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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현지시간) 커런트TV 공동 설립자인 앨 고어 전 부통령이 미국 로스앤젤레스 서북쪽 버뱅크의 밥 호프 공항에서 여기자 가족들과 커런트 TV를 대표해서 클린턴 전 대통령과 방북 석방교섭팀, 버락 오바마 대통령 및 두 기자의 석방을 위해 노력해 왔던 행정부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5일(현지시간) 커런트TV 공동 설립자인 앨 고어 전 부통령이 미국 로스앤젤레스 서북쪽 버뱅크의 밥 호프 공항에서 여기자 가족들과 커런트 TV를 대표해서 클린턴 전 대통령과 방북 석방교섭팀, 버락 오바마 대통령 및 두 기자의 석방을 위해 노력해 왔던 행정부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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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12년 노동 교화형을 선고받은 미국 여기자들이 5일 풀려났다. 141일 만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부근 버뱅크의 밥 호프 공항에 도착한 유나 리와 로라 링은 "악몽은 끝났다... 조국에 감사한다"고 울먹였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두 여기자의 귀환은 당사자 가족뿐 아니라 전 미국인의 행복"이라고 기뻐했다.   

북한 강제노동수용소로 언제 보내질지 몰라 늘 두려움에 떨었다는 그들을 데려간 사람은 '거물중의 거물'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었다. 그가 대동한 사람들은 오바마 행정부와 깊은 관계가 있는 인물들.

미국 진보성향 싱크탱크인 미국진보센터의 존 포데스타 소장은 오바마 대통령 정권인수팀의 공동위원장을 지냈고,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미 스탠퍼드대 아태연구소 부소장은 미 국무부 한국과장을 역임했다. 한반도 전문가인 그는 외교관 경력으로 방문과정의 외교적 의전 등을 맡은 것으로 전해진다.

당초 북한은 '장관급' 정도만 보내주면 여기자들을 풀어주겠다는 뜻을 비친 바 있다. 그런데 미국은 최대한 예우를 갖췄다. '거물 중의 거물'을 보내 여기자들을 데려왔다. 미국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체면을 세워준 셈이다. 이에 북한이 반색하며 "오바마 대통령의 구두 메시지를 전달받았다"고 했지만, 미국은 도리질했다.

힐러리 클린턴 장관은 "여기자 석방과 핵문제는 별개"라고 선을 그었다. 대북정책과 인도주의를 섞지 말라는 주문이다. 적대적 관계지만 인도주의 차원에서 물밑접촉을 통해 자국민을 데려왔을 뿐이라는 게다.

지난 4일 평양을 방문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지난 4일 평양을 방문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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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김정일 위원장 체면은 세워주고 핵문제는 별개 도리질

그렇다면, 우린 어떤가. 현대아산 직원 유씨, 그는 북한 당국에 억류된 지 4개월이 넘도록 '조사 중'이다. 가족접견은커녕 당국자 접견도 허용되지 않고 있다. 지난달 30일 나포된 '800연안호' 선원 4명은 생사조차 알 길이 없다. 미국정부가 '조용한' 물밑접촉을 통해 자국 여기자 2명을 구해오는 동안 우리 정부는 5명의 자국민 석방을 위해 뭘 했나.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지난 4월 21일 남북 당국간 접촉에서 유씨 접촉이 거부되자 이튿날 유엔 인권이사회에 이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에 대한 국제적 망신 주기다. 불을 끄겠다고 덤볐지만, 결국 기름 부은 격이 됐다.

이와 관련, 박정은 참여연대 정책실장은 6일 "유엔 인권이사회에 우리 국민의 억류문제를 제소하겠다고 밝힌 건 억류된 사람을 구해낼 의지가 없는 행동이거나 북한 헐뜯기 수준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정말 정부가 유씨를 빨리 데려올 생각이었다면 그런 행동은 못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첨예하게 대립하고 갈등과 긴장이 꾸준히 이어지는 국면에서 진실로 사람을 데려오려 했다면, 조용한 외교적 노력으로 물밑접촉을 하는 것이 범례인데, 국제사회에 대놓고 '억류문제'를 제소하겠다고 악을 쓰면 북한이 보일 행동은 뻔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따라서 유명환 장관의 행동은 국제사회에 북한만 욕보인 꼴이지 결코 유씨를 구해내려는 노력은 아니라고 했다. 사람 목숨을 놓고 무책임하게 변죽만 울리고 만 격이라고 비판했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에 '외교적으로 물밑접촉'을 할 만한 사람도 없다는 점이라고 박 실장은 꼬집었다. 정부채널 이외에 가동할 그 어떤 민간채널이 없기 때문에 '클린턴 작전' 같은 것은 우리 정부에서 아예 가능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뜻도 의지도 사람도 없는 상황이라며 혀를 찼다.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6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6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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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헌법이 정한 대통령 임무에 어긋난 행동

임지봉 서강대 법대 교수 또한 정부의 무능력과 무관심을 개탄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헌법이 부여한 대통령의 임무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헌법은 대통령에게 국가 보위는 물론 국민의 자유와 복리 증진에 힘쓰라는 임무를 부여하고 있는데, 과연 이 대통령은 억류된 유씨의 석방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냐는 게다.

