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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넣어 만든 아름다운 우리말이 참 많다. 신랑 신부가 첫날밤에 자는 잠을 꽃잠이라 하고 사춘기에 솟아나는 기운을 꽃기운, 여자의 한창 젊은 나이를 꽃나이라 한다. 이와 비슷하게 아름다운 무늬를 놓은 담을 꽃담이라 한다. 건축용어로 화초담이라고도 하나 화초담은 넓은 개념을 담고 있는 꽃담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꽃문은 아직 국어사전에 나오지 않는다. 이와 비슷한 말로 꽃살문이라는 것이 있다. 꽃살문은 문살에 꽃무늬를 새겨 만든 문이다. 꽃살문을 줄여 꽃문이라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꽃담을 화초담으로 보아 꽃담의 넓은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꽃이 들어가 새로운 의미의 낱말이 되는 꽃잠, 꽃기운, 꽃나이, 꽃담과 같이 꽃문을 좀 넓은 의미, 구체적인 것보다는 추상적 개념이 담긴 낱말로 사용하면 좋겠다. 꽃문은 사용하는 사람의 생각과 만든 이의 사상이 담긴 아름다운 문이다.  꽃문은 보는 이의 마음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꽃살문의 줄임말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꽃문은 절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살문이 전부가 아니다. 기와조각을 토담에 박은 질박한 시골 꽃담과 낙선재, 자경전의 화려하고 세련된 궁궐의 꽃담이 있듯이 꽃문도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질박한 시골 꽃문부터 화려하고 세련된 궁궐의 꽃문이 있고 사대부집의 검소한 꽃문이 있다.

집이 사람이라면 문은 얼굴에 비유된다. 담은 옷에, 지붕은 머리나 모자에 비유되고 굴뚝은 브로치같은 액세서리에 비유된다. 얼굴에 비유되는 문은 더욱 신경을 쓰게 된다. 얼굴에 꽃단장을 하듯 문을 단장하여 꽃문으로 만든다. 진한 화장을 한 것처럼 화려하게 꾸미거나 옅은 화장을 하여 세련되게 만들기도 하며 민얼굴로 수수하게 보이게도 한다.

꽃단장을 짙게하여 화려하게 보이는 꽃문이다. 산 가운데 후미진 곳에 위치한 미륵전 주변을 밝게하고 찾는 이를 기분 좋게 한다
▲ 도갑사 미륵전 꽃문 꽃단장을 짙게하여 화려하게 보이는 꽃문이다. 산 가운데 후미진 곳에 위치한 미륵전 주변을 밝게하고 찾는 이를 기분 좋게 한다
ⓒ 김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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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절집의 문이라도, 후미진 곳을 밝게 하려고 한 듯 단청을 하여 화려하게 꾸민 도갑사 미륵전 꽃문이 있는가 하면 단청을 전혀 하지 않아 맨살을 드러낸 내소사 대웅전문이 있다. 첫눈에는 들지 않아도 다시 한 번 보면 반하게 되는 선암사원통전 꽃문은 단청을 옅게 하여 세련미가 돋보인다.

화장을 전혀 하지 않은 민얼굴같은 수수한 꽃문이다.
▲ 내소사 대웅전 꽃문 화장을 전혀 하지 않은 민얼굴같은 수수한 꽃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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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에 따라 문은 달라진다. 집주인이 여자라면 화사한 꽃문을 만들고 남자라면 지조나 절개를 드러내기 위해 검소하면서 깔끔한 문을 둔다. 주로 여성이 거주하는 낙선재에는 꽃담과 어울리는 여러 아름다운 꽃문이 있다. 누마루에 딸린 방안에는 보름달같은 커다란 달문이 있고 사방에 아름다운 꽃만자문이 달려 있다. 달문의 동그라미와 꽃만자문 꽃봉우리를 통해 들어오는 후원풍경이 방안에 들어와 한 송이 꽃이 된다. 

