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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깍지가 그렇게 오래 씌웠던 걸까. 2년 연애하고 결혼했지만, 연애하는 동안은 미처 몰랐다. 아니, 결혼하고도 한동안은 몰랐다. 남편의 실체를 알게 된 건 아이를 낳고 나서다. 사실 남편도 몰랐다(말은 그렇게 한다). 머릿 속 하얀 그 놈의 존재를.

결혼하고 애 낳고 나서 생긴 '백색공포'

"자기야, 베개에 이 하얀 게 뭐야?"

어느 주말 오후. 느즈막히 일어나 청소를 하려던 중, 배게에 뭔가 정체모를 하얀 건더기(?)들이 보인다. 참다못해 베개 주인인 남편을 불러 묻는다. 뭔가 어정쩡한 표정과 동작. 대답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다짜고짜 몰아세우는 나.

"이거 범인 자기야? 이게 자기 머리에서 나온 거야? 뭐야, 이게? 혹시 비, 비듬? 비듬이 뭐가 이렇게 커? 이거 비듬 맞아?"

떡가루 날리듯 부스스 떨어지는 가루들을 보며 '참담한' 마음이 들었다. 세상에나, 한 깔끔하는 우리 남편 머리에서 비듬이 웬말이냔 말이다.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남편은 나와는 다른 '종'이다. 신혼 시절 피곤해서 그냥 안 씻고(여기서 씻는 거라 함은 샤워의 수준, 당근 세수는 매일 하고 잤다) 자려다가도, 곱게 씻고 들어오는 남편 눈치가 보여 울며 겨자먹기로 씻은 적이 부지기수.

자기 몸 하나 씻는 거 가지고 깔끔하다 이야기 하는 건 남편 자랑하는 '팔불출'일 테고, 욕실 청소,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 전담에, 확실한 분리수거까지. (우리 시어머니가 알면 기가 찰 일이지만) 내가 깜빡하거나 바쁠 때, 빨래 널고 개는 거부터 아이가 어질러놓은 장난감 정리 정돈까지. 이 정도면 깔끔남 소리, 듣고도 남을 터.

반면 뱀 허물 벗듯 몸만 쏙 빠져나오는 나는 방 어지럽히기 선수요, 물건 둔 데 잊어버리기 일쑤인, 정리 정돈 감각 제로인 천방지축과다. 오죽하면 친정 엄마가 '자네가 고생이 많네'라는 소리를 할까. 이런 깔끔남 우리 남편 머리에 비듬, 그것도 왕비듬이라니.

"당장 병원 가, 애한테 안 좋으면 어떡하려고 그래? 근데 비듬이 뭐 이러냐. 상태가 이 정도인 걸 왜 여직 몰랐지? 내일 퇴근하자마자 당장 병원 가. 응? 알았지?"

엄마도 아내도 못 바꾸는 남자, 애는 바꾼다더니

지루성피부염 진단 받고, 전용 샴푸를 쓰고 있는 남편. 거품을 내고 3분간 있어야 한단다. 마사지 해주면 좋고.
 지루성피부염 진단 받고, 전용 샴푸를 쓰고 있는 남편. 거품을 내고 3분간 있어야 한단다. 마사지 해주면 좋고.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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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원체 병원, 약, 한약에 대해 믿음이 없는지라 남편 반응은 영 시큰둥. 원래는 안 그랬는데, 결혼하고 나서부터 피부가 좀 이상해져서 건조해졌다나 라는 둥의 핑계로 시작해서 병원가야 별 것 없다는 자가진단까지. 어디 핑계없는 무덤 있겠는가마는 왜 하필 결혼하고 부터인데? '결혼하고부터'라는 남편의 말이 영 걸려(사실 내 잘못이 아닌데) 그날부터 각종 민간요법을 들이대며 때아닌 내조를 하겠다고 나선 나.

아무리 남자들만 있다고 해도. 특히 내 입장에선 결혼까지 했는데, 그러고 다니는 게 마치 내 흉처럼 느껴졌다. 그러니 남편의 비듬이 마치 내 비듬이라도 되는양 민간요법을 설파하고 나설 수밖에. 왜 가라는 병원은 안 가서, 이 고생을 시키는 거야.

민간요법이라고 해봐야 특별한 건 없고, 녹찻물로 머리를 감거나, 식초물로 머리를 감는 거 그리고 머리를 감으면 충분히 말리라는 것 등이다. 그러나 모든 민간요법이 그렇듯, 머리 감는 시간이 두 배나 늘은 만큼 공을 들여서인지 처음에는 효과가 있는 듯했다. 시간이 지나고 그것이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생각에 미치자, 우리 부부의 의욕도 점점 꺾였다.

그러던 중 결정적 사건이 터졌다. 어느 날 보니, 당시 20여 개월 된 딸아이 종아리에 수포같은 게 잡혀 흉터처럼 남아있는 게 아닌가. 병원에 갔더니, 무좀 균 같은 게 옮아서 생긴 피부염 같단다. 다행히 생긴 지 오래됐고 그동안 자연치유 되어 거의 나아가는 중이라고. 순간, 다시 발동이 걸리는 나.

"무좀? 에잇, 발톱 무좀이면 우리 남편이 범인 아냐. 내가 병원에 가라고 그렇게 말했건만 말 안 듣더니 결국..."

상황이 이쯤되니 남편도 뭔가를 깨달았는지(엄마도 아내도 못 바꾸는 남자, 애는 바꾼다더니), 자진해서 피부과에 가서 발톱 무좀과 떡가루 같은 비듬, 지루성피부염을 박멸(?)시킬 약을 처방받아 치료 중이다.

비담도 아니고 '비듬남'은 좀 억울하잖아?

병원에서 처방받은 치료약.
 병원에서 처방받은 치료약.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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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직도 내 눈에 진눈깨비 같은 비듬이 눈에 띄는 걸 보면, 아직 박멸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한 듯하다. 허니 외출할 때마다, 남편의 어깨를 검색하는 것은 나의 주된 일 중 하나. 가능하면 검은 옷은 사지도 입히지도 않는 것이 '비듬남'을 남편을 둔 아내의 코디법이다.

오늘도 자고 일어난 남편의 머리에 드문드문 떡가루가 보인다. 한 소리 하려다 입술을 지그시 감는 나. 노력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약도 먹고 샴푸도 바꾸고 해도 좀 처럼 낫지 않는 상황에서 "자갸, 또 눈 내려. 어떡해"라고 해봐야 출근 전부터 스트레스 수치만 상승할 것 같아서다.

그래도 습관처럼 드는 생각. 대체 약으로도 완치가 안되는 거면 어떡해야 하는 거야. 결국 마음에 담아두지 못하고, 한 소리를 하고 만다.

"비듬이 왜 이렇게 잘 안 낫지? 자기 회사 여직원들이 보면서 한 소리씩 할 것 같아. '와이프는 뭐 한대, 남편이 이러고 다니는 줄도 모르고'라고 뒷담화들 까는 거 아냐?"

그런데 남편 대답이 환상이다.

"우리 회사에 여직원 없어. 괜찮아."


태그:#비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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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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