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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일폭포 가는 길로 들어서다

 

지리산의 아름다운 경치로 10개를 손꼽는다. 그중 6경이 불일폭포다. 지리산 능선만 타고 다니다보니 아직 불일폭포를 보지 못했다. 불일폭포를 찾아나선다. 쌍계사에서 불일폭포 가는 길이 있다. 안내판에는 불일폭포 2.3㎞라고 써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 올 만한 거리다.

 

산길로 들어선다. 자역석 돌로 만든 계단이 오랜 세월 발길에 닳아서 반질거린다. 산길은 양 옆으로 키만큼이나 흙이 파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다녔으리라. 나도 오늘 이길을 간다. 나로 인해 길 옆 흙벽은 조금 더 깊어지겠지.

 

나무 기러기가 앉은 곳에 지은 절집

 

조금 오르지 않아 국사암 갈림길을 만난다. 숲으로 난 평평한 길은 모퉁이에 돌무지 탑을 세우고서 어서 오라고 손짓하고 있다. 200m 정도. 안 가볼 수 없다. 오솔길을 걸어 들어가니 소나무가 햇살을 가리며 쭉쭉 뻗어 있다.

 

 

암자가 나올 때가 됐는데 하며 걸어가다 보니 커다란 나무 뒤로 지붕이 보인다. 암자로 들어가는 돌계단 위에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수문장처럼 떡 버티고 섰다. 수령이 1200년 묵었다는데, 네 개의 가지가 서로 경쟁하듯 하늘로 자랐다. 반쯤 열린 문으로 들어선다. 문을 다 열어 놓지 않은 것은 조심스럽게 들어오라는 걸까?

 

국사암(國師庵)은 840년(문성왕 2) 진감국사(眞鑑國師) 혜소(慧昭, 774~850년) 스님이 옥천사 터에 쌍계사를 지을 때 함께 지었다고 한다.

 

전설에는, 혜소 스님이 절터를 알아보기 위해 나무로 만든 기러기 세 마리를 날려 보냈다. 한 마리는 지금의 화개면 운수리 목압사(木鴨寺) 터에 앉고, 다른 한 마리는 국사암터에, 또 다른 한 마리는 현재의 쌍계사 터에 앉았다고 한다.

 

 

혜소 스님은 나무 기러기가 앉은 곳에 절을 짓거나 중창했는데, 국사를 지낸 혜소 스님이 머물렀다 하여 국사암이라 불렀다는 말이 전한다. 사찰 문 앞을 지키는 느티나무는 혜소 스님이 짚고 다니던 지팡이에서 싹이 나 자랐다고 한다. 가지가 사방 네 갈래로 뻗은 거목은 사천왕수(四天王樹)라고 불린다.

 

절집 부엌에 모셔진 조왕신

 

작은 문을 들어서니 암자 모습이 낯익은 풍경이다. 마당에 단풍나무 한그루. 절집은 'ㄷ' 형태로 만들었다. 작은 암자에 여러 가지 전각을 한 건물에 배치하기 위한 건축형태다. 가운데 대웅전을 비롯해 양편으로 날개처럼 칠성전, 명부전 등을 배치하였다. 아주 효율적인 암자다.

 

 

건물을 돌아드니 옆면에 부엌이 있고, 부엌 선반에 액자가 놓여 있다. 부엌에서 일하는 보살님께 물어보니 부엌신이라고 한다. 조왕신이다. 조왕신은 부엌을 지키는 신으로 불을 관장하는 화신(火神)이다. 예로부터 불씨를 신성하게 여겨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려고 각별히 치성을 드렸으며, 부뚜막 벽에 대(臺)를 만들어 그 위에 물을 담은 그릇-조왕보시기를 두어 조왕신을 모시는 풍습이 있다. 절집이지만 부엌에서는 조왕신이 더 친근한가 보다.

 

부엌 맞은편으로 큰 문이 있다. 대문을 나서니 건너편으로 아름다운 화장실이 있다. 홍교를 건너야 갈 수 있는 화장실. 근데 밤에는 무서워서 화장실 못 가겠다. 스님들은 무서울 게 없나 보다.

 

환학대 지나고 불일평전에서 물 한 모금 나시고

 

쌍계사 들렀다 쉽게 갔다 올 걸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산길은 길다. 정비는 잘 되어 편하게 올라간다. 키 큰 나무들의 웅장함을 보면서 역시 지리산이라는 기분을 느낀다.

 

산길 중에 바위가 하나 있다. 신라시대 고운 최치원 선생이 지리산에 은거하면서 학을 불러 타고 다녔다는 환학대(喚鶴臺)다. 쌍계사와 불일폭포 중간이다. 잠시 쉬어간다. 다시 길을 걸어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 장군이 말을 타고 지리산을 오를 때 생긴 말발굽 자국이 있다는 마족대(馬足臺)를 지난다. 웬 명나라 장수 이여송?

 

 

그렇게 산길을 쉬엄쉬엄 가다보니 길옆으로 장승이 서 있다. 장승 부부 사이에 애가 둘이나 있다. 예전에 이곳이 야영장이 있었다는 불일평전이다. 터가 넓다. 불일폭포휴게소라는 문패를 단 곳에는 초가집으로 된 봉명산방(鳳鳴山房)이 자리 잡았다. 많은 사람들이 쉬느라 북적거린다. 커다란 나무아래에서는 산장지기와 스님이 가을 햇살을 받으며 바둑에 열중이다. 작은 돌들을 쌓아올린 소망탑이 있고 아래로 약수가 흐른다. 물맛이 시원하다.

 

웅장한 불일폭포를 만나다

 

산길은 삼신봉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더니 깊은 협곡 허리를 타고 지나간다. 다리와 난간에 의지해서 산길을 간다. 단풍이 군데군데 아름답게 들었다. 가파른 오르막 끝에 불일암(佛日庵)이 있고 아래로 내려가면 불일폭포다.

 

 

폭포소리가 청량하게 귓속을 맴돌아 나간다. 가파르게 아래로 내려서니 웅장한 불일폭포 바위벽과 만난다. 높이가 60m나 된다. 고개를 들어야 보일 정도로 높다. 깊은 골짜기 높은 곳에서 직벽으로 떨어지는 폭포는 한여름 힘찬 물줄기만 못하지만 웅장함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안내판에는 불일폭포 유래에 대해 설명해 놓았다. 고려 희종 때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智訥, 1158~1210년)이 폭포 근처에서 수도하다 입적(入寂)하셨는데, 희종은 시호를 불일보조(佛日普照)라 내렸다. 그 시호를 따서 불일폭포라 하였으며, 지눌이 수도하던 암자를 불일암(佛日庵)이라 불렀다고 한다.

 

 

돌아나가기 아쉬운 발걸음을 다시 돌린다. 불일암에 들렀다. 경치가 좋다. 경치를 가리지 않으려고 얕은 담장을 쌓고, 쉬었다 갈 수 있는 평상을 놓았다. 지나가는 길손에게도 배려를 해주는 절집의 여유가 부럽다.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먼 산에는 연한 안개가 가을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다.

덧붙이는 글 | 10월 25일 풍경입니다.


태그:#불일폭포, #국사암, #불일암, #쌍계사, #봉명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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