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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천사의 유혹>의 포스터.
 드라마 <천사의 유혹>의 포스터.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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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결혼 시즌이다. 내 경우만 해도 10월에 친지, 친구들의 결혼식을 3건 치렀고, 11월에는 5건이나 잡혀있다. 세상이 하수상하다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 아마도 그것이 세상 굴러가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결혼식에 참석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 결혼식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들이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의례적으로 결혼식에 참석하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인맥 자체가 사회적 자산이 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과연 얼마나 많은 이들이 경조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안 부르자니 나중에 섭섭해 할 것 같고 부르자니 부담스러워 할 것 같아 미안한 이들과, 안 가자니 나중에 그 사람 보기 민망할 것 같고 막상 가자니 어색할 것 같은 이들 간의 눈치 보기 싸움.

'안 본 지 꽤 됐는데 청첩장을 보내도 괜찮은 건가?'
'그래도 같은 공간에서 가끔 얼굴 마주치는데 청첩장을 받고도 모르는 척 할 수 없지 않아?'

아마도 이와 같은 고민은 청첩장을 보냈던 사람이나, 청첩장을 받았던 사람들 모두 한 번씩은 해봤을 것이다.

3, 5, 10만 원으로 정의되는 축의금 문화

특히 이와 같은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 사회의 축의금 문화다. 과거 직접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의미로서 시작되었을 부조금이 오히려 결혼식 초대의 필수가 되어버리면서 위의 불편한 초대에 대한 셈법이 더욱 복잡해진 것이다. 사람은 가지 못해도 축의금은 보내는 것이 예의가 되어버린 사회.

따라서 결혼식 축의금은 때때로 결혼하는 이와 초대받은 이의 관계를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되기도 한다. 모든 인간관계를 한낱 돈으로 치환시키는 것 자체가 야만적이고 비극적인 일이지만, 어쨌든 그 모든 것이 돈으로 평가되는 것이 현실인 사회 속에서 축의금의 액수만큼 그 사람의 상황과 혹은 인간관계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수단은 없기 때문이다.

축의금 액수에 있어서 3, 5, 10만 원에 대한 정의는 아마도 이와 같은 세태를 정확하게 반영한 예일 것이다. 즉 직장동료 등과 같이 안 내자니 민망하고, 막상 내자니 아까운 이들에게는 3만 원, 평소에 일반적으로 알고 지내는 지인들이나 친구들에게는 5만 원, 그리고 아주 가까운 친구나 친지들에게는 10만 원이라는 공식 아닌 공식은 현재 우리의 축의금 문화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축의금 액수가 축하를 대신하는 이 '시대의 비극'

축하의 의미를 넘어서 인간관계를 규정짓는 축의금. 따라서 각 개인들이 축의금에 대해 자신만의 수많은 에피소드들을 가지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만큼 결혼식에 있어서 축의금은 예민한 부분인데 반해, 축의금에 대한 기준이 사람 따라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축의금에 관한 에피소드들 중 '음식 값이 얼마인데, 축의금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유형은 참으로 보기 안쓰러운 사례 중 하나다. 아내의 친구나 인터넷을 통해 여러 번 듣고 본 적 있는 위 사례는 우리 사회의 결혼식이 가지는 여러 의미가 충돌한 경우이기 때문이다.

1인당 7만 원짜리 뷔페를 제공하는 호텔에서 결혼했던 아내의 친구 A와 축의금 5만 원을 내고 남편과 아이까지 모두 데리고 결혼식에 참석한 또 다른 친구 B. 호텔에서 결혼한 친구 A는 아직도 아내를 만나면 친구 B의 흉을 본다고 한다. 최소한 못해도 7만 원은 내야 한다며, 그것도 아니면 혼자 와야 되지 않느냐며.

결국 이는 결혼식에 대한 두 개의 가치관이 충돌한 결과다. 자신의 부와 인맥을 과시하기위한 공간으로서 결혼식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들과, 단순한 의무감에 참석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간의 괴리. 

이 같은 경우 어찌 모든 사람들이 결혼하는 이들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축의금을 맞출 수 있겠는가. 게다가 요즘같이 부의 양극화가 깊어지는 시대에 초대받은 모든 하객들이 초대한 이의 기대를 모두 충족시킬 수는 없지 않은가. 분명히 이는 비극이다. 축의금 액수 자체가 축하를 대신하는 이 시대, 우리가 겪을 수밖에 없는 비극인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축의금 문화가 마냥 안쓰러운 것만은 아니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어정쩡한 인간관계에 있어서 축의금은 분명한 의사표현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대부분 40~50대의 경우 축의금으로 3만 원이 들어오면 다시는 그 사람에게 둘째, 셋째 자식들에 대해 청첩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단순히 섭섭함을 넘어서 청첩하는 것 자체가 실례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편리함에 '엑셀'로 정리하지만, 사람 얼굴이 돈으로...

비인간적인, 너무도 비인간적인
▲ 엑셀로 정리한 축의금 명단 비인간적인, 너무도 비인간적인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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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고 탈도 많은 축의금. 그럼 이와 같은 축의금은 어떻게 관리하는 게 좋을까?

올 3월 결혼식을 하겠다고 청첩장을 돌리고 있는 즈음. 결혼한 지 2년 된 친구 녀석이 한마디 조언을 했다. 청첩장 보낼 사람들의 목록을 관리하는데 있어서 가장 유용한 프로그램이 엑셀이라는 사실이었다. 더불어 그 엑셀 파일로 축의금까지 관리하면 더 간편하다나. 그리고 덧붙이는 한마디.

"대신 사람들을 보면 당장 축의금 액수가 생각날 거야."

사실 처음에는 마뜩찮은 제안이었다. 나의 결혼식을 축하해주는 사람들을 목록화하는 것부터도 꺼림칙했을 뿐더러 사람 이름 옆에 돈의 액수를 기록하는 것 자체가 비인간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엑셀의 효용성에 일찍이 매료되어 있던 난 결국 친구의 조언대로 엑셀을 이용해 명단을 정리했고 그 편리함에 결혼 이후 축의금 역시 그 파일을 통해 정리했다.

그런데 그곳 비고란에 축의금 액수를 입력하자 그것은 내게 또 다른 의미의 자료가 되어버렸다. 축의금으로 3만 원을 낸 사람들과 10만원을 낸 사람들이 구분되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축의금 액수로 규정지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해서 떠오르는 섭섭한 친구와 의외로 고마운 친구. 물론 그것이 엑셀 탓은 아니지만 분명 그 파일은 나의 불분명한 기억력을 다시금 되새기고 있었다.

이번 달에도 있을 5번의 결혼식. 나는 아마도 또 엑셀 파일을 열어 그들이 내게 얼마나 축의금을 냈는지 보고 나의 축의금 액수를 결정할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비인간적인 일이지만 그렇다고 요즘 같은 시대에 나만 순수를 간직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가장 좋은 방법은 어차피 축의금이라는 것이 품앗이 개념인 바, 서로 안 주고 안 받으며 진심으로 결혼을 축하해 주는 것일 텐데 과연 그런 날이 올 수 있을까? "혼자 꾸는 꿈은 단지 꿈일 뿐이지만, 모두가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라는 말을 되새겨본다.

어쨌든 "이것 참 씁쓸하구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축의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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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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