인신공격은 분명 도를 넘었다. 사생활이 까발려지고, 미니홈피는 테러당해서 결국 폐쇄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실수에 대한 적절한 속죄라기보다는 상식의 키가 작은 '루저'들의 분풀이다. '개념 없는 말로 우리를 분노하게 했으니까 이 정도는 당해도 싸다'라는 일각의 몰상식한 태도는 '행실이 올바르지 못하니까 성범죄를 당하는 것'이라는 폭력적인 논리와 얼마나 흡사한가.

 

가까운 사이에서 다툼이 일어날 때 가장 치사한 행동이 무언지는 다들 알 것이다. 다툼의 원인과 상관없는 과거의 잘못이나 개인적 결함을 들추는 것. 일단 인신공격이 시작되면 논쟁은 한없이 유치해지고 남는 건 상처뿐이다. 쌍방이 모두 '루저'가 되는 제로섬 게임. 전혀 생산적이지 않다.

 

어떤 개인이 루저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건 외모가 아니라 상식과 개념의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개똥녀'에 이은 21세기형 마녀사냥의 희생자가 되고 있는 '루저녀'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하며, 왜 언제나 화형당하는 건 여성인지 궁금한 가운데 글을 맺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숙명여대 자치언론인 Sookmyung Magazine Soo;M 2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루저, #미수다, #마녀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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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없는 곳이라도 누군가 가면 길이 된다고 믿는 사람. 2011년 <청춘, 내일로>로 데뷔해 <교환학생 완전정복>, <다낭 홀리데이> 등을 몇 권의 여행서를 썼다. 2016년 탈-서울. 2021년 10월 아기 호두를 낳고 기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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