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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은 '가장 참여적인 시장', '표현촉진적인 매체'이다. … 오늘날 가장 거대하고, 주요한 표현매체의 하나로 자리를 굳힌 인터넷상의 표현에 대하여 질서위주의 사고만으로 규제하려고 할 경우 표현의 자유의 발전에 큰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헌법재판소 2002년 6월 27일 선고 99헌마480 결정중에서) 

인터넷의 장점 중의 하나가 자유로운 비판과 수평적인 토론 문화라는 데 토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네티즌들은 정치, 경제, 사회 등 공적인 관심사나 연예인, 정치인 등 공적인 인물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제시함으로써 여론을 만들어가기도 한다. 그런데 인터넷 공간에서 표현의 자유는 종종 개인의 명예와 충돌한다. 사이버 명예훼손이나 사이버 모욕이라는 이름으로 법의 판단을 받게 되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와 공인의 명예가 충돌했을 때

인터넷 공간에서 표현의 자유는 종종 개인의 명예와 충돌한다. 사이버 명예훼손이나 사이버 모욕이라는 이름으로 법의 판단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인터넷 공간에서 표현의 자유는 종종 개인의 명예와 충돌한다. 사이버 명예훼손이나 사이버 모욕이라는 이름으로 법의 판단을 받게 되는 것이다.
ⓒ 박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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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이버모욕과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1심 판결 2건이 있었다. 두 사건 모두 일반인이 공인을 상대로 비판적인 의견을 표명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자신이 모욕을 받았다고 고소한 '공인'은 각각 군사평론가 지만원씨와 신지호 국회의원이었다.

공적인 관심사에 대한 표현의 자유와 공인의 명예가 충돌했을 때는 어떻게 될까. 두 사건을 통해 살펴보자.

[지만원 사례의 경우] 첫 번째는 블로거 A씨가 군사평론가 지만원씨를 비방하였다는 이유(모욕죄)로 고소를 당해 법정에 선 사건이다.

[사례1] 2008년 11월 상당수 언론은 배우 문근영씨가 익명으로 거액을 기부한 사실을 미담기사로 소개하였다. 일부 언론 매체는 문씨의 외할아버지인 통일운동가 고 류낙진씨 등 가족사를 함께 언급하기도 했다.

지만원씨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문근영씨의 기부행위를 가족사와 결부시키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는 '문근영은 빨치산 선전용', '기부천사 만들기, 좌익세력의 작전인가' 등의 제목의 글을 통해 언론의 문근영 칭찬에 의혹을 제기했다.

A씨는 지씨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지만원, 지는 만원이나 냈나?" "지만원씨도 삐라로 기부했다던데"라는 제목으로 지씨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지씨는 A씨를 고소했고 사건은 법원으로 넘어왔다. 

재판에서 쟁점은 A씨가 사용한 표현들이 현행법(모욕죄)을 어겼느냐는 것이었다.

법원(서울중앙지법 김시철 판사)은 "A씨의 입장에서 지씨의 주장을 비판하는 의견을 밝히는 것은 당연히 허용된다"면서도 "그러나 자신의 주장과 직접 관계가 없거나 피해자의 인격에 대한 경멸적인 문구가 다수 포함된 표현 행위를 계속 하는 것은 사회상규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법원은 "A씨가 쓴 글의 표현들은 지씨의 이름과 나이 등을 가지고 피해자를 조롱하거나 터무니없이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하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등 지씨의 인격을 모욕하는 경멸적인 감정을 나타낸 것"이라며 모욕죄를 인정했다. A씨는 "지씨가 먼저 문근영에 대한 명예훼손을 저질렀기 때문에 정당행위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A씨의 또다른 글('지만원씨의 명예훼손을 처벌해야')에 대해서는 "모욕적인 언사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일부 무죄를 선고한 점 등을 감안하여 A씨에게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

유무죄를 떠나 이 판결에서 주목할 것이 있다. "비판을 할 때도 인신공격을 하는 경우에는 정당행위가 성립될 수 없다"고 밝힌 부분이다. 이 판결은 정당한 비판을 하기 위해서는 내용만큼 방식(형식)도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신지호 의원의 경우] 하지만 이와 유사한 두 번째 사건의 결론은 달랐다.

[사례 2] 지난해 9월 신지호 의원은 고교 역사교과서 수정 논란을 다룬 TV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하였다. 신 의원은 이날 토론에서 모 교과서의 '좌편향'을 지적하며 교과서 도입부에 신동엽 시인의 '껍데기는 가라!'가 왜 실렸느냐는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이날 신의원의 언행은 많은 네티즌들 사이에 논란을 불렀다.

이 토론회를 지켜본 B씨도 신의원의 홈페이지에 항의 글을 올렸다. 그는 '신지호 의원! 껍데기는 누구? 신지*? 억울하세요?' '뇌와 귀없이 입만 가지고 토론에 임하는 신지호!' 등의 제목으로 신의원이 토론에서 보여준 언행에 대해 비판하였다. B씨는 8차례에 걸쳐 글을 올렸고 신 의원은 이 글들이 자신을 모욕했다고 판단하고 그를 고소했다.

