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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예정일을 열흘 앞둔 만삭 임산부인 나는 이 날도 버스에서 서서 갔다. 임산부 노약자 장애인석은 비임산부 비노약자 비장애인이 앉아 갔다. 이 설움을 어찌 다 말하리요.
 출산예정일을 열흘 앞둔 만삭 임산부인 나는 이 날도 버스에서 서서 갔다. 임산부 노약자 장애인석은 비임산부 비노약자 비장애인이 앉아 갔다. 이 설움을 어찌 다 말하리요.
ⓒ 김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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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6월 30일 출산(예정일)을 앞둔 35세 임산부로 이른바 사회가 말하는 노령 고위험 임산부다. 그리고 나는 며칠 전인 20일까지 직장에 다녔다.

이 사진은 지난 19일경 만삭인 몸으로 버스에서 서서 가는 내 모습을 핸드폰 카메라로 찍은 것이다. 의도치 않게 다른 승객이 카메라에 담겼다. 그  모습을 가리기 위해 어줍잖게 점 처리했다. 이렇게 사진까지 찍은 이유는 집에서 사무실까지 출근하는 데 걸리는 50여 분 동안 내 몸과 마음에 일어나는 동요를 그냥 혼자만 감내하기에는 아니다 싶은 게 있어서다.

이렇게 사진 찍는 일도 사실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었기보다는 이런 현실을 고발하려고 찍고 있는 나 자신을 스스로 의식했기 때문이다. 저 사람들은 내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줄 알고나 있을까? 이런 날 아랑곳하지 않고 노약자·임산부·장애인석에 떳떳이 앉아 있는 비노약자, 비임산부, 비장애인들에게 늘, 매번 하고 싶었던 말을 꾹 참다가 급기야 이 방법을 택한 것이다.

사실 내가 서 있었던 그 버스 안에서 그때 그 시간에 '자리 좀 양보해주세요'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수많이 많이 고민했지만 결국 난 하지 못했다. 왜냐면 지나친 무관심의 벽이 나를 가로막아서였다.

나는 왜 지하철을 안 타게 되었는가

나는 구로구에서 영등포구까지 출퇴근을 매일 반복했다. 편도 40분에서 50분이 걸리고 버스는 두 번 갈아탄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꽤 걸린다. 물론 지하철이 있긴 하다. 그러나 임신 초 지하철에서 겪은 수많은 서러움들은 지하철이 아닌 버스를 이용하게 만든 원인 중 하나다.

잠시 지하철 얘길 하자면, 임신해본 사람들은 다들 알겠지만 임산부는 사실 초기가 힘들다. 서 있는 것 자체가 힘들고 사실 이때 유산율도 가장 높다. 힘겹게 노약자석, 임산부석, 장애인석에 앉아 있으면 어김없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호되게 나무라신다. 이른바 젊은 것이 싸가지 없이 그곳에 앉아 있으면서 어르신들이 왔는데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싸가지 없다'는 말이 맞다. 난 사실 아주 몸이 힘겨울 때만 그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저 임산부라서요, 몸이 많이 힘들어요'라고 말을 하면 그나마 낫지만 그 말을 들었음에도 여전히 째려보는 눈빛은 가시질 않는다.

주로 할아버지들의 완력있는 행동이 나를 많이 놀라게 할 때가 있다. 임신 초기엔 몸도 안 좋고 유독 잠이 많다. 그 자리에 앉아 어느새 잠이 들었는데 내 머리를 누군가 세게 쳤다. 깜짝 놀라 일어났더니 할아버지가 화난 표정이다. 젊은 게 뻔뻔하게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이다. 당장 일어나라는 것, 난 또 서러워서 임산부라고 항변했다. 유일하게 내가 나를 대변할 수 있는 말이니까…. 또 언젠간 옆에 앉은 할머니가 나를 자꾸 찔렀다. 일어나라는 말이다. 또 말했다. 제가 지금 임신 초기인데 몸이 많이 안 좋아서요. 그렇게 얘길한 이후에도 할머니들 이해를 못하신다. 아니 누구는 애 안 낳아봤어? 또 다시 서러움 밀려온다.

