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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김병기 기자, 정리 : 최재혁 인턴기자
사진 : 남소연 기자, 동영상 : 김윤상 기자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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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학자의 눈에 비친 이명박 정권의 통치철학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없죠."

- 그럼에도 정권은 굴러가지 않습니까. 그 작동 기제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이익이죠. 정권 담당자와 그들이 대변하고 있는 '강부자', '고소영'의 이익입니다."

지난 22일 평화박물관에서 만난 역사학자,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거침이 없었다. 그는 특히 "이런 집단들로 이루어진 한국 보수주의의 가장 큰 맹점은 이념을 위해 싸워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이라면서 "이익을 위해 추잡하게 싸웠다"고 일갈했다.

그는 이어 "자본주의의 정상적인 룰 속에서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 투기 같은 것, 그리고 특히 삽질에 매달리는 것 등 국론과 대의를 볼 때 나쁜 짓이지만 명백하게 떼돈을 버는 놈들이 있다"면서 "그런 놈들과의 싸움에서 대의에 입각한 다수가 번번히 패배했다"고 말했다.

그럼 왜 우리는 그런 질곡의 현대사를 갖고 있는 것일까?
"죽기 살기로 덤비는 놈한테는 이길 수 없나 봅니다.(웃음)"

▲ 한홍구 "한국의 보수는 이념을 위해 싸운 적이 없다"
ⓒ 김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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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보다 노무현이 더 많은 표를 얻었다"

- 그럼 그런 사람들에게 표를 몰아준 국민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죠?
"국민들도 혹했죠. 그래도 다수가 표를 줬다고는 생각하진 않아요. 이명박 정권이 입만 뻥긋하면 530만 표 차이로 이겼다고 말합니다. 역대 최다 표 차이였고 이런 대승이 다시 일어나는 것도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이 굉장히 많은 표를 얻었을 것 같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얻은 표보다 적어요.

노무현 대통령이 1201만 표를 얻었는데 이명박 대통령이 1149만 표란 말이에요. 52만 표를 덜 얻었어요. 이명박 대통령은 전에 이회창 후보보다 5만 표 정도를 더 얻었는데,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는 260만인가 늘어났어요. 그러니깐 이회창보다도 훨씬 적게 얻은 거죠. 또 노무현을 지지했던 사람들 중에 600만 명 가까이 투표를 안 한 겁니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이 지지층을 늘린 게 아니에요."

그는 이어 "그 사람들(600만 명)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문하면서 제일 서럽게 울었을 것"이라면서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지못미'로 대표되는 거대한 정서가 이 사람들에게서 연유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지난 대선에서의 득표 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지난 대선을 우리사회 보수세력의 승리로 받아들여야 할까? 한 교수는 엄밀한 의미의 보수가 이 땅에 있는가에 대해 근본 의문부터 던졌다.  

"저는 진짜로 보수당 하나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는 전통적 기준이나 글로벌 스탠다드로 비추어 봐도 보수가 없어요."

그는 이어 "한국은 역사적으로 유교국가였고, 보수적인 나라"라면서 "조선 시대에 왕이 뭔가 개혁을 시도하면 신하들이 막 들고 일어났죠, 사극 보면 '전하, 전례가 없는 일이옵니다', '아니되옵니다' 이러지 않습니까, 진보 혁신이 나오기 어려운 풍토"라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는 2000년 동안 왕조 2번 바뀌어 봤잖아요, 신라에서 고려로 거쳐 조선으로 500년마다 한 번씩 바뀌는 보수적인 전통이 있다"면서 "왕조를 오랫동안 유지하려면 나름대로 노하우도 있고 책임감, 도덕성, 리더십도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보수세력에게 그런 도덕성을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역사학자인 한 교수의 눈에 비친 '진짜 보수'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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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적 가치를 내세우는 진짜 보수는 백범 선생같은 분입니다. 그런데 백범을 빨갱이로 모니 오죽한 놈들이겠습니까. 우익이라고 할 수도 없고 그냥 '수구'입니다. 이런 인사들이 집권을 하니 도덕적으로 읽힐 수가 없어요. 대한민국에 진보라고 여겨지는 장준하 선생님이나, 함석헌 선생님, 문익환 목사님 등이 모두 이념적 기준으로 보면 보수였던 분들이에요. 그런데 이 분들은 양심적인 보수입니다. 친일파 나부랭이들과는 어울릴 수가 없었던 거지요."

그는 이어 "지난 몇 년 동안 과거사 위원회에서 일하면서 보니 과거에 멀쩡한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 쏴 죽인 일들이 많았다"면서 "진실을 밝히는 것이 진보진영의 일입니까? 이건 인간의 도리"라고 성토하기도 했다.

