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스웨덴 정상 공동기자회견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
 한-스웨덴 정상 공동기자회견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
ⓒ 청와대 제공

관련사진보기


세계 최대 규모의 무역권인 유럽연합(EU)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이 최종 타결됐다. 유럽을 방문중인 이명박 대통령은 13일 오후 EU 이사회 의장국인 스웨덴의 욘 프레드리크 레인펠트 총리와 정상회담을 마친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EU FTA 협상이 마무리됐음을 공식 선언했다.

이로써 지난 2007년 5월 미국과 FTA를 타결한 우리나라는 2년 만에 EU와도 FTA를 마무리지으면서, 세계 양대 거대경제권과 FTA를 맺는 유일한 나라가 됐다.

정부는 EU와 협상이 마무리됨에 따라, 앞으로 법률 검토와 가서명, 협정문 번역, 정식서명 등의 절차를 밟게 된다고 밝혔다. 이후 국회 비준동의와 유럽의회 승인 등이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빠르면 내년 상반기 중에 FTA가 발효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국민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EU와 FTA 협상에 대해 막판까지도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여론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은 채 서명을 추진하고 있어 '밀실과 불통의 FTA'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한-EU FTA 협정 발효 이후 자동차 등 일부 제조업의 수출 증대에도 불구하고, 서비스분야를 비롯해 농축산업 등 상대적으로 취약한 분야에서 대규모 산업재편에 따른 구조조정 등으로 인한 피해가 예상되지만 별다른 대안도 보이질 않고 있다.

이밖에 한미FTA 당시 논란이 됐던 일부 독소조항도 이번 한-EU FTA에도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양쪽간 가서명 후 협정 내용이 정식으로 공개될 경우 이에 대한 논란도 예상된다.

착한 FTA인줄 알았더니... 한미FTA 못지 않은 높은수준의 나쁜 FTA?

한EU FTA와 한미FTA의 공산품 관세철폐
 한EU FTA와 한미FTA의 공산품 관세철폐
ⓒ 외교통상부

관련사진보기


지난 2007년 5월 시작된 한-EU FTA의 경우, 이른바 '착한FTA'라고 불렸었다. 이유는 한미FTA(2007년 4월 타결)에 비해 EU쪽이 그동안 협상 당사자의 경제력을 감안해, 개방폭도 점진적인 자세를 취해왔기 때문이다. 미국이 한국과 FTA 협상을 자신들의 시한에 맞춰, 공격적인 개방을 유도하는 방식과 비교되기도 했다.

하지만, 국제통상연구소 등 시민사회 전문가그룹 등에서 내놓은 한-EU FTA의 내용과 추진과정을 보면, 더 이상 '착한FTA'라는 말을 붙이기 어려울 정도다.

이번 한-EU FTA의 경우도 국내 제조업뿐 아니라 서비스, 금융과 지적재산권 등 대부분의 조항이 한미FTA 때와 거의 비슷한 수준과 내용으로 체결됐다. 오히려 위성방송 등 통신과 환경분야 등 한미FTA에선 손대지 않은 분야까지 시장을 열도록 했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부)는 "특히 서비스 분야의 경우 한미FTA 수준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추가로 국제위성전용회선서비스 시장과 함께 생활하수처리서비스 시장 등까지 개방하도록 돼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한미FTA 때 논란이 됐던 역진방지 조항(ratchet, 어떤 분야에서 일단 한번 개방된 폭이 있을 경우 이를 다시 좁힐수 없도록 한 조항)과 미래의 최혜국대우 조항 등도 이번 EU와의 FTA에도 그대로 적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래 최혜국대우 조항의 경우 우리나라가 앞으로 미국과 EU를 제외한 다른 나라들과 FTA를 맺을때, 더 많은 개방 약속을 할 경우 자동적으로 EU에게도 적용되도록 하는 조항이다. 이는 한미FTA 협상 때도 논란이 됐었다.

이에 이혜민 외교통상부 FTA 교섭대표는 13일 가진 브리핑에서 "한미와 한-EU FTA의 서비스 협상에서 기본은 한미 동등대우였다"면서 "한미FTA의 최혜국대우는 협정이 발효된 이후에 체결되는 협정에 자동적으로 준다는 내용이며, EU와도 그러한 내용이 들어있다"고 인정했다.

