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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마나 산타 거리 행진.
 세마나 산타 거리 행진.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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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는 축제의 대륙이다. 그들의 낙천적인 성격과 여유로 즐기는 삶은 수많은 크고 작은 축제를 만들어 발전시켜 왔다. 그 중 백미라고 한다면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는데 하나는 광란의 열기로 빠져드는 브라질 리오 축제, 그리고 다른 하나는 가장 경건하고 거룩한 종교적 행사인 세마나 산타(부활절), 그 중에서도 바로 과테말라 편을 들 수 있다.

해마다 종려주일(기독교에서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되기 전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군중들의 환영을 받은 사건을 기념하는 날)부터 고난주간에는 전 세계 수만 명의 사람들이 과테말라를 찾는다. 이유는 하나, 세마나 산타 때 있을 성상행렬(Procesiòn, 이것은 가톨릭에만 있고 개신교에는 없다)을 보기 위해서다.

물론 중남미와 유럽을 포함한 거의 모든 가톨릭 국가에서 부활절 행사를 하지만 과테말라만큼 드라마틱한 장면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특히 안티구아의 성상행렬은 현지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온 가톨릭 신자와 또한 여행자들까지도 경건과 거룩함으로 물들게 하는 종교 축제의 하이라이트다.

향은 예수님의 성상 앞에서 길을 깨끗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향은 예수님의 성상 앞에서 길을 깨끗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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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이라고 하면 흔히 크리스마스와 더불어 기독교의 큰 절기 중 하나다. 어릴 때 교회나 성당문턱을 밟아본 사람이라면 으레 삶은 달걀을 먹던 날로 기억되기도 한다. 단단한 돌무덤에서 죽은 예수가 살아 나왔듯 부활을 상징하는 의미로 먹던 그것을 아쉽게도 여기에서는 맛 볼 수 없었다. 그래서 기독교인에게 특별한 부활절임에도 배꼽시계가 울리자 그저 씁쓸히 기름기 잔뜩 낀 엠파나다나 타코를 먹어야만 했다. 

세마나 산타는 아무래도 즐기는 축제라기보다 종교적 의미가 강해 혈기 좋은 중남미 사람들도 이 기간 동안 흥청망청 술을 마시거나 격한 언행이나 일탈을 자제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보통은 가족단위로 모여 차분하게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묵상한다. 그 중 좀 더 열성적인 믿음을 가진 신자들은 자신이 세마나 산타에 어떻게 참여해야 할지 골몰한다.

현지인들이 성상행렬 때 지나갈 톱밥 카페트를 만들고 있다. 자신이 만든 카페트 길을 밟고 가는 것이 큰 영광이라고 한다.
 현지인들이 성상행렬 때 지나갈 톱밥 카페트를 만들고 있다. 자신이 만든 카페트 길을 밟고 가는 것이 큰 영광이라고 한다.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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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트를 만드는 재료는 톱밥, 계란, 꽃, 솔잎, 빵, 과자, 각종 과일, 장식용 인형, 상아야자 꽃술(corozo)과 호꼬떼(열매) 등 다양하다.
 카페트를 만드는 재료는 톱밥, 계란, 꽃, 솔잎, 빵, 과자, 각종 과일, 장식용 인형, 상아야자 꽃술(corozo)과 호꼬떼(열매) 등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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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는 두 가지 방법으로 이 순례행렬에 참여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카페트를 까는 것이다. 이것은 무리들이 든 예수나 마리아 성상이 카페트를 밟고 지나가면 영광이 된다는 믿음에서 시작된 것으로 사람들은 자기 집 앞이나 마음에 드는 곳에 톱밥에 색소를 입힌 것과 여러 가지 재료들로 길에 개성 넘치는 예쁜 무늬의 카페트를 만든다. 그리고 행렬 때 그 앞에서 자신이 정성스레 만든 카페트를 거룩한 발걸음으로 밟고 지나가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켜보는 것이다. 예수의 옷자락만 잡아도 병이 나았던 혈루증 여인의 믿음처럼 말이다.

또 하나는 바로 직접 성상을 드는 것이다. 성상의 한 귀퉁이라도 차지해서 순례를 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서는 해마다 어느 정도 경쟁을 거쳐야 한다. 고난에 참여한다는 의미에서 성상행렬에 직접 참여하고 싶은 신도들은 많지만 정작 자릿수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부금을 받는다. 방법에 대한 정확한 절차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성상행렬을 위한 기부금을 낸 사람들에게 우선권이 쥐어진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이 행렬에 끼기 위해 외국에서부터 온 신자들도 있다.

