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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국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언론관련법' 국회 표결의 정당성을 가리는 권한쟁의심판 청구 사건에 대한 선고를 하기 위해 대심판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강국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언론관련법' 국회 표결의 정당성을 가리는 권한쟁의심판 청구 사건에 대한 선고를 하기 위해 대심판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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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물 타기를 하려고 했다면 속된 말로 이렇게 지저분한 결정을 했겠나. 헌재가 권한침해는 확인해놓고 무효확인 청구는 기각했으니 결과적으로 양쪽에게 어중간한 판결을 내린 게 아니냐는 것은 정치적으로 편향된 사람들이나 하는 얘기다. 만일 헌재가 정치적으로 판결할 요량이었다면 아예 문턱에서 차버렸을 것이고, 재판관들이 방송사 테이프까지 증거조사한 마당에 정치적 판결 비판은 어렵지 않나 싶다."

헌법재판소의 한 관계자의 말이다. 헌법재판소(소장 이강국)가 29일 열린 언론법 권한쟁의 청구사건에서 민주당 의원들의 심의표결권을 침해한 것은 맞지만 이 법의 무효확인은 기각한 '애매한 결정'에 대해 기자들의 질문이 쇄도하자 그는 일단 '정치적 판결'이 아니라고 일축했다. 정치와는 일단 선은 긋겠다는 태도다.

그는 정치적 판결이었다면 일체의 검토 없이 무조건 '각하'했지, 헌법재판관들이 이렇게 복잡하고 장황하게 자기 의견을 피력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다. 그는 헌법재판관들이 이번 결정에 앞서 3개월간 머리를 쥐어짜며 법리적 검토를 꼼꼼히 하면서 결정문을 써내려갔다고 전했다.

그러나 시민들은 "헌법재판소가 언론법 통과 과정의 위법성을 모조리 인정해놓고 통과된 신문법과 방송법, IPTV법과 금융지주회사법에 대해서는 기각 결정을 한 까닭이 궁금하다"며 "결국 헌법재판소는 아무 것도 결정한 것이 없는 게 아니냐"고 볼멘소리를 터뜨리기도 했다.

헌법재판소가 권력의 눈치를 보느라 형식적으로는 민주당에 손들어 주고, 내용상으로는 한나라당 편에 선 게 아니냐는 것이다. 형식적 절차는 잘못됐다고 밝혀 민주당을 위로(?)하고, 11월 1일부터 개정 방송법이 시행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도록 조치해 정부와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손해볼 게 하나도 없는 결정이기 때문이다.

재판관들 머리 쥐어짜며 3개월간 꼼꼼히 법리 검토한 104쪽짜리 결정문

'언론관련법' 강행처리는 일사부재의 원칙 위반과 대리투표로 야당 의원들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헌법재판소는 결정했다. 그러나 헌재는 강행처리된 신문법과 방송법 등의 효력을 무효화해 달라는 야당 의원들의 청구는 기각했다. 
맨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헌법재판관 목영준, 민형기, 김희옥, 조대현, 송두환, 이동흡, 김종대, 이공현, 이강국(소장).
 '언론관련법' 강행처리는 일사부재의 원칙 위반과 대리투표로 야당 의원들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헌법재판소는 결정했다. 그러나 헌재는 강행처리된 신문법과 방송법 등의 효력을 무효화해 달라는 야당 의원들의 청구는 기각했다. 맨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헌법재판관 목영준, 민형기, 김희옥, 조대현, 송두환, 이동흡, 김종대, 이공현, 이강국(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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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1 - 신문법 제안취지 설명절차 위법성] 실제 헌법재판관 9명은 이번 재판에서 유례없이 개별적으로 복잡한 자기 의견을 피력했다. 9명의 헌법재판관들이 이날 밝힌 결정문은 모두 A4용지 104쪽을 모두 꽉 채울 정도로 길고 복잡했다. 그 세부적인 입장차는 다음과 같이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신문법의 경우, '제안취지 설명 절차'의 위법성 여부를 판단하는 점에서 ▲이강국, 이공현, 조대현 등 3인의 재판관은 "제안취지 설명 방식에는 제한이 없으므로 컴퓨터 단말기에 의한 설명 등으로 대체할 수 있다"며 "국회의원들이 실제로 표결할 당시 의원석 컴퓨터 단말기를 통해 수정안의 취지와 내용을 알 수 있었다"고 적법 판결했다.

