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창비

관련사진보기


'물은 100도씨가 되면 끓는다네. 그래서 온도계를 넣어보면 불을 얼마나 더 때야 할지, 언제쯤 끓을지 알 수가 있지. 하지만 사람의 온도는 잴 수가 없어. 지금 몇 도인지 얼마나 더 불을 때야 하는지. 하지만 사람도 100도씨가 되면 분명히 끓어. 나라고 왜 흔들리지 않았겠나. 그럴 때마다 지금이 99도다, 그렇게 믿어야지.' - 만화 <100℃, 뜨거운 기억 6월 민주항쟁> 중.

몇 번을 곱씹어도 멋진 대사다. 이 뜨거운 이야기를 들려준 이를 만나게 됐다. 만화가 최규석(33).

<대한민국 원주민> <습지생태보고서>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쥬> 등으로 알려진 그는 독창적인 묘사와 우울함 속에서도 재미와 웃음을 잃지 않는 스토리 전개로 독자들의 많은 호응을 받아왔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다룬 만화로 찾아왔다. 1987년 당시 그는 초등학생이었다. 겪어보지 못하고 기억에 없는 일들을 그려낸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은 아닐 터. 그러나 그 세월을 치러낸 이들로부터도 생생한 묘사가 놀랍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최규석 작가 본인은 "MB 정부 덕인 것 같다"며 웃으며 손사래를 치지만 분명 그가 담아낸 그림 속에는 세월을 뛰어넘는 공감이 살아 숨쉰다. 때문에 평범했지만 조금씩 삶과 그 안에서 민주주의를 깨달아 가는 주인공 영호는 그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의 자화상이다. 지난 23일, 그가 진정 화폭에 담아내고 싶은 세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책 잘 나가는 건 이명박 정권 덕"

ⓒ 최규석

관련사진보기


- 작품의 반응이 어떤가.
"지금까지 나온 책 중에선 제일 잘 나가는 것 같다.(웃음) 책을 안 읽는 세태를 감안하더라도 출판사 측 얘기로는 제법 팔리는 편이라고 한다. 주변에서도 좋아해 주시고…. 한편 이명박 정권 덕인 것 같기도 하다. 정권 내내 관심을 가져주시지 않을까.(웃음)"

- 책을 그리게 된 계기를 말해 달라. 1987년 당시 초등학생이어서 6월 항쟁에 대한 기억이 전무할 텐데, 어떻게 보완했는지.
"<6월 민주항쟁 계승사업회>로부터 청소년용 교육 자료로 제의를 받았던 작품이다. 당시에 대한 기억은 없다. 어렸고 고향이 보수적인 곳(경남 창원)이라 더욱 그렇다. 표현에 있어 세부사항을 알 수가 없어 힘들었다. 이를테면 회의할 때 식당 분위기, 거리 풍경 같은 것인데, 수기집을 봐도 알 수가 없으니 곤란했다. 책을 읽고 인터뷰를 많이 했다. 또 이념과 관계없는 1980년대 영화를 많이 보기도 했다."

- '데모하는 것들은 모두 빨갱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던 주인공이 차츰 변해가는 과정은, 흡사 작가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것은 아닌지.
"한편 그렇기도 하지만, 가장 일반적이고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모습을 그려내려 애썼다. 원래는 좀 더 복잡하게 변해가는 모습을 담으려 했지만 실제 인터뷰를 해보니 다르더라. 모든 것이 검열되고 제한적인 시대에서 광주의 진실을 알린 사진 몇 장만 봐도, 천지가 뒤집어지지 않았겠는가."

"청소년들 똑똑하다, 진보가 모두 옳다고는..."

ⓒ 최규석

관련사진보기


- 기본적으로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작품이었는데, 실제 그들의 반응은 어떤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는지.

"좋아한다. 다행히 의도가 통한 것 같다. 이전의 작품은 문화를 적극 향유하는 이들이 찾았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은 친구들도 따라오게 하고 싶었다. <100℃>의 경우 당시 현장에 있던 이들의 이야기라 딱히 내 의도를 넣지 않아도 이야기가 통한다. 당시 그들이 느꼈던 감정만 전해줘도 성공이라 생각했다."

- 제목에도 나오지만 '사람도 100℃가 되면 끓는다'는 대사가 감동적이다. 인터뷰를 통해 체득했는지, 아니면 작가적 상상력인지?
"내가 생각해냈다.(웃음) 제안을 받고 한동안 생각을 해봤다. 책에선 6월항쟁이 시작되는 장면이 마지막이다. 그것이 끓는점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6월 항쟁을 생각하면 누구라도 떠올릴 만한 비유라고 믿는다."

- 때로는 진보에 대한 일침도 등장하는 등 균형감을 잃지 않으려고 한 것 같다.
"뭐랄까…. '열 사람의 한 걸음'을 표현하려 했다. 일을 꾸려 나가고 앞에서 이끄는 이들의 노고야 당연히 존중받아야 하지만, 때로는 동원되는 이들의 마음을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또 그런 부분이 안 들어가고 '무조건 옳다'는 식으로 그려내면, 요즘 똑똑한 학생들의 날카로운 눈을 피할 수가 없다.(웃음) 의견이 달라도 서로 치고받으면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닐까."

- 이전 작품들도 그렇지만,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선이 남다름을 느낄 수 있는데.
"사회적 약자보다는, '담론의 약자'라고 해야 할지.(웃음) 전면으로 부상되지 않는 사람들이랄까. 큰 이야기를 하려면 진행 전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야기하기 편하게 사회를 자르고 거기서 시작하면, 한참 가버리고 난 후에는 뒤에 빠져있는 부분을 끼워 넣을 방법이 없다. 그런 쪽의 감수성은 있는 것 같다."

'돈도 재능'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 이야기 다뤄볼 참

- 앞으로도 정치 상황이나 시대를 풍자하는 만화는 계속 그릴 것인지.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도 있지만 문화계 전반에 대한 불만이기도 하다. 사실은 그런 것들이 좋은 소재다. 그런데 실제 그려내지를 않는다. 캐릭터를 잡아도 노동운동하는 이들은 등장을 안 한다. 미국의 <프렌즈>란 트렌디 드라마를 보면 파업상황에 동참을 할 것인지 그냥 일을 할 것인지 갈등하는 장면이 아무렇지 않게 나온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런 상상조차도 안 한다. 갑갑하다. 작가들 스스로 정치적 이야기는 재미가 아니라, 책임감 때문에 시작한다."

- 가깝게 잡혀 있는 계획을 들려 달라.
"일단 몇 년간 손을 제대로 못 댄 단편들이 있다. 현재 청소년들의 이야기다. 아이들의 미술지도를 한 일이 있는데 그때 '돈도 재능이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사회가 그러니까… 강하게 부정을 하지 못했다. 그런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단편으로 꼭 그릴 생각이다. 또 비정규직에 관련된 이야기도 하고 싶다. 어쨌든 재미있게 그릴 생각이다.(웃음)"


태그:#최규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