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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일을 끌어온 쌍용차 파업이 극적으로 타결되어 회생을 향한 한 고비를 지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극단적인 노사갈등은 비단 쌍용차만이 아닌, 제조업 전반의 문제이다. 근원적 처방 없이는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하는 데 장애가 따를 수밖에 없다.

 

지난 6일 쌍용차 파업이 종결된 후 나는 MBC <100분 토론>에 참석하였다. 노동경제학을 전공한 김태기 단국대 교수, 배상근 전경련 상무, 이수호 전 민주노총위원장, 정갑득 금속노련 위원장과 함께였다. 그 자리에서 나는 노사 어느 쪽 입장도 지지하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소회를 모아 한국 노사관계의 미래에 관해 고민해 왔던 생각들을 꺼내본다.

 

인정하자, 노사갈등이 '필연적'임을


노사갈등은 사용자와 노동자의 근본적인 입장 차이에서 발생한다. 사용자는 노동자를 생산요소의 하나로 인식한다. 토지, 설비투자, 노동 등의 생산요소 가운데 가장 유동성이 높은 것은 당연 '노동'이다. 호황기에는 고용을 늘려 증산을 하고 불황기에는 가장 먼저 줄여 감산에 나선다.

 

반면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직장에 제공하고 대가를 얻는 존재이기는 하나 동시에 직장 자체가 삶의 전부이다. 더구나 우리나라처럼 직장을 잃고 난 뒤 다른 일자리를 구하는 게 쉽지 않고 사회안전망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는 나라에서 노동자에게 해고란 삶의 포기를 강요받는 것과 다름없다.

 

작업장을 통해 돈을 벌려고 하는 사용자와 작업장이 삶 자체인 노동자, 서로 다른 '노동'에 대한 본질적인 괴리 앞에서 노사갈등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회사가 일시적인 경기 침체가 아닌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면, 노사 간 입장 차이는 더욱 극명하게 갈려 정상적인 대화로써 원만한 합의점을 도출하기란 쉽지 않다. 회사가 생존하지 못하면 고용도 보장받을 수 없다는 인식 자체는 공유하지만 서로의 시각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여 결국 노사문제는 윈윈의 상호협력이 아닌, 승자-패자의 게임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는 정부가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노와 사만으로는 해법을 차지 못하는 최악의 국면에서 제3자, 즉 정부가 역할을 해야 한다. 정부가 나서서 양측 모두에게 윈윈의 해법을 찾아줘야 한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이 문제를 쌍용차에게만 미뤄놓고 아무런 중재 노력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법 파업에 엄정하게 대처한다는 명분으로 공권력 투입 입장을 견지했다. 쌍용차 노동자들을 일자리와 삶을 잃게 되는 보호해야 할 국민이 아니라, 쌍용차라는 작업장의 생산요소로만 본 것이다.

 

공급 과잉은 제조업 전반의 문제다


쌍용차 문제는 쌍용차만의 문제로 봐서는 안 된다. 전 세계 자동차 산업의 구조재편 과정에서 나타나는 진통으로 봐야한다. 2009년 세계 자동차 공급능력은 총 9천4백만 대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반면 수요는 6천1백만 대에 그칠 전망이다. 어림잡아 현 생산능력의 1/3이 과잉생산 능력이다. 더구나 세계 자동차 시장은 친환경 차량이라는 패러다임 변화가 함께 진행 중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공급과잉 해소와 구조재편 과정에서 쌍용차 문제가 불거진 것이고, GM-대우, 현대-기아도 이런 문제에서 그리 자유로운 상태는 아니다.

 

이미 수 년 전부터 우리나라의 주력 제조업 분야는 공급과잉 현상을 경험하는 중에 있다. 화학, 정유, 철강 등 거의 전 업종이 해당된다. 지난 2008년부터 신조 수요가 급감하고 있는 조선 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더구나 공급과잉의 직접적인 원인이 세계의 공장으로 우뚝 선 중국 때문이고, 자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중국이 제조업 투자를 계속 늘려가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공급과잉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질 것이 분명하다. 즉 쌍용차와 같은 노사분규는 우리나라 주력 제조업 전체에서 심심치 않게 목격하게 될 것이다.

