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내 고장 칠월(七月)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및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을 함뿍 적셔도 좋으련 …"

시인 이육사 선생은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이라고 읊었다. 청포도가 익어간 7월 지나 모기 입도 비틀어진다는 처서 지나고 나니 9월이다. 가을 결실을 위해 모든 만물이 알차게 영그는 9월, 우리 동네 어귀에서는 고추가 익어간다.

부평 문화의거리 입구(시장로터리)에서 시작 된 고추 말리기. 부평구가 구의 상징 조형물로 세워 둔 '춤추는 풍물꾼'아래로 고추는 익어간다.
▲ 고추말리기 부평 문화의거리 입구(시장로터리)에서 시작 된 고추 말리기. 부평구가 구의 상징 조형물로 세워 둔 '춤추는 풍물꾼'아래로 고추는 익어간다.
ⓒ 김갑봉

관련사진보기


문화의 거리 옆 인근 건축 공사현장 담벼락에 내 걸린 고추.
▲ 고추말리기2 문화의 거리 옆 인근 건축 공사현장 담벼락에 내 걸린 고추.
ⓒ 김갑봉

관련사진보기


육사 선생은 내 고장 칠월에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힌다 읊었으나 우리 동네에는 그 같은 포도밭은 없을뿐더러 사방을 둘러보아도 콘크리트 벽이니 먼데 하늘이 알알이 들어와 박힐 수는 더더욱 없는 노릇이다.

문화의거리에는 7개의 노점이 있다. 이 7개 노점을 비와 눈으로부터 지켜주는 지붕 처마에는 고추가 고드름처럼 매달렸다. 빨간 고드름이 주렁 주렁 매달려 벌겋게 익어가고 있다.
▲ 고추말리기4 문화의거리에는 7개의 노점이 있다. 이 7개 노점을 비와 눈으로부터 지켜주는 지붕 처마에는 고추가 고드름처럼 매달렸다. 빨간 고드름이 주렁 주렁 매달려 벌겋게 익어가고 있다.
ⓒ 김갑봉

관련사진보기


문화의 거리 내 모든 노점의 안쪽은 사진처럼 고추로 물들었다. 고추 때문인지 불빛은 저녁 무렵 홍등(?)이 되고 만다. 손님들도 다들 신기한 눈으로 고추를 바라보며 놀랜다.
▲ 고추말리기3 문화의 거리 내 모든 노점의 안쪽은 사진처럼 고추로 물들었다. 고추 때문인지 불빛은 저녁 무렵 홍등(?)이 되고 만다. 손님들도 다들 신기한 눈으로 고추를 바라보며 놀랜다.
ⓒ 김갑봉

관련사진보기


그래도 오늘 일터를 일구는 사람들은 올 김장 때 쓸 고춧가루를 만들기 위해 고추말리기에 여념 없다. 이로 인해 지난 번 지붕공사로 부평 '문화의거리' 명물로 재탄생한 노점상 구간에 진풍경이 펼쳐진 것.

고추말리기의 진수다. 드디어 고추가 가로등 위에도 매달렸다. 가장 높은 곳에서 해빛을 받는 저 고추는 더 맛있을까? 가로등 위에 매달린 고추가 가로등의 목걸이 마냥 걸려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 고추말리기5 고추말리기의 진수다. 드디어 고추가 가로등 위에도 매달렸다. 가장 높은 곳에서 해빛을 받는 저 고추는 더 맛있을까? 가로등 위에 매달린 고추가 가로등의 목걸이 마냥 걸려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 김갑봉

관련사진보기


어느 상인은 가로수에 내걸었고, 또 어떤 상인은 가로등에도 내걸었다. 심지어 공사 담벼락과 옷걸이 걸이에도 고추가 걸렸다. 노점 전체를 휘돌아 감싸는 지붕 처마는 아예 고추로  감겨 있다.

고추가 무슨 빨래도 아니고...행어에 걸리기 전 옷걸이에 먼저 가지런히 정렬 된 상태로 고추를 걸었다. 그 뒤 마치 마른날 빨래 널 듯이 볕 잘드는 곳에 내 놓아 고추를 말리고 있다.
▲ 고추말리기 고추가 무슨 빨래도 아니고...행어에 걸리기 전 옷걸이에 먼저 가지런히 정렬 된 상태로 고추를 걸었다. 그 뒤 마치 마른날 빨래 널 듯이 볕 잘드는 곳에 내 놓아 고추를 말리고 있다.
ⓒ 김갑봉

관련사진보기


처마뿐만 아니라 안에도 고추가 주렁주렁 매달려 국수 한 그릇으로 허기를 달래려온 이들에게도 정겨움을 선사하고 있다. 가로수에 걸려 햇살을 받아 더욱 반짝이는 고추는 꼭 나무 열매처럼 매달렸다. 

고추말리기 마지막. 고추는 이제 나무 위로 올라갔다. 마찬가지로 옷걸이에 먼저 정렬해서 건 다음 이를 다시 나무가지에 내 걸었다. 이 나무에 고추를 말리고 있는 상인은 햇빛 보다 그늘에서 말리는 고추를 더 좋아하는 모양이다.
▲ 고추말리기8 고추말리기 마지막. 고추는 이제 나무 위로 올라갔다. 마찬가지로 옷걸이에 먼저 정렬해서 건 다음 이를 다시 나무가지에 내 걸었다. 이 나무에 고추를 말리고 있는 상인은 햇빛 보다 그늘에서 말리는 고추를 더 좋아하는 모양이다.
ⓒ 김갑봉

관련사진보기


문화의거리상인회 양기용 사무국장은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보는 사람들이 다 덜 보고나선 흐뭇해하고 좋아한다"며 "그저 고추를 잘 말리려고 이 궁리 저 궁리 끝에 그리 한 모양인데 문화의 거리를 찾는 시민들이 보고선 좋아하니 덩달아 우리기분도 좋다. 올 가을엔 좋은 일이 있을 런지도 모를 일"이라고 웃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부평신문에도 실릴예정입니다.



태그:#고추말리기, #고추, #부평, #문화의거리, #노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