나한테 왜 굳이 그 좁은 노약자·임산부·장애인석에 앉았느냐고 물을 수도 있다. 넓은 일반석 놔두고 말이다. 일반석은 앉지도 못한다. 아무한테나 가서 나 임산부니까 자리 좀 양보해달라는 말 못한다. 결국 자리가 비기를 기다리며 자리를 앉으려 해도 매번 순서에 밀려 또 서 있기를 반복, 쓸데없는 기대만 하다가 결국 포기한 것이다.

그나마 내가 지하철에서 앉을 기회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사이에 빈 자리를 비집고 앉는 거였다. 그러나 이 또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이해보다는 이해 못하는 시선과 타박으로 인해 결국 지하철은 내 맘 편하고자 멀리하게 됐다.

지하철을 타고도 사람들과 볼록 나온 배가 강한 압박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고 만삭 임산부가 타자마자 자리에 앉을 수 있는 우리나라 지하철을 여전히 기대하는 건 무리였다. 6월 15일경 탔던 지하철도 여전히 난 서서 오면서 볼록 나온 배를 감싸안고 가방을 들고 온갖 방법을 썼지만 어느 누구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 물론 노약자·임산부·장애인석 앞엔 가보지도 못했다.

믿었던 버스, 그러나 너마저도...

버스는 그나마 낫다. 지하철 이용자수에 비해 적고 또 내가 버스를 타는 정류소가 종점과 가까워서 타자마자 자리를 잡기에 쉽다. 그나마 이것도 출근시간대만 그렇다. 출근시간인 아침에는 그마나 하루를 힘겹지 않게 시작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문제는 퇴근시간이다. 영등포는 가장 많은 승객들이 타는 정류소다. 난 임신 5개월 접어들면서부터 일부러 임산부복을 입었고 실제로 배도 많이 나왔다. 그게 대중교통에서 그나마 내 몸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었는지 유독 배가 많이 나오긴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리를 양보해주지는 않았다. 나도 염치가 있다. 절대 뒷자리로 가지 않는다. 노약자·임산부·장애인 모습이 그려져 있는 자리에만 앉는다. 일반석쪽으로 가면 그곳에 있는 승객들이 나로 인해 부담스러워할까 봐 가지도 않는다. 서서 가더라도 앞부분에서 서서 간다. 자리에 앉겠다는 것을 포기하고 오직 기사님과 가까워져 오는 집을 그리며 서서 가는 게 맘이 오히려 편하다.

이렇게 버텨왔던 마음에 금이 가기 시작했던 건 만삭이 되면서부터다. 사실 몸이 아주 무거워지다 보니 내심 기대가 생겼다. 이렇게까지 배가 나왔는데…. 사실 임신 중기의 서러움을 참아냈던 것도 후기에는 사람들이 달라져서 자리를 양보해주겠지 하는 기대심리에서였다. 그 기대가 깨진 건 순식간이었다. 비노약자, 비장애인, 비임산부인 사람들, 남녀를 불문하고 젊은 사람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떳떳하게 먼저 앉았고 절대 배를 불룩 내밀고 있는 만삭 임산부를 배려하지 않았다.

버젓이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앉아 있었고 그 그림 중 하나에 속한 사람이 서 있는데도 관심도 두지 않았다. 그들의 귓속에 아주 상당수가 이어폰을 하고 있었고 대부분 핸드폰이나 작은 액정을 보면 뭔가에 몰두해 있었다. 사람들이 철저히 공공장소에서 개인화되고 있는 현실을, 흐름을 막을 수야 없다지만 난 정말 속상하다. 우리의 미덕, 공동체 문화,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놓은 최소한의 약자 배려의 원칙들이 내가 타고 있는 버스 안에서는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몇 가지 황당한 경험, 이야기해 본다

만삭 때 일어났던 몇 가지 일이다. 그러니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일이다. 계속 자리가 비길 바란다. 버스 안에선 온통 빈 자리 없나, 누가 양보 안해주나, 일부러 그러지 않으려 해도 노약자·임산부·장애인석에 앉아있는 대상자가 아닌 젊은이들을 바라본다. 그러다 원망까지 보낸다. 일부러 그 사람들 의식 안하게 가끔씩 쳐다보긴 한다. 어떤 학생은 참 다리가 튼튼하게도 보이더라. 공부하는 게 힘들겠지 하며 나름 이해심도 가져본다. 어떤 젊은 군복 입은 청년은 군에서 훈련이 그토록 힘들었나 보다. 아니 군에서는 배려를 없애는 훈련같은 거 시키나?

