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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토)은 셋째 매형 생일이었고, 어제(27일)는 셋째 누님 생일이었습니다. 마침 주말이 끼어 있어 멀리 사는 형제·자매와 30대에 혼자되어 자식 넷을 키워낸 외사촌 누님도 참석했는데요. 생일을 축하하고, 술잔을 주고받으면서 흥겹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두 분의 '생일잔치'('잔치'라고 까지 할 것도 없지만)는 셋째 매형 생일 전야인 24일 저녁식사를 시작으로 이튿날 아침에는 생일케이크 자르기, 점심 때는 자장면파티, 저녁에는 보신탕에 삼계탕 파티 순으로 26일 점심까지 이어졌습니다.

토종닭과 녹두죽으로 생일잔치를 마무리 했던 26일 점심 자리. 할아버지에게 녹두죽을 떠먹이는 조카손녀가 무척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토종닭과 녹두죽으로 생일잔치를 마무리 했던 26일 점심 자리. 할아버지에게 녹두죽을 떠먹이는 조카손녀가 무척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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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아도 좋은 일은 함께 기뻐하고, 고달플 때는 서로 용기를 넣어주고 위로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데요. 외국여행 중인 동생 부부와 몸이 불편한 큰 누님과 둘째 누님이 보이지 않아 못내 아쉬웠습니다.

오랜만에 형제들이 모이는 자리여서 오래 전부터 기다려왔습니다. 만남은 즐거움과 희망을 안겨주니까요. 그런데 모두가 몸이 예전만 못하고, 자궁암 수술을 받은 막내 누님이 항암치료를 마친 상태여서인지 건강문제가 화제로 오르더군요. 그래도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는 가운데 가끔은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습니다.

40대와 60대가 친구가 됐던 시간

26일 점심은 군산을 그냥 떠나기가 서운하다는 막내 매형이 아침 일찍부터 이집저집 전화를 하고, 낚시터에서 낚시를 즐기는 형님까지 오라고 해서 자리가 만들어졌는데요. 마침 천안에 사는 큰아들과 둘째 아들이 거동이 어려운 아버지(셋째 매형)를 모시고 참석해서 생일잔치 마지막 자리를 빛나게 장식했습니다.

갑자기 휠체어를 타고 나타난 셋째 매형. 모두 기뻐하며 반가워했는데요. 휠체어를 밀고 다니는 손녀도 다른 날보다 더 예쁘게 보였습니다.
 갑자기 휠체어를 타고 나타난 셋째 매형. 모두 기뻐하며 반가워했는데요. 휠체어를 밀고 다니는 손녀도 다른 날보다 더 예쁘게 보였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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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조카가 고희를 바라보는 이모부에게 소주잔을 권하고 있군요. 26일 점심 자리는 모두가 친구가 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40대 조카가 고희를 바라보는 이모부에게 소주잔을 권하고 있군요. 26일 점심 자리는 모두가 친구가 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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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에 의지하고 있었어도, 항상 침대에 누워 있는 모습만 보다가 밖에서 뵈니까, 한 마디로 좋았습니다. 건강하게 보였고, 새롭게 느껴졌으니까요. 손녀딸이 할아버지가 탄 휠체어를 밀고 다니는 모습을 보니까, '자식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구나!'라는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저는 딸만 하나거든요.

예상하지 못했던 셋째 매형이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니까, 모두 반가워했고, 맑은 날씨만큼이나 기분이 상쾌했는데요. 26일 점심은 40대 조카들과 고희(古稀)를 바라보는 이모부, 60대 삼촌이 친구가 되어 술잔을 권하면서 가슴에 쌓였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가마솥에 고아낸 토종닭과 녹두죽

가마솥에 고아낸 토종닭과 닭똥집 볶음, 녹두죽, 빈대떡. 마음이 즐거워서 그런지 모든 음식이 더욱 맛있게 느껴졌습니다.
 가마솥에 고아낸 토종닭과 닭똥집 볶음, 녹두죽, 빈대떡. 마음이 즐거워서 그런지 모든 음식이 더욱 맛있게 느껴졌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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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메뉴는 토종닭 백숙에 녹두죽이었습니다. 엄나무, 단너삼 뿌리, 대추, 밤, 마늘을 넣고 가마솥에 푹 고아낸 백숙은 육질이 졸깃졸깃해서 씹히는 맛이 그만이었는데요. 옵션으로 나온 닭똥집 볶음은 직장에서 근무하느라 참석하지 못한 아내를 생각나게 했고, 고소한 녹두빈대떡은 입 안을 개운하게 청소해주는 청소부 같았습니다.

