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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나를 성웅이라 부르라 1·2권>(일송북 펴냄)는 임진왜란 때 활약한 정기룡이 주인공이다. 책의 2권(전장 속에 갇힌 사람들)에는 우리에게 '당파적 사리사욕만 앞세운 엉터리 공신책정'으로 알려진 임진왜란 후 공신 취품 비화가 자세히 그려지고 있다.

"난리 속에 나라를 구한 논공행상에서조차 정파만 그리도 중요하단 말인가?" 선조는 혀를 끌끌 찼다. 그러면서 자신이 직접 명나라 장수들로부터 들었다는 얘길 전했다.
"지난 7년간의 전쟁에서 조선에는 영웅이 둘이 있다는 것이요. 수군에서 이순신이요, 육군에서 정기룡이 그렇다는데, 한데 경은 그러한 소리조차 듣지 못하였는가?"

그러나 이항복 대감은 이렇다 저렇다 아무 말도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그저 이미 주청한 세 사람의 1등 공신 말고는 마땅히 더는 취품할 장수가 없다는 듯이 고개를 수그리고 말았다. '백사(이항복의 호)의 뜻도 정녕 이러하다면 굳이…'
-<나를 성웅이라 부르라> 제2권 중에서

소설 속 선조와 우리에게 '꾀주머니 정승'으로 잘 알려진 백사 이항복의 대화이다. 지옥 같은 전쟁이 끝나자 조정은 힘써 싸워 공로를 세운 장수들의 논공행상을 본격적으로 가려 낼 '공신도감'이란 별청을 만들어 취품하고 나섰다. 공신도감의 당상관(책임자)은 이항복. 말하자면 그가 며칠 동안 취품된 명단을 가지고 선조와 밀담을 나누고 있는 장면이다.

<나를 성웅이라 부르라 1·2권>겉그림
 <나를 성웅이라 부르라 1·2권>겉그림
ⓒ 일송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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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무 1등 공신에 취품된 사람은 이순신과 원균, 그리고 권율이다. 이순신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이 당연히 1등 공신이다. 하지만 원균과 권율은 아무래도 좀 그렇다.

원균이 누군가. 이순신이 옥에 갇히자 조선 수군을 지휘하여 칠천랑 해전에서 대패, 조선 수군을 재기 불능 상태에 빠지게 했으며 일본이 정유재란까지 일으키는 빌미를 제공한 장본인이 아닌가. 권율은 어떻고? 임진왜란 7년을 통틀어 행주산성 방어전에서 유일하게 승리한 정도? 덧붙이자면 권율은 공신도감의 당상관인 이항복의 장인이다.

선조, "전쟁도 피난도 끝났다. 살아있는 영웅은 죄인이다! 그를 버려라!"

선조의 말은 언뜻 "혁혁한 공을 세운 정기룡을 왜 선무 1등 공신으로 취품하지 않았는가?"라고 추궁하는 듯 들린다. 하지만 선조의 속셈은 따로 있었다. 명나라가 인정하는 광해군이 껄끄러운 것처럼 명나라 장수들이 이순신과 나란히 평가할 정도로 눈부신 공을 세운 정기룡도 껄끄럽기는 마찬가지였던 것.

한마디로 선조는 살아있는 전쟁영웅을 원하지 않았다. 다행히 이항복 대감이 취품한 1등 공신 세 사람 중 두 사람은 이미 죽은 사람들이고, 나머지 한사람 권율은 60세를 넘긴 노인이라 안심이 되었다. 자신을 위협할 가능성이 거의 없으므로.

그런데 정기룡은 서른여덟의 혈기왕성한 전쟁 영웅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조선 육군을 이끌고 자신을 위협할 수 있는 그런…. 이 때문에 선조는 정기룡이 1등 공신으로 취품되면 어쩌나 내심 고심하던 중이었다. 나라를 구한 것은 장하나 전쟁도 끝나버린 판국에 자신의 통치에 큰 적이 될 거라 예단해 버린 것이다.

"경은 들으시오. 그런 정기룡 장군을 공신 취품에서 제외한다 할지라도 정녕 뒷말은 없겠는가? 짐에게 이 자리에서 확언해 줄 수 있겠는가?"
"전하, 제외한다고 말씀하셨습니까?"
"그렇지 않은가? 경이 그자를 기왕에 선무 1등 공신으로 취품하지 않을 바라면, 아예 버리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것이오."
-책 속에서

선조는 이처럼 이항복을 앞질러 정기룡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내비친다. 이항복이 놀란 것은 당연하다. 애초 이항복은 정기룡을 선무 2등이나 3등에 취품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선조의 뜻에 따라 109명이나 되는 9단계 공신 취품에서 아예 제외시켜버리고 만다.

