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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전화 주소록에는 비밀폴더가 있다. 지난 2년간 했던 소개팅 상대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하나도 지우지 않고 모아놓은 아주 평범하기(?) 그지없는 내용의 비밀폴더. 그런 비범한 일을 아주 범상하게 해내는 내가 누구냐고?

빗나간 인연의 흔적을 모으는 변태 성향의 콜렉터?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시크릿'을 믿으며 아침저녁으로 연락을 기다리는 의지녀? 애프터 안 한 '것'들 두고두고 부숴버리겠다며 해코지를 준비하는 미저리? 다행히 셋 다 아니다. 난 그런 에너지 넘치는 일을 하기엔 이미 완전 건조된 서른 즈음의 건어물녀일 뿐이니까.

물론 마음 깊은 곳에서야 분기별로 연락해 아직도 솔로인지 물어보고 싶은 것도 사실이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머릿속에서만의 일. 행동력이나 주변머리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수동적인 대한민국 30대 솔로 부대원이 바로 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들의 이름과 번호를 고이 간직하는 것은 반면교사를 위함이다. 아무리 안간힘을 써보아도 한번 연애전선에서 밀려난 자가 다시 그 세계로 돌아가는 것은 회춘하는 것만큼나 어렵다는 깨달음을, 나의 어수룩함으로 아깝게 날려버린 인연의 안타까움을, 이러다 혼자 늙어 죽고 말지 라는 각성을 그 비밀폴더를 보며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효과는 또 다른 것인데, 그 민망하기 그지없는 이야기를 꺼내기에 앞서 내 처절한 경험을 공개하는 것은 짝을 찾고자 발버둥치는 솔로 동지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 바라서임을 미리 밝혀둔다. 그럼 내 얘기 한번 들어볼래?

소개팅 7연패, 이런 빵꾸똥꾸같은 일이...

솔로가 되고 나서 약 2년간 15회 남짓의 소개팅을 했지만 전적이 그리 훌륭치는 않다. 소개팅 상대는 직업도 나이도 외모도 성격도 다 제각각이었는데 어쩜 다들 나에게 호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솔로가 되고 나서 약 2년간 15회 남짓의 소개팅을 했지만 전적이 그리 훌륭치는 않다. 소개팅 상대는 직업도 나이도 외모도 성격도 다 제각각이었는데 어쩜 다들 나에게 호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 i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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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가 되고 나서 약 2년간 15회 남짓의 소개팅을 했지만 전적이 그리 훌륭치는 않다. 아니 매우 저조한 편이다. 미인은 아니지만 박색도 아니고, 여러 사람을 만나는 직업상 화제가 풍부한 편임에도 그렇다.

다행히도 주변인들이 그게 비주얼 탓은 아닐 거라며 위로해주니 고맙게 믿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7연패의 기록을 달성했다. 애프터는커녕 '반가웠습니다. 잘 들어가세요'라는 문자조차 보내지 않은 경우까지를 나는 1패로 계산했다. 7연패, 정말 '빵꾸똥꾸' 같은 일이다.

참 희한한 일이었다. 소개팅 상대는 직업도 나이도 외모도 성격도 다 제각각이었는데 어쩜 다들 나에게 호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나보다 7살이나 많고 나긋나긋한 말투에 다정했던 소개팅남은 만난 지 2시간 만에 나에게 "잘 들어가세요"라고 말해 환한 태양을 부끄럽게 했으며, 물론 그 후로 연락이 없었다. 7살 나이 차이로도 안 되는 것인가, 태양아래서 자괴감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또 나처럼 야구를 좋아한다며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친구가 소개해준 사람은 몇 시간이나 재밌게 이야기를 나눈 후 헤어졌는데 역시나 "잘 들어가"란 문자조차 없었다. 취미로도 안 되는 것인가 만루에서 병살을 친 것 같았다.

나와 동갑이었던 한 소개팅 남은 내내 나보다 더 떨었고, 긴장해 보여 다른 날과 달리 내가 밥도 먹자, 차도 마시자 나름 분위기를 이끌었는데 그 역시 연락이 없었다. 아 뭐냐. 물론 그 중에는 연락 오지 않았으면 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정말 연락이 오지 않으니 그것도 또 나름대로 괴로웠다. 이쯤되면 절망과 외로움이 영혼을 갉아먹기 시작한다.

나에게 웃어주던 그놈, 문자는 왜 안 보냈을까

그 '시키'는 왜 내게 웃어주기만 하고 문자는 주지 않는 걸까.
 그 '시키'는 왜 내게 웃어주기만 하고 문자는 주지 않는 걸까.
ⓒ 시리우스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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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연패를 하던 날은 난생 처음 혼자 술집에 들어가 얼큰해져 나왔고, 5연패를 했을 즈음에는 '독거'라는 단어가 귀신보다 무서웠다. 천생연분을 찾아준다는 맞선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가입비를 알아본 것은 6연패쯤 했을 때일 것이다(알아보니 가입비가 107만원 정도였다). 드디어 7연패를 달성했을 때 가족들은 이 사건을 이르러 '가문의 수치'라고 표현했는데 당사자인 나로서는 최대한 희화화하기 위해 '차임'이라 쓰지만 '연패'라고 읽었다.

