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두 번 해직됐습니다."

 

11일 저녁 마산MBC 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열린 강연에서 정연주 전 KBS 사장이 한 첫 마디다. 그는 PD와 기자, 일반 시민 등 50여명이 모인데서 '바른 언론'에 대해 설명했다.

 

1970년 <동아일보> 입사부터 1975년 강제해직까지 설명한 그는 "유신 이후 입사했더니 선배들이 '무엇 하러 들어왔느냐'고 하더라"면서 "사실 보도가 없었고, 당시에는 '김대중'(전 대통령)이라는 이름도 못 쓰고 '어느 재야인사' 정도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백지광고'를 떠올린 그는 "국민들이 지원해 주었다"면서 "이번에 국무총리에 내정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대학 동기다. 당시 그가 미국에 유학을 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모금해서 보내준 적이 있었다. 아름다운 추억이다"고 술회했다.

 

KBS 사장에서 물러난 것에 대해 그는 '2차 해직'이라면서 "작년 8월에 대통령이 바로 목을 날려버렸다"고 말했다.

 

"해직 두 번을 당했는데, 유신 때를 되돌아보면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고 여론의 흐름을 왜곡한 것은 정치권력이었다. 지난 10년간 언론자유가 만개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수많은 이들의 희생과 고난을 통해 확대된 언론자유의 공간인데, 종국에는 거대 자본을 가진 언론사, 족벌신문이 엄청난 자본과 권력으로 군림하고 있다. 이른바 조중동 신문의 권력이다."

 

'미디어법'에 대해 그는 "난장판으로 통과된 미디어법이 되면, 많은 채널이 나오고 경쟁이 더 심해진다. 광고는 정해져 있는데, 그것을 먹자는 매체는 많아진다. 그러면 광고주나 자본의 압력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민주주의의 가장 큰 아름다움은 다양성"

 

"KBS 이상하게 되었고 이제는 MBC 하나 달랑 남아 있다. 여론이 한쪽으로 쏠리면 어떻게 되겠나. 여론이 한쪽으로 쏠리면 그 사회는 경직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의 가장 큰 아름다움이 다양성 아니냐."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우리 방송을 BBC와 NHK의 모델로 가야한다고 이야기한 것에 대해, 그는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비판했다.

 

"KBS 사장으로 있으면서 세계 여러 나라 방송국을 둘러봤다. 일본 모델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 NHK는 예산을 국회에서 승인하는데, 그러다 보니 NHK 회장은 1~3월 사이 석달간 예산이 통과되도록 하기 위해 국회의원만 만나러 다닌다. 그 과정에서 온갖 정치적 타협이 다 이루어진다. 정파의 이해관계를 타협, 아니 결탁을 하는 것이다.

 

언론은 사실·진실보도와 비판기능이 중요한데, NHK는 그 기능이 거의 거세된 조직이다. '실크로드' 등 교양프로그램은 잘 만든다. 방송은 그것만 하면 안 된다. 언론의 본래 기능인 비판보도를 NHK는 못한다. 최근에 NHK가 '2차 대전'에 대한 특별기획을 했는데 뉴스가 됐다. 워낙 그런 기획을 안 해 왔기 때문이다. 공영방송의 모델이 NHK로 되어서는 절대 안된다. 국회에서 예산 승인 받으니 정치적으로 예속되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고사 직전에 있는 진보 매체를 도와야"

 

정 전 사장은 "미디어법이 통과되어 시행되면 한국의 언론 지형은 큰일이 날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제대로 된 언론을 가지고 그나마 사회적인 균형을 조금이라도 한쪽으로 솔리지 않도록 해주기 위해서는, 고사 직전에 있는 진보매체들을 도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수많은 게릴라 미디어가 나와야 한다. 수많은 1인 미디어를 만들어서 곳곳에서 혼자서 목소리를 내면 그것이 힘을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행태를 비난했다. 그는 "지난 1년 동안 많이 일어났고, 직접 경험했다"면서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에다 언론은 아무런 검증 없이 받아쓰기를 해왔다"고 말했다.

 

"제 경우를 보자. 배임사건의 경우에, 고발자의 주장만 갖고 검찰이 그 쪽만 집중적으로 수사를 하고, KBS의 주장은 거의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 법원 판결(배임혐의 무죄선고)은 그런 검찰의 주장을 조목조목 배척했다. 법조 생활 40년한 선배는 '형사사건 판결문이 검찰을 조목조목 반박한 판결문은 처음 본다고 했다.

 

그만큼 검찰의 주장이 상식에서 어긋나고 무리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주장이 언론에 다 보도가 되면서 저는 엄청난 중죄인되었고, 파렴치범이 되었다. 재판 받기 전에 기정사실화되고, 적대적인 신문들은 사설과 칼럼을 썼다. '미네르바 사건'과 '피디수첩 사건'도 그랬고, 극단적으로 보여 준 게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다."

 

 

"검사와 판사도 국민이 선출해야 하는 것 아닌가"

 

정연주 전 사장은 검사와 판사도 국민이 선출할 수도 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정치권력은 국민의 선거에 의해 바꿀 수도 있지만, 국민에 의해 위임받은 기관들은 통제할 방법이 없다. 그런데 미국의 주에서는 검찰총장과 판사도 투표해서 뽑더라. 판사 중에도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이상한 판결이 내려지고 하는 경우가 있다. 제도에 의해 위임된 권력들이 잘못 행사하지 못하도록 국민이 견제하도록 해야 한다. 요즘 하도 답답하니, 검사와 판사들도 국민들이 선출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이런 논의들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언론에서 신뢰도를 높이는 것은 비판적 기능이다"며 "비판적 기능을 할 때 신뢰도가 올라간다. 최근 KBS에 비해 상대적으로 MBC가 신뢰도를 회복하는 것은 비판 기능을 한다고 국민들이 보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취재보도에 있어 '반론'의 중요성을 강조한 그는 "기자 스스로 신중하고 정도를 걷도록 노력해야 한다"면서 "권력에 대해서도 비판함과 동시에, 우리 스스로 겸허하게 돌아보며 기사나 프로그램 때문에 뜻밖에 인권침해는 없는지, 사생활 침해는 없는지, 인격을 훼손하는 것은 없는지 살펴야 한다"고 설명했다.

 

"언론인은 수많은 유혹을 끊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촌지 경험에 대해 설명한 그는 "스스로 당당한 저널리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그런 유혹을 단호하게 단절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그것을 혼자 힘으로 극복하려고 하지 말고 동지들과 함께 하려고 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태그:#정연주 전 KBS 사장, #미디어법, #진보매체, #마산MBC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