 

이번 서브프라임 사태와 같은 커다란 위기가 지나고 나면 세계 각국의 경제력 지도, 산업 지도, 그리고 기업의 순위는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어떤 기업은 만년 꼴찌에서 1위로 도약하는가 하면 어떤 기업은 이름도 찾아볼 수 없는 도산의 운명으로 전락하게 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포디즘(Fordism)이라고 불리는 열차에 마지막 티켓을 잡고 올라탄 우리 경제도 질서재편 이후 새로운 세계 경제체제에서 어떤 순위를 차지하게 될지 알 수 없다.

 

자동차, 산업정책 차원에서 접근해야


이런 글로벌 재편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는 정부가 우리 자동차 산업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 즉 산업정책의 실종에 있다. 과연 정부는 지금의 구조재편 이후 세계시장에서 우리 자동차 산업이 나아갈 방향을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가. 현대-기아차 단일 구조로 가져갈 것인가, 아니면 경쟁체제로 가져갈 것인가,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은 부품업체에 있는데 단일 완성차 메이커 체제로 가져갈 때에도 부품업체의 경쟁력이 유지될 수 있는가!

 

이런 문제에 대한 해답은 미국이 왜 GM과 크라이슬러에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지원하는지 생각해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선진국들은 수백억 달러에 달하는 공적자금을 투입하면서 자국산업을 살리려고 애를 쓰는데, 쌍용차와 또 향후 여러 제조업에서 생겨날 제2, 제3의 쌍용차를 우리 정부는 그냥 지켜보고만 있을 것인가.

 

평택을 폐허도시 플린트로 만들 것인가


한편으로는 쌍용차가 없어진 평택시는 어떻게 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미국 GM의 공장도시 플린트(Flint)市는 1988년 GM이 11개 공장을 폐쇄하고 멕시코로 이전한 이후에 유령도시가 되어버렸다. 3만 명의 노동자가 실업상태에 빠지면서 실업률이 25%나 증가했고, 자살, 배우자 학대, 알코올 중독, 디트로이트와 마이애미를 능가하는 폭력 범죄율 등의 사회문제를 겪게 된다. 2만8천 명의 시민들이 자신들의 집을 버리고 남쪽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고, 그 바람에 도시는 버려진 빈집들로 폐허로 변하고 만다. GM의 이런 조치가 한 도시를 급작스럽게 파괴한 것이다.

 

결국 이러한 문제들은 정부의 영역이며, 또 정치의 영역이다. 과연 우리 정부는 자동차산업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 청사진에 따라 쌍용차 문제를 어떤 방법으로 처리할 지를 봐야 하는데, 그저 노사갈등의 문제로만 보고 있다. 노동자들은 그저 생산요소의 한 부분으로만 바라보고 있다.

 

예로부터 중국을 보면, 하나의 왕조나 통치 패러다임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경우 선양(禪讓) 또는 방벌(放伐)이 반복되는 역사였다. 그런데 역사를 짚어보면 선양보다는 방벌의 경우가 많이 목격되고 있다. 정말로 아쉬운 일이다.

 

노사의 진정한 파트너십이란


파트너십(Partnership)이란 '성공의 몫도, 실패의 부담도 함께 나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이런 인식의 바탕에서 경영을 바라보고 있는가. '무리한' 임금인상 요구라는 말 자체가 가치중립적이지 않으며, 파트너십과 거래가 먼 것이다. 파트너십은 노사 상호간의 신뢰와 진정성이 바탕이 돼있을 때만 가능하다.

 

라이벌(Rival)의 어원은 강(River)에서 나왔다.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부족이 대치하면서 더 많은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 경쟁하는데, 그 경쟁하는 두 부족은 경쟁이 아무리 치열해지더라도 서로를 죽이기 위해서 강에 독을 타지는 않는다. 독을 타는 그 순간 자기도 그 물을 마시고 죽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 노사도 라이벌 관계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대립을 하더라도 회사라는 이름의 강에 독을 타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사뭇 다르다. 우리 노사는 서로를 라이벌이 아닌 적(Enemy)으로 보고 있다. 이번 쌍용차 파업 중 노조는 사업장 자체가 자칫 날아가 버릴 수 있는 도장 공장을 점거했다. 이에 대응한 사측은 전원을 내리면 작업장에 모든 도료 파이프에 문제가 생겨서 공장을 못 쓰게 만든다는 것을 알면서도 단전을 감행했다. 양쪽 모두가 강에 독을 타버린 것이다.

