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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철강회사 포스코가 친환경 경영을 위해 금연방침을 선포하고 몇 달이 지났다. 경영자의 방침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회사를 떠나라고 했고, 금연여부를 피검사로 확인하겠다고 했다. 기왕에 입사한 사람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담배를 끊거나 승진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고, 이제 선망의 직장 포스코에 들어가고자 하는 신입 사원들 중에 흡연자는 없을 것이다.

하물며 사적인 생각까지도 처벌의 증거가 되는 요즘, 혈중 니코틴 농도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고, 간접흡연에 의한 확실한 가해사실이 있으며, 건강을 해쳐 결과적으로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반 기업적 피의사실이 분명한 흡연을 공식적으로 금지, 처벌하는 것이 더 이상 이상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그리하여 대량의 석탄과 화석연료를 때서, 대량의 철강제품을 생산하고, 대형 화물운송으로 전 세계를 상대하는 글로벌 기업 포스코는 연봉은 높고 담배 연기는 없는 친환경 기업이 되어 가고 있다. 담배에 관한 많은 논쟁은 제쳐두고 한 마디만 하고 싶다. 만일 글로벌하게 환경오염을 시키고 있다는 사실에 일말의 죄책감을 느낀다면 글로벌하고 전향적으로 친환경적일 수는 없을까?

커피는 담배의 절친한 단짝이다. 커피는 그의 친구 담배에 비하면 양반 대접을 받고 있지만 커피도 여러 논쟁거리를 안고 있는 기호품이다. 생각보다 강한 카페인의 중독성, 마시면 마실수록 빠져나가는 외화, 원산지 커피 농민에 대한 글로벌 커피회사의 횡포, 별 다방에서 하루를 보내는 된장녀들. 담배 금지론자들의 엄격한 논리에 입각해서 본다면 커피도 이 땅에서 금지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 의하면 실제로 이런 '커피 금지조치'가 있었다고 한다. 술을 좋아하던 오스만투르크의 술탄 무라드 4세는 사람들이 카페에 모여 정부를 비난한다는 이유로 커피와 물담배를 금지했으며, 전제정치의 부활을 시도하다가 영국의 명예혁명을 불러온 찰스 2세도 같은 이유로 커피점을 금지했다. 일견 과대망상에 의한 해프닝처럼 여겨지는 이 같은 사실들이 그리 먼 일만은 아닌 듯 느껴지지 않는 것은 나만의 과대망상일까? 이 문제에 대해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그들과 진정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기를 바라는 마음은 나만의 헛된 바람일까? 대화는 고사하고 한줌의 관용과 품격이 너무도 목마른 요즘이다.

장터에서 커피콩을 볶지 말라

<커피 견문록>은 커피의 역사를 따라가는 여행기이다. 저자의 여행은 에티오피아에서 출발하여 커피가 퍼져나간 이동 경로를 따라 예멘, 터키, 인도, 유럽 각지와 브라질, 그리고 미국으로 이어진다. 하루끼가 정확하게 지적한 바와 같이 좋은 음식은 산지에서 직접 맛을 보아야만 그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특히나 커피는 그 맛도 맛이려니와 기후와 분위기에 따라 크게 좌우되므로 더욱 그럴 것이다.

이 책의 일차적인 매력은 커피와 여행의 만남에 있다. '스튜어트 리 앨런'은 '커피 사회인류학자'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의 방대한 지식을 배낭에 넣고, 히피 특유의 자유분방한 태도와 호기심으로 위험지역을 태연하게 넘나들며 커피를 알현한다.(저자는 지금도 일정한 거처 없이 카트만두, 시드니, 산크리스토발, 콜카타, 샌프란시스코를 고향삼아 알바를 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 에티오피아에서 두 번째 커피를 마시기 위해 시작된 여행길은 결국 지구를 도는 커피 견문여행으로 이어졌고, 여행의 끝에 이르자 그는 '커피가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4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이 여행기를 읽고 난 지금, 여행기중독자도 그 말에 동의하게 되었다.

먼저 커피의 유래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에티오피아의 '칼디'라는 목동은 유독 쌩쌩한 염소들을 보고 커피의 효능을 알게 되었다. 그는 마을의 수도사에게 이것을 알려주었고, 수도사는 지루한 설법에 조는 제자들, '데르비시(즉 수피교도)'에게 설법을 하기 전에 열매를 씹어 먹게 하였다. 그 결과 데르비시들은 더 이상 졸지 않았고, 이 수도사는 새벽까지 사람들을 잠들지 않게 할 정도로 대단한 지혜를 가진 위대한 예언자로 명성을 떨쳤다는 것이다. 고대인들은 정신 활성물질을 발견하면 이를 숭배하는 경향이 있었고, 커피는 발견과 동시에 신의 음료로 대접 받았다. 커피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그들이 신을 만나러가는 제의의 첫머리를 장식한다.