또 ▲민형기, 이동흡, 목영준 등 3인의 재판관도 "표결선포 당시 수정안이 회의진행 시스템에 입력되지 않은 절차적 흠결이 있으나 표결이 실제 개시되기 전에 회의진행시스템에 입력된 이상, 당시 극도로 소란했던 회의장 상황에 비춰 피청구인의 자율적 의사진행 권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김희옥, 김종대, 송두환 등 3인의 재판관은 "제한취지 설명을 의원석의 컴퓨터 단말기에 의한 설명으로 대체 가능하나, 표결선포 뒤 질의토론이 금지돼 있는 시점에, 표결이 실제로 개시되기 30여초 전에 수정안이 회의진행시스템에 입력돼 제안취지 설명이 적법하게 대체됐다고 볼 수 없다"며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결과적으로 신문법의 제안취지 설명절차의 위법성에 대해서 헌법재판소는 6 : 3으로 적법하다 판결했다.

신문법 질의토론절차 위법여부 '6 : 3'

[쟁점 2 - 신문법 질의토론 절차의 위법성] 이와 관련해서 ▲이강국, 조대현, 김희옥, 송두환 재판관은 "심의절차는 표결절차와 마찬가지로 국회의 의사결정절차에서 생략할 수 있는 핵심절차"라며 "국회입법절차의 본질적인 부분이다", ▲김종대, 이동흡 재판관은 "위원회의 심사를 거치지 않은 안건에 대해 질의토론 신청 유무에 관한 확인이나 언급 없이 질의토론을 실시하지 않겠다고 발언한 후 곧바로 표결처리에 나간 것은 국회의장의 자율적 의사진행권한의 한계를 일탈한 것"이라며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이공현, 민형기, 목영준 재판관은 "질의토론절차 운영상 신청이 없는 경우 생략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며 "피청구인은 당시 회의장의 무질서 등 의사진행이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청구인들의 의사진행 저지행위에 비춰 질의나 토론의사가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그 신청유무를 확인하지 않은 채 이를 생략한 바 명백히 잘못됐다고 볼 수 없다"고 적법 판결했다.

신문법의 질의토론절차의 위법성 또한 6 : 3의 의견으로 신청인인 민주당의 청구취지를 인용했다.

[쟁점 3 - 신문법 표결과정의 적법성] 신문법 표결과정에서 무권투표가 있었냐 하는 점에 대해서는 5(위법) : 4(적법)로 의견이 갈렸다. 위법하다는 의견을 밝힌 이강국, 이공현, 조대현, 김희옥, 송두환 재판관은 "표결과정에서 표결의 자유와 공정이 현저히 저해됐다"며 "표결결과의 정당성에 영향을 미쳤을 개연성이 있고 따라서 헌법 제49조 및 국회법 제109조의 다수결 원칙에 반한다"고 밝혔다.

적법하다는 의견을 피력한 민형기, 이동흡, 목영준, 김종대 재판관은 "표결과정에서 비전형적인 투표행위 등이 있었더라도 실제 표결결과에 영향을 미쳐 청구인들의 투표가치를 훼손했다는 것을 인정할만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신문법 무효확인 여부는 ▲민형기, 목영준 재판관은 "청구인들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을 침해한 것이 아니므로 그 권한을 침해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무효확인 청구는 이유 없다"고, ▲이강국, 이공현 재판관은 "기능적 권력분립과 국회 자율권 존중 의미에서 원칙적으로 심의표결권 침해만 확인하고 위헌.위법 상태에의 시정은 피청구인에게 맡겨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김종대 재판관은 "국회의 법률제정과정에서 비롯된 국회의원과 국회의장간 권한쟁의 심판에서는 피청구인이 청구인의 심의표결권을 침해했다는 확인에 그치고 사후 조치는 국회 자율적 의사결정에 의해 해결할 영역에 속한다"고, ▲이동흡 재판관은 "질의토론 절차의 적정성에 관한 경미한 하자를 인정할 수 있을 뿐 입법절차에 관한 헌법규정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 아니므로 무효로 할 수 없다"며 기각 결정했다.

