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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돌을 열흘쯤 앞둔 우리 집 아기는 집에서 아장아장 잘 걷습니다. 처음에는 뒤뚱뒤뚱 걷다가 이내 엉덩방아를 찧었지만, 이제는 계단이나 밥상도 잘 타고 오를 만큼 신나게 걸어댑니다. 잘 걷게 되는 만큼 제 손이 닿는 곳이 늘어 집구석 온갖 물건을 건드리고 끄집어내고 들쑤십니다. 더운 낮에는 기저귀를 풀어 놓고 있는데, 아장아장 걸어다니면서 문지방에든 밥상 밑에든 저 쉬하고 싶을 때 쉬를 합니다. 날마다 방바닥과 마루바닥을 수십 차례 닦아 주어야 합니다. 밥을 먹을 때에는 제 손으로 수저를 쥐고 밥을 퍼먹겠다며 마구 휘저으느라 온 마루바닥이 너저분해지기 일쑤입니다.

다른 집 아기보다 가벼운지 무거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우는 아기를 달래느라 안고 돌아다니면, 또 동네 골목집과 골목길을 사진으로 담느라 업고 나다니면 언제나처럼 팔이 뻑적지근합니다. 이제는 아기를 걸려도 괜찮을 듯하지만, 아직 마땅한 신발을 찾지 못해 안거나 업고 다니기만 했는데, 어제는 마침 알맞춤한 신발 한 켤레를 보게 되어, 이만삼천 원을 들여 아기 신발 하나를 장만했습니다. 아빠가 신는 고무신은 고작 삼천 원이나, 아기가 신는 신발은 이만삼천 원.

처음에는 엄마가 두 손을 잡고 한 걸음씩 떼도록 해 주었고, 이렇게 해 주니 아기는 이내 걸음마에 익숙해졌습니다. 뭐, 집에서는 일찍부터 온통 쏘다니고 있었으니까요.
 처음에는 엄마가 두 손을 잡고 한 걸음씩 떼도록 해 주었고, 이렇게 해 주니 아기는 이내 걸음마에 익숙해졌습니다. 뭐, 집에서는 일찍부터 온통 쏘다니고 있었으니까요.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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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되었거나 신집에서 곧바로 아기한테 신을 신겨 놓고 길바닥에 세워 봅니다. 처음에는 한동안 '신발을 낯설게 여겨' 제자리에서 꼼짝도 않더니, 아기 엄마가 아기 두 손을 잡고 한 걸음씩 걸음마를 떼어 주니, 아기는 이내 신과 발이 잘 달라붙어 주었는지, 이때부터는 엄마보고 손을 놓으라고 휘저으면서 혼자 씩씩하게 걷습니다.

신집을 산 곳은 동인천지하상가요, 동인천지하상가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지하상가입니다. 그러나 아기는 이런 오르내리막에도 꿋꿋하게 걷습니다. 집에서는 곧잘 걸었어도 길에서는 처음 걷는 터라, 앞으로 곧게 걷지는 못하고 자꾸 모로 걷습니다. 걷다가 제 눈높이에 무언가 걸려 있는 물건이 보이면 어김없이 손가락으로 콕콕 건드립니다. 바닥에 물건이 깔린 가게 앞에서는 쭈그려앉습니다.

제 두 다리로 이 땅을 처음으로 밟으며 걸어 본 하루입니다.
 제 두 다리로 이 땅을 처음으로 밟으며 걸어 본 하루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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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길 때부터 집안은 더 어지러워진다'고 하고, '아기가 걸으면 집안은 더더욱 어지러워진다'고 합니다. 이제부터는 넘어지고 부딪히고 까지고 하는 일도 한결 자주 있으리라 봅니다. 지난주에는 저 혼자 밥상에 기어오르려다가 미끄러지며 밥상 모서리에 이마를 콩 박아 눈가가 찢어졌는데, 앞으로 어느 곳을 어떻게 다칠지 모를 노릇입니다. 그래도, 우리 아이도 제 엄마 아빠처럼 골목을 하느작하느작 거닐면서 사진을 한 장 두 장 담을 때마다 옆에서 물끄러미 지켜보기도 하고, 함께 손을 잡고 아주 천천히 걷기도 하며, 골목길 꽃그릇 앞에서 꽃내음에 흠씬 젖어들기도 하겠지요.

머잖아, 넘어지거나 비틀거리지 않고 튼튼히 잘 걷는 날을 맞이하겠지요.
 머잖아, 넘어지거나 비틀거리지 않고 튼튼히 잘 걷는 날을 맞이하겠지요.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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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뒤뚱 저리 뒤뚱 하면서 걷는 아기는 다른 사람이 빨리 걷지 못하게 걸림돌이 되곤 합니다. 그래도, 거의 모든 할머니들은 "아기가 걷네!" 하면서 웃는 얼굴로 아기한테 길을 내어 주곤 하셨습니다.
 이리 뒤뚱 저리 뒤뚱 하면서 걷는 아기는 다른 사람이 빨리 걷지 못하게 걸림돌이 되곤 합니다. 그래도, 거의 모든 할머니들은 "아기가 걷네!" 하면서 웃는 얼굴로 아기한테 길을 내어 주곤 하셨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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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가는 제법 비알진 길에서도 씩씩하게 걸으려 합니다. 엄마가 두 손을 잡아 줍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제법 비알진 길에서도 씩씩하게 걸으려 합니다. 엄마가 두 손을 잡아 줍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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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태그:#걸음마, #골목길, #인천골목길, #골목마실, #골목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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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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