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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북한 방문과정에서 가장 주목받은 것 중의 하나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문제였다.

 

김 위원장은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통해 "앞으로 1년 정도밖에 살 수 없을 것"(워싱턴타임스), "환각증세설"(남성욱 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 등의 관측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김 위원장은 클린턴 전 대통령과 1시간 15분 동안 회동하고 이어 2시간의 만찬을 나누는 등 3시간 15분 정도를 함께했다. 여전히 국제사회의 '거물'인 클린턴 전 대통령을 상대로, 그것도 북핵문제와 북미관계 등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주제를 놓고 장시간 대화를 나눈 것이다. 그는 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 자격으로 미국 여기자들에 대한 '특별사면'을 지시해 자신이 북한의 지배자임을 확인시켰다.

 

"김정일 건재, MB정부의 북한 붕괴론 시각 변화 요구"

 

이 같은 김 위원장의 건재는 이명박 정부엔 대북정책에 대한 '근본적 도전'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 외교안보전문가는 "클린턴의 방북에서 확인된 김정일의 건재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의 근저에 깔려있는 북한 붕괴론적 시각에 변화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진단했다.

 

지난해 8월 김 위원장의 와병설이 나온 뒤, 한나라당에서는 '북한 급변사태'에 대한 논의를 공론화했고, 이는 개념 수준의 군사계획인 '5029'를 작전계획으로 격상시키라는 요구로 모였다. 정부도 이에 화답했다. 국방부와 통일부를 통해 공개석상에서 "국지적 도발이든 전면전이든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계획을 발전시키고 있으며, 정부 관련 부처와 긴밀히 협조하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이어 올해 4월에는 월터 샤프 한미연합사령관이 "김태영 한국군 합참의장과 함께 북한의 급변사태에 관한 계획을 발전시켜왔으며, 우리는 이를 준비해 왔고 연습했다"고 공개했다. 미국 주도의 '대북 선제공격론'과 '북한 점령론'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작전계획 5029'가 사실상 완성됐음을 시사한 것이었다.

 

MB정부, 김정일 유고상황 대비 강조... 주한미군사령관, 작계 5029 완성 시사

 

이명박 대통령도 이와 관련해 올해 6월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한 시나리오와 그에 대한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고 말했다.

 

올해 6월 27일, 국방부가 공개한 '국방개혁기본계획(일명 국방개혁 2020)' 수정안에는 북한 정권 붕괴 등 북한 급변사태 시 안정화(치안유지) 작전 등에 대비해 지뢰 및 급조 폭발물(IED) 방호차량, 바퀴 달린 차륜형 장갑차 등을 도입한다는 계획도 담았다. <조선일보>는 이를 "우리 군이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 무기체계 도입을 본격 추진하는 것은 처음으로, 북한 급변사태 대비계획인 '개념계획 5029'를 구체적 작전계획 수준으로 뒷받침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북한에 대한 흡수통일을 시사하는 이 대통령의 발언도 나왔다. 11월 미국 방문에서 한 기자간담회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 통일이 궁극 목표"라고 말한 것이다. '한미동맹 공동비전' 문안에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원칙에 입각한 평화통일"이라는 문안으로 담겼다. 미국이 한국의 주장을 수용한 것이었다. 그는 "하루 세 끼 밥 먹는 것을 걱정하는 사회주의라면 그런 사회주의는 안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올해 3월)고 말해, 북한체제 자체를 부정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드라이브와 달리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통해 김정일 위원장이 조만간 퇴장할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북한 붕괴론의 또 하나의 근거는 북한경제파탄론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실제와는 큰 차이가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6월 말 발표한 '2008년 북한 경제성장률 추정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2007년에 비해 3.7% 성장했다. 같은 해 남한의 GDP 증가율 2.2%와 비교하면 1.5%포인트 높은 수치다. 북한의 GDP는 1999년부터 줄곧 플러스 곡선을 그리다가 2006년부터 2년 연속 감소한 뒤 다시 지난해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섰다. 경제운용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국제제재 가해져도 상당 기간 버틸 것"... <뉴스위크> "성장기반 갖춰가고 있다"

 

북한 경제의 내구성을 인정하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북한경제전문가인 배종렬 한국수출입은행 연구위원은 지난 7월 '수은북한경제' 여름호에 발표한 '북중간 광물성생산품 무역과 북한의 선군경제건설론-2009년 신년 사설의 금속공업 강조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에서 "북한이 경제의 중핵인 금속공업을 돌릴 수 있는 여건"이라고 분석했다.

 

논문은 북한 금속공업의 핵인 김책제철연합기업소의 운영을 위해 필요한 철광석 공급이 무산광산(추정매장량 70억톤)에 중국이 진출하면서 원활해지고 있고, 전기공급도 1998년부터 강조된 전력증산에 의해 개선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한 2008년에 북한이 중국에 대한 철광석 수출을 줄였는데, 이는 자체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상황이 이렇게 호전 된 것은 "중국의 대북 투자가 결정적이었다"고 설명했다.

 

논문은 또 "(중공업 중심인) 북한의 내부시스템상 철강산업이 돌아간다는 것은 전체 경제가 가동되고 있다는 의미"라면서 "북한이 올해 신년사설에서 2009년을 강성대국 건설을 위한 '새로운 혁명적 대고조의 해'로 규정함과 동시에 (전력, 석탄, 금속공업, 철도운수) 4대 선행부문 중 금속공업에 중점을 두겠다고 선언한 것은 이런 배경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배 연구위원은 북한의 2008년 무역액이 사회주의권이 붕괴되기 전인 1990년의 41억불보다 15억불 이 증가한 56억불이라는 것을 거론한 뒤, "북한 '선군경제건설론'의 핵심축이 대내적으로는 금속공업, 대외적으로는 대중무역으로 이동했음을 시사하는 것이며, 이는 국제사회의 대북경제제재가 가해지더라도 북한경제는 상당 기간 버틸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도 지난 6월 8일자 'How Kim Affords His Nukes' 기사에서 북한경제에 대해 "산업기반도 무너지지 않았으며, 북한은 주로 중국의 지원을 받아 1990년대 대규모 홍수로 파괴된 광산시설 등을 복구하는 등 낡은 기반시설을 보수해왔다"고 전했다. 또 "특히 철강 생산, 광산, 경공업 제조 등에 주력하며 이제는 회복 수준이 아니라 성장 기반을 갖춰나가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알려진 것처럼 극단적인 경제적 궁핍 상태도 아니며, 불법적인 거래에 매달리지 않고도 미사일과 핵프로그램을 추진할 정도의 자금 능력이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결국, 중국이 강력한 압박에 나서지 않는 한 북한 경제가 완전히 붕괴되지 않을 것이며 현재 북한의 경제난은 심화라기보다는 완화추세에 있다는 것이다.

 

'붕괴론'은 구체적으로, 정책구사는 없이 상대방을 자극하는 것으로 나타나곤 한다. 김연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은 "이명박 정부는 북한을 외교와 정책의 대상이 아니라 이념의 대상으로 보기 때문에, 구체적인 정책고민 없이 '대북지원 핵무장 전용' 등의 막말을 한다"고 분석한다. 북한에 억류 중인 유씨 문제에 대해서도 "어떻게 해야 데려올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 언제 풀어줄 것인지만 생각한다"는 것이다.

 

'북한 붕괴론'은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때 유행했었다. 북미간의 제네바합의에 따라 함경남도 경수로 건설비용의 70%인 32억불을 김영삼 정부가 떠맡은 것에는 북한 붕괴론이 크게 작용했다. 김일성 없는 북한은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오판이었다.


태그:#북한 붕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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