잘 차려입은 몸매 잘 빠지고 머리스타일 최고인 아가씨는 뾰쪽구두 신고 다니느라 발이 참 많이도 아팠나 보다. 갑자기 그 뾰족구두가 미워진다. 자신을 저렇게 치장할 여유와 시간은 있어도 사회적 약자를 배려할 마음은 없는 게 순식간에 그렇게 예쁘게 단장해놓고 노약자·임산부·장애인석에 떳떳이 앉아 있는, 그것도 만삭 임산부가 옆에 단단히 서 있는데도 아랑곳않고 창만 쳐다보며 가는 그 아가씨가 참 안 예쁘게 보이더라.

이쯤 되면 같은 여자인데 저렇게 몰라줄까, 하는 원망도 섞인다. 남자애들이야 뭐 이해심도 배려심도 원래 없다고 포기했다 치자. 그런데 같은 여자, 곧 본인도 임산부가 될 수 있는 가능성도 이미 임산부였던 여성들마저도 외면할 땐 정말 절망이 배로 든다. 사실 이런 원망도 동일하게 가야 되는데 또 그게 아니더라. 좀 더 친근감이 드는 사람들에게 원망이 더 가는 건 어쩔 수 없더라.

언젠간 참 황당한 일이 있어서 그 우울함과 황당함이 하루를 넘기더라. 어떤 아가씨가 나 앉으라고 자리를 양보했는데 옆에 있던 뽀족구두 아가씨가 나를 제치고 자기가 자리에 앉은 것이다. 자리 양보한 이랑 임산부인 나는 어이가 없어 서 있었다. 그리고 자리를 양보해준 그 아가씨는 그냥 별 말없이 서서 갔고 나 또한 황당한 마음만 가지고 서서 갔다. 뻔뻔한 그 아가씨, 아랑곳않고 앉아가셨다. 그때 그 아가씨 입었던 옷,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나도 문제가 있긴 있다. 그 자리에 내 얘길 해야 하는데 못 하겠더라. 왜 그런 사람들이 그리도 무서운지. 그리고 더 두려운 건 얘길했는데 이상하게 쳐다본다거나 화를 낸다거나 짜증을 내버리면 난 어떡하지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난 결국 아무 것도 못하고 그대로 무거운 몸, 버스에서 어떻게든 지탱하느라 팔에 손에 힘을 잔뜩 주고 서 가기를 반복했다.

그래도 한 번은 내가 앉으려고 했다가 어떤 여자가 먼저 앉아서 황당한 순간이 있었는데 그 사람도 임산부였다. 나처럼 만삭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다행이더라. 내가 양보를 해준 셈이 되었으니까. 임산부 둘이서 그러고 있는데 그 앞자리에 앉으신 젊고 건강하신 비노약자, 비임산부, 비장애인 분들은 끄덕않고 자리에 앉아서 본인의 개인 사생활을 즐겁게 즐기시더이다. 아, 사실 그 사람들 많이 얄밉다.

다 그런 건 아니다, 고마운 사람들도 있다

버스를 타다보면 전부가 그런 건 아니다. 주로 아주머니들, 그리고 가끔 아저씨들, 그리고 가끔 아주 착한 아가씨들을 만난다. 그들에게 부담 안 주려고 머리를 기사님 쪽으로 돌리고 서서 가는 나를 이끌며 자신의 자리를 양보한다. 그럴 땐 꼭 감사합니다, 라는 인사를 잊지 않는다. 정말 눈물나게 고맙다.