사색당파와 선조의 이런 시커멓고 아둔한 속셈의 공신취품으로 민심은 동요한다. 그리하여 이를 비방, 정기룡을 공신으로 취품해야한다는 괘서까지 붙는다. 의금부는 괘서의 출처는 고사하고 범인색출을 한답시고 정기룡의 심복인 오종철을 압송하여 심문한다.

한 술 더 떠 정기룡에게 "9단계 공신에서 일체 제외된다는 것을 스스로 원하고, 전쟁 중 항명한 죄를 인정하여 옥에 갇힘으로써 영웅이 아닌 것을 보여 달라"며 일의 수습을 위해 나서줄 것을 강요한다. 그리하여 정기룡은 죄인이 되어 옥에 갇힌다.

<나를 성웅이라 부르라>는 최근 상주와 하동 등지와 우리 역사 바로 알기에 뜻있는 사람들을 주축으로 활발하게 불고 있는 '정기룡 제대로 평가하기'에 답하는 역사소설이다.

소설 속 박선배는 권작가의 제의로 전쟁기념관(용산)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임진왜란의 현장들을 그림으로 만난다. 둘은 "바다에서 이순신이 그렇게 열심히 싸웠을 때 육지에서도 누군가 그렇게 싸웠을 것, 이순신이 옥에 갇히고 원균이 참패할 때 이순신의 공백을 채운 누군가가 분명히 있었을 것, 우리의 역사는 임진왜란 당시 육지의 전쟁에 왜 소홀할까? 박정희가 자신의 군사정권 정당성을 강조하고자 이순신 만들기에 치중하여 가려져버린 숨은 영웅이 있지 않겠는가?…" 등의 의문을 품는다. 권작가가 작가에게 내민 것은 <매헌실기>

소설은 선조와 정기룡(호:매헌)과의 만남부터 시작, 우리의 힘으로 왜군을 무찔렀음에도 우리 역사상 가장 치욕스런 전쟁으로 기록된 임진왜란과 임진왜란 전·후 상황을 자세하게 들려준다. 임진왜란이란 숨 막히는 전장의 이야기여서 그런지 소설은 빠르게 읽힌다.

책을 덮고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공신 취품 비화이다. 무능력하고 아둔한 군주와 제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어리석은 사람들뿐인 조정이니 희망은 그들이 하늘을 가린 손바닥에만 있을 뿐이다. 400년 후, 자손인 우리는 그들을 비웃는다.

또한 이순신과 더불어 민족을 구한 진정한 영웅인데도 선조와 당파에 의해 도리어 죄인이 되어 버리는 정기룡의 이야기에서 얼마 전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떠올라 참으로 마음 아프고 씁쓸하고, 한편으로 분노하기도 했다.

정기룡과 노 전 대통령이 희생되는 과정이 닮아도 너무 닮았다. 정기룡이 희생당한 것은 조정의 잘난 사람들과 줄을 대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생은 뒷전이요, 당파를 짜서 집안의 이익 챙기기에만 눈 먼 부정부패한 그들에게 강직한 성품으로 쐐기를 박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소설 덕분에 '변덕스럽고 무능력한 선조의 아둔한 처사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공신취품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 또, 우리에게 재치 있는 '꾀주머니' 정도로 더 많이 알려진 이항복도 다시 만났다.

그리하여 책을 읽는 동안 사학자들이나 저술가들이 우리에게 들려주는(그동안 들려 준) '역사의 진실과 품질'이 궁금해졌다. '우리는 몇 겹의 왜곡과 거짓의 껍질을 쓴 역사를 만나고 있을까?(있었던 걸까?)'라는 의문으로 말이다.

임진왜란사를 다시 쓰게 할 소설

…(중략)이같이 절대 열세에 놓인 전력으로 말미암아, 또한 귀신과 같은 무기라는 새로운 화약무기(조총)를 도저히 당해낼 재간이 없어 모두가 도망가기에 급급한 때에, 누구도 예상치 못한 가운데 두 장수가 홀연히 등장한다. 우리가 임진왜란 하면 떠올리는 인물 곧 성웅 이순신 장군과 그리고 또 한사람, 육군의 경상 우도병사 정기룡 장군이 바로 그들이다. 이 두 장수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조금도 두려움이 없는 얼굴로 곧장 전장으로 달려 나간다. 그리고 수군과 육군에게 제각기 첫 승전보를 안겨준다. 전력의 절대 열세와 새로운 화약 무기에 밀려 모두가 도망가기에 급급한 마당에, 우리도 싸워 이길 수 있다는 전기를 비로소 이 두 장수가 마련한 것이다.-'소설에서 못다 한 이야기' 중에서

