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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왕리해변에서 언덕을 넘으면  나오는 왕산해변은 훨씬더 한적하고 모래사장도 넓다. 해변 한쪽에왕산포구가 있다.
▲ 용유도 왕산해변의 포구 을왕리해변에서 언덕을 넘으면 나오는 왕산해변은 훨씬더 한적하고 모래사장도 넓다. 해변 한쪽에왕산포구가 있다.
ⓒ 김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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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한없이 넓고 너그러운 모습으로 언제나 그렇게 그 자리에 있다. 그래서 바다는 엄마 품 같기도 하고 고향 같기도 하다. 해변에서 잠시라도 멈춰서면 잔잔히 밀려오는 파도소리와 갈매기들의 합창 소리가 엄마의 자장가처럼 정겹다.

햇볕 가득한 모래사장에 앉으면 고향집 아랫목처럼 포근함을 느낀다. 그래서 마음 한곳이 허전하고 세상의 시름에 지쳐 위로받고 싶을 때면 우리는 잔잔한 위안이 되어주는 바다를 찾는가 보다.

내게 주어진 일상을 과감하게 거부할 수 없어 먼 바다를 용기내지 못하고 가까운 용유도 왕산해변을 찾았다. 파도는 엄마의 토닥임처럼 잔잔했고 햇살은 따스했다. 한적한 해변은 걷기 좋았다. 그러다가 생생한 바다의 삶이 모인 포구에 발이 닿았다. 관광지로만 알고 있는 왕산해변 한 귀퉁이에서 바다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의 정직한 삶을 만날 수 있었다.

포구는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다

시원한 바다바람을 가르며 돌아오는 배보다 먼저 비릿한 뱃사람들의 삶의 냄새가 포구에 먼저 닻을 내렸다.
▲ 귀선 시원한 바다바람을 가르며 돌아오는 배보다 먼저 비릿한 뱃사람들의 삶의 냄새가 포구에 먼저 닻을 내렸다.
ⓒ 김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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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는 활기가 넘친다. 바다사람들의 이야기로, 펄떡거리는 생선으로, 팔고 사는 싱싱한 흥정소리로, 적어도 '체험 삶의 현장'이나 '6시 내고향' 속에 비쳐지는 포구는 바다의 정취를 아름답게만 그려 주었다. 그러나 포구는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다. 그것은 아마도 포구에서 맡을 수 있는 퀘퀘한 비린내나 바다사람들의 고된 삶이 TV를 통해서는 편집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도심에서 한 시간 남짓 가까운 거리에 포근한 바다가 있다. 을왕리해변, 왕산해변은 여름 한철 다녀가는 여행객에게는 해수욕장으로만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곳 한 귀퉁이에는 바다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이 있고 바다일을 마치고 배들이 조용히 잠을 청하는 포구가 있다. 왕산포구, 선녀바위 포구에는 아직도 뱃사람들의 삶이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듯 반복되고 있다.

왕산해변가에 줄지어 서 있는 횟집을 지나면 오른쪽 끝으로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포구를 만날 수 있다. 그 주변에는 통발과 각종 어구들이 즐비하고 비릿한 갯내음이 먼저 달려와 인사한다. 디젤기관들이 내뿜는 연기에 길들여져 있는 도시인의 폐부에는 그 비릿함마저도 신선하기만 하다.

닻이 내리면 포구에는 생동감이 넘친다

올해는 꽃게가 풍어라 값이 많이 떨어졌다. 잡은 게를 그물에서 분리해 어창에 넣어야 활꽃게로 값을 더 받는데 워낙 많이 잡히다보니 그물에 꽃게들이 엉켜있다. 이런 뱃일은 마을 사람모두가 나와 품앗이를 한다.
▲ 바다에 품앗이 올해는 꽃게가 풍어라 값이 많이 떨어졌다. 잡은 게를 그물에서 분리해 어창에 넣어야 활꽃게로 값을 더 받는데 워낙 많이 잡히다보니 그물에 꽃게들이 엉켜있다. 이런 뱃일은 마을 사람모두가 나와 품앗이를 한다.
ⓒ 김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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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젓했던 해변의 낭만도 잠시, 바다 멀리서부터 관광버스 디스코 메들리 가락이 파도와 함께 선착장에 먼저 도착한다. 새벽녘부터 쉴 틈 없었던 바다와의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돌아오는 뱃사람들은 하루의 고단함을 흥겨운 장단으로 풀고 만선의 기쁨을 가락에 실어 뭍사람에게 먼저 보냈다.

