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진 스님은 30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남일당 건물에 마련된 희생자 분향소에서 분향한 뒤 인사말을 하고 있다.
 명진 스님은 30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남일당 건물에 마련된 희생자 분향소에서 분향한 뒤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장윤선

관련사진보기


"제가 너무 속상해서 그래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잖아요. 신부님들, 만날 거리에서 얻어터지는데, 같은 수도자로서 참 죄송했어요. 기도 중에라도 와볼까 고민했지요. 천일기도 하는 동안 신도들이 모아준 것, 기도 끝나는 오늘, 그것도 드리고 인사도 드려야지요."

무더위가 숨을 거둬가는 팔월의 마지막 일요일, 찬비는 아스팔트를 적셨다. 오전 내내 비가 내리더니 명진(59) 스님의 천일기도 회향법회가 끝날 때쯤 맑게 개기 시작했다. 명진 스님은 젖은 땅이 채 마르기도 전에 서울 강남 봉은사를 떠났다. 천일기도 끝에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용산참사 현장이었다. 

중생이 아프면 보살도 아프다.
중생이 괴로우면 보살도 괴롭다.
중생이 즐거우면 보살도 즐겁다.

명진 스님은 천일을 하루같이 매일 부처님께 '일일 천배'를 올리며 단 하루도 이 법문을 잊은 적이 없다. 발바닥이 시린 겨울, 등줄기에 땀이 솟는 여름에도 이 법문만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졌다.

"금단청, 은단청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라도 부처님의 올바른 가르침이 없다면 대웅전이 아닙니다. 막대기 하나 꽂아놓은 곳이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이 있다면 거기가 바로 대웅전인 것입니다. 중생이 고행을 벗어나는 해탈불교, 이뤄나갈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이 땅에 부처님과 같은 대스승의 위대한 발자취가 퍼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명진 스님이 30일 용산참사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명진 스님이 30일 용산참사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 장윤선

관련사진보기


무법천지, 깡패의 나라

이 말을 끝으로 천일기도 회향법회를 마친 명진 스님다웠다. 신도 50여 명과 함께 버스에 오른 명진 스님은 용산으로 가는 길목마다 달라진 풍광에 심취했다. 주말 길이 꽉꽉 막힌 이태원 도로에선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촬영지인 깎아지른 계단을 바라다보기도 했다.

명진 스님은 "깡패들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게 무법천지 아니냐"며 "생존권 때문에 시너를 짊어지고 망루를 설치하고 살겠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을 불타 죽게 만든 게 무법천지가 아니고 무엇이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힘없는 사람들은 모조리 고소고발해서 옴짝달싹 못하게 하고, 힘 있는 사람들은 법망을 다 피해가게 하는 것. 그게 정상적인 법치인가요? 저는 천성관 검찰총장 같은 사람, 뇌물죄로 구속 수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법이 만인 앞에 평등해야 존경받고 무섭고 그런 거지, 힘 있는 사람들 다 빠져나가는 법이 무슨 법입니까. 깡패세계와 같은 것 아니에요?"

명진 스님은 용산문제는 철저히 생존권과 관계된 것이라고 개탄했다. 자기 터전을 빼앗기게 됐는데 울분에 차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냐는 것이었다. 그들이 시너를 지고 망루를 설치한 것은 정말 죽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살려달라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었다며 분루를 삼켰다.

"저항의 최후수단이었는데 그걸 공권력이 투입해서 무리하게 진압한 거예요. 그래서 사람이 5명이나 죽게 된 거 아닙니까. 경찰도 죽었어요. 경찰 아버님이 제게 찾아와서 '저도 서민으로서 그분들 심정 이해한다'고 하셨어요. 공권력이 이럴 수 있냐는 거죠. 정말 너무 억울한 게 바로 용산 분들입니다."

용산참사 유가족들에게 1억원 기탁

명진 스님이 용산참사 뒤 불탄 망루를 올려다본 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명진 스님이 용산참사 뒤 불탄 망루를 올려다본 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장윤선

관련사진보기

명진 스님은 "현 정권에서 유일하게 거짓말 안 하고 본인의 위장전입 사실을 인정한 김준규 검찰총장은 그나마 청백리에 속하는 수준"이라며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검찰총장이 되려면 수사기록 3000쪽을 빨리 내놔야 한다"고 밝혔다.