낙선재 일곽은 만자문과 띠살문이 기본문으로 쓰였다. 사방으로 뻗어 가고 끝이 끝없이 이어지는 만자무늬와 후원의 무시무종 무늬 꽃담이 잘 어울린다.
▲ 낙선재 꽃만자문과 띠살문 낙선재 일곽은 만자문과 띠살문이 기본문으로 쓰였다. 사방으로 뻗어 가고 끝이 끝없이 이어지는 만자무늬와 후원의 무시무종 무늬 꽃담이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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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선재, 석복헌, 수강재 등 낙선재 일곽에는 만자문을 많이 썼다. 무늬변화가 무쌍하고 무시무종(無始無終)의 의미를 담고 있는 만자문(卍字門)은 장수를 빌고 상서로운 기운이 방안에 가득하기를 바라는 의미가 있다. 무시무종을 표현한 후원의 꽃담과 잘 어울린다.

남자가 거처하는 방이면 매우 단출하고 깔끔하면서 검소하게 꾸며진다. 주로 선을 닦는 수행승의 선방이라면 날살문이, 규모가 작은 정자에는 단출하고 깔끔한 띠살문이 쓰인다. 검소함을 드러내기 위해 사랑채에 용자문(用字門)이나 우물살문 등을 사용하기도 하고 모양이 단정하고 고상한 품격이 담겨 있는 아자문(亞字門)도 쓰기도 한다. 주인의 사상이나 개성이 문에 표현되어질 때 이문은 이미 꽃문이 된다.

휴식과 학습의 공간, 남자가 거처하는 집 답게 단출하고 깔끔하면서 검소하게 만들어 졌다.
▲ 담양 명옥헌 띠살문 휴식과 학습의 공간, 남자가 거처하는 집 답게 단출하고 깔끔하면서 검소하게 만들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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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 집주인이 누군가에 따라 다르기도 하지만 있는 집과 없는 집의 문이 다르다. 집 규모에 따라 차이가 나기도 하지만 문의 수에서도 많은 차이가 있다. 형편이 좋은 집이라면 미닫이문에 다시 여닫이문으로 덧문을 내고 대청에는 한 여름철 열려 있는 것만 봐도 시원해 보이는 분합문을 설치한다.

단정하고 깔끔하게 꾸며져 검소함이 배어 있다.
▲ 내앞마을 의성김씨종가 사랑채 용자문 단정하고 깔끔하게 꾸며져 검소함이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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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편이 넉넉하지 않으면 여닫이 띠살문이 주로 사용된다. 그나마 마루가 있으면 마루를 거쳐 띠살문을 통해 방으로 들어가지만 마루가 없으면 토방에 큰 돌을 놓아 이 돌을 딛고 출입을 한다. 하지만 형편이 좋지 않더라도 문을 그냥 아무렇게나 만들지 않았다. 일산밤가시초가집의 토담 위에 낸 조그마한 문(창)은 그 어떤 화려한 꽃살문에 뒤지지 않게 예쁘다. 토담과 함께 보면 꽃문이다.

토담 위의 창문은 어느 꽃살문에도 뒤지지 않은 예쁜 꽃문이다
▲ 일산밤가시마을 초가 창문 토담 위의 창문은 어느 꽃살문에도 뒤지지 않은 예쁜 꽃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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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 얼굴이기에 집의 성격에 따라 다르기도 하다. 그래서 궁궐, 민가, 절집의 문이 다르다. 그러나  서로의 사상과 정서는 단절되지 않고 끊임없이 교류하고 교감하여 만들어지기 때문에 어느 꽃문이라도 우리의 정서는 그대로 담겨 있다.

궁궐은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고 검소하되 궁하게 짓지 않는다. 문도 여기에 맞게 만들어지며 건물성격에 따라 문도 달라진다. 경복궁 근정전이나 창덕궁 인정전과 같은 궁궐의 정전(正殿)은 절제미와 엄숙미가 나도록 꽃문이 만들어진다. 담으로 치면 사고석담에 비유된다. 앞에서 본대로 낙선재와 같이 여성이 거주하는 건물에는 화려한 꽃문이 있고 경복궁 집옥재와 같이 이국적인 건물에는 이색적인 꽃문이 있다. 꽃문형태가 만월문, 반월문 등으로 다양하고 무늬 또한 우리의 전통문에서 변형되어 있다.