"우선 녹색 원두를 식탁에서 굽는다. 여주인(수도사)는 연기가 채 가시지 않은 이 원두를 식탁에 돌려, 손님(신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커피향을 한껏 즐기도록 한다. 그런 다음 식전 기도 또는 친목을 다지는 축시 비슷한 것을 읊은 뒤에 돌로 된 분쇄기로 원두를 갈아 다시 끓인다. 무려 한 시간이 걸리는 의식을 제대로 치르자면 커피를 석 잔이나 마셔야 한다. 우정을 위하여 아볼레, 베르케, 소스트가. 한 잔, 두 잔, 석 잔." - '두 번째 잔을 위해 기다려 온 10년의 시간' 중

이 책 전반부에서 우리는 아프리카의 신성한 커피들을 맛 볼 수 있다. 커피를 '부나(buna)'라고 부르는 길에서는, 원초적인 방식으로 끓여낸 커피를 만나는 흥분이 있고, 종교의식에 따라 커피를 돌려 마시는 경건함이 있으며, '하레르'에서 커피무역상을 하다 생을 마감한 '랭보'가 있다. 오래된 명언들과 기도문이 즐비하고,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커피를 전투식량으로 삼아 처절히 싸웠던 '오로모족'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진진하다.

오로모족 속담에는 '장터에서 커피콩을 볶지 말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낯선 자에게 비밀을 누설하지 말라는 뜻이다. 커피의 생두를 볶을 때는 "탁, 타탁..."하는 콩 튀는 소리가 요란하게 나기도 하고, 커피의 향은 볶을 때와 로스팅한 원두를 분쇄할 때 가장 강하게 풍기기 때문에, 장터에서 커피를 볶으면 누구나 커피가 있음을 알아챈다는 사실에서 유래한 속담이다.

커피 볶는 냄새는 터키를 거쳐 유럽으로 퍼져 나갔고, 그 결과는 참혹했다. 신의 음료는 식민지 침략과 노예상선을 불러들였다. 강대국들은 커피를 싸게 먹기 위해 아프리카가 아닌 지역으로 커피 농장을 넓혀나갔고, 아프리카인들은 어김없이 그곳으로 팔려나갔다. 그리고 '커피벨트'는 '암울한 내전의 벨트'로 변해 버렸다.(커피는 적도를 중심으로 위아래 위도 23.5도 사이 해발 800-1500미터의 고산지대 중 적당한 강수량과 비옥한 황토가 있는 곳에서만 자란다. 이를 '커피벨트'라 부른다)

술 취한 유럽을 커피가 깨우다

"커피주전자는 우리에게 평화를 주고
커피주전자는 아이들을 자라게 하며
우리를 부자가 되게 하나이다
부디 우리를 악에서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 에티오피아 의식의 기도문"

그들이 염원했던 커피의 능력은 영국에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커피가 없었던 유럽은 흑사병의 여파로 물 대신 술을 즐겨 먹었는데, 그 양은 상상을 초월한다.

"400년 전의 유럽은 책도 없고, 음악도 형편 없었으며, 후추는 알려지지도 않았고, 소금은 귀하고, 설탕은 이제 막 소개되고 있었다. 물을 안심하고 마실 수 없었기에 아침식사로 맥주에 달걀을 넣고 되직하게 만들어 빵 위에 부어먹고, 오전 새참으로 맥주를 마시고, 점심에는 에일 맥주, 저녁에는 흑맥주를 마셨다."

저자는 거의 모든 유럽 사람이 알코올 중독이었을 것이라고,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면서 가장 큰 적으로 술을 지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말한다. 나아가 알코올이 태아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한다면 당시 유럽 사람들은 지능이 현저히 떨어져 있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1640년대에 오스만 제국의 무라드 2세는 커피를 대대적으로 탄압했고, 그로부터 10년 뒤, 영국에 유럽 최초의 카페가 문을 열었다. 그 결과 유럽인들은 맥주 대신 이 '흑포도주'를 마시면서 술에서 깨어났다. 술집은 정치나 종교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그다지 안전한 장소가 아니었지만, 커피점에서는 토론이 장려되었다. 영국 국왕 찰스 2세는 1675년에 커피점을 금지하고, (그나마 찰스 2세는 11일 만에 국정기조를 바꿔 이 조치를 철회했다고 한다) '반역자'를 찾아내기 위해 카페에 스파이들을 잠복시켰다.

이에 런던의 '터키스헤드 커피점' 에서는 정치적 주제에 대해 손님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도록 하는 방법으로 세계 최초로 투표함을 만들어 내었다고 한다. 카페에는 명예혁명기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이런 공고가 붙어 있었다.

"신사, 상인 여러분, 모두 함께 자리에 앉으십시오.
이곳에는 높고 낮음이 없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그저 적당한 빈자리를 찾아 앉으시기 바랍니다.
어느 누구도 높은 사람이 왔다고 해서
일어나 자리를 양보할 필요가 없습니다."