'왕산털보'를 모르면 간첩이라고 너스레를 떠는 털보선장의 배도 포구에 들어왔다. 어선들이 들어와 닻을 내리면 작은 포구는 바다의 생동감이 넘친다.

싱싱한 해산물을 바로 구입하려는 사람들과 뱃사람들의 살아 있는 모습을 구경하려는 도회지 사람들로 부산하다. 왕산포구의 가을은 꽃게가 제철. 배 안에서는 동네사람들 여럿이 나와 그물에 촘촘히 걸린 꽃게들을 떼어 내느라 손이 바쁘다. 보통 꽃게를 잡자마자 그물에서 떼내어 어창에 넣어야 활꽃게로 값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데, 워낙 많이 잡히다보니 일일이 손질하지 못하고 그물째로 켜켜이 쌓아놓은 것이다. 그래도 어창에는 활꽃게가 가득 차 있다. 넓은 바다가 그리워 발을 동동 구르는 꽃게에게서도 생명력이 느껴지고, 동네사람들이 한데 모여 뱃일을 함께 하는 분주한 손길에도 활력이 넘친다.

배 이름에 담긴 꿈과 로맨스

포구 구경나온 사람들에게 꽃게 몇마리 삶아서 대접하는 넉넉한 인심이 살아있다.
▲ 정겨운 포구사람들 포구 구경나온 사람들에게 꽃게 몇마리 삶아서 대접하는 넉넉한 인심이 살아있다.
ⓒ 김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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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에서 재미있는 일은 배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읽어 보는 것이다. '선미', '황금', '장원', '영광', '한빛', '금성'... 단순한 것 같지만 배들의 이름에는 선주들의 꿈과 로맨스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직까지 주인에게 한없이 충성하는 배들. 물이 빠지면 조용히 갯바닥에 몸을 뉘이고 휴식을 할 것이다.

바닷가 주변이라면 곳곳에 녹을 가득 품고 모래사장에 누워 있는 배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저 배도 한때는 바다를 누비며 어창 가득 고기를 싣고 의기양양했을 것이고, 뱃사람들의 노랫소리로 갑판은 떠들썩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제대로 설 수 없어 갯벌바닥에 누워 긴 잠을 자고 있다. 노을이 질수록 길어지는 저 배들의 그림자가 왠지 쓸쓸해 보인다.

포구에 펼쳐진 삶의 파노라마

왕산포구 배들이 잡아온 꽃게는 현장에서 직거래 되거나, 활어차에 위탁해 연안부두 공판장으로 넘겨진다.
▲ 싱싱한 직거래 왕산포구 배들이 잡아온 꽃게는 현장에서 직거래 되거나, 활어차에 위탁해 연안부두 공판장으로 넘겨진다.
ⓒ 김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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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에는 바다의 깊이와 넓이만큼 헤아릴 수 없는 삶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선미호는 물때를 맞추느라 밤 12시에 바다로 나갔다. 좁은 배 안에서 쪽잠을 자다가 새벽부터 고된 그물 일로 하루를 보내고, 꼬박 스무 시간을 보내고서야 포구로 돌아왔다.

이 선장은 이곳 왕산에서 나고 왕산에서 자랐단다. 바다는 그에게 가정을 이루게 해 주었고, 두 딸을 남부럽지 않게 교육시켜 주었다. 바다에 주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서 부지런을 떨면 조금 더 거둔다는 것. 노력을 하면 반드시 그만큼 대가를 주는 바다의 정직이 몸에 배어 있다. 그러면서도 함께 뱃일을 하는 아내에게 한없이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인다.

