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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의 동의 필요없는 "슈퍼 국책사업" 탄생하나?

 

김태환 제주특별자치도지사의 소환투표가 15일을 남겨놓고 있다. 하지만 여론은 조용하다. 정당은 10월 재보선에 맞춰 정치행보를 하느라 관심 기울일 여지가 없고, 시민들도 반응이 별로 없다. 대체로 "동네 선거"로 생각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이번 제주도지사 소환투표가 10월 재보선보다 의미가 큰 이유가 세 가지나 있다.

 

첫째로 이번 제주도지사 소환투표함을 열지 못하고 김태환 소환대상자가 도지사 직무에 복귀하게 되면 "국책사업"은 주민의 동의 없이 추진할 수 있다는 잘못된 신호를 보낼 공산이 크다. 지금까지 이명박 정부와 김태환 도지사가 줄기차게 주장한 것은 "국책사업"과 "주민동의"의 무관성이다. 한마디로 국책사업은 주민의 동의가 필요없다는 것이다.

 

김태환 소환대상자는 "군사기지 설치는 국가안보 사업이므로 주민투표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김태환 도지사의 소환투표 발의가 거의 확실시된 시점에 "국책 사업을 집행하는 지사를 주민 소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발언을 했다.

 

이에 대한 비근한 예로 2003년 부안의 "방폐장 유치" 역시 국책사업이었지만 주민의 동의를 받고 격론 끝에 유치작업을 마무리했다. 제주 해군기지와 방폐장이 모두 국책사업인데, 해군기지만큼은 주민의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되는 "슈퍼 국책사업"이라는 모순이 생긴다. 이 모순을 바로잡는 것이 제주 도지사 소환투표다. 소환투표함이 개표요건을 갖추지 못하고 도지사가 현직에 복귀하면 이것이 좋지 못한 선례가 돼 또 다른 "슈퍼 국책사업"(주민의 동의가 필요 없는 국책사업)이 남용될 위험이 크다.

 

제주도지사 소환투표는 중앙정부와 지자체 관계설정의 이정표

 

둘째, 이번 도지사 소환투표는 지방자치단체가 중앙정부의 부속물로 전락될 수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에 대한 강력한 문제제기 성격을 갖고 있다. 김태환 제주도지사는 이명박 정부의 하수인에 불과하다. 자신을 도지사로 만들어준 주민들을 존중하기보다는 이명박 정부의 눈치만 살피기 급급했다.

 

제주 서귀포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사태를 심층취재한 MBC <PD수첩>은 단독 입수한 소위 '해군기지 유관기관 회의록' 내용을 자세하게 소개했다. 이에 따르면 제주도와 해군, 국정원, 심지어 경찰 등이 '짬짜미'로 주민들의 분열조장에 관여해왔음이 밝혀졌다. 물론 이것을 지시한 최종 결재권자는 이명박 대통령이다. 거기서 나온 증언들과 유관기관이 보여준 행태들을 보면 얼마나 집요하고 노골적으로 여론을 왜곡했는지 알 수 있다.

 

'분열은 좋은 상황'

'걸림돌은 제거하고 가야 한다'

 

실제로 2007년 5월 이후 강정마을 내에서 발생한 고소.고발이 30여 건에 이를 정도지만 이처럼 갈등이 극심한 상황에서도 국방부, 해군, 제주도정 어느 곳도 적극적인 갈등 해결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사실상 고소 고발을 부추긴 셈이다.

 

이 과정에서 상처를 받은 주민들을 위로하고 보듬어주어야 할 제주도지사는 오히려 분열을 조장했다. 특히 제주도지사에 대한 소환투표가 발의된 이후 복지시설의 방문으로 선관위에 의해 위법 판정을 받고(제주의소리), 도 산하 조직 공무원들은 김태환 지사가 참석한 행사에서 "(주민투표) 가지 말자"라고 건배사를 하는 등(오마이뉴스) 전혀 반성하는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행정부와 주민의 가교 역할을 해야 할 도지사가 직무를 심각하게 저버린 것이 소환투표의 근본 이유다.

 

10월 국회의원 재보선보다 8월 지자체장 소환투표가 중요한 이유

 

셋째, 이번 소환투표는 10월의 재보선과 달리 시민의 현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생활밀착형 선거다. 10월 재보선에서 야당 의원이 몇 명 뽑히는 것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특히 내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앞두고 지자체 단체장 후보들에게 주민의 경고를 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선거 상식을 바꿀 수 있다. 지자체 단체장에 당선하더라도 주민의 의견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했을 경우 제주도지사처럼 소환될 수 있다는 경고는 정당 공천권에만 눈치를 보던 지자체 후보들이 드디어 주민 눈치를 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한편 지방자치단체장 소환투표의 경우 재보선 투표와 달리 33% 이상이 투표에 참여하지 않으면 투표함 자체를 열어볼 수 없다. 김황식 하남시장의 경우 화장장 건립추진과 관련해 2007년 12월12일 소환투표 발의가 이뤄졌지만 투표율이 31.1%(기준 33.3%)에 그쳐 투표 자체가 무효화됐다.

 

8월 제주도지사 소환투표는 단지 제주도민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 시민의 중차대한 문제다.


태그:#주민소환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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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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