성모 마리아의 성상은 여성신도들이 담당한다.
 성모 마리아의 성상은 여성신도들이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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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성상을 지고 가는 남성들은 예수를 핍박하던 당시 군대 옷을 걸쳤다.
 예수 그리스도 성상을 지고 가는 남성들은 예수를 핍박하던 당시 군대 옷을 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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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상행렬은 미사를 드린 후 성당에서부터 출발한다. 하지만 이것도 나름의 법칙이 있다. 여자들은 마리아 성상을 들고, 남자들은 예수의 성상을 드는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 고난을 생각하며 걷는 이들은 누구보다 장엄한 표정이 서려 있다. 그리고 중간중간 연무가 피어오르는데 이것은 예수가 지나가기 전에 길을 깨끗하게 만드는 의미를 함의하고 있다. 뒤따라오는 사람들은 저마다 휘황찬란한 옷을 걸쳐 입는데 이것은 모두 성경에 나오는 근거를 토대로 입고서 성경 속 인물을 흉내 낸 것이다. 이럼으로써 종교적인 축제의 장은 한층 달아오른다.

사람들은 성경에 나오는 여러 인물들로 분장해 거리를 행진한다.
 사람들은 성경에 나오는 여러 인물들로 분장해 거리를 행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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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스 밴더. 언제부턴가 종교적 행사와 어울리지 않게 출현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시골마을은 세마나 산타 때 종교적 의미의 성상행렬만 할 뿐이다.
 브라스 밴더. 언제부턴가 종교적 행사와 어울리지 않게 출현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시골마을은 세마나 산타 때 종교적 의미의 성상행렬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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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의문점은 왜 이런 전통성을 상기시키는 행렬에 하필 격에 맞지 않는 브라스 밴드가 있냐는 것이다. 보통 흥을 돋울 때 많이 보이는 이것은 중후한 종교음악을 연주하면서도 뭔가 불편한 모양새를 연출한 느낌이다. 아마도 연주를 통한 감정의 호소 효과를 노렸나 본데 차라리 신도들과 주변 구경꾼들이 한 목소리로 성가를 부르는 게 훨씬 낫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작은 소도시나 시골에서는 규모가 작아서겠지만 종교적 행사에 브라스 밴드 없이 직접 성가를 부른다).

성상행렬은 마치 우리의 영구(靈柩)행렬과 묘하게 비슷한 느낌을 준다. 다만 곡소리 대신 관악대의 연주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죽은 자를 가슴에 묻는 것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차이가 있다. 그것이 사람과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온 신의 차이인지 모르겠다.

성상의 무게는 엄청나다. 매년 성상을 매기 위해 자발적 헌금을 내며 차례를 기다려 한 자리 차지하려는 신도들이 있다.
 성상의 무게는 엄청나다. 매년 성상을 매기 위해 자발적 헌금을 내며 차례를 기다려 한 자리 차지하려는 신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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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 뒤 밝은 날에 나간 행렬은 해질녘 도시 한 바퀴를 돌고 나서야 다시 성당으로 들어오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그 때까지도 사람들은 무리를 떠나지 않고 주변에 남아 예배당 안으로 점점 사라지는 마지막 그리스도의 모습을 멀거니 바라보며 성호를 긋는다. 그리고 다들 그가 부활할 것을, 아니 부활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것이 그들의 신앙이기 때문이다. 성서를 진리로 믿는 자들에게 다시 그리스도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성상행렬은 그렇게 신 앞에 겸허한 인간의 믿음을 통해 하늘의 뜻을 품는 소박한 사람들의 신앙적인 모습을 보게 해 주었다. 동시에 나도 저들처럼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는지 물어보게 되면서 내내 행렬 뒤를 쫓아다니느라 고단한 몸을 이끌고 그 자리를 빠져 나왔다.

세상의 복을 바라는 메시지에는 뜨겁게 환호하면서 십자가 고난에 동참하자는 메시지에는 차갑게 침묵하는 오늘날 기독교인의 모습, 그리고 나의 모습을 통해 예수가 십자가 형벌을 통해 우리들 가슴에 어떤 메시지를 안겨줬는지 다시 한 번 고민하게 된다. 누가 그랬던가. 예수는 성공한 삶이 아닌, 아름다운 삶을 살았노라고. 세마나 산타의 늦은 밤 유난히 맑은 안티구아의 밤하늘, 총총한 별들이 꼭 예수의 마지막을 지키는 천사들 같이 보였다.

가시에 찔린 예수를 품는 마리아.
 가시에 찔린 예수를 품는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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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필자는 현재 ‘광야’를 모토로 6년 간의 자전거 세계일주 중입니다.
저서 <라이딩 인 아메리카>(넥서스 출판)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 http://www.vision-trip.net



태그:#과테말라, #세계일주, #자전거여행, #중남미, #세마나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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