검찰이 수사기록 3000쪽을 내놓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의혹은 확대재생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명진 스님은 "검찰이 스폰서들로부터 떡값이나 받는 애완견이라는 오명을 씻기 위해서라도 김 검찰총장은 시급히 이 문제부터 풀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PD수첩> 작가 개인의 이메일까지 뒤지고 공개하는 분들이 정작 자기들이 수사한 기록을 내놓지 않는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잖아요. 무엇이 두려운가 묻고 싶어요. 민중에게는 칼날 같은 법적용을 하면서, 돈 있고 권력 있는 분들에게는 봄바람 같은 법이 되면 그건 깡패세계와 다를 바 없지요."

무엇보다 명진 스님은 죽음의 원인도 밝혀내지 못한 채 7개월이 넘도록 장례식도 치르지 못하고 있는 건 죽음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질책했다. "천인공노할 만행이나 벌을 받아야 할 나쁜 짓이 있지 않고야 왜 수사기록 3000쪽을 공개하지 못할까 계속 의문이 든다"는 게다.

"제가 천일기도를 올릴 때 참 많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남대문이 불탔고, 용산참사가 벌어졌고, 쌍용자동차 사태가 평택에서 일어났지요. 노무현-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이 서거하셨고. 수많은 일들 가운데 제가 가장 가슴 아픈 건 바로 용산문제였어요."

스님의 눈물

명진 스님은 이날 두 번 울었다. 천일만의 첫 눈물이었다. 서울 용산 순천향병원에 마련된 빈소에서 안경을 벗고 눈물을 훔쳤다. 한강로2가 남일당 건물에 마련된 용산참사 희생자 분향소에서는 연신 흐르는 눈물을 미처 닦아내지 못할 정도였다.

천일을 하루같이 매일 기도하며 무엇이든 담담히 견뎌낼 정도로 굳어졌던 마음이 용산 앞에서 허물어진 게다. 명진 스님은 "이명박 정권은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한 정권"이라고 분노했다. 이어 "용산사건은 많은 사람들이 잊으면 안 되는 사건"이라며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명진 스님은 이날 고 이상림씨의 부인 전재숙(68)씨에게 천일동안 개인적으로 모은 1억원을 위로금으로 전달했다. 방문 일정을 마치고 버스에 오르던 스님은 도저히 발걸음을 뒤로 할 수 없었던지 연신 눈물을 훔치는 전씨를 한동안 안아주었다.

명진 스님은 30일 서울 순천향병원에 마련된 빈소에 들러 유족들을 위로했다.
 명진 스님은 30일 서울 순천향병원에 마련된 빈소에 들러 유족들을 위로했다.
ⓒ 장윤선

관련사진보기


"이명박 대통령은 서민놀이 그만두시라"

명진 스님은 또 "한손에 떡볶이 들고 시장바닥을 돌아다니는 게 서민정책이냐"며 "이명박 대통령이 정 친서민 정책을 쓰고 싶다면 가장 먼저 용산에 와서 희생자들을 위로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명진 스님은 "동방예의지국에서는 장례를 치르려고 빚을 내고 제사음식을 마련하기 위해 며칠씩 굶는데, 그런 우리가 죽음에 대해 이리도 몰상식하고 예의 없게 8개월째 방치할 수 있는 것이냐"고 개탄했다.

또한 "이명박 대통령의 친서민행보는 병정놀이, 꽃놀이, 기차놀이와 다를 바 없는 '서민놀이'에 다름 아니"라고 질책하기도 했다.

명진 스님은 "이제 유가족들의 피눈물을 닦아주어야 한다"며 "진실한 사과와 수사기록 공개로 성공한 대통령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당부했다.

또한 명진 스님은 "천일기도 끝에 부처님의 자비와 사랑을 설파해야 하는데 용산에 와보니 도저히 그게 되지 않는다"며 "아무래도 내가 죄가 많은 것 같다"고 자책했다.

명진 스님은 오는 3일, 천일기도 중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영결식에 참석하느라 산문을 나섰던 하루를 보충하기 위해 강원도의 한 선방으로 가서 두 달간 참선할 예정이다. 11월 1일 평소 지내던 다래헌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선방에서도 천일기도 때와 마찬가지로 새벽 3시 새벽예불과 운력(청소), 사시예불과 저녁예불은 이어진다. 스님의 기도정진은 박해받는 중생의 해탈을 위한 것. 스님은 늘 고행하는 중생의 해탈을 위해 깊은 기도를 올리는데, 중생의 삶은 왜 이렇게 더욱 고단해지는 것일까.


태그:#명진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2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