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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일을 정신없이 살다가 주말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가는 곳이 있다. 모처럼의 여유로운 시간에 유혹하는 곳이 한두 군데일까마는 그래도 제일 먼저 손짓하는 곳은 무등산이다. 무등산 올라가는 등산로는 참으로 여러 갈래다. 무등산처럼 다양하고 그러면서도 등산로마다 각각의 특색과 운치가 있는 산도 드물다고 한다. 그래서 버스 정류장에 내리면 그 많은 사람들의 물결이 동시에 움직이는데도 한참 가다 보면 어디로들 갔는지 사람들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각자 좋아하는 코스로 이미 떠나고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무등산은 그 등산로가 다양하기 그지없는 매력 있는 산이다.

내가 자주 가는 코스는 주차장 길을 관통하여 가는 새인봉 길이다. 아주 오래 전에 그곳으로 향할 때는 참으로 힘들었었다. 언젠가는 그 난코스를 가다가 굴러 넘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가파른 곳에는 철제 계단과 밧줄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어 전혀 무리가 없다.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광주시내가 가장 잘 바라다 보이는 지점이 나온다. 안개가 낀 날이면 마치 바다를 내려다보는 듯하다.

전망이 한눈에 멋지게 들어오는 그곳에서 바라보는 시가지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 새인봉에선 그 어디서나 땀을 식히기 위해 잠시 멈춰서 돌아서기만 하면 광주시내 전경이며 산세가 한눈에 들어온다. 무등산의 그 어느 곳인들 아름답지 않으리오마는 새인봉은 유난히도 곳곳에서 아름다운 전경을 보여주고 있다. 새인봉의 매력은 아마도 이처럼 어디서든 시가지와 아름다운 산세를 관망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거기다 한나절이면 족히 다녀올 수 있어 시간이나 체력에도 전혀 무리가 따르지 않는 코스다.

나의 산행 도반이 가장 좋아하는 곳은 중간 지점에 들어서면 나타나는 바위절경이다. 그는 그곳에만 이르면 새처럼 날고 싶다면서 양 날개를 펼치곤 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습성들이 자리하고 있다. 살아가면서 묶인 곳이 너무 많아서일까? 어느 심리학자가 만일 동물로 변할 수 있다면 무엇이 되고 싶은가 라는 질문을 던지자 새가 되고 싶다는 수치가 제일 높게 나왔다고 한다. 인간을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나에게도 묻기에 나 역시 새가 되고 싶다고 했다. 중학교에서 영어시간에 가정법을 배울 때 내가 자주 썼던 예문은 If I were a bird, I would fly to you였다. 그것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입안에서 맴돈다. 나도 그곳을 지날 때면 한 마리 새처럼 한없이 날고 싶어지곤 한다.

또 가다보면 유난히 시선을 잡아끄는 곳이 있다. 그곳은 바위로만 이루어진 곳이다. 그저 바라만 보고 지나가야 할만큼 위험스런 곳이기도 하다. 인적이 없는 곳이라서 그런지 입구에는 바위에 붙어있는 이끼의 꽃들이 함초롬히 피어있다. 무등산을 오랜 세월 다녔지만 바위 옷에 피어난 꽃은 그곳에서밖에 볼 수 없었다.

선운사의 바위에 핀 이끼꽃이 예쁘다고 늘 자랑하는 지인이 있었다. 그는 혼자 보기가 아까워 그때를 놓치면 보기 어려우니 때맞추어 바위꽃을 보러오라고 성화지만 때를 맞추어 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이끼의 꽃은 보기 힘들어서 일부러 날잡아 구경가야 할 정도로 귀하다고 한다. 시선을 주지 않으면 모르고 그냥 지나칠 정도로 아주 작고 앙증스럽다 못해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그런 바위 옷의 꽃무더기가 유일하게 그 한곳에만 오밀조밀하게 피어있다.

이끼 꽃을 뒤로 하며 우리의 보금자리를 찾아가기 위해 그녀와 나는 비좁은 바위틈에 끼어 들어 간다. 마치 우주를 탐험하듯 조심스럽게 그곳에 찾아 들어간다. 웬만큼 날씬하지 않으면 통과하기가 어렵다. 이어지는 길도 없다. 그런 바위틈을 몇 번 힘들게 끼어지나 들어가서 자리를 잡으면 천하가 내것인양 가슴이 탁 트인다. 하늘과 바람이 온통 가슴으로 안겨온다. 어느 새 자연과 나는 하나가 되어버린다. 편안하게 누워서 휴식도 취할 수 있는 그곳에 앉아 곡차라도 한 잔 걸치면 바위꽃보다 더 아름다운 이야기꽃이 찬란하게 피어난다.

평생을 부등켜안고 살아가야 할 문학, 철학, 종교 이야기며, 울고 웃는 세상사 이야기꽃을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피워낸다. 그러다가 문득 높고 넓은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고 싶은 유혹에 고소공포증이 심한 나는 그 아찔함도 누려본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나무의 모습은 말할 수 없이 신비롭다. 옆에서 바라보는 나무와 아래서 쳐다보는 나무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눈앞에는 멀리 그리고 가까이 거리에 따라, 높이에 따라 그 초록의 다양한 빛깔들이 전혀 다른 정감으로 다가와 안긴다.

새인봉은 드높은 하늘과 상쾌한 바람을, 그리고 조금 전에 떠나온 삶의 터전마저 온몸으로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떠나 있으면서도 떠나지 않는, 그래서 우리는 주말이면 새인봉을 즐겨 찾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을 재충전할 수 있는 곳, 돌아와서 더 열심히 살도록 추동하는 곳, 그곳은 새인봉이다. 언제나 새인봉을 다녀오면 살맛이 난다. 내일은 또 황금의 주말이다. 새인봉은 자기 삶의 산실이라고 노래하는 그녀와 함께 또 새인봉을 만나러 가야겠다.


태그:#새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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