보수의 개념조차 왜곡된 상황. 그런데 최근 이명박 정권은 '중도'를 주창하고 나섰다. 이 것은 또 어떻게 보아야 할까?

"추모 민심에 놀란 부분이 있습니다. 이 정도 민주주의에서 군사쿠데타를 다시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선거를 해야 하는데, 강부자만 찍어서는 승리를 못하죠. 사돈에 팔촌까지 찍어도 400만명일 테니 선거를 위해서 중도를 들고 나온 것입니다. 하지만 서민중도를 표방하면서 부자감세를 하는 것은 양립할 수 없죠."

"파시즘은 아니지만, 그리로 가는 궤도"

하지만 주요 매체들이 세뇌 수준으로 이를 홍보하려 든다면? 언론악법 날치기와 인터넷 재갈 물리기 등을 통해 실제 그런 우려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형국이다. 따라서 일부에선 파시즘이 도래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지금이 파시즘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리로 가는 궤도라고 생각합니다. 이 정권이 가장 답답한 점은 문제를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없단 것입니다. 그냥 삽질만 하잖아요. 대운하는 그나마 명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마저 벗어 던지고 무조건 (4대강) 삽질만 합니다. 하고 싶은 것은 삽질이지 운하 파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운하가 됐건 산을 옮기건 삽질만 하면 돈은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결국 3년 동안 무작정 빨대 꽂고 쪽쪽 빨기만 하겠다는 겁니다. 사실 지금 한국경제가 좋은 것은 예산을 다 풀어서 그렇죠. 이 약발이 하반기에 떨어지면 어떻게 될 것인지 두고 봐야 합니다. 지금까지 파국적 상황이 오진 않았지만 넘겼다고는 할 수 없어요. 장기적인 계획은 없고 자기네 집권할 때 지표만 잘 나오면 되는 거죠.

만약에 그렇게 됐을 때 청년실업자들이나 해고자들이 어떤 방향으로 갈까요?. '이명박 대통령을 뽑은 것이 잘못한 것'이라고 생각해서 선거를 잘해야겠다고 할지, 아니면 그 쪽에서 들고 나온 뉴타운보다 더 센 공약을 선택할지... 이에 대한 선택의 시점이 오면 파시즘을 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이상한 독재입니다."

- 이상한 독재라니요?
"선거로 집권 했는데 자신감은 없고, 대화는 전혀 안하고, 하는 법도 모르는 정권입니다. 참모들도 문제예요. 이들이라도 목숨 걸고 간언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우리나라 옛날 선비 전통에 그런 것이 있잖아요. 이 정신이 있어서 조선이 500년 간 겁니다."

"3년 반만 쪽 빨아먹고 말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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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교수에게 이명박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과 비견될 수 있는 역사 속의 인물이 누구인지를 물었다. 그는 비슷한 인물보다는 차이를 말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면서 '일제'를 예로 들었다.

"이번에 대한문 빈소 앞에 차벽이 쫙 서 있는 것을 보고 기가 막혔습니다. 그 곳은 고종황제가 돌아가신 곳이기도 합니다. 연구자마다 평가가 다르겠지만 저는 고종이 무능한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국민들은 슬퍼하지 않았습니까. 죽으니까 슬프죠. 일본인들은 슬피우는 백성을 안 건드렸어요. 장례 치르는 동안 거기서 울게 내버려뒀어요.

또 일제는 3.1운동을 더 잔혹하게 짓밟았지만 사람을 다 잡아다 죽일 수 없으니 정책을 바꿨어요. 그래서 무단 통치에서 문화통치로 바뀐 겁니다. 대중이 폭발하지 않게 정책을 바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정권은 어때요? 촛불 끝나자마자 경찰 공안을 전면에 내세우고 유모차 끌고 나온 엄마를 아동학대죄로 잡아들이고 미네르바를 잡아들였습니다.

차이는 뭘까요? 일제는 조선을 영원히 지배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 정권은 3년 반만 쪽 빨아 먹고 말려는 것이에요. 그거 아니면 어떻게 저럴 수가 있나요. 일본 제국주의자들 보다 더 지독한 짓을 하잖아요."

마지막으로 역사학자인 그에게 '후대의 사가들은 이 시기를 어떤 시대로 기록할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아직 이 시기가 끝이 안 났고 변수가 많지만 경제 위기에서 파시즘으로 들어가는 초기 단계 성격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어요. 나치도 선거로 집권했잖아요. 그런데 촛불에서 가능성을 본 거 아닙니까. 촛불은 전 세계 민주주의사에서 굉장히 큰 가능성을 보여 줬어요."

2시간여의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기자에게 한 교수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요즘 과로사할 지경입니다. 워낙 벌이는 일이 많아서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노무현 정권 때는 태평성대였던 것같아요."


태그:#노무현 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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