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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어 신전
▲ Templo 1 재규어 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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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 이름으론 Ya'ascche'이다.
▲ Ceiba 마야 이름으론 Ya'ascch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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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 컴 투 티칼!"

밀림에 들어서자 쭉정이 털어내듯 나뭇잎을 떨어뜨리며 원숭이들의 격한 환영인사가 이어진다. 이 녀석들은 단체 손님들에게는 얼씬도 않다가 나 홀로 지나가니 하늘을 가리는 빽빽한 밀림 사이로 요란 떨며 왔다갔다하는 것이다. 오히려 그런 생기가 묘하게 좋았다. 유적이라고 죽은 역사를 전시해 놓고 건조한 상식만 몇 개 갖다 붙인 것보다야 나았기 때문이다.

이미 멕시코의 수많은 마야문명을 돌아보면서 그들의 위대한 업적과 불가사의한 역사들을 보아왔다. 천문, 역법, 수학, 미술, 공예, 문자 등 당대 최고의 업적을 남겼으면서도 어찌된 영문인지 척박한 환경에서 철저히 고립된 삶을 영위했던 그들의 문화는 경이 그 자체다. 오죽하면 찬란한 아스텍 문명조차 멸절시켜 버릴만큼 무자비한 남미 점령사의 굵은 획을 그은 스페인 군대도 이 정글 속으로 들어오지 못했다고 할까. 이제 티칼을 통해 10세기 들어 파란만장한 역사의 종지부를 찍으며 영문도 모른 체 해체된 미스테리 마야에 대한 이해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헉헉, 에고, 나 죽네.'

멕시코시티 근방 테오티우아칸에서 이미 천명된 저질체력은 이곳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어찌나 넓고, 갈래로 난 길들이 많은지 역시 현존하는 가장 거대한 마야유적지다웠다. 신전도 보기 전에 감탄하는 바오밥을 연상시키는 길다란 세이바(Ceiba) 나무를 보고 나면 유적을 보기 위해선 대낮에도 그늘로 드리워진 밀림 숲을 건너야 한다.

밀림 속 마야 문명이 있는 다른 곳도 있지만 티칼과는 비교불가다.
 밀림 속 마야 문명이 있는 다른 곳도 있지만 티칼과는 비교불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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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티칼의 첫 번째 매력이 드러난다. 마치 숲 속 오솔길을 걷는 듯 청명함을 맛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태양신을 숭상한 문명의 유적지를 가면 정말 태양을 하루 종일 쬐어야 구경하는 곳이 대부분이거늘 이렇게 양반걸음을 하며 구경할 수 있도록 밀림 구석에 흔적을 남겨 준 그들이 고맙기만 하다. 단일 지도 체제가 아닌 부족의 집합 체계로 도시 국가 형태를 띤 마야인들은 그들의 삶을 참으로 지혜롭게 숨겨 놓았다. 아무래도 하나의 국가보다는 세력을 규합하기 쉽지 않은 시스템이기에 외부의 침입이 두려웠을 것이고, 그것은 오늘날 생존이란 이름이 희석된 특유의 문화가 되어 버렸다. 거친 밀림 속에 문명을 개척하던 그들의 삶 말이다.

신전 1과 2를 비롯해 가장 많은 유적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다.
▲ Acropolis Central 신전 1과 2를 비롯해 가장 많은 유적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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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면조. 운이 좋으면 티칼 신전 주변으로 원숭이, 칠면조, 열대 모기, 왕거미, 도마뱀, 그리고 작은 포유류나 설치류 등 각종 동물들을 볼 수 있다.
 칠면조. 운이 좋으면 티칼 신전 주변으로 원숭이, 칠면조, 열대 모기, 왕거미, 도마뱀, 그리고 작은 포유류나 설치류 등 각종 동물들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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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어 형상이 있는 까닭에 재규어 신전이라고도 불리는 신전 1과 맞은편에 신전 2, 그리고 그 사이 펼쳐진 아크로폴리스 센트랄(Acropolis Central)은 티칼의 두 번째 매력이다. 전체적인 조망은 멕시코 유적 팔렝케와 유사하다. 하지만 그 경사가 여느 신전보다 확연히 가파르고 보존이 잘 되어 있어 보다 더 또렷한 형상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행자들의 셔터를 바쁘게 만든다. 실제로 신전 1에서는 추락사하는 참사까지 벌어져 지금은 올라가지 못하도록 통제하고 있었다. 아찔한 나무 계단이나 돌계단을 오르다보면 현대에도 이곳에서는 보이지 않은 의식의 제물로 바쳐진다는 농담이 농담이 아닌 것 같다.