 

해결은 새로운 노사관계의 재설정으로 접근해야 한다. 결국 사용자는 경기침체에 대응해 비용을 줄여야하는 부담이 있고, 노동자는 해고로 인해 삶 자체의 포기를 강요를 당하는 일이 없게 하면 될 일이다.

 

쌍용차의 무급휴직과 잡셰어링(Job Sharing)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최장 근로시간을 가진 나라이다. 2007년 기준 OECD 국가의 평균 근로자 근로시간은 연 1천768시간이다. 가장 적은 나라는 네덜란드 1천392시간이고, 평균에 가까운 나라는 미국 1천794시간이다. 근로시간이 가장 많은 나라는 우리나라로 2천316시간에 달한다. OECD 최장의 근로시간을 가진 나라로서 어차피 노와 사가 직면해 있는 문제는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근원적인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그 대안은 잡셰어링(Job Sharing)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신입사원 임금 삭감 등의 임기응변적 방식으로 접근해서 정책의 효과성과 신뢰성을 모두 잃고 있다. 쌍용차가 무급휴직이라는 것을 일정 도입한 것은 획기적인 것이다. 말하자면 일종의 잡셰어링을 하기로 한 것이다.

 

다만 잡셰어링을 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회사로서는 무급휴직을 실시해도 들어가는 기본적인 비용이 있다. 노동자의 입장에서도 완전 무급상태로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겠는가.

 

따라서 정부가 무급휴직을 실시할 경우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어차피 실업수당으로 지급하나, 실업을 하지 않도록 지원을 하나 마찬가지다. 실제 노동부는 일반 제조업이 불황기에도 해고를 하지 않고 휴직을 할 경우 지원해 주는 제도가 있다. 이 재원이 부족하면 정부가 국회와 상의하여 예산을 증액하는 등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비정규직 문제, 적극적으로 해법을 찾아야만 한다


노사 간의 문제를 고민하다보면 비정규직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은 유연성은 유지하되 동일직무에 대해서 최소한 동일임금은 보장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고용보장이라는 것은 사용자가 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투쟁을 통해서 사장으로부터 고용보장 각서를 받는다고 해도 시장에서 물건이 안 팔리면 도리가 없는 것이다. 즉 '고용을 보장해주는 것은 시장(市場)이지 사장(社長)이 아닌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노동의 유연성은 필요하고 노조도 그 점은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동일직무 동일임금' 즉 차별금지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조합원이건 비조합원이건, 정규직이건 비정규직이건 동일 작업장에서 동일 직무를 수행할 때 차별이 있어서는 곤란하다. 시장이 고용을 보장해 준다는 의미에서 사용자는 노동성의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

 

비정규직 임금이 더 높은 게 맞다

 

그러면 그 대가는 무엇인가. 사업자에게 고용의 유연성이 보장된다는 것은 노동자에게는 고용의 안정성이 줄고 자신의 소득에 대한 불안정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불확실성에 대한 대가가 따라야 된다. 즉 동일직무를 비정규직이 할 때에는 정규직보다 더 많은 급여를 지불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 사용자들은 비정규직으로 고용의 유연성도 확보하고 또 그들에게는 급여도 적게 지불하고 있다. 사용자들은 왜 강성노조가 생겨나는지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 반대로 노조 역시 왜 조직률이 올라가지 않고 정체됐나 생각해봐야 한다. 사용자는 노동자에 대한 배려가 없고, 노조 역시 비노조원이나 비정규직에 대한 배려가 없이 모두가 자신들의 기득권 지키기에만 몰두했기 때문이다.

 

배려는 '상대적'으로 더 많이 가진 자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용자가 고용의 유연성과 임금 삭감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면 노동자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도 높아지고 임금소득도 줄어들어 두 가지를 다 잃는 셈이다. 과연 파트너십이 구축될 수 있을까. 기득권을 가진 노조가 비노조원이나 비정규직을 홀대한다면 그 또한 파트너십이 유지될 수 있을까. 함께 살겠다는 마음,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만이 새로운 노사관계의 미래를 여는 유일한 열쇠이다.


태그:#쌍용차, #비정규직, #노사관계, #공급과잉, #JOB SHA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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