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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게에서 물건을 훔친 도둑을 쫓아가 잡았더니 경찰이 나도 체포했다면 당신 심정은 어떨까. 이런 황당한 사건이 캐나다 토론토에서 발생했다.

지난 5월 23일, 토론토 다운타운 차이나타운 중국인가게 럭키무스 푸드마트에서 물건을 훔친 안소니 버넷을 쫓아가 잡은 주인 데이비드 첸(35)과 중국인 종업원 2명을 경찰이 절도범과 함께 체포한 것.

게다가 물건을 훔친 버넷의 혐의는 절도죄뿐인 데 반해, 절도범을 잡은 3명은 납치와 무기소지, 폭행, 억류 등 4가지의 혐의로 기소되었다.

내 가게 물건 훔친 도둑놈 잡았을 뿐인데 나도 죄인?

데이비드 첸이 가게 지하에서 사건을 설명하고 있다.
 데이비드 첸이 가게 지하에서 사건을 설명하고 있다.
ⓒ 내셔널포스트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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첸의 변호사 피터 린지가 설명한 사건 정황은 이랬다.

사건 당일 첸은 버넷이 가게 앞을 지나가는 것을 봤다. 버넷은 차이나타운에서 오랫동안 절도로 악명 높았던 사람. 첸은 감시카메라를 되돌려 봤고, 자전거를 탄 버넷이 가게 앞에 진열해 놓은 물건을 자신의 자전거에 싣고 유유히 사라졌음을 확인했다.

첸은 1시간 후 다시 가게에 나타난 버넷에게 "감시카메라로 확인했으니 물건 값을 지불해라, 그러면 경찰에 신고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버넷은 훔치지 않았다며 도망쳤다. 첸과 종업원 2명이 버넷을 쫓는 과정에서 서로 몸싸움이 벌어졌고, 결국 첸 일행은 버넷을 잡았다. 이들은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3~4분간 버넷의 손을 묶어 트럭 안에 가두어 놓았다.

그런데 출동한 경찰은 버넷뿐 아니라 첸 일행도 체포했다. 첸 일행은 24시간을 철창에서 보낸 후에야 2만2천 달러의 보석금을 약속하고 풀려났다.

이런 첸의 소식이 <시티 티비> 등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차이나타운 등에서 원성이 쏟아지고 있다.

차이나타운 업주들은 절도를 신고할 경우, 경찰은 늑장출동하거나 아예 나타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첸의 가게 옆 꽃가게 주인은 <시티 티비> 기자에게 "내 가게도 지난 1년 간 약 3천 달러 어치의 꽃을 도난당해 경찰에 신고했지만 아직도 범인을 체포하지 못했다"며 "그 절도범(버넷)은 이 동네에서 잘 알려져 있다, 첸은 용기 있고 옳은 일을 한 것"이라고 지지했다.

절도범은 징역 30일, 절도범 잡은 사람은 최고 징역2년

<시티 티비> 웹사이트에도 네티즌들의 첸 지지글이 쏟아졌다.

"첸은 책임 있는 업주이며 책임감 있는 시민이었다. 누구라도 억류당하길 원치 않으면 도둑질을 안 하면 된다. 매우 간단한 해결책이다." - 리틀 브레인

"형법이 범죄에 대해 너무 약하다. 이 절도범이 이런 걸 보고 무엇을 배우겠나. 절도범은 다시 범죄를 저지를 것이고, 다시 가벼운 처벌 후에 풀려날 것이다. 왜 우리는 우리 재산을 지킬 수 없는가? 경찰이 도움이 필요할 때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아니다." - 레오 123