1881년 알프레드 모즐리에 의해 본격적인 발굴이 시작된 이래 상대적으로 밀림 깊숙이 위치한 비명의 신전이나 중앙의 재규어 신전, 그리고 3000여 개의 크고 작은 마야문명의 흔적 속에 그들은 그들 문화를 영속시키기 위한 유기적 시스템이 필요했다. 기원전 600년부터 터를 잡기 시작해 전성기엔 4~5만 명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곳엔 아마도 그것을 유지시켜 줄 종교와 정치의 제의를 담당한 희생제를 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배경역할은 당연히 신전 몫이었다.

추측하건대 당시 의식을 거행하던 신전에서는 사선을 경계로 수많은 저주와 경배가 혼합되어 울려졌을 것이다. 마야만큼 찬란하면서도 마야만큼 잔인한 문명은 또 없지 않은가. 삶과 죽음은 신전의 수많은 비밀의 방과 땅 밑에 파헤쳐진 복잡하게 얽힌 지하 통로 어딘가에서 그 운명이 갈라졌을 것이다. 아무도 모른 채, 여전히 의문에 싸인 채.

신전으로 올라가는 계단. 경사가 무척 급하다.
 신전으로 올라가는 계단. 경사가 무척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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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티칼의 하이라이트. 장엄한 밀림 속에 감춰진 마야 문명.
 이것이 바로 티칼의 하이라이트. 장엄한 밀림 속에 감춰진 마야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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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티칼의 신비함은 끝나지 않았다. 혹시 가방 한 구석에다가 보온병을 넣어 커피를 담아왔다면 당신은 센스 만점. 티칼의 세 번째 매력이 눈만 호강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절경으로 펼쳐지기 때문이다. 티칼을 오는 단 하나의 이유만 꼽으라면 바로 밀림 지붕 위에 삐져나온 신전들의 위용을 보기 위함일 것이다. 특히 안개가 자욱한 아침과 노을이 지는 저녁에 바로 이 장면을 보는 것은 중미 최고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다.

무기를 든 용맹한 마야인의 형상이 조각되어 있다.
▲ Stela 무기를 든 용맹한 마야인의 형상이 조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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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밀려가고 광명이 찾아오면 하얀 안개 속에 솟아오르는 신전의 꽃은 안개가 걷히면서 점차 꽃봉오리를 터트리는데 이 장면은 마야의 융성기를 상징한다. 그리고 해거름에 마치 피의 제사를 치르듯 노을에 붉게 전염된 신전의 꼭대기로부터 가늠해 볼 수 있는 멸망기를 본다는 것은 티칼 유적 감상의 백미다.

'아니? 어떻게!'란 말이 나올 정도로 밀림 위에 피어난 티칼의 모든 모습은 상상을 자극시키는 감각유희로 즐거운 의문을 선사한다. 그 때 이 거대한 격동의 역사 위에 커피 한잔 꺼내드는 여행의 여유를 만끽함은 또 얼마나 황홀한 일일까.

'파르테논 신전처럼 장엄하고 앙코르와트처럼 신비롭다'라는 말이 과연 허상이 아니었다. 로마도 하루아침에 건설된 것이 아닌데 어떻게 별다른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하루아침에 사라졌는지 그저 놀랍기만한 이 문명을 제대로 보려 며칠씩 기거하는 여행자들도 있다. 하긴 이제 갓 1세기 남짓 급격한 발전을 이룬 현대 과학으로 2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이나 꼭꼭 감춰 둔 고대문명의 진실을 파헤친다는 게 어쩌면 우둔한 도전인지 모른다. 나는 또 그 핑계로 하루만 있다 오는 것이다.

그러니 그냥 자전거나 타는 한량으로 한편으론 끈질긴 연구로 무모한 도전을 위대한 도전으로 승화시키는 고고학자들과 역사학자들에게 깊은 경의를 표하는 동시에 티칼을 바라보며 이렇게 주장해 본다. 신비로 남겨 둘 것은 그냥 신비로 남겨 두라. 동시에 궁극의 마야문명을 탐험해 보고 싶다면 주저하지 말고 티칼로 오라. 온통 여행자의 가슴을 뛰게 만들 신비함으로 가득 차 있는 티칼로. 보물찾기처럼 아직 감춰진 게 많을 때.

티칼 국립공원에서 원주민들이 파는 인형.
 티칼 국립공원에서 원주민들이 파는 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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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허! 데이트는 공원에서. 여긴 유적지랍니다!” 나는 질투 중.
 “어허! 데이트는 공원에서. 여긴 유적지랍니다!” 나는 질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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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필자는 현재 ‘광야’를 모토로 6년 간의 자전거 세계일주 중입니다.
저서 <라이딩 인 아메리카>(넥서스 출판)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 http://www.vision-trip.net



태그:#과테말라, #자전거여행, #티칼, #세마나산타, #세계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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