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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기억, 책임, 미래 재단'의 마르틴 잘름(54) 이사장은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성찰 없이 미래로 나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했다.
 독일 '기억, 책임, 미래 재단'의 마르틴 잘름(54) 이사장은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성찰 없이 미래로 나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했다.
ⓒ 김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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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과거와 대면하려는 고단한 노력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독일 '기억, 책임, 미래 재단'(아래 EVZ 재단) 마르틴 잘름(Martin Salm·54) 이사장은 26일 오후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독일의 과거사 청산 노력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그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아래 진실화해위)가 '세계 과거사 청산의 흐름과 한국의 과거사정리 후속조치 방안 모색'을 주제로 27일 여는 국제심포지엄에 참석하려고 한국을 방문했다.

지난 2000년에 설립된 EVZ 재단은 '불편한 과거'와 대면하려는 독일 사회의 고단한 노력의 일환이다. 여기서 과거란 '국가사회주의'(Social Nationalism) 즉, 나치시대인 1933~1945년,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피점령국 국민들에게 행해졌던 범죄, 수백만 명의 유대인 학살, 그리고 독일의 부족한 인력을 충원하기 위해 강제 동원된 약 1500만 명의 사람들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약 500만 명의 전쟁포로와 대부분 폴란드, 구소련, 프랑스 등 독일이 점령한 이웃 국가들에서 동원된 약 800만 명의 강제노동자들, 그리고 약 200만 명의 강제수용소 수용자들이 포함된다.

이들 전쟁범죄 피해자들에 대한 개별적 보상을 위해 만들어진 EVZ 재단은 약 50억 유로(약 8조8800억 원)의 기금으로 설립되었는데, 기금의 50%는 독일 내 6500여 개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기부했고, 나머지 절반은 독일 정부가 출연했다. 과거사 청산의 모범국으로 꼽히는 독일이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고 잘름 이사장은 말한다.

"2차 세계대전 직후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이 열렸지만, 당시 독일 사회의 주된 분위기는 개별적인 개인 몇 명에게 전쟁범죄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경향이었다. 하지만 점차적으로 전쟁범죄에서 독일사회 전체가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회적 의식이 공감대를 얻게 되었는데, 그 계기 중의 하나는 전쟁범죄가 일부의 나치 엘리트들에 의해서만 저질러진 것이 아니라 당시 독일 국가 전체가 개입되어 있었다는 증거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였다.

또 하나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 당시 강제 노동력을 사용한 곳이 기업들과 국가기관뿐 아니라 심지어 독일 국민 개인들 같은 경우에도 자신의 집이나 농장 등에서 피해자들에 대한 착취를 했다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에서 독일 사회 전체가 책임을 공유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잘름 이사장은 독일 사회가 이렇게 변화하는데 60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지적했다. 전쟁범죄에 대한 독일 사회의 보상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지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을 이룩한 뒤인 1990년대 후반의 일이다. 그는 당시에도 "이미 60년이나 지난 일이고, 그동안 우리는 할 만큼 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과거는 잊어야 한다"는 반발이 적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이런 반발들을 딛고 EVZ 재단이 설립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과거사 정리에 대한 독일 사회의 합의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잘름 이사장은 독일에서 과거사 정리를 가능케 했던 원동력으로 피해자 단체의 활동과 독일 내 시민사회의 적극적 움직임, 국제사회의 압력 등 세 가지를 지적했다.

"무엇보다도 피해자나 유가족이 살아있는 한 과거사 정리를 계속 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데 독일사회의 합의가 이루어졌다. 과거를 뒤로하고 미래로 전진하는 것은 물론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과거를 마주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과거와 대면하는 과정 속에서 물론 아주 상반된 여러 가지 주장이 나올 수도 있지만, 이런 의견들은 서로 존중되어야 한다. 만일 이런 과정들을 무시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 주장한다면 이런 부분들에 대한 의문은 언제든지 계속 나올 것이다."

EVZ 재단이 설립되었을 때 당시 독일 대통령 요하네스 라우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돈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자신들의 고통이 인정되는 것, 그리고 그들에게 저질러진 잘못이 있는 그대로 시인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일부의 피해자들은 금전적인 보상이 과거 자신들이 겪어야 했던 정신적 고통을 치유할 수는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잘름 이사장은 "EVZ 재단의 존재는 독일의 '과거에 대한 지속적인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지속적인 책임'에는 끝이 없고 다만 여러 가지 형태로 변화할 뿐"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2000년 설립된 재단은 2007년까지 과거 강제노동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작업에 주력했고, 그 부분은 이미 끝이 났다. 그 사업을 끝내고 지금 재단에서 집중하고 있는 작업은 현재 독일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 문제와 외국인 혐오증, 반유대주의 경향 등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일련의 노력들을 예로 들 수 있다.

또 점점 고령화 되어가는 강제노동 피해자들의 심리적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이라든지, 과거의 기억들을 젊은 세대들에게 들려줌으로써 그런 불행한 일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이런 부분들은 여러 가지 다른 형태로 변화하면서 역사적인 책임을 독일사회가 계속 지고 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보면 된다."

현재 30여 명의 상근 스태프들이 일하고 있는 EVZ 재단의 활동은 크게 세 가지 영역에서 지속적 사업을 벌여나가고 있다고 잘름 이사장은 설명했다. '역사에 대한 비판적 고찰', '나치 피해자들에 대한 책임', '인권 운동' 등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젊은 세대에 대한 인권 교육에 큰 가치를 두고 있다고 설명한 잘름 이사장은 "젊은 세대가 인본주의적 가치관을 갖도록 돕고, 인권을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과거사 정리의 궁극적 목적"이라고 밝혔다.


태그:#마르틴 잘름, #EVZ 재단, #과거사 정리, #진실화해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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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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