법원(서울북부지법 박미리 판사)은 B씨가 사용한 표현 뿐만 아니라 8개의 게시물 전체를 꼼꼼하게 검토하였다. B씨의 글이 신 의원을 모욕했는지를 가리기 위해서는 게시글을 전체적인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법원은 "스스로 흑사리 껍데기라 생각되어서 기분이 나쁜 것인가요?"라는 표현은 언어유희에 불과하고, "씹어댈 교과서를 대충이라도 살펴보고 나오셔야죠?"라는 부분 등은 토론준비를 소홀히 했음을 비판한 것으로 사회적 평가를 훼손할 만한 모욕적 언사라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법원은 B씨의 글 중에는 "뻘소리 지껄이면서 실실 쪼개기나 하고" 등 일부 모욕적 표현이 있고, 그밖에도 B씨가 일부 저속한 표현을 사용한 사실은 인정된다고 보았다. 하지만 이런 부분들이 "게시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고 고소인(신의원)의 언행과 의정활동을 강하게 비판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사회상규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결국 B씨의 게시글들은 전체의 맥락에서 볼 때 신의원의 사회적 평가를 훼손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9월 16일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이에 불복, 항소를 제기한 상태이다.   

유사한 두 사건 상반된 결론, 정답이 없다

두 사건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유사한 사례인 두 사건은 상반된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

첫 번째 사건은 "표현의 자유는 인신공격까지 허용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취한 반면, 두 번째 사건은 "비판 글에서 모욕에 대한 판단은 문구 자체보다는 전체적인 맥락에서 살펴야 한다"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어떻게 보면 미묘한 입장 차이 같지만 재판의 결론에서는 확연히 달라지는 것이다. 

대법원의 최근 판례를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먼저 첫 번째 사건과 같은 결론을 취하는 판례이다.

"공적인 존재의 공적인 관심사에 관한 문제 제기가 널리 허용되어야 한다고 하더라도 … 그 표현방법에 있어서는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하는 바탕 위에서 어휘를 선택하여야 하고, 아무리 비판을 받아야 할 사항이 있다고 하더라도 모멸적인 표현으로 인신공격을 가하는 경우에는 정당행위가 성립될 수 없다." (2008.4.24. 선고 2006도4408 판결 등)

하지만 또다른 판례는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다.

"어떤 글이 모욕적인 표현을 포함하는 판단 또는 의견을 담고 있을 경우에도 그 시대의 건전한 사회통념에 비추어 살펴보아 그 표현이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로 볼 수 있을 때에는 위법성이 조각된다."(2008.7.10. 선고 2008도 1433 판결 등)

비난 아닌 비판을 법으로 처벌하는 것은 신중해야

어떤 것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터넷 공간에서 벌어지는 토론은 빠르고 즉각적이다. 때에 따라서는 다소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부분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지만 실시간으로 여론이 형성되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인터넷 공간에 명예훼손이나 모욕에 너무 엄격한 잣대를 댄다면 자유로운 토론을 보장하기 힘들다. 네티즌들은 토론의 내용보다는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문구 하나하나에 집착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명백한 비난이 아닌 이상 비판을 법으로 처벌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인터넷상에서의 토론·논쟁은 상호 비판과 자정을 통해 해결해야지 법이 개입하는 순간 더 이상 건전한 토론이 어렵다. 특히 토론·비판의 상대방이 공인이라면 공인의 인격도 존중해야 하지만 공인에 대한 비판 역시 존중해주어야 한다.

글 첫머리에 소개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서도 나왔듯이 인터넷을 질서 위주의 사고로 규제할 경우 표현의 자유는 가로막힐 수밖에 없다.

두 사건은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예상컨대 두 사건 모두 대법원까지 가야 결론이 날 듯싶다. 대법원의 현명한 판단이 주목된다.

명에훼손과 모욕 어떻게 다를까
명예훼손과 모욕은 어떻게 다를까. 한 마디로 설명하면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떨어뜨리는 표현이 (허위)사실을 담고 있으면 명예훼손이고, 의견 표명에 불과하다면 모욕에 해당한다. 더 자세히 살펴보자.

명예훼손과 모욕죄 모두 '공연성'을 요건으로 한다. 공연성이란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알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명예훼손죄는 여기에 '사실의 적시(지적하면 드러냄)'가 더해져야 한다. 다시 말해 명예훼손이란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알 수 있도록 타인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떨어뜨리는 사실을 적시할 때 성립하는 죄이다. 대법원은 명예훼손죄가 되려면 "사실의 적시가 있어야 하고, 이로써 특정인의 사회적 가치·평가가 침해될 가능성이 있을 정도로 구체성을 띠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형법상 모욕은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것"을 말한다. 판례는 모욕에 대해 "사실을 적시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알기 쉽게 사례를 들어보자. "A는 돈이 없어서 살던 집에서 쫓겨났다", "B는 성격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남편에게 이혼당했다"는 표현은 명예훼손으로 볼 수 있다. 반면, "C는 개같은 X이다", "D는 정신병자 같다"고 했다면 모욕죄에 해당한다. 

하지만 실제로 이 둘을 딱 잘라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보통 사람들이 쓰는 표현에는 대부분 사실과 의견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법원도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명예훼손과 모욕을 나누고 있다.    

한편, 명예훼손죄는 반의사불벌죄인 반면, 모욕죄는 친고죄라는 차이가 있다. 따라서 명예훼손죄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표현을 하지 않는 한, 검사가 기소하는 데 제약이 없다. 이와 달리 모욕죄는 피해자가 고소가 있어야만 수사를 할 수 있고 처벌이 가능하다.

인터넷상의 명예훼손과 모욕은 어떤 법으로 처벌할까. 사이버 명예훼손은  특별법인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70조)의 적용을 받는다. 반면, 사이버 모욕에 대해서는 따로 법이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일반 형법의 모욕죄로 처벌받게 된다.

덧붙이는 글 | 다음 기사에서는 댓글 사례를 중심으로 사이버 명예훼손과 사이버 모욕의 실제 사례에 대해서 짚어볼까 합니다.



태그:#신지호, #지만원, #사이버모욕, #사이버명예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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