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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내일은 찬 이슬이 내린다는 한로입니다. 아침 저녁 찬 기운이 벌써 겨울을 머금은 듯하고, 한낮 높은 하늘은 가을을 한껏 뽐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기상청 홈페이지에서 어제 서울 지역 전운량을 살펴봤더니 0.4할이었습니다. 0.4할이면 정말 구름 한 점 없는 깨끗하고 맑은 가을하늘입니다. 하늘과 땅 천지의 기운이 조화를 이루어 오곡이 익어가는 계절을 만들었다는 조상들의 이해가 한껏 그럴싸해 보이는 시절입니다.

감국, 자리공, 쑥부쟁이를 꺾어 꽃핀 꽂은 아이, 오늘 가을 하늘과 참 잘 어울립니다.
▲ 곷핀 꽂았어요. 감국, 자리공, 쑥부쟁이를 꺾어 꽃핀 꽂은 아이, 오늘 가을 하늘과 참 잘 어울립니다.
ⓒ 한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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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詩經)'에 "귀뚜라미 요놈 보소. 칠월엔 들판이요, 팔월 달엔 처마 밑. 구월에 문 앞에 서 있더니, 시월엔 나의 침상 밑으로 기어드네(七月在野 八月在宇 九月在戶 十月入我牀下)."라는 시가 있다는데 귀뚜라미 뿐 아니라 우리도 그런 것 같습니다. 칠월에 들판에서 뛰놀기를 즐겨하지만, 날이 차가워지니 점점 따뜻한 이불 속이 그리워지는 때이지요. 이 시를 함께 읽어 보고 한로와 관련된 속담을 찾아 보았습니다.

한로 상강에 겉보리간다
모기는 중양절 떡 먹고 죽는다.
중양고를 먹으면, 여름옷을 싸야 한다.

한로는 그다지 중요하게 친 절기가 아니었고, 민속적으로는 음력 9월 9일인 중양절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서 그런지 한로 관련된 속담을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처서에는 모기 입이 삐뚤어진다더니, 중양절이 지나면 본격적인 겨울 채비를 하라는 뜻인지 모기가 중양절 떡 먹고 죽는다는 말이 재미있습니다. 아이들과는 이런 속담을 지어보았습니다.

가을 밤마다 모기 잡는 신기록 세운다.
준플레이오프 끝나고 농구 시즌 기다린다.
아침마다 낙엽 쓰느라 힘들다.
한로에 방석 없이는 못산다.
요즘은 한로에도 모기입 멀쩡하다.
한로에 화장실 들락거린다.
한로에 옷장 정리한다.

가을 모기가 극성입니다. 여름에는 밖에 있던 모기들이 날이 추워져서 그런지 다 집안으로 들어와 체감 모기수(?)는 여름보다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 얘기에 모기 이야기가 많습니다. 한 아이는 아빠가 어제는 3시-4시 사이에 25마리를 잡았다며 매일 신기록을 세운다고 하네요.

땅에 떨어진 빨간 씨앗을 주워보니 꼭 콩처럼 생겼지요.
▲ 일본 목련 빨간 씨앗 땅에 떨어진 빨간 씨앗을 주워보니 꼭 콩처럼 생겼지요.
ⓒ 한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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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도 매달리고, 옆으로도 매달리고, 빨간 열매를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새는 열매를 먹고, 새똥으로 그 씨앗을 퍼트려주니 그렇게 나무와 서로 살리는 관계 맺고 산다 합니다.
▲ 일본 목련 열매를 탐하는 새 거꾸로도 매달리고, 옆으로도 매달리고, 빨간 열매를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새는 열매를 먹고, 새똥으로 그 씨앗을 퍼트려주니 그렇게 나무와 서로 살리는 관계 맺고 산다 합니다.
ⓒ 한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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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걷이로 한참 바쁜 가을 들판을 볼 수는 없지만, 우리는 가을 열매와 씨앗을 찾으러 산책을 나섰습니다. 맥문동, 미국 자리공, 오동나무, 주목, 비비추, 일본목련, 도토리, 단풍나무, 배롱나무, 대추나무, 이름 모를 풀씨들까지 채집통에 주워 담아봅니다. 지난 주에는 빨간 도깨비 방망이처럼 생겼던 일본 목련 나무에는 어느새 겉껍데기가 벗겨지고 어느새 주홍색 씨앗이 툭툭 튀어나와 있었지요. 그 씨앗을 맛있게 쪼아먹는 새도 보았습니다.