궁궐의 정전답게 화려함 뒤에 절제미와 엄숙미가 흐른다
▲ 경복궁 근정전 솟을민꽃살문 궁궐의 정전답게 화려함 뒤에 절제미와 엄숙미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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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가의 문은 띠살문과 아자문을 기본으로 단아하고 검소하게 만들어진다. 잘사는 집이라 하여 지나치게 화려하거나 사치스럽게 만들지 않는다. 그러면 허세를 부린다 하여 욕을 먹게 된다. 기와집이든 초가집이든 나름대로 집의 규모나 생김새에 맞게 만들어진다.

민가의 문 중에 특이한 것이 있다. 주로 후미진 곳에 만들어 놓은 격자문이다. 수직살대(장살)와 수평살대(동살)을 촘촘히 교차시켜 그물처럼 만들었다. 격자문은 문살의 간격이 네모지고 촘촘해서 일견 그물이나 체를 짜 놓은 것처럼 보인다. 이런 짜임새의 문은 사립문에 체를 걸어놓는 이치와 같이 귀신을 물리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집에 침입하는 귀신이 체의 그물을 세다가 밤을 세우게 되어 집안은 무사하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문이다.

문살을 촘촘히 교차시켜 그물처럼 만들었다. 체를 걸어 귀신을 쫓듯이 후미진 곳에 격자문을 만들어 놓아 귀신을 쫓았다.
▲ 일산밤가시 초가 격자문 문살을 촘촘히 교차시켜 그물처럼 만들었다. 체를 걸어 귀신을 쫓듯이 후미진 곳에 격자문을 만들어 놓아 귀신을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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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밤가시 초가집에 이런 문이 있다. 굴뚝 위, 후미진 곳에 살이 촘촘한 격자문을 두었다. 사람이 출입하는 문이라기보다는 빛과 바람이 소통하는 창인데 이 집주인은 빛과 바람 외에 귀신을 염두에 두지 않았나 싶다. 문에 담겨 있는 집주인의 생각까지 함께 보고 있으면 기능성만 강조되는 문 이상의 꽃문이 된다. 

꽃문중에 꽃문은 절집의 꽃문이다. 모두 개성이 강하여 화려한 것부터 수수한 것까지 다양하다. 문을 기준으로 세속의 세계와 부처의 세계로 나누어진다. 세속에서 부처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치장하고 공들이는 것은 당연하다.

절집의 문은 우물살문을 기본으로 하고, 우물살을 모로 뉘어 약간의 멋을 부린 빗살문이 있다. 빗살문에 장살(수직살대)를 첨가하여 솟을빗살문을, 거기에 적절하게 꽃을 더하여 솟을빗꽃살문을 만든다. 아예 통나무판을 꽃문으로 장식한 꽃문도 있다.

대표작인 우물살문은 부석사 무량수전이다. 흐트러짐 없는 질서, 화려함보다는 장엄함을, 친숙함보다는 엄숙함을 보이려 한다. 강화 전등사 약사전의 문은 빗살문으로 아담한 건물과 잘 어울린다. 미황사 대웅보전의 빗살문은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고 맨살을 드러내고 있는데도 품격이 느껴진다. 우물살문과 빗살문을 같이 만든 문도 있다. 지리산 천은사 극락보전 문이다. 문고리를 중심으로 한쪽은 우물살문을,  다른 한쪽은 빗살문을 두었다. 샛문을 사이에 두고 양쪽 꽃담을 달리하여 변화를 꾀한 것과 마찬가지다.