그 이유는 20:80 비율로 아주 간혹있는 감동적인 일이어서 그렇다. 그래도 아직 우리 사회가 맛이 다 가진 않았구나, 하는 생각에 새삼 그 사람들의 마음의 바다와 하늘을 합쳐놓은 것처럼 넓고 꾹꾹 참아왔던 버스안 속 내 설움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것 같아서다. 그래도 난 80을 차지하는 뻔뻔하고 떳떳하게 노약자·임산부·장애인석에 앉아있는, 당사자들이 버스에 타도 절대로 양보하지 않는 비노약자, 비임산부, 비장애인인 이들이 더 많아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버스 문화, 이러면 바뀌지 않을까?

요즘 임산부를 위한 지원 정책이 많아진다는 기사가 뜬다. 위에서 아무리 그런 정책을 만들면 뭐하나. 그 정책도 다 돈 많은 자치구에서나 하더라. 내가 살고 있는 구로구는 그나마 있었던 정책도 제대로 시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직은 동네에서 그런 정책을 구로구에서 시행하니 알아보라고 들어본 적이 없고 심지어는 올 초 지역신문기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그나마 있던 임산부 관련 정책마저도 예산부족을 이유로 깎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오더라. 기가 막히다. 물론 알아보긴 해야겠지만 이제 첫아이를 낳은 나로서는 별 기대가 없겠다 싶다.

그래도 내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임산부를 위한 배려가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확산됐으면 하는 것이다. 바람이 소박하기도 하지만 정말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당사자인 나마저도 말 한마디 못 꺼내는 버스 안 단절된 문화를 어떻게 깨뜨릴까? 생각해 보았다. 이 방법이 기발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승객 여러분, 자리를 양보해 주세요

첫째, 요즘 버스를 타면 방송을 하시는 기사님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아주 친절하시고 직업의식이 뛰어나서 난 조용히 가는 버스보다 승객들 안전과 주의 안내하시는 버스기사님들이 더 좋다. 그 기사님들이 한마디 멘트 하나 더 하면 어떨까?

"승객여러분, 이 버스엔 임산부, 노약자, 장애인 우선석이 있습니다. 앉아 계시다가 그 분들이 버스에 오르면 자리를 양보하는 미덕을 발휘해 주십시오. 사회적 약자 배려는 버스 안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런 멘트 말이다. 이런 멘트가 나와도 그냥 앉아 있을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사실 이어폰 끼고 액정 쳐다보고 있다가 못 들은 사람들 빼고는 거의 다 할 것 같고 또 그런 문화가 정착되면 그 사람들도 그러지 않을까?

이것은 버스를 운행하는 주체인 기사님들이 할 수 있는 일로 가장 적극적인 방법으로 생각된다.

말 안해도 알아서 잘 할 수는 없는 건가?

둘째, 많은 사람들이 알아서 자리를 양보하는 것밖에 없는데 현재는 그게 안 되니… 참 대책이 안 선다. 주로 젊은층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아도 되는, 개인적 영역이 더 중시되는 개인주의 말이다. 사라져 가는 공동체문화와 배려문화, 이거 되살릴 수 있는 방법 없을까?

또 제도적으로 법적으로 강요하고 채근해야 문화가 형성되는 거 말고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문화가 제일로 좋은데 말이다. 아무래도 첫 번째 방법보다 더 좋은 방법이 떠오르질 않는다. 암튼 승객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장애인, 노약자, 임산부를 배려하고 양보하는 자세는 반드시 갖춰져야 할 미덕임을 서로 인식하게 해주는 문화 형성이 필요하겠다.