약간 텁텁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특징인 녹두에 당근, 양파, 부추, 찹쌀이 들어간 녹두죽은 개운한 맛이 일품이었는데요. 오이장아찌와 고구마순 김치, 조개젓의 쌈빡한 맛은 환상적이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부모님 산소 입구에 있는 시골마을 식당에 모여앉아 이야기 꽃을 피우며 점심을 먹으니까 더욱 의미가 있었는데요. 될 수 있으면 한두 달에 한 번쯤 어디에서든 만나기로 약속하고 오후 3시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헤어졌습니다. 집에서 사흘을 함께 지낸 막내 누님과 매형이 떠나니까 외로움이 더하는 것 같은데요. 빨리 잊고 예전 생활로 돌아가야겠지요.

케이크 하나로 두 번 축하하다

고향이 시골이었던 셋째 매형은 어렸을 때 마을 친구들과 군산으로 자주 놀러 나왔다고 합니다. 외사촌형님과 선후배 사이로 학교도 군산으로 다녔는데요. 왜놈들이 만들어 놓은 시내 하수구를 동네 골목 돌아다니듯 하며 놀았고, 정문보다는 담을 넘어 등교하는 날이 많을 정도로 개구쟁이였다고 합니다.

큰형님처럼 느껴지면서 온갖 정이 들었던 셋째 매형이 10년 전 혈압으로 쓰려져 혼자는 식사를 못할 정도로 거동이 불편해서 방문할 때마다 안타까움이 더했습니다. 그런데 생일날 아침에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손녀가 받쳐 든 생일케이크에 바짝 다가와 촛불을 입으로 불어 끄면서 일흔네 번째 생일을 축하받았습니다.

상을 치우려고 하는데 막내 누님이 케이크를 다시 살 것 없이 촛불을 다시 밝히고 엄마(셋째 누님) 생일을 미리 축하하자고 제안하니까 모두 그렇게 하자며 웃음이 터져 나왔는데요. 대답은 시원하게 했지만, 초 숫자를 예순아홉 살에 맞추느라 쩔쩔매기에 "열 살짜리 초 하나를 반 토막 내면 된다!"고 했더니 탄성이 터졌고, 결국 셋째 누님 생일축하는 경제적이고 효율적이면서 웃음이 넘치는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남을 배려하며 살아야

매형 네 분 중에 첫째, 둘째 매형은 오래 전에 돌아가셨고, 셋째 매형과 막내 매형 두 분이 생존해 있습니다. 그런데 학창시절 운동으로 건강을 다졌던 막내 매형도 막내 누님 병시중을 드느라 더욱 수척해진 것 같고, 셋째 매형은 10년 전부터 투병생활을 하고 있어 여간 안타까운 게 아닙니다.

정월 대보름에 오곡밥까지 잘 해먹고 갑자기 아랫배가 아파 병원에 갔다가 청천벽력과도 같은 자궁암 진단을 받고, 7시간이 넘는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항암치료를 받아왔던 막내 누님이 매형과 함께 참석해서 행사 의미가 더욱 깊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남편 곁을 한시도 떠나지 못하고 밥을 떠먹이는 셋째 누님과 연상인 남편 도움을 받는 막내 누님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앞서는데요. 그때마다 '나이가 들수록 남을 배려하고 양보하면서 마음을 편하게 해야 몸도 건강해진다'는 어머니 말씀이 떠오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http://www.shinmoongo.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형제·자매, #생일잔치, #매형, #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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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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