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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둘째 애 방은 동안거에 들어간 스님의 방마냥 조용하기 그지없다. 발소리 죽여 문고리를 살짝 돌려 보았으나 아니나 다를까 쩝, 꿈쩍도 않는다. 나 원참 이거야 원. 아무리 고3 자리가 옥황상제 윗자리라 하지만 부모가 되어서 방 안에 있는 딸래미가 도대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지, 아니면 면벽을 하고 있는지, 그도저도 아니면 불만 켜놓고 하늘나라 꿈자리에 드셨는지 알 수가 없으니 참으로 기가 막히고 애가 탈 노릇이다.

 

수능 열흘 전, 저도 나도 속이 타긴 마찬가지

 

이제 열흘 정도 남은 수능. 여느 집도 이처럼 요란(?)스럽게 공부들을 하고 있는지 답답한 마음이야 노적봉같지만 그렇다고 드러내 놓고 부모 행세하기도 어려운 게 요즘 세태다. '옛날에 우리는 안 그랬는데 요즘 애들은 말이야' 뭐 이딴 소리 해봐야 동네 채소장사아저씨 스피커 소리만도 못한 대접 받는다. 속에서는 숯 타는 냄새가 나도 정작 핏기 없는 애 얼굴 보게 되면 또 가슴이 짠하고 불쌍한 생각이 파도처럼 일렁이는 게 이 애비 맘이다.

 

"아빠 큰일났다."

"왜, 뭐 빠트리고 왔어?"

"에이, 넥타이를 책상 위에 두고 그냥 왔네."

"야, 이제 말년병장 고3인데 넥타이 안 매고 왔다고 잡겠냐."

"그러게 말야. 교문은 통과하는데 담임선생님이 잡아."

"집에 갔다가 오면 늦을테고 우야노. 선생님이 잡거든 전화해. 내가 말해줄테니."

"피, 무슨 이야기를 해. 됐거든요."

 

그래도 간만에 가장 긴 대화를 오늘 아침 학교 태워다 주는 차 안에서 한 거 같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지만, 그래도 딴에는 제 편 들어 주었다 생각했든지 표정이 한결 밝다. 휴~.

 

새벽에 일어나 밥은 안 먹어도 샤워는 해야하는 우리집 고3 기집애. 달리기도 좋아하고 저그 엄마랑 저녁이면 호수공원으로 집앞 놀이터로 산책도 잘 나가던 애가 고3이 되자 어느날 갑자기 학교와 학원 그리고 방을 다람쥐 챗바퀴 돌듯 움직인다.

 

그러자 태양의 광합성을 받지 못해서인가. 딸아이 얼굴이 밀가루 반죽으로 분칠을 한마냥 허옇게 변해갔다. 중학교때, 강호동이만큼은 아니라도 아침에 삼겹살 한 근 정도도 너끈 먹어 제끼고 하루 다섯 끼도 마다않던 애가 밥조차 제대로 못 먹는 거 같다.

 

하루 다섯 끼도 마다않던 애가 밥도 먹는둥마는둥

 

집에서도 그러니 학교에서 주는 급식인들 오죽할까. 걱정이 태산 위에 태태산이다. 누가 우리 애를 저렇게 만들었을까? 내가 아니면 학교 그것도 아니면 교육정책이? 누구의 잘못이든 아니든 이제 보름도 남지 않은 시험 앞에서 애들은 애들대로, 부모는 부모대로 진돗개 하나 작전 명령 떨어진 초특급 비상 사태에 직면해 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는 말이 있다지만 어찌 공부를 즐길 수만 있을까. 그리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치 못하다. 공부를 즐길 수만 있는 대상이 아님은 삼천동자건너집 삼천궁녀들도 안다. 하기에 우리 자식들은 오늘도 보금자리 마다하고 가시밭 넝쿨밭 길 험한 곳에서 잠자리를 펼치고 있다.

 

"수능 칠 때까지 아빠가 용돈 만원 더 줄테니 먹고 싶은 거 사 먹고 부족한 거 있음 아빠한테 재깍 말해라 알았지?"

"아이구 됐어요. 안 그래도 돼. 별로 사먹을 것도 없는데 뭐."

 

그러면서도 싫은 내색은 아니다. 그 말을 듣는 내맘이 되려 더 아프다. 정녕 애비로서 애한테 해줄 수 있는 말이 기껏 이거밖에 없는가. 에라이~ 답답한 양반아. 뭐 그런 기분이다. 공부 잘하는 자식 싫어할 부모 어디 있겠는가마는, 그렇다보니 우리들은 공부, 공부에 인생을 걸고 때론 목숨도 건다.

 

어찌하여 대학교라도 못 들어 간 애는 풀 죽어 고개 못 들고 그 부모는 자식 잘못 키운 죄인되어 하늘 부끄러워 고개 못 드니 오호 통재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는 전쟁같은 사랑, 수능을 향해 온갖 애정을 발칸포탄처럼 들이 퍼붓었나 보다.

 

딸아, 고지가 저기다 당당히 맞서라

 

"딸아, 한번은 내 코 앞에 자신있게 들이밀던 네 성적표를 나는 몰래 간직하고 있다. 고3 올라와 처음으로 치른 시험이라 며칠 밤을 새 가며 애쓰던 너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결과가 좋으면 추억이고 아니면 고생스런 과거라 하지만 아빠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 순간순간 모든 것이 소중하고 앞으로 네 인생이 앞으로 더 많은 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빠가 너 태어나기 전 예명이지만 이름을 왜 '영롱'이라고 지어 놓은 줄 아냐, 아침 이슬처럼 순수하고 맑은 마음으로 영롱하게 살았으면 해서다. 이제 며칠 안 남은 수능. 너무나 아름답게 물든 단풍조차 볼 겨를이 없고 도리어 요즘 같을 때는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며 살아 가야 한다는 하루지만, 창문 밖으로 크게 심호흡 한번 하고 하늘도 한번 올려다 보아라.

 

지금까지도 잘해 왔지만 고지가 저긴데 예서 멈출 수는 없잖니. 마지막까지 넘어지고 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까이거 한 번 가보자. 서영롱 파이팅~! 그리고 내 너를 사랑한데이,  I love you 서영롱."


태그:#그냥얼떨결후다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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