나를 좀 배려해 주세요

셋째, 보통 사회적 약자인 당사자들이 나는 임산부입니다, 배려해 주세요, 라고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았다. 예전 보건소에서 나눠주던 임산부 배지 형태도 좋겠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사람들이 시선을 주지 않으면 안 된다. 좀 뻔뻔하지만 노약자·임산부·장애인석에 앉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용기도 필요할 때다. 나를 좀 배려해 달라고 말이다. 아, 이거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고 보니 벌써 내일이 예정일이다. 내가 출산을 하고 다시 출근하는 길에 서서 힘들어하는 임산부가 없길 바란다. 물론 난 내가 먼저 양보할 거다. 그리고 배가 별로 나오지 않는 임산부는 배지라도 달아서 알아볼 수 있게 해줬음 하고, 제발 좀 더 팔팔한 사람들은 상대적 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미덕을 발휘해주길 바란다. 사방에서 쏟아져 나오는 날카로운 시선 따윈 아랑곳 않겠지만 제발 그런 시선이 생기기 전에 배려 먼저 하는 사람들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나만의 순간의 편함을 위해 이 사회문화 전체를 불편하게 바꿔버리는데 일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둘째 낳을 때는 내가 사는 가난한 구로구도 임산부 배려정책이 좀 나아질까? 내가 타는 버스에서 노약자·임산부·장애인석에 나도 종종이 아닌 아주 자주 앉아갈 수 있고 양보받을 수 있을까? 그런 사회가 올까? 그나저나 둘째나 낳을 수 있을까? 낳고 싶다. 아이를 낳고 싶은 사회를 함께 만들어 보자, 아자!!!

저 표시가 있는 자리는 항상 반갑다. 그러나 저 자리는 나를 반겨주지 않는다. 대부분 표시와 무관한 사람들이 그야말로 장악하고 있다. 그들의 무기는 이어폰과 액정폰이다. 그 무기가 어찌나 위협적으로 다가오는지 난 한마디도 못하고 오롯이 서서 간다. 그러다 가끔 저 자리에 앉아갈 때가 있다. 모든 설움 순간 다 떨어내고 참 행복한 시간이 아닐 수 없다. 많진 않지만. 그래도 우린 행복한 순간 그 짧았던 기억 하나로 버티고 살아간다.
 저 표시가 있는 자리는 항상 반갑다. 그러나 저 자리는 나를 반겨주지 않는다. 대부분 표시와 무관한 사람들이 그야말로 장악하고 있다. 그들의 무기는 이어폰과 액정폰이다. 그 무기가 어찌나 위협적으로 다가오는지 난 한마디도 못하고 오롯이 서서 간다. 그러다 가끔 저 자리에 앉아갈 때가 있다. 모든 설움 순간 다 떨어내고 참 행복한 시간이 아닐 수 없다. 많진 않지만. 그래도 우린 행복한 순간 그 짧았던 기억 하나로 버티고 살아간다.
ⓒ 김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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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 어떻게 하면 작은 힘이라도 되어 나를 비롯한 수많은 임산부들을 위한 사회가 될 수 있을까? 괜스레 구청, 정부에서 한 개씩 던져주는 먹잇감 따윈 아예 기대조차 안 한다. 지금 돈 없는 사람들에게 더 지원이 가는, 돈 없어도 가난 해도 비록 그것 때문에 힘겹고 서글퍼도… 난 버스 안에서 지하철 안에서 따뜻하게 손 이끌어서 자리에 앉혀주는 사람들만 있다면 그런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기꺼이 둘째도 낳을 수 있는 힘이 생길 것 같다. 둘째아이를 갖고도 행복한 사회를 꿈꿔본다.

참 행복했던 순간 사진 하나 올린다. 요즘 배 불룩 나온 임산부 표시가 어찌나 정겨운지. 저 자리에 앉을 때면 가끔 눈물이 난다. 얼마나 앉고 싶었던 곳인가.

나 서러웠던 순간 참 많았던 임산부다. 언론에 이 글을 올려 조금이라도 그 서러움들이 나아지려나 싶기도 하고 또 나와 같은 서러운 임산부들이 많아지지 않길 바라는 건 지나친 바람일까? 아닐까? 부디 외면하지 않길 바란다. 이땅의 임산부들을….

사실 우리가 엄마없이 임산부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날 수라도 있었냔 말이다. 부탁이다. 제발… 이땅의 모든 딸들과 아들들아. 이 세상의 엄마들을 소중히 아끼고 사랑하자. 아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http://blog.daum.net/bleuj/?_top_blogtop=go2myblog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임산부, #버스, #임산부석, #설움,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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