"좋은 사람 만났으면 이런 고생 안하고 잘 살았을 텐데. 그게 많이 미안하네요. 매일 힘든 바다일하고 집에 가면 또 집안일 다 하고... 평생을 고생시켰네요."

뱃일하는 포구 아낙들의 삶이 다 그런 모양이다. 왕산포구에 들어오는 배들은 대부분 부부가 함께 뱃일을 마치고 들어왔다. 어쩌면 바다에는 이런 어머니들의 땀과 눈물이 섞여 있기에 더 애틋하면서 포근한지도 모르겠다.

왕산 뱃사람의 소망

지금은 하나의 섬이지만 영종·용유도와 장봉도 사이는 서해안에서도 알아주는 황금어장이었다고 한다. 바로 영종도와 용유도 사이 지금의 인천공항자리는 수심이 낮고 모래와 뻘이 잘 섞인 곳으로 물 흐름도 잔잔해서 물고기들의 산란장이었다는 것이다.

"배 타고 10~20분만 나가면 물고기가 지천이었지요. 공항 들어서기 전에는..."

박창렬 선장이 먼 바다를 바라보며 옛 생각에 젖어 있다. 30여 종에 달하던 어종도 지금은 10여종으로 줄어들었고 고기를 잡으려면 3~4시간은 나가야 한단다.

봄, 가을에는 꽃게 조업이 많고, 날씨가 쌀쌀해지면 쭈꾸미, 소라를 담아 온다. 봄이면 간재미가 많이 올라오고 여름이면 우럭, 광어, 농어를 잡아 왕산해변에 횟집으로 공급해준다.

"갈수록 힘들어져요. 왔다갔다 예닐곱 시간은 잡아야 하고 바닷일 하고 들어오려면 하루도 짧아요. 요새는 지방에서 올라오는 고깃배들도 많아서 바다 경쟁도 심해지고..."
"변변한 선착장 하나 좀 해줬으면 좋겠소. 옆에 섬은 몇 척 없어도 번듯하게 선착장 만들어줘서 언제든지 출항할 수 있는데, 여기는 배가 30척이 가까운데도 물 빠지면 배가 바다로 나갈 수 없어요."

털보선장이 하소연을 한다.

왕산 뱃사람들은 물때에 관계 없이 언제든 배를 댈 수 있는 선착장 마련이 그들이 가진 소박한 소망이다. 근동에서는 가장 많은 배들이 접안하는 포구임에도 불구하고 관광지 개발을 위해 뱃사람들의 삶의 터전에 대한 배려는 아직 없다. 썰물때도 배를 댈 수 있는 선착장만 갖춰진다면 싱싱한 활어를 사고 팔 수 있는 어판장도 설 수 있단다. 펄떡이는 활어들과 파는 사람 사는 사람의 정겨운 흥정소리를 이곳 왕산포구에서 들을 수 있을까?

왕산해변의 노을은 용유팔경의 하나로, 고된 일을 마친 뱃사람들에게 자연이 주는 선물처럼 느껴진다.
▲ 포구의 노을 왕산해변의 노을은 용유팔경의 하나로, 고된 일을 마친 뱃사람들에게 자연이 주는 선물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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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때에 맞춰 들어온 배는 해가 저물어 어두워질 때까지도 그물에 걸려 있는 꽃게를 손질하느라 부산했다. 좁은 갑판 위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함께 일을 거든다. 서로 돕는 품앗이는 농사일뿐만 아니라 뱃일에서도 유용한 모양이다. 남이 바쁘면 내가 돕고, 내가 바쁘면 남이 와서 거들어주며 그렇게 뱃사람들은 바다를 터전 삼아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뉘엿뉘엿 어느새 바다 저 멀리로 해가 저물어 간다. 그리고 해는 금세 하늘에 걸린 구름에다 예쁜 물감을 칠하고는 바다 너머로 숨어버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신공항하이웨이(주)에서 발행하는 하이블레스에도 게재된 글입니다.



태그:#바다여행, #포구여행, #인천공항, #용유도, #영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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