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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해고된 KBS 계약직지부 조합원들, 그리고 공영방송다운 KBS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겠다며 KBS 사장 후보에 등록한 홍미라 KBS계약직지부장은 지난 12일부터 KBS 본관 안팎에서 비정규직 철폐, 부당해고 철회, 이병순 사장 연임 반대를 외치며 6일째 철야농성 중입니다. 이들이 철야농성을 하고 있는 KBS 본관 맞은편에는 '정치적 독립 사장선임'을 요구하는 KBS노조의 천막이 쳐져 있습니다. 이 글은 공익과 인간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강조하는 KBS 계약직지부 조합원이 정치 독립 사장을 강조하는 KBS 노조 강동구 위원장님께 전달하는 편지입니다.<기자 주>

 

KBS 노조 강동구 위원장님께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침묵을, 당신의 무관심을 수백 번 이해하려 해보았지만 이해할 수 없습니다. KBS 계약직 지부 조합원들, 당신과 함께 하던 후배들이었습니다. 당신과 함께 KBS를 가꿔나가던 노동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이 단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해고되기 시작한 것. 벌써 지난 여름의 일입니다.

 

저희는 당신에게 읍소했습니다. KBS 노조 선배들이 후배들이 당하는 부당함에 제대로 대응해주셔야 한다고, 저희를 KBS 노조 선배들이 품어주셔야 한다고 몇 번이고 간곡히 말씀드렸습니다. 그럴 때마다 돌아오던 곤혹스러운 표정, 그리고 이런저런 변명들... 솔직히 화가 났지만, 당신의 티끌만큼한 관심과 지원이 너무도 필요했기에 참고, 참고, 또 참았습니다.

 

좋습니다. 당신이 저희를 외면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이유, 모두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고 합시다. 선배들이 꾸려나가는 KBS 노조는 그렇게 복잡한 것이니깐 젊은 비정규직 후배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합시다. 저희가 KBS 노조가 아니라 언론노조 산하에 노조를 꾸리고 투쟁한지 벌써 몇 달입니까? '언론노조 KBS 계약직지부'라는 깃발 아래 투쟁을 시작한 것이 지난 여름입니다. 그리고 가을이 지나 겨울이 오고 있습니다. 이 시간 속에서 당신이 보여준 무관심! 저는 이 무관심이 무섭습니다. 당신이 그냥 개인 강동구였다면 한 인간의 문제로 덮고 넘어갈 수 있지만, 당신이 '공영방송 KBS 노조 위원장 강동구'이기 때문에 비정규직 후배들에게 보여주는 무관심은 참 무섭고 답답합니다.

 

지난 150여 일 간의 투쟁 속에 KBS에서 해고된 비정규직들이 노조위원장인 당신을 단 한 번도 만날 수 없었다는 것. 이거 이상하지 않습니까? 노조위원장이 어찌 그리 비정규직의 목소리에, 후배들의 고함에, 노동자들 음성에 무관심하십니까? 햇빛 뜨거운 더운 날에 KBS 본관 계단 위에 드러눕는 후배들이 안쓰럽지 않았습니까? 폭우를 맞으며 눈물을 흘리는 비정규직 후배들 모습에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셨습니까?

 

좋습니다. 좋습니다. 워낙 바쁘신 몸이니깐, 워낙 높으신 사람들을 만나야 하니깐, 비정규직 후배들의 작은 목소리는 챙길 수 없었다고 넘어갑시다.

 

그런데, 그런데, 이번에는 해도 너무하십니다. 지난 금요일(12일)부터 KBS 계약직지부 조합원들은 KBS 본관 안팎에서 공익과 인간을 포기하고, 사회적 약자에 냉담한 이병순 사장 연임 반대를 외치며 6일째 철야농성 중입니다. 한 번 찾아와 수고한다며 어깨 한 번 두드려 주는 것이 그렇게 힘드십니까? 영하의 날씨와 싸우고, 이병순 사장과 싸우는 이들의 패기와 젊음을 응원해주는 게 그렇게 어렵습니까? 그게 노조위원장이 노동자에게 해야 하는 일이고, 선배가 후배에게 해야 하는 일 아닙니까?

 

아실테지만, 이번에 홍미라 KBS 계약직지부장이 KBS 사장에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저 같으면 이 말도 안되고 엉뚱하고 발칙한 행동을 진심으로 격려하고 지지하겠습니다. 이 도전은 공영방송 KBS를 지키고자 하는 젊은 비정규직들의 작은 몸부림이기 때문입니다. 홍미라 지부장이 KBS 사장이 되겠다는 말도 안되는 몸부림이 아니라, 공영방송 KBS의 나아갈 길을 좀 더 깊고, 좀 더 넓게 고민해보자는 비정규직 후배들의 꿈틀거림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작은 실천에 대해 왜 당신은 침묵하십니까? 왜 모르는 척 하십니까? 부끄러운 것입니까? 무시하고 싶은 것입니까?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본심은 다른 데 있는 것입니까?

 

당신이 김인규 KBS 사장 후보를 반대한다며 쓴 성명서를 보며 비웃음이 나왔습니다. 건방지지만 정말 그랬습니다. 

 

"KBS 이사들이여! 후대에 독재에 부역해 KBS를 팔아먹은 역사의 죄인으로 기록되고 싶은가? 공영방송 파괴 주범으로 영원히 남고 싶은가? 권력의 시녀노릇을 자처해 특보사장에 한 표를 던지는 순간 당신들은 공영방송 KBS에 대통령 후보 특보 사장을 앉히는 것이 언론의 정도라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이다. " 

'낙하산 사장 저지를 위해 집행부 전원이 구속과 해고를 결의한다!!!'

(2009년 11월 16일 KBS 노조 성명서 중)

 

저는 이런 거센 문장을 좋아하지 않지만, 같은 말로 감히 묻겠습니다.

 

강동구 위원장님! 후대에 사회적 약자를 무시하고, 권력에 부역해 공영방송 KBS를 팔아먹는 역사의 죄인으로 기록되고 싶으십니까? 비정규직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권력에 부응하는 공영방송 파괴 주범으로 영원히 남고 싶으십니까? 당신이 비정규직을 해고한 이병순 사장을 인정하는 순간 당신들은 KBS가 사회적 약자를 차별하고, 해고하는 것이 공영방송의 정도라고 이야기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면 지금 무엇을 하셔야겠습니까? '이명박의 KBS'가 절대 안되는 것처럼, '이병순의 KBS'도 절대 안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진정 당신이 '공영방송 노조위원장'다운 노조위원장으로 역사에 기록되고 싶다면, 이병순 사장 연임에도 그처럼 맞서십시오. 추위와 싸우고, 이병순 사장과 싸우는 KBS 계약직지부 조합원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그것만이 당신이 비정규직들에게, 후배들에게, 이제껏 해왔던 부끄러웠던 행적을 그나마 지우는 일입니다.


태그:#KBS , #KBS 노조, #이병순, #홍미라,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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