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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어린이 건강캠프'에 참가한 초등학생들이 선생님과 함께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있다.
 '2009 어린이 건강캠프'에 참가한 초등학생들이 선생님과 함께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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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쭉 펴고~ 이제 밑으로 내려가세요. 땅에 닿게~!"

체육 선생님의 쩌렁쩌렁한 목소리. 손을 모아 하늘을 향해 쭉 뻗고 있던 아이들이 허리를 굽혀 이번엔 땅을 짚는다. "아아악", "으윽", "끙끙!" 여기저기서 고통의 신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내려가고~! 옆구리가 아파야 정상입니다. 살이 찐 친구들은 더 힘들어요!"

계속되는 선생님의 불호령과 함께, 초등학생 30명이 한데 모여 몸을 풀고 있다. 지난 6일 경기 안양시 평촌동 한림대성심병원 본관 한마음홀에서 열린 '2009 어린이 건강캠프'의 풍경이다. 이 캠프는 광명시의 '어린이 건강생활실천학교' 사업의 일환으로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진행됐다.

광명시 건강생활실천학교 담당자 이길융씨는 "국민 건강 기금으로 추진하는 사업인데, 광명시만 '음주, 영양, 비만, 절주, 금연' 까지 포괄하는 지역특화 건강 사업을 외부 전문기관에 위탁하고 있다"며 "일부 지자체는 자체 사업을 한다"고 설명했다.

이 캠프에 참여한 아이들은 운동을 하고, 식생활에 대해 배우며 퀴즈를 풀고 영양 간식을 만드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고학년으로 갈수록 비만 늘어... 상처 받기도

어린이 건강캠프에 참가한 어린이가 체성분분석을 하고 있다.
 어린이 건강캠프에 참가한 어린이가 체성분분석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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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에 참가한 아이들 대부분은 자신이 원해서, 자발적으로 참가한 것이라고. 부모의 손을 잡고 병원에 도착한 아이들이 제일 먼저 달려간 곳은 종이컵이 쌓여 있는 정수기 쪽. 하지만 정수기 주변에는 탄산음료나 당분이 많이 들어있는 주스가 아닌 차 종류만 마련되어 있었다. 아쉬웠는지, 양 손에 종이컵을 쥐고 물을 가득 채워 마시는 아이도 있었다.

곧바로 아이들은 한 줄로 서서 키와 몸무게, 비만도를 측정하고 체성분 분석을 했다. 과체중인 학생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광명 시내 4개 초등학교에서 영양에 관한 강의를 하는 연구원 심지선씨는 "초등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그래도 정상이 많은 편이지만 고학년으로 갈수록 비만이 는다"며 "2학년 학생들 데이터와 5학년 학생들 데이터를 비교하면 과체중이나 비만 진입 직전의 아이들이 많이 늘어난 것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면 아이들이 몸무게에 민감해진다"며 "비만이 나오면 놀라고, 민감하게 쉬쉬하고 신경을 쓴다"고 덧붙였다. 요즘 아이들에게 '비만'이 얼마만큼의 스트레스를 주는지 알게 해주는 대목이었다.

체중을 재고 난 뒤에는 운동 시간이었다. 노란 티를 입은 선생님이 줄넘기 시험을 보였다. 1번부터 10번까지, 발의 모양, 뛰는 방법에 따라 각양각색의 시범을 보여줬다. 처음엔 "나도 할 줄 알아요!"하던 아이들은 점점 자신감을 잃고, "쉬워 보이죠~?"하는 선생님의 질문에 힘없이 "네에…", 어째 대답이 시원치 않다.

선생님이 "조금 있다가 여러분들도 다 시킬 거예요!"라고 하자 "으악!", "저걸 어떻게 뛰어요~!"하는 탄성이 쏟아졌다. 줄넘기를 손에 쥔 아이들은 아까 본 선생님의 발 모양을 열심히 따라해 보지만 '스텝'은 꼬여만 간다.

5학년 병찬이는 줄넘기를 마치고 가쁜 숨을 고르며 "쉽진 않았다"고 겨우 답했다. 6학년 연준이는 "(선생님 하는 거 볼 땐) 할 수 있겠다 했는데… 해보니까 힘들다, 그래도 재밌다"며 밝게 웃었다.

부모 역할 중요하지만... 항상 챙겨줄 수는 없는 노릇

"하하 호호~" 학부모들이 '많이 웃으면 건강이 좋아지고 살도 빠진다'는 내용의 강의를 듣고 있다.
 "하하 호호~" 학부모들이 '많이 웃으면 건강이 좋아지고 살도 빠진다'는 내용의 강의를 듣고 있다.
ⓒ 조은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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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르~ 하하~ 호호~ 짝짝짝!"