한EU FTA의 관세철폐의 시기와 품목
 한EU FTA의 관세철폐의 시기와 품목
ⓒ 외교통상부

관련사진보기


한미FTA때 논란됐던 최혜국대우 등 독소조항 그대로

역진방지 조항의 경우 주로 상품과 서비스, 투자 부문 등에 걸쳐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협정 발효후 여러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당사국들에서 개방 수준을 낮출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혜민 대표는 "역진방지 조항은 한미FTA에서 처럼 개방분야를 '네거티브' 방식으로 할 때 적용됐을 뿐, '포지티브' 방식을 택한 한-EU FTA에서는 의미가 없다"고 해명했다. 일부에선 역진방지 조항이 협정문 초안에서는 언급이 됐었지만, 최종안에선 빠졌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이밖에 금융시장 개방과 관련해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의 출발점이던 파생금융상품도 한미FTA 수준으로 개방하도록 돼 있다. 또, 지적재산권의 경우도 저작권자가 사망한 이후 70년까지 저작권을 인정해주기로 합의해, 국내 출판이나 예술산업 분야에서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또 의약품 가격의 폭등을 일으킬 수 있는 의약품 허가와 특허의 연계 조항의 합의 여부도 논란거리다. 일부에선 의약품 허가와 특허 연계조항이 올해 초까지만 해도 협상 테이블에 있었으며, 협정문 초안에도 명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혜민 대표는 이에 대해 "EU 회원국들은 (의약품) 특허 허가 연계제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서 이같은 주장을 부인했다. 그는 이어 "전반적으로 볼때 한EU FTA는 한미(FTA)와 유사한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해영 교수는 "이번 한-EU FTA의 사실상 한미FTA 협상을 그대로 이어받은, 가장 높은 수준의 신자유주의적 FTA"라며 "정부는 이번 타결로 마치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올릴 것이라고 하지만, 서비스를 비롯해 투자와 농축산업 등 상당한 분야에서 양보와 희생으로 실제 이득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EU FTA는 이명박 정부의 밀실과 불통의 FTA 첫 작품?

이명박 대통령이 G8확대정상회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G8확대정상회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관련사진보기


실제 한국과 EU쪽에서 최종 타결한 내용을 보면, 가장 큰 이익을 올릴 것으로 알려진 자동차 분야도 예상보다 이익이 크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물론 EU의 경우 자동차 관세(10%)가 우리나라(8%)보다 높아, 이를 철폐할 경우 국내 자동차의 수출이 늘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현대기아자동차 그룹의 경우 이미 동유럽에 생산공장을 지어놓고 현지생산 비율이 높아지고 있으며, 오히려 부가가치가 높은 유럽산 고급 자동차들의 국내 자동차 시장 공략이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또 일부 전자제품과 TV용 브라운관 등에서 관세를 인하할 경우 일부 혜택을 볼수도 있다. 하지만 반도체를 비롯해 주요 전기전자 제품의 경우 이미 관세가 없기 때문에 큰 효과는 없다.

반면에 유럽에서 경쟁력이 높은 정밀 기계류와 정밀화학 등의 분야에선 부품 등의 대외의존도가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유럽연합 쪽에서 관심을 보여온 돼지고기(관세 25%)의 경우 냉동 삼겹살과 냉장육 등은 10년 이내, 냉동육은 5년 이내에 관세를 없애기로 한 상태다. 와인의 경우도 한-EU FTA가 발효되면 관세 15%가 사라지고, 치즈를 비롯한 각종 유가공 제품의 관세도 없어지면서 국내 시장의 상당수를 잠식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국내 축산농가를 비롯해 낙농업계의 경우 한-EU FTA의 협상 타결을 적극 반대하고 있다.

무엇보다 정부가 EU와의 협상을 사실상 타결지으면서, 협상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채 법률적 검토작업과 가서명 작업을 먼저 진행하기로 해 밀실 협상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혜민 대표는 "한미FTA 때 협상 타결후 협정문을 공개한 것과 달리 이번 EU와의 FTA 협정문의 경우 양쪽이 법률적 검토작업 등을 거쳐 오는 9월께 가서명 후 공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제통상전문인 송기호 변호사는 "국민 생황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거대 경제권과의 FTA 추진 과정은 국민에게 협상 내용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합의를 거쳐야 한다"면서 "국민에 대한 의견 수렴없이 일방적으로 가서명한 후에 협정문을 공개하겠다는 것은 지난 참여정부보다 더 후퇴한 밀실협상"이라고 비판했다.

송 변호사는 "이같은 정부의 통상일방주의는 결국 국민 모두를 위한 개방이라기보다는 일부 기득권세력들만을 위한 개방과 협정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태그:#한EU FTA, #김종훈, #이혜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