소개팅한다고 외출한 딸이 해도 안 떨어져서 들어왔을 때, 엄마의 한숨은 깊어졌고, 형제자매의 혀차는 소리는 급해졌다. 친구는 캠코더로 소개팅 장면을 찍어서 사례 분석을 하고 싶다고 했고, 한 후배는 어차피 안 될 거 옆에서 연패당하는 모습을 구경할 기회라도 주지 않겠냐고 물었다.

그렇게 연패를 거듭할수록 주위 사람들은 재밌어했지만 나는 철학자가 되어갔다. 나는 누구인가.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없는가. 그 '시키'는 왜 내게 웃어주기만 하고 문자는 주지 않는 걸까. 왜 나는 먼저 '너 내가 찍었다'고 치고 나갈 수 없는 인간인 걸까. 나에게도 거절할 기회는 생길 것인가. 혼자 산다면 개를 키울까, 고양이를 키울까.

그러다가 내린 결론은 좀 더 철저한 분석과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폴더에 이름이 하나씩 늘어갈수록 염세주의자가 되어갈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패인을 파헤쳐 솟아오를 길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눈물겨운 노력 덕분인지 최근 8연패는 가까스로 막았다. 드디어 문자도, 애프터도 온 것이다. 비록 그것도 단 한 번으로 끝나버렸지만 희망의 빛을 본 것만으로 난 희미하게나마 웃었다. 

문제는 역시 나, 눈을 마주할 수 없어요

깨달음 이후에는 온 힘을 다해 상대의 눈을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고 안광을 쏘아대면 상대가 기겁할 수도 있으니 최대한 자연스럽게. 사진은 영화 <내눈에 콩깍지> 중 한 장면.
 깨달음 이후에는 온 힘을 다해 상대의 눈을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고 안광을 쏘아대면 상대가 기겁할 수도 있으니 최대한 자연스럽게. 사진은 영화 <내눈에 콩깍지> 중 한 장면.
ⓒ 삼화네트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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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나를 알아야 한다. 대체로 소개팅에서의 대화를 복기해보면 공통으로 나온 말이 있다. 그 말들을 단서로 퍼즐을 맞춰 가면 제일 약한 부분이 정체를 드러낸다. 내 경우에는, "거기 뭐 있나요?"였다.

워낙 말수도 적고 낯가림이 있어서 처음 보는 사람의 눈을 잘 보지 못한다. 그래서 대략 상대의 어깨 넘어 쯤을 보다가 가끔 눈을 보곤 하는데, 아마도 그런 이유일 거라고 생각했다. 친한 동료에게 확인했다. 그의 말이 더 가관이다.

"대리님이랑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만나자마자 30분간은 아주 어색해하는 것 같아요. 시선도 불안하고, 딴 데만 보고."

맙소사. 그랬구나. 지인에게 한 번 더 확인했다.

"응, 누나 좀 그래. 우리 안 지 10년인데 지금도 만나자마자는 무지 어색해하는 게 눈에 보여."

자신에 대해 얼마나 모르고 살아왔는지에 대해 뼈아프게 깨닫는 순간이었다. 친한 이들에게도 그러니 소개팅이야 말해 무엇하랴. 상대에게 내가 집중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줬을지도 모르겠다(마음과는 완전 달리). 집에 가고 싶어서 안달 나 보였을지도 모른다.

얼마나 고마운 분인데! 나를 위해 먼 곳에서 일부러 찾아온 사람이 아닌가. 그럼에도 그의 시선을 외면했으니 고의는 아니지만 난 참 실례를 하고 만 것이다. 그런 행동이 상대에게는 '관심없다' 혹은 '지루하다'는 몸짓 언어라는데, 난 언제나 그저 좀 부끄러울 뿐이었다.

상대의 눈을 보고 "저 관심 많아요"라고 표현하는 것이 상대가 맘에 들고 안 들고를 떠나서 일부러 자리에 나온 인간에 대한 기본 예의일 것이다. 경청은 호감이 가는 기본 자세라는데 어찌 이러고 살았을까. 소개팅 7연패의 기록이란 역시 괜히 생기는 것은 아니지 말이다.

이런 깨달음 이후에는 온 힘을 다해 상대의 눈을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고 안광을 쏘아대면 상대가 기겁할 수도 있으니 최대한 자연스럽게. 몸도 앞으로 살짝 기울이며. 앞으로도 소개팅을 할 때면 나쁜 습관들을 하나씩 고쳐볼 셈이다. 그럼 언젠가는 두 번도 만날 날이 오리라. 아, 눈물 나게 소박한 소망이다.


태그:#소개팅, #7연패, #여병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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