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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 번씩 메일을 주고받거나 얼굴을 대면하는 화가가 계십니다.

 

봄에는 모티프원에 오셨을 때 보셨던 창가의 마른 진달래가지를 기억하신 내용으로 메일을 주셨습니다.

 

"눈꽃처럼 하얀 벽에 아무렇게 꽂혀있던 나뭇가지

조화롭고 멋있고 아름다웠습니다.

 

산에서는 생명을 다하고 버려졌던 나뭇가지였지만

방으로 옮겨진 그 마른 가지조차 이 봄바람 쐬면

파란 싹이 돋을 듯도 싶어요.

 

선생님을 뵈올 때 저는 편안함을 느낍니다.

 

봄바람 드림"

 

 

그분의 메일로 겨울을 벗고 답을 드렸습니다.

 

"저희 집 창가의 생명 다한 진달래가지는

저의 마음속에서 살아 제게 말을 합니다.

 

'항상 꽃을 달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항상 푸를 수도 없습니다.

전, 이미 지난해 참꽃

분홍의 꽃잎으로 산중턱에 스몄고

벌과 몸을 섞었습니다.

 

가지가 시들고도

제 자태의 아름다움을 보아주는 이 있으니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꽃이 아닌 가지로 아름다울 수 있는

지금도 행복합니다.'

 

지난해 건네주신 네 송이의 패랭이꽃을 기억합니다.

 

진달래 가지 드림"

 

 

여름에는 헤이리로 오셨습니다.

 

"여름이 오면 산으로 이어진 집 뒤란의 바위 사이에 핀 패랭이꽃을 보며 뻐꾸기 울음소리를 듣곤 했습니다. 올해 뻐꾸기는 우는데 패랭이꽃이 피지 않았습니다."

 

패랭이꽃과 뻐꾸기 울음소리로 여름을 맞았던 그 분은 패랭이꽃 피지 않는 여름을 참 안타까워하셨습니다.

 

다시 그분으로 부터 메일이 왔습니다.

 

"가을입니다.

열차 타고 단풍 나들이를 했습니다.

불의 나라에 온 듯했습니다.

그 속에서 제가 숯이 될까, 싶었습니다.

 

불의 나라에서 숯 드림"

 

이 분이 메일을 읽고 제가 제일 먼저 한 행위는 고개를 들어 서재 밖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가을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가을이 서재 앞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 좋은 날들도 금방이겠지요.

아침저녁으로 난방을 해야 근육이 편안해지는 것으로 보아

이 볕 좋은 날들도 언제 제 서재 앞에서 사라질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쉽지는 않습니다.

아름다운 것을 오래 붙잡고 있는 것은

아름다움에 대한 죄악 같아요.

 

진정한 아름다움은 찰나여야 하고

우리는 그 찰나의 기억을 평생 반추하면 됩니다.

 

찰나의 기억 드림"

 

저는 김효정 선생님의 메일이나 방문을 통해 18세의 소년이 됩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과 홈페이지 www.motif1.co.kr에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가을, #김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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