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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강연회에서 축사하는 안동향교 류기홍 전교
 학술강연회에서 축사하는 안동향교 류기홍 전교
ⓒ 손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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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케네디가, 스웨덴의 발렌베리가, 시애틀의 게이츠가, 인도의 타고르가, 영국의 러셀가… 이들의 공통점은 세계 최고의 명문가 집안이란 것이다.

명문가의 조건이란 어떤 것일까?

사주명리학자 조용헌은 '명문가란 정의를 위해 마음만 먹지 않고 몸소 행동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것은 명문가로서 감내해야 할 역사적 책무를 지적한 것이고 명문가의 민족문제에 대한 대응은 일반 대중의 그것과는 사뭇 달라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기도 하다.

익히 알려진 대로 안동지역에는 퇴계, 서애, 학봉선생 등 훌륭한 명문가가 이어져 내려오고 있고 이런 연유들로 인해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라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하지만 전주 류씨 정재종가의 3대에 걸친 학문과 사상 그리고 독립운동의 의의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바 없다.

이런 와중에 안동향교(전교 류기홍)가 주최하고 안동청년유도회(회장 임대식)이 주관하는 '정재 종가의 3대 독립운동가 추모 학술강연회'가 2009년 10월 27일 오후 1시30분부터 안동시민회관대강당(안동시청내)에서 열렸다.

안동청년유도회가 안동인들의 고결한 정신을 조명하고 후세에 남기는 작업의 일환으로 매년 개최하고 있으며, 올해로 열여덟 번째를 맞이하는 이 행사에는 각계의 깊은 관심을 반영하듯 김관용 경북도지사와 김휘동 안동시장 등 정관계, 학계, 유림 등 많은 내빈들을 비롯한 600여 명의 참석자들이 강연에 열중하였다.

한국학중앙연구원 권오영 박사
 한국학중앙연구원 권오영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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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행사에는 한국학중앙연구원 권오영 박사와 안동독립운동기념관 관장이자 안동대 교수인 김희곤 교수가 강연자로 나서 정재 종가 3대에 걸친 학문과 사상, 그리고 독립운동사에 관해 열띤 강연을 펼쳤다.

김관용 도지사는 축사에서, "현재는 의식, 즉 정신경쟁력의 시대임"을 강조한 뒤, 생각의 틀을 끌어 올려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하는 일에 안동 유림이 중추적인 역할을 해 줄 것을 당부했다. 또한 경북도에서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종가포럼을 예로 들며, 각 명문종가들이 끼리끼리가 아니라 서로 연합하여 경쟁력 있는 문화로 발전시켜 나가줄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첫 번째 강연자로 나선 권오영 박사는 "동아시아의 유교문명이 급속히 쇠퇴해 가던 문명의 전환기에 영남 이학(理學)의 대가인 류치명, 류지호, 류연박 삼대에게 바라는 영남 유림의 기대와 사회적 도덕적 책무는 아주 컸다"고 전제한 뒤, "그래서 류치명은 유림의 공론을 받아들여 1855년에 장헌세자추숭소를 올렸다가 유배에 처해졌고 류지호는 1895년에 을미의병의 기획과 지도를 맡았다가 옥고를 치렀으며 류연박은 1919년에 유림단독립청원운동에 참여함으로써, 류치명, 류지호, 류연박 3대는 인의예지(仁義禮智)와 경(敬)의 이리학(理學)으로 철저히 무장하여 자신들에게 요구되는 높은 도덕적, 사회적 책무를 솔선하여 실천하였다"고 강조하였다.

안동독립운동기념관장 김희곤 교수
 안동독립운동기념관장 김희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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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강연자로 나선 김희곤 안동대 교수는 "정재 종가 주인공들은 결코 그 길을 외면하거나 비켜가지 않았으며 오히려 나라가 무너지던 과정에서 나라를 지탱하려고 몸부림쳤다"고 설명하고 1895~1896년 의병시에 류지호와 류연박 부자가 안동의진에 나서서 지도자가 되고, 나라가 무너진 뒤 새시대 인물양성을 위한 계몽운동의 일환으로 협동학교를 종가로 옮겨 온 일,학교를 세운 주역들이 독립군 기지를 세우려고 만주로 떠날 때 뒷일을 무실에서 맡기로 약속했던 것 등을 열거하며, "새로운 시대의 인물을 키워내는데 종가의 역할이 결정적이었으며 당시 종가 주인 류연박의 선택이 결정적이었을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또한 "류연박은 파리장서에 참가하여 유림들의 독립선언과 독립청원에 나섰으며 그의 장남 류동시는 임동 챗거리장터 독립선언과 만세운동의 계기를 만든 장본인이고 둘째 류동저는 1920년대 들어 청년운동과 사회운동을 통해 대를 이었다"고 강연했다.

참석자들은 "정재 종가 3대는 이처럼 나라를 잃어가던 상황에서 이를 부여잡고 일으켜 세우려는데 힘을 기우렸으며 이는 역사적 책무를 다하려는 뜻깊은 활동이자 투쟁이었다"고 말하고, 류지호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105년이란 세월이 흘러가고 있어 하루 빨리 한국독립운동사에서 그들이 이룬 공적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길 기대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영남신문에도 송고했습니다.



태그:#독립운동, #정재종가, #안동유도청년회, #웅부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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