첸 지지 탄원서에는 차이나타운 업주 등 5천여 명이 서명했다. 아시아계 대표들도 토론토시 경찰총수인 빌 블레어를 상대로 구명운동을 펼쳤다. 9월말에는 제이슨 케니 연방이민장관이 직접 첸의 가게를 방문해 격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은 "연방장관의 차이나타운 방문은 중국인 등 아시아계의 표심을 얻기 위한 정치적 목적이 강하다"며 법정에서 다뤄질 사안에 대해 연방장관이 뭐라 미리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11월 3일 콜린 헵번 검사는 뚜렷한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첸 일행에게 부과됐던 4가지 혐의 중 2가지(납치, 무기소지)를 취하해 줄 것을 요청해 판사의 승인을 받았다. 헵번 검사가 '무기'라고 한 것은 그가 가게에서 일하는 동안 항상 휴대하고 사용하는 박스커터(문방구용 칼)였는데, 절도범을 쫓을 당시 그 칼은 첸의 허리띠에만 매달려 있었을 뿐 사용되지 않았다. 어쨌든 나머지 2가지 혐의(폭행, 억류)에 대해서는 내년 6월 21일 재판이 열릴 예정이다.

1976년부터 절도, 마약소지 및 유통 등의 전과가 있는 절도범에게는 30일 징역형이 선고됐지만, 첸 일행은 최고 2년 징역까지 가능하다. 언론들은 버넷이 법정에서 첸의 혐의에 대한 검찰 측 증인으로 나서는 조건으로 절도 형량을 감량 받았다고 보도했으나 경찰은 이를 부인했다.

"명백한 인종차별...첸이 백인이었어도 잡아갔을까"

11월 3일 온타리오 지방법원을 나서는 첸. 첸은 자신의 가게 물건을 절도한 버넷을 잡았다가 납치, 무기소지, 폭행, 억류 등 4가지 혐의로 기소됐다. 첸의 혐의 중 납치, 무기소지는 이날 취하됐다.
 11월 3일 온타리오 지방법원을 나서는 첸. 첸은 자신의 가게 물건을 절도한 버넷을 잡았다가 납치, 무기소지, 폭행, 억류 등 4가지 혐의로 기소됐다. 첸의 혐의 중 납치, 무기소지는 이날 취하됐다.
ⓒ 더스타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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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달간 온 가족이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2가지 혐의는 취하되었지만, 남은 2가지 혐의로 내년 6월 재판을 받을 때까지 시간과 돈은 물론, 가게 운영도 힘들 것이다. 재판을 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절도범이다."

11월 3일, 토론토 다운타운 소재 온타리오 지방법원을 나오면서 첸이 한 말이다.

첸의 변호사 피터 린지는 CBC 방송에 출연해 "첸처럼 새벽 4시부터 밤 10시까지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보호받아야 한다"며 검사측이 나머지 2가지 혐의도 취하해 주기를 희망했다.

한편, 토론토의 형법전문 변호사 재클린 안(안주영)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첸 사건은 인종차별적인 요소가 보이는 사건으로, 주시하고 있다"라며 "만일 첸과 같은 일을 영국계 백인이 벌였다면 백인들이 대부분인 경찰과 검찰이 과연 그렇게 무겁고 심하게 기소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클린 안은 한국, 중국, 일본, 필리핀, 태국계 등의 변호사들로 구성된 아시아계 캐나다변호사협회 차원의 대응방안을 검토 중이다. 법무장관에게 항의서한도 보낼 계획이다. 재클린 안은 이 협회 부회장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과 형사법 체계에 대해 토론토 시민들의 회의적인 시각을 반영하는 조사결과가 나와 주목된다. 캐나다 태생 소수 유색인종일수록 경찰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내용이다.

토론토대학 스코트 워틀리 교수(범죄학)와 박사학위 대학원생 아크와지 오우수-벰파씨가 함께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특히 흑인과 중국계가 경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나타냈다. 같은 범죄에 대해 백인보다 더 강한 처벌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흑인은 1997년 48%에서 2007년 58%로 늘어났으며, 경찰이 백인에 비해 중국계를 차별한다는 의견에 동의한다는 답변은 백인의 경우 1994년 26%에서 2007년 27%로 거의 변화가 없었지만 중국계는 46%에서 50%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태그:#절도범 체포, #캐나다, #인종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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