임 교수는 "대한민국 국민이 북한에 억류돼 생명과 자유를 위협받고 있는데 대통령은 무엇을 하고 있느냐"며 "당연히 대통령은 북한당국에 불법적이고 반인도적으로 억류된 국민을 구출해낼 의무가 있는데 해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임 교수는 "근대 이후 국가의 존재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자유, 재산의 확보와 보호에 있다"며 "이명박 대통령은 당장 국민의 생명과 자유를 지키기 위한 다각도의 노력을 벌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현 정부는 '달라진 대북정책' 기조를 근간으로 '퍼주기 식 대북외교'는 안 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그것은 억류된 국민을 구해내는 것과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이다.

임 교수는 "대북정책의 입장변화와 북한에 억류된 우리 국민의 자유와 보호 문제는 별개"라며 "대북정책이 보수적으로 바뀌면 북한에 억류된 국민은 구해오지 않아도 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남북관계보다 훨씬 더 경색된 북미관계에서도 미국은 억류된 여기자 구출을 위해 '거물 중의 거물'을 보냈는데 이명박 대통령과 유명환 외교부 장관 등은 휴가나 즐기면서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만 뱉어내고 있으니 더욱 문제를 꼬이게 만든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무엇보다 임 교수는 "북한에 불법적이고 반인도적으로 억류된 국민과 그 가족의 심정을 헤아려야 할 게 아니냐"며 "정부는 시급하게 이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또한 "이명박정부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한다"며 "대통령이 정말 자국민을 보호할 생각이 있다면 당장 특사파견을 서둘러야 한다"고 비판했다.

구 교수는 "뒤틀린 남북관계야 그 자체로 푼다 하더라도 억류된 현대아산 직원 유씨와 나포된 어선 선원들은 하루라도 빨리 데려오려는 노력을 하는 게 정상 아니냐"며 "북한을 비판할 때 비판하더라도 일단 사람부터 구해내고 보자는 게 내 생각"이라고 말했다.

보수논객도 이명박 정부 비판... 인도적 차원에서 구출해야

국내 대표적 보수논객도 이 같은 진보학자들의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보수성향의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는 "대북관계와 별도로 이명박 대통령은 억류된 우리 국민을 인도적 차원에서 데려오는 노력을 당연히 해야 한다"며 "클런턴 행정부 시절 제시 잭슨 목사가 중동에 억류된 흑인 파일럿을 데려온 것을 벤치마킹하라"고 주문했다.

이 교수는 또 "테러리스트와 타협하지 않는 이스라엘 같은 나라도 자국민 보호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며 "원칙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송환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대북정책 기조를 변화하지 않는 조건에서도 얼마든지 민간채널을 활용해 유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이 같은 우려의 목소리는 국회에서도 터져 나왔다. 정몽준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5일 열린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이 방북해 미국 여기자 2명을 석방시켰는데 우리는 남북간 대화채널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며 "민간 차원의 방북이라고는 하지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비중을 생각하면 미국 정부와 협의하고 간 것 같은데 우리 정부와는 충분한 조율이 있었는지 궁금하다"고 지적했다.

박순자 최고위원도 미국 여기자 2명의 무사 귀환과 북한에 4개월 가량 억류된 현대아산 직원 유모씨, 연안호 선원 4명의 상황을 비교했다. 박 위원은 "우리 손으로 억류된 국민 5명을 구해낼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며 "이것을 위해서는 특사파견 혹은 더한 것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남북간 대화채널이 단절된 상태에서 북한의 태도만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박 위원은 "북한의 태도변화를 이끌 묘안을 생각해야 한다"고 대책을 주문하기도 했다.

북한 태도만 바뀌기를 목빼고 기다려? 어느 세월에 구출하려고?

미국 여기자 석방 이후, 북한에 억류된 유씨 등 한국인 5명에 대한 정부의 구출노력이 미흡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지자, 문태영 외교통상부 대변인은 6일 열린 공식정례브리핑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이 북한 측에 개성 억류 우리 근로자와 연안호 선원들의 송환문제를  인도적 견지에서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여기자 석방과 이 문제는 서로 연관은 없지만 우리 국민과 어선 문제도 조속한 진전이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천해성 통일부 대변인은 특사 파견과 관련해 "특사파견 등 구체적인 방법이 검토되지 않고" 있지만, "정부는 억류 근로자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모든 노력을 다해왔고 앞으로도 이와 관련한 노력은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교롭게도 이명박 대통령과 유명환 외교부 장관 모두 휴가를 떠났을 때 클린턴 전 대통령은 평양에 갔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평양에 간다는 걸 알았다면 이 대통령이나 유 장관이 휴가 갔을 리 만무하다. 이를 두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한 마디로 이명박 정부는 미국에 퍼줄 대로 다 퍼주고 미국만 믿고 있다가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태그:#클린턴, #이명박, #오바마 행정부, #유명환, #현대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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