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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날,  (화)

 

새벽까지 별 궤적 사진을 찍는다고 부산을 떨고, 잠이 안와 책을 보다 잠이 들었는데 창밖으로 밀려들어오는 자연의 빛에 의해 몸이 때어난 시간을 보니 5시 30분이다. 그렇다고 눈이 무겁거나, 몸이 피곤하지도 않다.

 

생각해 보니 물골에 들어온 이후 기상시간이 5시 혹은 5시 30분이었다.

도시에서는 더 일찍 잠에 들었어도 그 시간에 깨면 머리가 아프곤 했는데, 이 곳에서는 깊은 잠을 잘 수 있었기 때문인지 개운하게 일어날 수가 있었다.

 

 

아침은 어제 저녁에 먹다 남은 푸성귀무침(왕씀배 이파리와 뿌리, 돌미나리 무친 것)으로 반찬을 삼았다. 3박 4일 동안 내가 발생시킨 쓰레기는 라면봉지 두어 개와 오이를 쌌던 랩, 휴지약간, 카메라 후레쉬용 건전지 4개가 전부다. 음식물과 관련된 찌꺼기들은 거름이 되라고 밭에 뿌려주니 작은 봉지 하나도 쓰레기를 담기에 넉넉하다.

 

3박 4일의 거룩한 밥상 덕분에 몸이 가벼워졌다.

뱃살도 들어간 것 같고, 무엇보다도 속이 편안하다. 기름진 음식을 싫어해도 도시에서는 과식을 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보니 속이 더부룩한 날이 많았는데 그동안 몸이 호강을 한 것이다.

 

건강을 위해서는 '잘 먹고 잘 싸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고보니 현대인들은 잘 먹지도 못하고, 잘 싸지도 못하는 것 같다.

 

 

빨래도 그때그때 했더니만 3박 4일 동안 입으려고 싸왔던 옷가지들이 무색하다.

혼자 있으니 외모에 신경 쓸 일도 없어 면도도 하지 않고, 머리는 빨랫비누로 감았다. 다시 도시로 나가려니 면도도하고, 샴푸도 한다. 물이 더 많이 든다. 그래도 3박 4일 홀로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밝은 얼굴로 돌아가야 다음에 이런 기회를 또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

 

 

물골에서 나와 천천히 구정속도 만큼으로만 운전을 하며 서울로 향한다.

볼만한 풍경이 있으면 잠시 쉬었다 가며 사진으로 남기기도 한다. 세상은 여전히 변한 것이 없을 것이다.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면 내가 변하는 수밖에.

 

핸드폰을 켜서 1번을 누른다.

 

"여보, 나야. 이제 물골에서 나왔다. 이따 서울서 보자. 자기도 언제 한번 나한테 다 맡기고 혼자서 3박 4일 여행을 떠나라. 참 좋다."

"그런 날이 있을까? 아무튼 조심해서 올라와."

 

다시 도시로 복귀, 세상은 여전히 변한 것이 없다.

내가 고민했던 문제들도 그냥 그대로, 그런데 내가 변하니 그 모든 것들이 달라 보인다. 착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차피 내 속을 끓인다고 달라질 일도 아닌 것을 어쩌랴.

 

아내가 휴가비로 넣어준 휴가비가 풍성하게 남았다.

물골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드릴 약간의 선물, 라면 몇 개, 카메라용 건전지 약간, 오이 두 개가 지출비의 전부였으니 휴가 뒤 주머니 사정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듯하다.

 

 

중년 남자의 3박 4일, 나 홀로 여행은 좀 어울리지 않는 것도 같았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서 아이들도 아버지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고, 나도 홀로 있는 시간을 통해서 마음의 여유를 되찾을 수가 있었다. 세상의 모든 짐을 지고 가는 중년의 남자들이여!(여성들이여!) 이번 여름 나 홀로 여행을 훌쩍 떠나봄이 어떠한가?

 

<나 홀로 여행을 위한 열 가지 제안>

 

1. 사람들이 북적거리지 않은 곳을 택하라.

2. 문명의 기기들(핸드폰, 텔레비전 등등)과 단절하라.

3. 자연과 더불어 호흡할 수 있는 곳을 택하라.

4. 먹는 것은 최소한으로, 소박한 밥상을 대하라.

5. 소비지향적인 쉼에서 탈피하라.

6. 좋은 책 한 권만 들고 가라. 책을 많이 가져가는 것도 좋지 않다.

7. 세상 소식에 귀를 기울이지 말라.

8. 힘들지 않을 만큼 육체노동을 하라.

9. 자연의 시간에 몸을 맡겨라.

10. 그 날 그날의 느낌들을 정리하라.

 

<여행 후기>

 

여행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니 무엇보다도 가족들이 가장 반가워한다. 내가 없는 동안 아이들도 '아버지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아버지도 힘들구나!',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때도 있었지만, 여행 후 아이들이 더 살갑게 대한다.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오리무중, 변한 것이 없다.

그럼에도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은 이전보다 푸근하고, 필요이상으로 화를 낼 이유도 없어졌다. 여행에서 돌아온 이후 사진과 글을 정리하느라 컴퓨터를 키긴 했지만 여전히 핸드폰과 텔레비전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인터넷 메일이 200여 통 와있다.

그 중에서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거나, 열어봐야할 메일은 고작 서너 통에 불과하다.

도시에서 하루 이틀 지날수록 나 홀로 여행에서 느꼈던 감동들은 하나 둘 퇴색되어가고 있지만, 내 삶에서 아주 기억에 남을만한 여행이었다.

덧붙이는 글 | 3박 4일간의 여행기 마지막날입니다. 물골에서 '나 홀로 여행'을 하며 썻던 일기를 정리했습니다. 곧 휴가철, 나 홀로 여행을 계획하는 것도 좋을 듯하여 소개해 드립니다. 그동안 관심을 가지고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태그:#나 홀로 여행, #이슬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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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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