비슷한 시각, 한림대성심병원 제2별관 3층 강의실에선 학부모들의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김경자 한강성심병원 수간호사가 '웃음과 건강'이라는 주제로 강좌를 열어 아이들과 캠프에 참가한 어머니들을 초대했다. 학부모들은 아이의 건강, 영양 관리 등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학부모들은 "더 크게요~ 즐겁게 웃어 보세요~ 하하하!"라는 김 간호사의 추임새에 손을 흔들고, 힘차게 박수를 쳤다가 주먹을 쥐고 앙증맞게 부비기도 했다. 이 자리에는 학부모 24명이 참가해 자녀들 건강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보여줬다.

초등학교 5학년 딸을 데리고 캠프를 찾은 김은숙씨는 "지난해에도 아이가 이 캠프에 참여했는데 올해는 학부모도 같이 참여할 수 있다고 해서 왔다"고 말했다. 직장에 다니느라 딸 식사 준비를 할머니께 부탁하고 있다는 김씨는 "딸이 잘 먹고 건강한 편인데, 배도 약간 나왔다"며 쑥스러운 듯 웃었다.

그가 딸아이와 함께 이번 캠프에 참가하게 된 이유는, 고기를 정말 좋아하고 잘 움직이려 하지 않는 딸아이가 다소 걱정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딸이 다행히 김치나 채소도 잘 먹고 김씨도 되도록 유기농 과자만 먹이려고 하는 등 신경을 쓰지만, 아이의 곁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항상 챙겨줄 순 없는 노릇이라 어려움이 있다고.

아동·청소년 비만율, 미국의 전체 비만율에 육박

실제로 불규칙적인 식생활에 노출되어 있는 아동과 청소년의 비만율 증가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전체 비만율은 사실 크게 심각하지 않다. OECD가 2006년부터 2008년까지 30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5세 이상 비만율은 3.5%로 회원국들 중 가장 낮다.

그러나 아동과 청소년 비만율은 다르다. 올해 서울의 한 병원에서 청소년 88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무려 4명 중 1명이 과체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08년 미국 인구 평균 비만율 26%에 육박하는 수치다. 과체중으로 판명된 학생들 중 고도비만은 1%, 중증비만은 5%, 경도비만은 6%나 됐다.

전문가들이 꼽는 소아 비만의 가장 큰 원인은 달라진 식습관과 운동 부족이다. 학교가 끝난 뒤 바로 학원으로 이동해 편의점 음식 등으로 끼니를 때우고, 집에 늦게 도착해서 간식을 먹는다. 아이들의 이런 생활 리듬이 비만에 크게 일조한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많은 아이들이 놀이터나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집안에 틀어박혀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지난 2008년 국회 국정감사 때는 학교에서조차 체육시간을 지키는 비율이 60%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지적되기도 했다.

비만아동에 대한 사회 지원은 거의 없는 상황

아이들이 선생님을 따라 줄넘기를 하고 있다. 생각만큼 쉽지는 않은 모습이다.
 아이들이 선생님을 따라 줄넘기를 하고 있다. 생각만큼 쉽지는 않은 모습이다.
ⓒ 조은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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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희 한림대성심병원 가정의학과 조교수는 비만 아동들을 위한 사회의 관리 프로그램이 시급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가 이끄는 병원팀은 중학교 1학년 나이에 몸무게가 160kg에 육박하던 학생에게 무상 치료지원을 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6개월 동안 치료를 했지만 10kg정도의 감량밖에 달성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기대 이하의 성과에 "애가 밥통의 밥을 다 먹는데, 부모에게 아이가 먹을 만큼만 밥솥에 넣어 두라고 조언해도 엄마가 너무 바빠서 조금 하다 포기하는 식이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모든 비만 환자가 병원 밖에선 이런 상황에 처해 있다는 설명이다.

박 교수는 "비만 클리닉에 올 정도의 아이들이라면 이미 부모가 식습관 등에서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는 얘기"라며 "진짜 관리가 필요한 아이들은 부모가 바빠서 건강에 대한 관심을 못 받고 병원에 못 오는 아이들"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어린이재단이 지난 2007년 빈곤아동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빈곤층 아이들의 비만율이 25.9%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해 질병관리본부가 조사한 전체 소아 비만율은 10.9%였다. 이 수치는 학교나 지역 사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아이들의 건강관리가 전적으로 부모의 손에 맡겨져 있음을 보여준다.

박 교수는 보건복지가족부의 '비만 바우처'가 있지만 크게 활용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또 "아이들이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내는 학교에서부터 제대로 된 영양·보건에 대해 담당을 해야 한다"며 "우리나라는 시장이 바뀌면 보건복지 정책이 소아 위주였다가 노인으로 가는 등 정책의 일관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덧붙이는 글 | 조은별 기자는 오마이뉴스 10기 인턴 기자입니다.



태그:#비만아동, #어린이건강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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