▲조대현, 송두환 재판관은 "질의토론 절차가 생략됨으로써 국회 의결을 국민 의사로 간주하는 대의 효과를 부여하기 위한 실질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김희옥 재판관은 "표결절차의 공정성 상실도 중첩적으로 결합돼 중대한 무효사유를 구성한다"고 무효 결정을 내렸다.

방송법, 일사부재의 원칙 위배했다

[쟁점 4 - 방송법 제안취지 설명-토론절차 위법성] 방송법의 경우에는 제안취지 설명 절차의 위법 여부에 대해 재판관 9인 모두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표결선포 되기 3분 전에 방송법 수정안이 회의진행 시스템에 입력돼 청구인들의 표결할 당시 수정안의 취지와 내용을 알 수 있었다는 것이 판결의 이유다.

방송법 질의토론 절차의 위법 여부는 ▲이강국, 이공현, 김희옥, 민형기, 목영준 등 5인의 재판관이 "표결 선포 전에 질의나 토론을 신청할 기회가 충분히 있었다"며 "장내가 소란한 상황에서 피청구인이 표결에 앞서 질의토론의 신청유무를 적극적으로 확인하는 발언을 하지 않았더라도 국회법 제93조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며 적법 판결했다.

▲조대현, 송두환, 김종대, 이동흡 등 4명의 재판관은 "회의 개시때부터 방송법안 표결선포 때까지 질의토론이 사실상 불가능했던 점 등을 고려하면 청구인들에게 질의토론 기회는 실질적으로 부여되지 않았다"며 "위원회의 심사를 거치지 아니한 안건에 대해 질의토론 신청 유무에 관한 확인이나 언급 없이 질의토론을 하지 않겠다고 발언한 뒤 표결처리로 나간 것은 국회의장의 자율적 의사진행 권한의 한계를 일탈했다"고 위법 판결했다.

[쟁점 5 - 일사부재의 원칙 위배 여부 등 ] 방송법 통과의 최대 쟁점이었던 일사부재의 원칙 위배와 관련해서는 ▲조대현, 김종대, 민형기, 목영준, 송두환 등 5인의 재판관이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이들은 "피청구인이 방송법안의 확정된 부결의사를 무시하고 재표결을 실시해 그 표결결과에 따라 방송법안의 가결을 선포한 것은 일사부재의 원칙에 위배돼 청구인들의 표결권을 침해했다"고 밝혔다.

▲이강국, 이공현, 김희옥, 이동흡 등 4인의 재판관은 일사부재의 원칙을 위반하지 않았다며 적법하다는 판결을 했다. 이들은 "재적의원 과반수에 이르지 못한 소수의 국회의원들만 참석한 상태에서 표결이 가능하고 부결이 된다는 해석은 대의제 민주주의 원리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피청구인이 방송법안에 대한 재표결을 실시해 그 결과에 따라 가결을 선포한 것은 일사부재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피력했다.

방송법 무효확인 여부에 대해서는 ▲이강국, 이공현, 김희옥 등 3인의 재판관은 "청구인들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을 침해한 것이 아니므로 그 권한 침해를 전제로 하는 무효확인 청구는 이유 없다", ▲민형기, 이동흡, 목영준 등 3인의 재판관은 "국회법 제92조의 일사부재의 원칙 위반, 국회법 제93조 법률안 심의절차를 반한 점은 인정하나, 입법절차에 관한 헌법규정을 위반했다는 등 취소 또는 무효로 할 정도의 하자에 해당하지 않는다", ▲김종대 재판관은 "국회의 법률제정 과정에서 비롯된 국회의원과 국회의장 간 권한쟁의 심판에서는 피청구인이 청구인들의 심의표결권을 침해했다는 확인에 그쳐야 한다"며 기각 결정을 내렸다. 