흐트러짐 없는 질서, 화려함보다는 장엄함이, 친숙함보다는 엄숙함이 흐른다
▲ 부석사 무량수전 우물살문 흐트러짐 없는 질서, 화려함보다는 장엄함이, 친숙함보다는 엄숙함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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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살문으로 만족하지 못하면 살이 교차하는 곳에 꽃을 심어 빗꽃살문을 만든다. 크고 화려한 꽃을 심기도 하지만 아주 작은 꽃을 심기도 한다. 청평사 극락보전 빗꽃살문은 아주 작은 꽃을 심어 매우 앙증맞다. 강화 보문산 극락보전 꽃문은 크고 화려한 꽃을 심어 문이 꽃으로 꽉 찼다. 내소사 대웅보전의 빗국화꽃살문, 빗모란꽃살문은 화려한 화장을 비웃기라도 하듯 '생얼'을 자신있게 내보이고 있다. 꽃문의 걸작이다.

빗살문에 수직살대를 대면 꽃문은 더욱 화려해 진다. 꽃을 심지 않고 살에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으면 솟을민꽃살문, 꽃을 심으면 솟을빗꽃살문이다. 무위사 극락보전은 꽃을 심지 않아도 무늬 자체가 꽃이 되는 솟을민꽃살문을 하고 있다. 맞배지붕에 아담하고 앙증맞은 무위사 극락보전은 우물살문이나 빗살문이 어울릴 망정 단청을 화려하게 한 소슬빗꽃살문은 어울리지 않는다. 우물살이나 빗살문으로는 모자랐는지 솟을문을 하여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중용의 멋이 있다.

그래도 일반인들에게 가장 사랑을 받는 문은 솟을빗꽃살문이다. 빗꽃살문으로 걸작을 남긴 내소사는 그 것도 모자랐는지 솟을빗꽃살문이라는 또 다른 걸작을 남겼다. 살에도 잎이나 줄기를 표현하려고 한 듯 무늬를 놓아 무척 공들였다. 화엄사 보제루가 내소사 꽃문을 흉내내었지만 수준은 내소사에 미치지 못한다. 단청을 하지 않은 것이나 장대살이나 빗살을 장식한 솜씨, 가운데 새긴 꽃이 거의 비슷하나 같이 보고 있으면 다른 분위기가 난다. 내소사 꽃문은 감히 범접할 수없는 경지에 이른 꽃문이다.

살만으로도 훌륭한 꽃을 피웠다. 무위사 극락보전에 맞는 문은 우물살문이나 빗살문으로 보이나 그것으로 아쉬웠는지 솟을문을 만들었다
▲ 무위사 극락보전 솟을민꽃살문 살만으로도 훌륭한 꽃을 피웠다. 무위사 극락보전에 맞는 문은 우물살문이나 빗살문으로 보이나 그것으로 아쉬웠는지 솟을문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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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이 극에 달한 꽃문이 있다. 꽃살을 사용하지 않고 꽃을 통판에 통째로 새긴 꽃나무살문이다. 강화도 정수사 대웅보전 문은 네개의 문짝에 각각 다른 네개의 화병을 새기고 그 화병에 모란과 연꽃을 줄기와 잎을 함께 새긴 꽃문이다. 이런 문은 지금은 불 타 없어진 낙산사 문이나 동학사 문에서도 볼 수 있다.

문은 얼굴에 비유되곤 하여 표정이 있기 마련이다. 여성이 거주하는 문과 남성이 거주하는 문이 같을 수 없으며 화려하고 온갖 정성을 다한 절집의 문과 사치하지 않고 검소하게 만들어진 민가나 궁궐의 문이 같을 수 없다. 집 주인의 성품이나 개성 혹은 인품에 따라 문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문에는 집주인의 사상이 담겨 있게 되고 각기 다른 향기를 낸다. 토담과 어울리게 만들어진 소박한 꽃문은 꽃향기는 아닐지라도 구수한 '내음'이 난다. 아무리 꽃문이라도 지나치게 화려하거나 사치스럽게 꾸며진 문은 진한 향수의 냄새가 날지언정 은은한 꽃 향기는 나지 않는다.


태그:#꽃문, #꽃살문, #만자문, #빗살문, #우물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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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不自美 因人而彰(미불자미 인인이창),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 무정한 산수, 사람을 만나 정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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