미국자리공이 검붉게 익었습니다. 익은 열매로 그림도 그리고, 손톱에 물도 들였지요. 빛깔도 곱지만 열매 받침이 앙증맞고 예쁩니다.
▲ 미국자리공 미국자리공이 검붉게 익었습니다. 익은 열매로 그림도 그리고, 손톱에 물도 들였지요. 빛깔도 곱지만 열매 받침이 앙증맞고 예쁩니다.
ⓒ 한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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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문동 열매도 보랏빛이 나지만 아직 익지 않았지요. 오늘은 미국 자리공 열매를 따서 이런 그림을 그렸습니다.
▲ 미국자리공 열매로 그림 그렸어요. 맥문동 열매도 보랏빛이 나지만 아직 익지 않았지요. 오늘은 미국 자리공 열매를 따서 이런 그림을 그렸습니다.
ⓒ 한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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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그 열매를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집착합니다. 미국 자리공 열매를 처음 본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먹지 않는다고 했더니, 내 동생은 먹었는데 말짱했다는 답이 돌아옵니다. 주목 나무 열매도 마찬가지지요. 까만 까마중은 먹을 수 있다고 하니 너도 나도 좋아합니다.

비비추 잎이 가을을 맞아 스산한데, 그 사이에 주홍빛 열매들이 떨어져 있습니다. 아이들의 보물 찾기가 한창입니다.
▲ 이거 주황색 열매 비비추 잎이 가을을 맞아 스산한데, 그 사이에 주홍빛 열매들이 떨어져 있습니다. 아이들의 보물 찾기가 한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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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워온 열매와 씨앗이 담긴 채집통을 보며 관찰하고 있습니다. 그냥 눈으로만 보지 않고 생김새와 특징에 맞게 부드러운 것은 눌러보고, 솜털 같은 것은 입김으로 불어보고, 단풍나무 씨앗은 위에서 떨어트려보고, 도토리는  팽이처럼 굴려봅니다.
▲ 채집통에 뭐가 있나? 주워온 열매와 씨앗이 담긴 채집통을 보며 관찰하고 있습니다. 그냥 눈으로만 보지 않고 생김새와 특징에 맞게 부드러운 것은 눌러보고, 솜털 같은 것은 입김으로 불어보고, 단풍나무 씨앗은 위에서 떨어트려보고, 도토리는 팽이처럼 굴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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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을 잠깐 돌아보니 이렇게 많은 열매와 씨앗들이 있었답니다. 역시 가을은 열매 맺는 계절인가 봅니다.
▲ 우리가 주운 열매와 씨앗 주변을 잠깐 돌아보니 이렇게 많은 열매와 씨앗들이 있었답니다. 역시 가을은 열매 맺는 계절인가 봅니다.
ⓒ 한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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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이슬이 내린다는 한로, 빨간 열매들이 유난히 돋보이는 때입니다. 맥문동 열매를 처음 본 친구가 하나만 집에 가져가도 되냐고 묻습니다. 왜? 우리 아빠가 모르니까 보여주고 싶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안된다고 하던 친구들이 그럼 가져가라고 합니다. 어쩌면 공부는 이렇게, 배운 것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리며 판단하는 것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덧붙이는 글 | 아름다운마을학교는 북한산 자락 인수동에 자리잡은 대안학교입니다. 2010학년도 2학년, 3학년, 4학년, 5학년, 6학년 편입생을 모집합니다. 매주 수요일 절기 공부를 하며 우주와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이 절기 공부는 교보생명교육문화재단의 환경교육현장지원 프로젝트에 선정되어 지원을 받고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태그:#아름다운마을학교, #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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