▲조대현, 송두환 재판관은 "방송법안의 경우 질의토론 절차가 생략된 하자가 이미 중대한 경우이기 때문에 국회법 제92조(일사부재의)를 위반한 점도 부가적 사유로 삼아 무효를 선언해야 한다"며 무효 결정을 내렸다.

결과적으로 헌법재판관들은 7(기각) : 2(무효)의 의견으로 통과된 신문법과 방송법 등에 대해서 유무효 판결을 하는 것에 대해 기각결정을 했다. 판단하지 않겠다는 뜻인 셈이다.

IPTV법과 금융지주회사법에 대해서는 권한침해는 5 : 4의 의견으로 기각결정, 무효확인에 대해서는 9인 전원 기각 결정을 내렸다.

국회 변칙적 표결절차 되풀이 말라... 반복금지와 결정준수 의무 강조

이처럼 장황하고 복잡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해 여러 구구한 해석들이 줄을 잇고 있다. 우선 헌법재판소는 정치적 판결이었다는 점에 대해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한 관계자는 이번 판결의 의미에 대해 "국회가 다시는 변칙적인 표결절차를 되풀이하지 말라는 점을 선언한 것"이라며 "무효에 대해 기각한 것은 헌법을 위반할 정도의 명백한 하자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 결정의 효력은 ▲첫째, 국회가 반복해서 이 같은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반복금지 의무가 있으며, ▲둘째, 헌재의 결정을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는 결정준수의 의무가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저촉되거나 기초되는 사실에 반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결정에서 헌법재판소가 권한침해는 다 인정해놓고, 법의 효력여부에 대해서는 기각한 것은 사실상 광범위한 정치형성 영역으로 판단을 넘긴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헌법재판소의 한 관계자는 "국회 자율권이 필요한 영역까지 헌법재판소가 사법적 잣대를 들이대 무효확인을 선고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헌법재판소가 미디어법 통과과정의 적절성에서 권한침해를 했다고 확인했다면 그 다음은 국회의장이 헌재 결정 취지에 따라 여러 정치의견을 형성하라는 여지가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여야는 헌법재판소가 지적한 문제들에 대해 타협해 다시 발의하는 등 정치적 노력을 하라는 뜻이라는 게다. 실제 헌법재판관별로 온도차는 있지만 피청구인측에 정치적 책임을 물었다는 것은 당연한 해석으로 볼 수 있다는 뜻도 된다고 덧붙였다.

만일 이 같은 일이 국회에서 되풀이 된다면 헌법재판소는 향후 헌법소원에서 준엄히 꾸짖게 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박재승 변호인 "헌법재판관들은 스스로의 직무를 방기했다"

그러나 민주당측 변호인 등은 "헌법재판소가 또 다시 궤변으로 민주주의를 뒤엎었다"며 "사상 유례없는 판결로 기록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사실상 헌법재판소는 아무런 결정도 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권한을 침해했으면 그 법의 효력도 당연히 무효화 하는 것이 옳지, 권한은 침해했다고 인정하면서도 그 법의 효력은 인정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납득하기 어려운 궤변이라는 비판인 것이다.

박재승 민주당측 변호인은 이날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헌법재판관들은 스스로 자기들이 할 일이 뭔지 모르고 직무를 방기했다"며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어 박 변호사는 "국회법과 헌법을 위반했는데 왜 무효결정을 못 내리느냐"며 "결국 이 법의 시정은 국회에서 하라는 것인데 세상에 이런 판결이 어딨냐"고 통탄했다. 박 변호사는 사실상 헌법재판관들은 이번 재판을 거부한 것과 같다며 극도의 화를 참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태그:#언론법 권한쟁의, #헌법재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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