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가 내린다는 상강(23일)이 모레입니다. 비온 뒤 갑자기 추워져 상강이 다가온 것을 실감했는데 오늘은 또 갑자기 따뜻한 햇살에 껴입은 옷이 부담스러웠습니다. 서리가 내리기 전에 농작물을 거두어 들여야 하는 시골은 부지깽이도 덤빈다고 할 정도로 바쁘겠지만, 도시에서는 겨울 내복이며 겉옷을 꺼내 들고 옷장 정리하는 것, 이불을 바꾸고, 보일러를 손 보는 것으로 겨울 준비를 합니다. 이런 생활 모습을 담아서 속담을 지어 보았습니다.
요즘 모기는 상강이 되어야 입이 삐뚤어진다.(처서에 모기 입 삐뚤어진다는 속담을 빗대어)상강 즈음에 한국 시리즈 끝난다.상강 즈음에 프로 농구 재미있다.상강 되니 10분 일찍 자는데 10분 더 늦게 일어난다(해가 짧아져서 늦잠을 자게 된다는.)상강에 옷장 정리한다. 상강에 겨울옷 사러 간다.서리가 내리면 아름다워지는 꽃이 국화입니다. 다른 모든 꽃은 이미 시들었지만 고고한 향기 뿜어내며 서 있는 국화는, 그래서 누님에 비유되었나 봅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상강 즈음 먹는 절기 음식이 국화전입니다. 국화꽃과 잎으로 수놓은 국화전, 생각만 해도 침이 넘어갑니다. 이 즈음 꽃을 따서 국화차를 만들기도 하고, 국화주를 만들기도 한답니다. 우리도 오늘은 국화전 만들기에 도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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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화차를 마시는 아이들 처음부터 거부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호기심에 마셔본 아이들은 다들 향이 좋고 맛있다는 말을 연발했다. |
ⓒ 한희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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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전을 만들기 전에 먼저 국화차를 마시며 국화향을 느껴 보았습니다. 맛있다는 아이, 맛 없다는 아이 다양합니다. 안먹겠다는 아이도 있었지요. 그리고 미리 꺾어온 노란 감국 향을 맡아 봅니다. 다들 너무 좋아합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국화꽃을 꺾어 베갯속에 넣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지요.
하얀 찹쌀가루를 익반죽(가루에 끓는 물을 쳐 가며 하는 반죽)해서 동글 납작하게 빚은 후에 꽃과 잎으로 장식을 합니다. 여기에 빨간 산수유 열매 몇 개를 따다 함께 장식했지요. 여기 저기 꽃이 모자라다고 아우성입니다. '아이고, 저렇게 꽃을 많이 넣으면 써서 어떻게 먹으려고 그러노'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두었습니다. 해 보는 것이 듣는 것보다 낫겠다는 생각에서입니다. 제가 만드는 모양을 보던 한 아이가 묻습니다. '근데 왜 샘님은 꽃을 한 개만 해요.' 빙긋이 웃으며 '글쎄, 왜 그럴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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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찹쌀가루 익반죽 뜨거운 물을 부어서 반죽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조심해야 한다. 익반죽을 하는 동안 아이들이 고소한 찹쌀 냄새가 좋다고 모여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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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에서 꺾어 온 감국과 산수유 노란 감국을 꺾어다 흐르는 물에 씻었다. 충분히 씻는다고 씻었는데도 눈꼽보다 작은 곤충들이 꽃술 속에 살아 있었다. 큰 국화꽃은 꽃술은 버리고 꽃잎만 가지고 국화전을 부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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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모양 사람 얼굴, 강아지 얼굴, 별, 고양이 얼굴, 아이들은 몇 가지로 이렇게 생생한 모양을 만들어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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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만든 국화전 빨간 산수유 열매, 푸른 국화잎, 노란 감국꽃이 잘 어우러졌다. 하지만, 국화꽃이 너무 많이 들어가면 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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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몫을 다 만든 아이들 먼저 전을 구워주었습니다. 보기에도 예쁘고, 들기름 향도 고소하고 거기에 달콤한 조청까지 올려 먹으면 금상첨화겠지요. 너도 나도 친구들 기다리지 않고 먼저 한 사람은 먼저 먹으면 안되겠느냐고 안달입니다. 묵묵히 듣고 있다가 정말 그렇게 먼저 먹고 싶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식으면 맛이 없으니까 먼저 먹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먼저 먹으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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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엔 꿀맛이었는데 먹다보니 질렸다. 노란 국화 쓴 맛도 그렇고, 양이 너무 많은 것도 그랬다. 결국 먹다남은 것은 집으로 싸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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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맛이니 어쩌니 하며 먹으려 하던 아이들이 금세 질려버립니다. 국화꽃을 너무 많이 넣어서 쓴 맛이 강했던 거지요. 게다가 자기가 만든 것은 자기가 다 먹으면 좋겠다고 해서 그렇게 해 보자고 했는데 양이 너무 많았던 겁니다. 예전 같으면 함께 만든 것을 모두 모아서 먹을만큼만 구워 먹고 나머지는 냉동실에 보관했다가 다음에 부쳐 먹었을텐데 10개도 넘는 것을 먹으려니 힘들었던 것이지요. 겨우 다 먹은 아이, 아직도 먹는 아이들로 부산한 가운데 끝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얘들아, 모여보자. 예전처럼 다 같이 먹지 않고 오늘처럼 자기가 만든 거 자기가 다 먹고, 먼저 만든 사람은 먼저 먹고 하니까 좋았니?""네" "아니요" 묵묵부답...함께 만들어서 함께 먹었으면 먹을만큼만 맛있게 먹었을텐데, 혼자 만들어서 혼자 다 먹겠다고 하니 혼자서 욕심만 부린 꼴이 된 것입니다. 생활 속에서 배운대로 실천하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그것은 대안적인 교육을 하겠다고 하는 대안 학교나, 일반 학교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다 비슷비슷한 문제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결국, 그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과 그런 문제에 천착해서 풀 수 있는 구조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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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규 왜 이 꽃전을 보고 뭉크의 '절규'가 생각났을까? 무엇이 우리를 절규하게 하는 걸까? 하루 하루 만나는 일상적인 관계에서 '예의'를 가르치는 것이, '삶의 길'을 가르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
ⓒ 한희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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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이들은 늦게 먹는 아이들을 기다리면서 샘을 도와서 뒷정리를 했습니다. 바닥을 쓸고, 설거지를 하고, 그러다보니 20분이 훌쩍 지났습니다. 오늘 우리 아이들이 먹은 국화전은 국화꽃이 많이 들어간만큼 쓰디쓴 맛이었을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아름다운마을학교는 북한산 자락 인수동에 자리잡은 대안학교입니다. 2010학년도 2학년, 3학년, 4학년, 5학년, 6학년 편입생을 모집합니다. 매주 수요일 절기 공부를 하며 우주와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이 절기 공부는 교보생명교육문화재단의 환경교육현장지원 프로젝트에 선정되어 지원을 받고 있는 프로그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