당시 사람들이 조선의 조자룡(삼국지에 나오는)이라고 부를 정도로 정기룡의 무예가 특출했다고 한다. 그는 북쪽으로는 보은과 상주, 동쪽으로는 울산, 서남쪽으로는 하동과 사천에 이르기까지 영·호남의 광범위한 땅을 무대로 눈부시게 활약, 임진왜란 내내 크고 작은 60여 차례의 전투(이순신은 22번의 해전을)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단다.

정기룡의 연전연승은 왜군 10만을 갈팡질팡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일본 수뇌부로 하여금 전략을 여러 번 수정하게 한다. 일본은 애초 육지와 바다 두 갈래로 진격하여 평양성에서 합세, 조선을 거쳐 명나라까지 공격하려는 전략을 세웠다. 하지만 이순신과 정기룡 때문에 진격을 하지 못하고 결국 조선과 명나라 정벌은 실패로 끝나버리고 만다.

정기룡(1562~1622) 장군 유적과 유물
▲정기룡 장군 유적: 정기룡 묘소 주변에 사당(충의사)과 보물 등 문화재로 지정된 유물을 보관을 위한 유물관을 지었다. 상주시에 있다. 경북 시도기념물 제13호로 지정 ▲정기룡 장군 유허지(경충사): 경남 하동에 있으며 경남 문화재자료 제188호 ▲정기룡 장군 유물: 장군의 활약을 기록한 <매헌실기>목판본 및 옥대와 홀 등으로 보물 제669호로 지정. 상주박물관 ▲정기룡 장군 유품:곤양 정씨 집안에서 보관하다가 최근 하동 경충사 유물관으로 옮겨진 것들로 교지, 유서,장검 3점이다. 경남 시도유형문화재 제268호로 지정 등이다.(자세한 것은 문화재청 참고)

이순신이 마지막 결전을 치를 때 육지에서 협공함으로써 임진왜란을 종식하게 한 것도 정기룡이었다. 바꿔 말하면 육지에 정기룡이라는 뛰어난 명장이 있었기에 이순신의 승리도, 임진왜란의 끝도 가능했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정기룡이야말로 성웅 이순신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진정한 영웅이 아닐까? 저자는 '소설에서 못다 한 이야기'란 주제로 정기룡이 민족 영웅 이순신과 나란히 성웅 반열에 재조명 되어야만 하는 근거, 즉 임진왜란의 상황이나 이순신과의 협력 부분 등의 역사적 사실들을 조목조목 설명한다.

'수군의 이순신과 육군의 정기룡이 거둔 불패의 신화가 갖는 역사적 의미', '육군의 정기룡이 수군의 이순신과 함께 성웅이어야 하는 이유', '일본군 철수, 그리고 그 후의 일본' 등으로 이뤄진 50여 페이지의 이 글들은 임진왜란과 소설을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글이기도 하다.

416년간이나 가려진, 63전 63승 불패의 신화 정기룡 그는 누구인가? 수군의 이순신 장군은 마치 우리 곁에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하건만 당시 어깨를 나란히 했던 육지의 최고 명장 정기룡의 존재는 우리에게 왜 지워져야만 했을까? 임진왜란 7년 전쟁에서 모두 9단계 109명의 명단에도 들지 못할 만큼 그는 그렇게 형편없는 장수였단 말인가?

<나를 성웅이라 부르라>는 정기룡이 주인공이지만 우리민족 최대의 수치로 기록된 임진왜란을 자세하게 알려주고 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그것도 이제까지 이순신과 해전 위주로 더 많이 알려지다보니 거의 알려지지 않은 육지, 조선의 백성들이 유린당한 육지에서의 싸움을 재조명한. 그러니 이제까지 우리에게 알려진 임진왜란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할지도 모를 그런 이야기들이랄까? 읽자! 우리들에게 잊히고 가려진 우리 민족 영웅의 역사를!


나를 성웅이라 부르라 2 - 전장 속에 갇힌 사람들

박상하 지음, 일송북(2008)


나를 성웅이라 부르라 1 - 매헌실기를 찾아서

박상하 지음, 일송북(2008)


태그:#정기룡, #매헌실기, #임진왜란 , #논공행상, #역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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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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