근대 신문 또한 영국의 카페에서 탄생되었다. 카페는 모이는 손님들에 따라 상인들, 예술가들, 정치인들과 같이 특성화 되어갔고, 이에 '리처드 스틸'이라는 사람은 커피점에서 사람들이 주고받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한데 모아 주간지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그는 각 카페에 '통신원 데스크'를 만들었다. '윌스 커피점'에서 온 시들, '성 제임스 커피점'에서 온 해외 소식, '화이트 커피점'에서 온 예술과 오락거리들... 새로운 주제에 대한 지적인 토론들을 모아 발간한 회보 <태틀러>는 섹션 개념을 만들어낸 최초의 근대잡지가 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런던의 '로이즈 커피점'에는 해운업자들이 모였다. 그들은 인도양을 향해 떠나는 상선들이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을지를 두고 내기를 즐겼다. '로이즈 커피점'은 얼마 후 최초의 보험회사 '로이던즈'가 되었다. 원리는 간단하다. 상선에 투자를 한 뒤, 로이즈 커피점에 가서 그 상선이 못 돌아올 것이라는 편에 내기를 걸면, 배가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로이즈 커피점의 게시판은 런던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시문인 '로이즈 뉴스'가 되었다. 이런 식으로 '발틱 커피점'은 런던해운거래소로, '예루살렘 카페'는 동인도회사로 탈바꿈했다.

두툼한 이 책 가득히 이런 일화가 빼곡하다. '전 세계 카페의 수도 파리'에서 만나는 프랑스혁명과 커피에 대한 이야기는 '커피가 세상을 바꾸는 힘이었다'는 저자의 주장을 인정하게 만들고, 또 예술가들과 카페에 대한 이야기까지 읽고 나면 커피 없는 유럽이, 그리고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상상할 수 없을 지경이 된다. 

브라질로 향하는 배 안에서는 남아메리카 신대륙에 최초로 커피나무를 들여왔다는 '드 클리외'라는 프랑스 귀족이 인상적이다. 그는 대서양을 건너는 배 안에서 갈증으로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순간에도, 자신이 먹을 물을 커피나무에게 양보하면서 끝내 커피나무를 살려 신대륙에 도착했다고 한다. 한편 미국은 세상에서 가장 맛없는 커피를 마시고 있는 나라이다. 대신 그들은 2차 대전에 참전한 군인들을 위해 강력한 각성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인스턴트커피를 만들어 냈다. 커피의 멋은 빼고 카페인만을 극대화해 전쟁에 나서는 모습이 과연 그들답다.

이 책에는 이렇게 새롭고도 놀라운 사실들은 물론이고, 각 나라에서 마시는 커피에 대한 탐미적인 묘사와 호기심으로 가득 찬 작가의 흥미로운 여정이 가득하다. 권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여행기를 읽고 여행기중독자는 이 책과 쌍을 이루는 <담배 견문록>을 써보고 싶은 강렬한 욕망에 시달리고 있다.)

"지성으로 준비했나니, 지성으로 음미하여야 한다"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모델이 된 'T.E 로렌스'가 그토록 증오했던, 알제리 출신 터키장교 '아브드 알 카데르'가 남긴 말이다. 난생 처음 접하는 이 인물에 대한 자세한 조사는 뒤로 미루고, 오늘은 그가 남긴 이 말만을 곱씹어 본다. (어쩌면 궁지에 몰린 회담에서 커피가 나오자 잠시 생각할 시간을 벌기 위해 짜낸 말 같기도 하다.) 

알고 보면 나쁜 사람 없다는 말도 있듯이, 알고 보면 모든 물건, 모든 음식이 소중하다. 커피가 과연 신의 음료인지 악마의 음료인지, 민주주의의 음료인지 제국주의의 음료인지... 어느 한쪽으로 단정하는 짓은 어리석은 짓이다. 누군가는 커피를 통해 신을 만나고, 누군가는 악마를 만날 것이다. 누군가는 민주주의의 커피를 마시고, 누군가는 제국주의의 커피를 마실 것이다.

하지만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신과 악마의 경계는 불분명하며, 제국주의는 언제나 화려한 민주주의 뒤에 숨어있었다. 커피는 나의 생각을 강요하기 이전에 (기분 내며 광장을, 담배를 금지시키기 이전에) 아집과 분노에서 빠져 나올 기회를 제공한다. 카페인의 도움을 받아 멀리 떠나가 있는 교양과 관용을 불러와 다시 대화에 임하게 만드는 것이다. 한 잔으로 부족하다면 열잔이라도... 아볼레, 베르케, 소스트가...

이것이 커피가 그 영욕의 역사를 넘어 민주주의와 예술을 발전시켜 온 비결일 것이다.


커피견문록 - 에디오피아에서 브라질까지 어느 커피광이 5대륙을 누비며 쓴 커피의 문화사

스튜어트 리 앨런 지음, 이창신 옮김, 이마고(2005)


태그:#커피견문록, #스튜어트 리 앨런, #이마고, #세계일주,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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